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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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가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최종판>

유명한 작가 누구누구의 강력 추천! 이란 광고 문구... 너무나 식상한 문구라 상당히 팔랑귀인 저마저도 이런 문구에는 쉽게 혹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누구가 다름아닌 '이사카코타로'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그는 제가 무조건 믿고 보는 작가니까요. 게다가 켈러 시리즈는 이사카코타로의 최종 지향점과도 같은 책이라니.... 혹...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책을 로런스블록이란 걸출한 중견 작가의 작품으로서가 아닌, 제가 애정해마지 않는 작가의 추천작으로서 펼쳐 들게 됐습니다. 그가 쓰고 싶어 하는 이야기의 최종판이이란 어떤 스타일일지 점쳐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감성감성 열매를 먹은 킬러 '켈러'>

'살인해 드립니다.'라니... 제목이 상당히 직설적입니다. 게다가 하드보일드라니, 그 수위(?)가 꽤나 강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켈러라는 킬러(...운이 맞는 것이 참 좋네요...ㅋㅋ)... 마치 사춘기 소녀 같습니다. 출장지마다 그곳에 매료되어 이사를 꿈꾸지만, 또한 금방 자신의 현실로 돌아오는 변덕스러운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모든 생활을 개의 패턴에 맞춰나가기도 합니다. 정에도 한없이 약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며 의뢰인과 타깃 사이에서 내적 갈등도 자주 겪습니다. 우표 수집에 빠져들면서는 덕후스러움을 한껏 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섬세한 감성 덕분에 켈러는 심지어... 킬러라는 신분으로는 너무도 위험한 상담 치료를 받기도 합니다.(개인적으로 10편의 단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만약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악마의 열매중 감성감성 열매란 것이 있다면 분명 그 열매는 켈러가 먹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악마의 열매를 먹은 사람은 그 열매 덕에 치명적인 약점이 생기는 동시에 어마어마한 능력을 소유하게 되지 않습니까? 켈러 또한 그렇습니다. 이런 예민한 감성은 분명 킬러로서는 지극히 불필요한 약점이 될텐데... 어쩐 일인지 켈러는 이 감성 덕에 그의 능력치...특히 독자를 끌어 당기는 매력치가 극에 달하게 되니까요. 때문에 시원한 액션 스릴러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치신 분들은 아마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기에 대한 묘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총탄이 비오듯 퍼붓는 장면을 읽을 때면 머리가 멍~ 해져버리는 저에겐 이런 독특한 킬러 '켈러'의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시간 순서대로 수록된 10편의 단편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켈러의 섬세한 심리 변화 과정이나 자아성찰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가 있습니다.

 

<독자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킬러 '켈러'>

원래 킬러라함은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냉정함을 갖고 있다거나 어마무시한 살해 스킬(?)을 자랑하며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정석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속에서 접하게 되는 킬러들은 흔히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지요. 주인공을 괴롭히는 '철저한 악인'이거나, 그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의적 스타일의 암살자'이거나. 그런데 켈러라는 인물은 그 어디에도 포함시킬 수 없는 애매함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그가 '철저한 악인'이라면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며 단죄되기를 빌면 될 것이고, '의적 스타일의 암살자'라면 악의 무리를 처단해 가는 그를 응원하면 되는데... 도통 그를 어디에 포함시켜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어찌됐건 그의 직업은 사람을 죽이는 킬러이니... 그는 분명 선인에 포함될 수는 없는 인물인데다가 가끔 실수로(-_-) 의뢰받지 않은 무고한 사람까지 살해하는 켈러를 보고 있노라면 약간의 분노와 함께 켈러를 증오하게 됩니다. 역시 킬러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지...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켈러 역시 이점에 대해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으며 자아를 성찰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켈러에 대한 미움이 점점 사라져가게 되는 묘한 심리 변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게다가 정에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개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저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거든요.) 어느새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거든요. 또 그러는 와중에 켈러가 타깃을 살해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라도 하면... 아... 맞다... 켈러는 사람을 죽이는 게 직업인 사람이었지...하고 깨닫습니다. 그렇게 10편의 단편을 읽으며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딜레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즐겁기 짝이 없는 딜레마이며 이 책의 페이지 터너가 되는 것이지요.

 

<누구누구의 추천작이 아닌, 로런스 블록의 '켈러' 시리즈>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이 책을 오로지 이사카코타로란 이름 때문에 펼쳐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선 왜 그가 쓰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최종판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이사카코타로의 최근작인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에서의 킬러 '목부남'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거든요. 아마도 켈러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아 탄생시킨 캐릭터가 '목부남'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적인 요소와 더불어 질척거리지 않는 간결한 문장,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대화체, 지루하지 않은 내면 묘사까지.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는 로런스 블록에 대한 저의 첫인상을 두 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그것은 '섬세하게 담백하다.' 였습니다. 대중적인 요소와 문학적인 요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로런스 블록의 대단한 필력을 저 또한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사카코타로의 추천작 켈러 시리즈가 아닌, 오롯이 로런스 블록의 매력적인 캐릭터 '켈러'의 이야기를 즐기고 싶은 욕구가 커졌습니다. 도트의 전화가 울리고, 켈러는 또 어딘가로 출장을 가서 그곳의 매력에 흠뻑 취해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겠지요. 여전히 우표 수집에 열을 올리면서 말입니다. 그런 그의 이야기들이 또 읽고 싶습니다. 부디 켈러의 다른 이야기들도 어서 번역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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