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여름은 소설의 계절인지라 국내외 할 것 없이 소설들이 쏟아져 나와야 하지만 올해 여름은 표절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웠던 국내 문단의 영향으로 국내 소설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었지요. 몇 몇 굵직한 작가의 소설들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독자들의 싸늘한 반응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와중에 승승장구하는 거의 유일한 국내 작가는 역시 김진명 뿐이네요. 국내 문단의 원로이신 한 작가님은 등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하여, 그렇게도 김진명 작가를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던데... 앞서 말한 독자들의 선택을 보고 그 분은 무슨 생각을 하실지... 혹 그 한없는 오만함에 독자들까지 업신여길지... 궁금해지는군요. 평소 오만하기 짝이없는 국내 문단에 불만이 많았던지라 쓸데없이 사족이 길어져버렸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읽는 김진명 소설입니다. 학창 시절 저는 별명이 유관순, 애국자였고, 그 시절 읽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은 여전히 제 인생의 책이기도 합니다. 다만 나이들며 순수한 어린 시절 품었던 애국심 비슷한 것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변하기도 하였고, 때문에 김진명의 소설들 또한 지나치게 국수주의가 아닌가 싶은 오만한 생각에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안팎으로 시끄러워 그런지 갑자기 김진명 소설이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애국심 고취하는데 김진명 소설만큼 좋은게 또 무엇이 있을까요? 게다가 재밌고 잘 읽히기까지 하니 또한 금상첨화입니다.

 

 주인공인 태민은 천재입니다. 하지만 인생 최대의 목적이 '돈'인 조금은 속물적인 천재이지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직업은 무기 중개상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잘 상상도 안되는 금액이 오고가는 무기 거래, 그리고 어마어마한 수수료.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기 거래의 추악한 이면을 보고 화가 치밀대로 치밀었습니다. 기사나 뉴스로 접하게 되는 방산비리 문제들을 보건데 아마 팩트가 더 크겠지요. 그래서 더욱 화가 치밉니다. 소설 속 태민도 이 방산비리 조사건으로 구속 위기에 놓이고 중국으로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 북한 사람들의 단골 해장국집에 드나들며 전준우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그의 미완성 소설의 usb를 떠맡게 되지요.

 

  고구려의 두 마을이 몰살 당하는 사건,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사람, 그리고 그 속에 감춰져 있는 글자들의 진실. 정말이지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김진명식 음모론이나 국수주의적인 상상이 (물론 엄청 재밌었지만) 지나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이론이나 학자들을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그런 이론이나 학자들이 실재하더군요.  그렇게 저도, 그리고 주인공인 태민도 전준우의 소설을 읽어가며 각성해 갑니다. 그안에 전혀 있으리라 생각치 않았던 애국심 내지는 민족애가 깨어나게 됩니다. 즉, 태민은 결국 우리들(한국 사람들)을 상징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전준우의 소설 속 이야기가 전부 진실이니 이를 주장해야 한다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우리에겐 세계 어느 나라에게도 뒤지지 않을 우수한 문화가 있고, 장대한 역사가 있음을, 그러니 좀 더 우리 것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함을, 그렇게 우리 것을 소중히 여겨 지켜 나가야 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대중이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말입니다.

 

 가끔 제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문화 사대주의에 심히 빠져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글자 전쟁'은 약간의 각성제 역할을 하는 소설이 아니었나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저는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어쩌면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고, 지나치다고 콧방귀를 뀌어댈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작은 불씨 하나 정도는 그들 마음 속에 스밀 수 있을테니까요.

 

『 p. 318 "이것은 전쟁이에요. 과거 문명이 생기고 글자가 만들어지던 때로부터 시작된 전쟁. 피해 회복은 범인을 잡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오류를 바로잡는 데 있어요. 한둘의 범인이 아닌 수천만, 수억의 의식을 바꾸는 데 있단 말이에요. 그게 나의 전쟁이에요." 말을 하면서도 태민은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자신은 어느새 모든 포커스를 맞추어왔던 돈벌이가 아닌 역사의 진실을 강변하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더 행복하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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