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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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며 작가들 얼굴을 딱히 유심히 보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작가 얼굴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책 표지 뒤편에 실리는 경우가 많지만 아닌 경우도 많아서 일부러 검색을 통해 사진을 찾아보는 경우도 있구요. 그렇게 책과 작가의 외모를 견주어 보고선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랑 전혀 다르구나...싶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정세랑 작가는 책에서 받은 (이 책 속 안은영식 표현을 빌리자면) 에너지의 기운과 어쩌면 이다지도 잘 어울리나 놀랍습니다. 작가님의 인상도, '재인, 재욱, 재훈'도, '보건교사 안은영'도 유쾌하고 정겹고 귀엽고 다정하고 따뜻하네요. 고작 두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평하는 것이 작가님께 무례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수 십년, 수 백년, 수 천년 전엔 넘치고 넘쳤던 영웅이 어째서 인구가 수십배로 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까...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이나 원효대사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같은 분들 말입니다. 그런데 '재인, 재욱, 재훈'과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실은 우리 주변엔 우리가 미처 그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영웅들이 정말 많다는 걸 말입니다. '평생 시장에서 순대를 팔아 모은 전재산을 기부하는 할머니',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희생한 대학생', '추운 날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붕어빵을 건네는 아가씨' 등. 앞서 언급했던 난세의 영웅들은 아니지만 팍팍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훈훈한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들, 그들도 역시 영웅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안은영은 M고의 보건교사입니다. 그녀에게는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적 기운이라든지, 귀신이라든지,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라든지, 에로에로(ㅋㅋㅋ)에너지라든지. 그런데 M고의 지하실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이를 제거하려 하나, 그녀도 일단은 인간인지라 사용할 수 있는 기력에 한계가 있지요. 그런 그녀에게 충전기(?) 역할을 해주는 이는 M고 설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선생인 홍인표였습니다. 그렇게 은영과 인표는 서로 상부상조하며, 때론 썸도 타며 M고의 평화 유지를 위해 각종 시시콜콜한(...그렇지만 그 일을 겪는 개개인에서 보면 몹시 심각하고 중요한) 일들을 해결해 갑니다.

P.185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중학생이 소화하기에는 힘든 깨달음이었다.

 

이 책속엔 10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각 단편들 속에서 문제를 겪는 여러 주인공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어떤 나쁜 기운 때문에 그런 일들을 겪기도 했지만, 때론 그들 안의 어떤 상처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 낸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쁜 기운을 만들어내는 영적인 존재들 조차도 실은 살아 생전에 아픔을 겪고 상처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구요. 그런 그들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건 은영이었습니다. 꽃무늬 마니아에 성격도 까칠하고 어딘지 음울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가 말입니다. (어째서 그녀의 직업이 보건교사인가...하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단편들 속 상처 받은 영혼들, 사람들, 그리고 안은영, 홍인표... 결국은 조금은 버거워 언제나 상처 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혹은 견뎌내는 우리들의 모습 다름 아닐까하구요. 때문에 갑남을녀 우리들 서로 서로가 위로하고 치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마치 조금씩 부족한 은영과 인표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영웅이 되는 것처럼요.

 

P.265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

 

총 10편의 단편이 모인 이 연작 소설집에는 유머도, 따뜻함도, 다정함도, 설렘도, 스릴도, 통쾌함도, 감동도, 아픔도 있었습니다. 줄창 소설만을 즐겨 읽는 제가 소설을 읽으며 얻고자 하는 것들이 총 망라되어 있었지요. 작가는 이 작품들을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가의 쾌감은 고스란히 제게도 전해졌기에 책을 읽어나가며 저도 좋은 기운을 얻어 힐링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작가는 즐겁게 쓴 이야기라 영원히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는데, 은영과 인표의 이야기를 또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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