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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역주행이긴 한데, 몇달 전에 읽은 <악당>이란 작품의 작가 야쿠마루가쿠의 대표작입니다. 이미 악당에서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 후의 모습들을 아주 묵직하게 보여줬었던 작가에게 반해버렸었습니다. 때문에 대표작이라 불리우는 이
작품 <천사의 나이프>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지요.
'소년범'이란 소재는 작년이던가, 재작년이던가 미미여사의 '형사의 아이'라는 작품을 통해 접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었을 때도
소년범, 그러니까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자면 미성년자들의 범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법도 일본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고, 우리나라의 실정도 일본의 실정과 많이 닮아있으니까요. 뉴스에서는 왕왕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가 보도되곤
합니다. 미성년자...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때문에 갱생할 가능성이 매우 큰 자...단죄보다는 회개가 필요한 자... 다 맞는
말입니다만, 막상 피해자의 입장이 된다면 그들을 그리 쉽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그런 소년범(미성년자) 문제에 대해서 심도
깊게 다룬 묵직한 사회파 소설입니다.
생후 5개월 된 딸 아이 마나미를 키우며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던 히야마와 쇼코 부부. 어느날 쇼코는 집안에 침입한 중학생 3명에게
살해당하고 히야마는 좌절합니다. 하지만 딸을 위해서 버티고 다시 일어서게 되지요. 쇼코를 살해한 범인들은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특정 기관들에서
갱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히야마는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그들이, 쇼코에게 제대로 된 속죄 한번을 하지 않은 그들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갱생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아내의 사건을 맡았던 형사 사에구사가 찾아와 당시 가해자 중
하나였던 소년B가 히야마의 가게 인근에서 살해당했음을 알립니다. 하지만 그날 히야마의 알리바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건은,
또다른 사건을 부르고, 3년 전 아내의 살해사건의 내막에도 무엇인가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아주 분명합니다. 논란이 많은, 때문에 몇 년전 개정이 되었다는 일본의 소년범 문제. 그리고 가해자의 속죄,
피해자에 대한 치유. 일본의 현행법상의 여러 오류나 문제들에 대해서 심도있게 고민하죠. 때문에 작품을 읽다 보면 이건 소설인가, 아니면 토론이나
대담프로그램인가 싶을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고리타분해질 수 있는 주제들을 작가는 소설이라는,
그것도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에 아주 잘 녹여 놓았지요. 이는 이미 악당이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도 감탄했던 바인데, 이 소설은 장편이라 그런지
더더욱 밀도 있고 심도 깊게, 그러면서 추리소설적인 형식은 철저히 지키면서 말입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사건들과 그리 많지 않은 인물들로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며 책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작가, 게다가 대중 소설로써 이렇게 묵직한 사회 문제를 파헤치고 분석하는 작가의 역량이 실로
대단하구나 감탄했습니다. 이런 류의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기에 앞으로도 이 작가의 작품은 무조건 믿고 보게 될 것 같네요.
수많은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수많은 소설들을 읽으면서, 혹은 실제로 벌어진 살인 사건 뉴스를 보면서 범죄자가 체포되었는지 아닌지, 형은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엔 그 잔혹한 범죄에 당한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단죄하거나
가해자를 갱생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상담이라든가 치유라든가)하도록 돕는 제도 또한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