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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 죽은 자의 일기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몇 해 전 '추적자'라는 드라마를 굉장히 재미있고 인상깊게 봤었습니다. 주인공이 형사였는데 그의 딸이 교통사고 뺑소니를 당하여 사망하고 난 후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지요. 그래서 주인공이 딸을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추적한다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였는데, 실은 그 뺑소니범이 대선
후보의 아내의 정부였던 겁니다. 그 아내는 국내 제 1의 대기업의 영애였구요. 아내의 불륜 행각이 드러나면 자신의 정치 생명에도 지장이
있는지라 그 뺑소니 사고를 덮기 위해 그 대선 후보는 온갖 악행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며, 심지어 살인도 불사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뺑소니범의 정체가 밝혀지길, 제발 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길 간절히 바랐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 덕에 너무도 씁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록 허구의 드라마였지만 정치계, 검찰계 등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놓은 그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정치란 것이
또 정치인들이란 정말이지 '정' 떨어지게 '치' 떨리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씁쓸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소설들을 읽으며 수많은 가상의 정치인들을 접했었는데 한번도 긍정적인 정치인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스릴러 소설들의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범은 정치인인 경우가 상당수였구요.
이 작품 속 주인공인 강호성이란 정치인도 그렇습니다. 바르고 스마트하고 젊은 그는 스타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여지는 그 바르고
스마트한 이미지의 뒤편엔 추악하고 더럽기만한 본성이 감춰져 있습니다. 조만간 있을 지방 선거에 영인시장 여당 후보로 출마한 그의 당선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 강호성에게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결혼한 아무런 배경이 없던, 말기암 환자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날 한시에 아내와 어머니가 동시에 사망하고 맙니다. 표면적으론 자신이 죽고 나면 보살필
사람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따라 자살한 것처럼 보였지요. 그래서 강호성은 이 두 사람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로 합니다. 자신의 최측근인 어머니와 아내의 죽음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다니 소름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형사 서동현이 등장합니다. 윗분들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이 사건을 하루 빨리 마무리지어 버립니다. 때문에 서동현은
믿을만한 후배 지신우와 함께 이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하게 되지요. 그 조사 과정에서 강호성의 아내 주미란이 남긴 일기장과 단서들을 입수하게 되고
사건의 전말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솔직히 사건의 전말은 추리 스릴러를 두루두루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챌만한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정황들이나 악행들이나 소재들이 조금은
뻔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정신없이 넘어갑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수없이 욕도 해가면서요. 4.13
총선이 두달 정도 남은 시점에 읽었더니 더욱 몰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조금은 복장 터지던 결말도 전 나쁘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또한 그러할
테니까요. 저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히가시노게이고(그러고 보니 게이고 소설 중에도 동명의 소설이 있군요.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요;;) 소설을
읽을 때만큼이나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아니, 배경이나 인물들이 우리 나라 사람이라 그런지 게이고 소설을 읽을 때보다 더욱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 편, 두 편 읽을 때마다 만족도가 높은 국내 장르 소설들. 이렇게 훌륭한데 어째서 저평가 받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국내
장르 문학 작가님들 화이팅입니다!)
4.13 총선이 두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때문인지 설 연휴 동안 뉴스에도 (북한 미사일 다음으로) 온통 정치인들 이야기 뿐이더군요.
어떤 후보는 SNS에 시를 올렸다고, 어떤 후보는 SNS에 손주들의 세배 인증샷을 올렸다고, 어떤 후보는 전통 시장에 방문하여 시장 상인들을
독려하였다고, 등등등. 그런 뉴스들을 가만히 지켜 보며 저는 저도 모르게 뇌까렸었습니다. "쇼 하고 있네." 저는 정치인들의 정치를 보노라면
진정성은 없고 다 '가식적인 연기'로만 보이더라구요. 아무리 선의를 가져보려고 곰곰 생각해보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악의만 더 쌓이고 쌓이는
정치. 이러다 무정부주의자가 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