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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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업의 여왕 도미노코지 기미코가 7층 자신의 사무질에서 떨어져 사망합니다. 그녀가 소위 잘 나가던 시절엔 그녀를 그리도 추앙하던 텔레비전과 주간지에서는 이제 악녀의 추락이라고 떠들어댑니다. 그리고 여기 그녀가 진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취재하러 나선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 소설가가 도미노코지과 관련된 인물 27인을 인터뷰한 기록입니다.

 

오로지 인터뷰의 기록만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의 이 소설, 하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도 사건이 다채롭고 흥미진진합니다. 그녀는 정말 악녀였는지, 그래서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던 것인지, 그렇다면 그녀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몹시도 궁금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뷰를 거듭 거듭 읽어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인터뷰를 읽을수록 더욱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정말 '도미노코지 기미코' 한 사람에 대한 인터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들의 평이 갈리니까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그녀가 실은 알고보니 쌍둥이나 세쌍둥이는 아니었을지, 혹은 그녀와 똑같이 성형을 한 다른 여자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그런 트릭이 사용된 소설이 아닌지 의심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이나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다채로운 인생을 살았고, 다채로운 인물들을 만나 관계를 맺었습니다. 때론 영악하게, 때론 순수하게, 또 때론 헌신적으로.

 

도미노코지 기미코, 그녀의 주변인들이 들려주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 속에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일본의 5~70년대 모습이 아주 잘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신분제가 폐지되어 귀족들이 몰락해 가는 모습,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들, 점점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가는 여성들의 모습 등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사회의 변화를 아주 잘 이용하여 큰 성공을 이룬 도미노코지 기미코. 그녀는 정말 악녀였던 걸까요?

 

마지막 27번째 인물의 인터뷰까지 읽고나면 그녀가 정말 악녀였는지 결론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저는 여전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개천에서 태어난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구나 싶을 때는 그저 안쓰럽기도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녀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상처입는 것을 보면 악녀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녀는 정말 악녀였던 걸까요? 여전히 답을 찾을 수가 없네요.

 

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로 발 돋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절, 제 휴대폰에 적힌 문구는 '나쁜 여자가 되자.'였습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바다에 뛰어들어 수장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그래서 성공하려면 독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도미노코지 기미코... 그녀도 역시 그런 마음이었던 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입니다.

 

한 사람에 관한 결코 하나로 모아질 수는 없는 27개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읽다보니 내 주변 인물이 100명이라면 결국 나 또한 100명이 존재하겠구나 싶어 어쩐지 씁쓸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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