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남자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p. 574 조, 나는 사람이 희망을 모두 잃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긍지, 기대, 믿음, 욕망이 모조리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을 지배해. 완전히 장악해버리지.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가 들려..............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 뼈가 부서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는 아니야. 그렇다고 심장이 저며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축축한 소리도 아니지. 그건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 아연히 상상하게 되는 소리야. 가장 강력한 의지가 무너져내리고, 과거가 현재로 스며들어오는 소리. 너무나 높은 고음이라서 지옥의 사냥개들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온 관객들이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나 오늘 곽도원 안티 카페 가입할 거다.'라고. 배우의 연기가 너무도 악랄하고 리얼했기에 있을 수 있었던, 어찌 보면 배우로선 최고의 찬사였지요. 영화 속 배경이던 시절에 전 너무나 어렸고, 또한 완전 시골 깡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분위기 따위는 당연히 전혀 몰랐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그 고문 장면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요.(사실 전에도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여러 소설도 읽고, 영화도 몇 편 봤는데도 변호인이란 영화에서의 그 충격과 분노가 더욱 컸더랬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본 날 많은 것들을 검색해 보았지요. 영화 속 곽도원이란 배우가 연기했던 인물은 실존 인물인지... 정말 그런 고문들이 행해졌었었는지... 등등. 그렇게 검색을 하던 전 더욱 큰 충격 받게 됐습니다. 영화 속 고문 장면은 지극히 순화되어 연출된 장면이란 사실 때문에... 그리고 문제의 그 인물은 당연히 실존 인물이란 사실에.... 그는 고문 전문가였고, 고문을 일종의 예술로 생각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 인물은 후에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사람이 사람을 고문한다는 행위... 그 행위를 생각할 때 전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고문을 행하던 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죄책감은 없었을까? 그런 짓을 하고 나서 발 뻗고 잠이 올 까? 그런 일들을 행하고도 정신적 후유증 같은 건 없었을까? 등등... 성선설을 굳게 믿는 제 상식으론 고문을 당하는 사람 만큼이나 고문을 행하는 사람도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즐기며, 심지어 그 행위에 중독되어 가는 인간들이 많은 걸 보면 말이지요.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도 그런 인물이 등장합니다. 소설 제목 자체가 그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군사정보부에서 고문 전문가로 일하던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행하는 악행들 덕에 정신이 피폐해져 가지요. 그런 그가 순수할 수 있던, 그리고 그의 곁에서 오로지 홀로 순수한 존재는 딸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딸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잃은 딸을 되찾기 위해 더더욱 악랄한 짓들을 행합니다. 군 시절 익힌 고문 기술을 백분 활용하여 희생자들의 정신을 좀 먹고, 그들 스스로 목숨까지 끊게 합니다. 상대의 가장 소중한 것, 희망을 빼앗아 그들의 마음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즐기지요. 주 대상은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 '부모'라는 존재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는 자식이고, 또한 가장 큰 약점 또한 자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드온에게 있어 기드온의 딸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드온은 자신처럼 희생자들이 무너져 내리는 걸 즐깁니다. 그렇게 그는 다른 사람들을 부수며, 또한 자신 또한 부서져 버리지요.

 

그리고 당연히 이런 악당에 맞설 우리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실력있는 심리학 교수인 조 올로클린. 수려한 외모와 훤칠한 키, 탄력있는 몸매...를 소유하면 좋겠지만, 우리의 주인공인 '조'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사지가 시도때도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제멋대로 멈춰버리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요근래에 읽은 소설 들 속 추리 스릴러 속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들의 유형이 대부분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조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요. 완전무결한 주인공들 보단 아무래도 동정심 같은 걸 유발하는 이런 주인공들이 훨씬 더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 쉬워서 그런가 싶군요. 무튼 조 올로클린이란 인물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아름다운 아내와, 소중한 두 딸이 있는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시리즈의 첫작품이 아닌지라) 인물들의 주고 받는 대화들로 짐작하건데 전작들에서 '어떤 사건'에 발을 들였었고, 큰 위험에 쳐했다가 겨우 안정을 취하기 위해 이사온 곳에서... 또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보통 이런 경우엔 사건 쪽은 쳐다도 보기 싫을테지만... 뭐...이건 추리 스릴러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운명이니까요^^;

 

이렇게 이 소설은 조 VS 기드온 이란 대결 구도가 형성이 됩니다. 한 사람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자 VS 부서진 정신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려는 자. 서술 또한 대부분 조의 시점이지만 그 사이사이 기드온 시점에서의 서술을 끼워 넣어 그 대결 구도를 더욱 분명하게 하지요. 소설 초반엔 그들의 특기(?)를 살려 서로가 서로를 분석하여 독자들의 심리를 쬐어오는 쫀쫀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후반엔 추격극의 긴박감과 스펙타클도 느낄 수 있구요. 그리고 이런 사건의 진행 과정 속에 슬쩍 슬쩍 끼워 넣은 그들의 가정사. 결코 닮았을리 없는 두 인물은 크나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빠'였고, '남편'이었습니다. 세상 남자들 중 이 두 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딴걸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나 싶겠지만, 이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며 이 타이틀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뜻이 되는거니까요. 때문에 그들은 서롤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때문에 서로를 부숴버릴 수도 있게 되고, 때문에 사건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세세한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테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책은 어마무시한 두께를 자랑합니다. 무려 650페이지. 흔히 말하는 벽돌책이지요. 그런데 그 두께감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책에 빠져들어 몰입했습니다. 스토리 자체가 페이지터너가 되는 소설. 처음 책을 받아들고 띠지에 문구를 보며 '또 또 누구 누구의 찬사래... 개나 소나 다 찬사래지....'라고 뇌까렸던 혼잣말이 무색해집니다. 스티븐 킹의 찬사는 당연코 옳았습니다. 스티븐킹의 찬사를 패러디 해보자면 '잠들기 전 잠시 읽을 책으로 이 책을 펼치지 마십시오. 그 밤은 불면의 밤이 될테니.' 제가 딱 그랬으니까요.

 

앞으로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들도 계속 번역 출간이 될거라는데... 어서 빨리 진행됐으면 좋겠네요. 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지 걱정스럽지만, 독자로선 무척 기대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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