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조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8
김소연 지음 / 비룡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 p.25 하얀 백조란 흰 옷을 즐겨 입으며 겁이 많고 노래를 즐기는 코레야인을 부르는 별명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단순히 그들의 겉모습만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코레야인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그들의 대처 방식에 대한 풍자라 할 수 있다. 풍전등화 처지에 놓인 국운, 그러나 그러한 것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게으르고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는 백성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국제 정세는커녕 나라 안의 정치적 변화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땅에 엎드려 농사만 짓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코레야 백성들은 말 그대로 겨울 호수에 떠 있는 하얀 백조다. 아름답지만 무기력하고 조용하지만 슬퍼 보이는 철새의 운명이 곧 코레야의 운명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 '흥미롭다.'는 표현 속엔 복잡한 심경이 섞여 있습니다. 안타까움, 슬픔, 분노, 개탄, 연민 등.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긍정적인 단어는 떠오르질 않는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단군 이후의 4000년이 훌쩍 넘는 긴 역사 중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을테니까요.

 

 이 소설의 배경은 1905년입니다. 한반도에선 러일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조선에 철도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는 탐사대를 파견하여 조선 곳곳을 조사하게 됩니다. 조국 러시아의 비극을 목격하고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듯 떠나온 알렉세이, 다혈질의 퇴역 군인 비빅, 러시아로 귀화한 조선인 통역관 니콜라이. 이 세명의 탐사대가 조선 곳곳을 누비며 '관찰자'의 시점으로 조선을 바라 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에서 온 그들의 눈에 조선인들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미개하고, 게으르고, 무능한 이교도들. 아마 딱 그랬을겁니다. 실제로 이 소설속에서는 굿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영국인이 운영하는 금광에서 일하는 조선인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인인 알렉세이의 관점으로요. 그런데 사실 이 러시아 탐사대들의 관점까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 조선인들의 후손인 우리들 역시 그들을 미개하고, 무능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미개하고, 무능했기에 그렇게 대책 없이 나라를 빼앗기고 강대국에 휘둘렸던 것이 아닌가...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데 3인의 탐사대와 저의 이런 오만하고 비뚤린 생각에 까막눈 마부 소년인 근석이 촌철살인을 날려댑니다. 글자 한 자 모르고, 가마실이란 마을에만 박혀 사는지라 국제 정세 따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근석. 비단 근석만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당시 백성들 대부분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이 근석이란 녀석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생각이 바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나라를 지키겠다고 일어나는 인물들. 그들은 다름 아닌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백성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그들에게 누가 게으르다며, 무능하다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요. 때문에 긴 여정 동안 3인의 탐사대와 저는 근석 덕에 많이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근석이기도 했습니다.

 

『 p.254 근석을 보며 세상에는 모두가 도망치려는 곳에서 머물 자리를 찾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근석의 말이 옳아요. 이 땅엔 절망의 운명이 닥쳐와도 도망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코레야인들이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근대사. 분명 아름답고 화려하고 자랑할 만한 역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말씀처럼, 한 나라의 역사란 것은 왕조와 양반들만의 역사일 수 없습니다. 그 중심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 시기를 살아 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나라와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 했던 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부정하지 않고 바로 보게 하며, 그래서 그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 p.265 지난 백여 년의 한국 근대사를 왕조 중심으로만 기술하자면 폐배주의와 자괴감은 피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권력층의 전유물이 아니듯 조선 역시 왕조와 양반들만의 나라는 아니었다.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닥쳤을 때 비로소 이들은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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