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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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 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

 

인터넷, 스마트폰, SNS등이 활성화 된 세상에서도 군부독재는 존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스스로 생각한 답은 존재할 수 없다...였지요. 권력의 횡포로 언론 장악이야 쉽겠지만, 개개인이 주고 받의며 퍼져 나가는 정보들까지야 일일이 막기 힘들테니까요. 그렇기에 인터넷의 발전은 분명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이 훨씬 더 크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모 인터넷 사이트(처음 시사프로그램에서 그 사이트의 정체를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사태나, 몇 해 전 국정원 선거 개입과 같은 사건을 지켜보며 허를 찔린 기분이었습니다. 늘상 쉽게 우리곁에 머무르거나 우리 눈앞에 노출되며 더 은밀하고 뿌리깊게 사람들의 정신속에 파고들게 할 수 있는 것이 인터넷이란 도구이더라고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말이지요. 그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겁니다.

 

작가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모티프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때문에 저는 조금 걱정이 되었더랬습니다. 이 소설 과연 괜찮을까? 이 작가 그런 소설을 쓰고도 과연 괜찮은걸까? (70~80년대도 아닌데 말이죠ㅠㅠ) 때문에 몹시 위험한 소설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 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험하긴 위험한데 위험하다의 주체가 작가는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때의 댓글부대가 아닌 그 후에 더욱 발전된 형태의 2세대 댓글부대였으니까요.

 

이 소설은 댓글부대 2세대인 팀-알렙의 세 멤버인 삼궁, 찻탓갓, 0110...이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나 사적인 이야기, K신문 임상진 기자와 찻탓캇이 나눈 대화의 녹취록이 교차하며 서술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팀-알렙은 실검 조작이나 가짜 구매후기, 파워 블로거 조작등의 일을 하는 어찌 보면 온라인마케팅 업체입니다. (저도 블로그 팔라는 둥, 자신들이 써 준 글을 매일 포스팅 하면 건당 만원을 주겠다는 둥의 쪽지를 종종 받는데.... 그 이면이 이런 것들이었다니 좀 충격이었습니다. ) 그런데 어느날 팀-알렙에게 아주 묘한 의뢰가 들어오는데 그것은 영화 한 편을 망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백혈병을 앓게 되었다는... 그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지요.(... 책 안에서의 제목과는 다르지만 이 영화는 실제로 존재했고, 실제로 망했습니다;;) 그리고 팀-알렙은 이 사건을 아주 깔끔하고(?) 성공적으로 해치웁니다. 그렇게 실력을 인정 받은 팀-알렙에게 합포회라는 수상한 조직이 접근하고 계속되는 의뢰를 하는데... 그 의뢰란 것은 진보 성향의 인터넷 카페 게시판이나 커뮤니티들을 초토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일처리를 위하여 팀-알렙은 각각의 커뮤니티들을 아주 꼼꼼하게 관찰을 하는데, 그에 대한 묘사가 정말 적나라합니다. 인터넷 사이트들의 생태를 아주 제대로 까발려 놓았지요. 매 사이트의 생리를 분석하고 묘사하는 부분에서 자꾸 소름이 돋더군요. 저는 독서 관련 커뮤니티에서 (지엽적으로밖에 활동을 안하긴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의 생태를 자주 목격했었으니까요. 그런 묘사가 너무도 사실적으로(실제로 어느 사이트에서 복붙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술이 사실적이랍니다.) 그리고 있어서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인간 본성에 감춰진 악의랄지...공격성...등을 집중 공략하는 팀-알렙의 일처리는 승승장구합니다. 나름 인터넷 용어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도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은어에 가끔 이게 뭔소린가...싶어서 검색을 해야했지만(여초니...남초니...하는 말의 정확한 뜻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미친 가독성을 발휘하며 책에 빠져들었지요.

 

p. 177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어정쩡한 글을 올리면 처음에는 다들 눈치를 봐요. 이걸 받아들여줘야 하나, 아니면 공격해야 하나. 그런데 누가 '저도 그래요. 공감 100배'라고 댓글을 달면 이제는 상대해야 하는 사람이 둘이 되는 셈이죠. 거기에 누가 '글 정말 잘쓰시네요. 읽는데 내 얘기인 줄'이라고 댓글을 달면 이제 원 게시물은 철옹성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제3자가 '이 글 저만 불편한가요?'라고 의문을 표시하면 공격의 틈이 살짝 열리죠. 그다음에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다들 별말씀 없으시네요.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가봐요?'라는 댓글이 달리면 슬슬 멍석말이를 준비해도 됩니다. 거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견은 처음 듣습니다.'라고 누가 동조하면, 짜잔. 이제 나도 칼을 뽑아도 됩니다. 다구리를 치는 시간이 온 거죠.

 

이렇게 실력을 인정 받은 팀-알렙에게는 이제 더 거대하고 어마무시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일이 정말로 어디선가 행해지고 있으면 어쩌나 싶게 위험하고 무서운 임무가 말입니다.(스포가 될 수 있으니 소개하진 않겠습니다. 장담하건데 누구든 읽어 보시면 저처럼 어마어마한 충격과 공포를 느끼실 겁니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지요. 아, 이 소설은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위험하구나...하는 것을요.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라고 하기엔... 이야기들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결말을 맞이했을 때 저는 '와!'라는 감탄사를 수도 없이 뱉어냈습니다. 식상한 말로 '충격과 공포'라는 단어는 딱 이 작품에 써야하는 말이구나...하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 어떤 스릴러 보다 더 소름끼치던 결말... 제발 누구든 이건 말도 안되는 뻥이라고,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읽어 보셔야 압니다. 그러니까 부디 꼭 읽어 보세요;;;)

 

할 줄 아는 건 컴퓨터밖에 없고, 정상적인 연애는 할 용기도 능력도 없어서 안마방에나 다니는 세 인물 삼궁, 찻탓갓, 0110. 솔직히 처음엔 참으로 정이 안가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났더니 왠지 안쓰럽습니다. 그리고 걱정도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 뻔히 보였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수상한 인물들에게 거금의 돈을 받고 일을 처리해가며 점점 의식이 변해가는데(특히 삼궁), 아니 의식이라는게 형성되어 가는데....그게 참 무섭습니다. 수상한 인물들이 거시적으로 장기적으로 하고자 한 일의 결정판 같은 인물이 바로 삼궁이구나 싶었으니까요. 존재만으로도 빛난다는 청춘들인데...... 대한민국의 젊은이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팍팍하고 불안한 일이구나...하고 다시 한번 씁쓸하게 깨달았습니다.

 

'한국이 싫어서'로 처음 장강명 작가를 접했을 때 그 첫인상은 이 작가 굉장히 냉소적이면서 젊구나...였습니다. 그리고 후에 접한 '그믐.......'은 조금 난해해서 이 작가도 결국은 어려운 작가구나...싶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접한 작품이 '댓글부대'입니다. 색이 전혀 다른 세 작품을 한 작가가 썼다니 장작가의 스펙트럼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작가는 댓글부대 관련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읽은 독자들 나를 좌빨로 볼지, 일베로 볼지 궁금하네요. 누가 읽어도 불쾌하고 기분나쁜 소설이거든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에 저는 작가 자신이 작가 후기에도 썼던 말로 독자로서 답변을 하고 싶네요. '작가님은 이 나라를 비판하면서 사랑하는 작가'일 뿐이라고. 그러니 앞으로도 이런 소설 많이 써주시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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