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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평점 :
『 p. 39
인간은 견고한 화학적 화합물이 아니라 액체의 불안정한 혼합물일 뿐이고 그 혼합액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고통인 것이다.
』
마흔 넷의 수잔 언니는 덴마크의 천재 물리학자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 물리학적으로 해석하곤 하죠. 심지어
요리조차도 물리학적 접근으로 해냅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수잔 언니에겐 천재 음악가인 (전)남편과 유전자의 힘은 어쩌지 못한다고 당연히
천재로 태어난 열일곱살의 쌍둥이 남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가족은 모두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엔 조금
어려운, 천재적인 묘한 능력을 말이죠. 그리고 이 능력 덕에 이들 가족은 위기에 빠집니다.
천재는 괴팍한 괴짜들이라고 했던가요? 수잔 언니의 가족들은 모두 사고뭉치였습니다. 인도에서 각자 대형 사고들을 친 네명의 가족들. 급기야
인도에서 수감될 위기에 처하는데, 이들 가족에게 어떤 음흉해 보이고 위험해 보이기 짝이없는 거래가 들어옵니다. 수십년 전부터 존재했던 '미래
위원회'라는 조직을 좀 파헤쳐달라는 것. 그들 가족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말이죠. 특히 수잔 언니의 능력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말하게 하는 '수잔 이펙트'였기에 더더욱 위원회에 몸담았던 노친네들을 신문하기에 이보다 더 유용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수잔 언니를 비롯한 이 가족, 참 겁도 없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기는데도 행동에 거침이 없어요. 항상 쇠지레를 소지하고
다니는 터프하신 수잔 언니 뿐 아니라, 감성적이기 이를데 없이 섬세한 그녀의 남편 라반도, 쌍둥이 남매인 티트와 하랄도요. 그 거침없음에 마음
졸일 때도 많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침없음에 웃음이 날 때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세상에 자신들을 누군가가 감시하는 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위치추적기 하나 멀리 떠나보내고선 본인들 집에 당당히 들어가 숨어 지내는 가족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구요! 등잔 밑이 어둡다
이걸까요? (ㅋㅋ;) 이 외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상황과 대사들이 곧잘 튀어나오는데 저는 이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그들 가족은 거침없이, 겁없이 '미래 위원회' 위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조직의 정체와, 또 그 뒤에 감춰진
아주 거대한 음모에 가까이 가게 되죠. 그리고 그 끝엔 역시 거대한 정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거대한 반전도.(저는 이 반전을
중간에 살짝 눈치챘지만요; ㅋㅋ) 이런 과정을 보자면 이 작품은 역시 스릴러 소설이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 스릴러라고 분류하기엔 참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잔 언니와 그녀의 가족들의 기이한 능력을
보노라면 SF적인 요소가, 수잔 언니의 모든 현상에 있어서의 물리학적 해석들을 보노라면 과학적인 요소가, 미래 위원회의 실체를 보노라면
음모론적인 요소가, 이 모든 것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냉소가 드러날 땐 풍자적인 요소가, 역자님이 지적했듯 결말만 보자면 심지어 로코적인
요소까지. 참으로 다채로운 요소들을 다채롭게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채로움이 산만함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물론 작가의 역량이 크게 한몫했겠지만, 그래도 역시 주인공인 수잔
언니의 공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든 그녀 앞에선 솔직해 질 수밖에 없는 수잔 이펙트, 무기로 다른 무엇도 아닌 쇠지레를 들고
다니는 터프함, 모든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이성, 자식들을 위해선 못 할게 없는 모성애, 상대가 적이라도 성적 본능에는 한없이 충실한
솔직함, 위기에 빠져도 당황하지 않는 대범함, 그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 이토록 다양한 매력을 한번에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이 또
어디 있을까요? 솔직히 소설 초반에 낯설기 그지없는 덴마크의 인명이나 지명들과 미치도록 난해한 물리학 용어들이 버겁기만 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잔 언니의 이런 다채로운 매력으로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걸 크러쉬! 그리고 수잔 이펙트!
『 p.
453 지난 몇 달간 알아낸 게 있어요.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그리고 이 효과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게 뭔지 아세요? 타인이에요.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건 바로 타인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