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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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출간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그리고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목을 두고 '와! 제목이 정말 무시무시하네요.'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사실 전 조금 당황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점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의 저런 반응을 보고 다시 제목을 되짚어 보니...그러네요, 목을 부러뜨리는 남자라니... 무시무시할만하구나...하고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이건 제가 둔해서라기 보다는 책을 쓴 작가의 이름 덕에 결코 무시무시한 이야기일리 없다는 의식이 깊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사카코타로는 (설사 제목이 그렇더래도) 절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아니니까요. 저는 그의 오랜 팬으로서 한국에 출간된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기에, 제목이야 어찌됐든 분명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유쾌하고, 따스할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거든요. 때문에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목 부러뜨리는 남자는 과연 그 닉네임(?) 처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전해줄지, 아니면 역시 따뜻한 여운을 전하는 반전의 캐릭터일지요. 게다가 목부남 뿐 아니라 오랜만에 구로사와의 이야기를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더욱 즐겁고 설렜습니다.

 

 7편의 단편이 크게...혹은 작게 오밀조밀 연결된 이 연작 소설의 중심엔 역시 목부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거미가 줄을 치듯 이야기들이 뻗어나갑니다. 이런 비유가 좀 우습긴 하지만 마치 다단계 조직같은 소설이에요.(ㅋㅋㅋ) 목부남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그의 주변인물로...그리고 그의 주변인물들의 주변인물들로 마구 마구 뻗어나가거든요. 그러면서 아주 아주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추리소설은 물론이고, SF와 판타지, 로맨스, 심지어 괴담까지. 그래서 한편의 단편이 끝났다고 해서 방심(?)하시면 안됩니다. 다른 단편 어디에선가 어떻게 또 이야기가 이어질지 모르거든요. 어떤 유명한 야구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목부남이 바로 그런 소설입니다. 한편의 단편이 끝났어도, 7편의 단편이 모두 끝날 때 까진 끝나도 끝난 게 아닌 소설이지요. 때문에 장담하건데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앞 부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험을 여러번 하게 되실 겁니다. 이런 플롯은 사실 작가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지라, 이에 익숙한 저는 책을 읽어가다가 그런 수상한(?) 부분들이 눈에 띄면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면서 읽어요. 그래서 가끔은 트릭이나 앞으로의 전개를 종종 맞추기도 하지만, 그건 드문 경우고 대부분은 '헐!' , '아아~~~!' 같은 감탄사를 내 뱉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제겐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을 읽는 가장 큰 재미이지요.

 

 

(***** 여기서 부터는 스포일러가 아주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

 

 

 이사카코타로의 소설들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저는 늘 '좋다.'하고 진심으로 감탄하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그의 소설은 '재밌다.' 보단 '좋다.'의 형용사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 역시 저는 읽는 중간 중간,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좋다.'하고 혼잣말을 뱉어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느냐...하고 짚어보자면, 일단 7편 모두의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이 연작 소설 전체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균형과 권선징악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좋았습니다. 목부남은 청부살인업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는 무시무시한 일에 대해 균형을 맞추려 주변에 친절을 베풉니다. 살인을 한 주제에, 친절 정도 베푸는 것으로 균형이 맞춰지겠느냐구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설에서 균형 만큼 강조하는 또 다른 하나는 권선징악입니다. 목부남은 두루 두루 친절을 베풀었고, 그 친절이 심지어 전염되기까지 하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이 목부남의 죽음을 저는 권선징악, 그리고 도플갱어와의 만남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는데.... 작가의 의도 또한 그랬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네요^^;

 

  우리는 부당한 일을 겪거나, 혹은 목격했을 때 흔히 이렇게 말하지요. '진정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는 거라고...' 이 작품에서도 이런 비슷한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세상엔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다.'고. 그런데 이 작품에선 이에 대한 해석을 참 재밌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실은 하느님이 있긴 있는데 하느님이 늘 인간을 보고 있는게 아니라, 이따금 보고 있는 거라고요. 하늘의 그물이 크고 성겨서 (악의 장면들을) 은근히 놓치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권선징악을 아예 부정해 버리면, 세상은 악으로 넘쳐날테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부당한 일을 겪게 되는데 어차피 세상은 글러먹었다고 생각해버린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이 바쁘셔서 이따금씩만 인간을 보살피느라 그런거라니... 구보타(단편 '사람답게'와 '측근이야기' 주인공)만큼이나 저도 안심해버렸습니다. 분명 권선징악은 존재합니다. 언제 어느틈에 하느님이 우릴 지켜볼 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사람답게' '균형'을 맞춰가며 살아야겠지요^^

 

  또 하나, 이 작품이 좋았던 건 역시 캐릭터의 매력을 뺄 수 없겠네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은 이사카코타로의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큰 재미이지요. 살인청부업자 주제에 약자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목부남. 목부남이 지하철역에서 발권하는데 애를 먹느라 뒷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노인을 돕는 방법을 보고는 굉장히 감동하고 그에게 반해버렸습니다.(무서운 살인청부업잔데 ㅠㅠ 하나도 안무서워요...오히려 매력터집니다...ㅠㅠ) 그가 노인을 돕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뒤에서 빨리 좀 하라고 마구 화내고 소리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한사람이 나서서 화를 내면 다른 사람들은 가만 있게 된다고 합니다. 혹은 오히려 동정론이 형성이 되기도 하구요.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구요? 이렇게 화를 내기 전에 먼저 넌지시 노인분께 편안히 느긋하게 일 보시라고 언질을 미리 주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진심으로 감탄하고 감동했습니다. 목부남은 (비록 살인청부업자지만) 역시 멋진 인물입니다. 이런 그의 친절함이나 다정함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그가 듣고 싶어했던 피아노 협주곡이 장송곡처럼 울려 퍼지며 그의 넋을 기렸던 건 아닐른지도...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있지요. 바로 구로사와. 주로 이사카코타로 단편 작품들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본업 빈집털이범이자 부업 탐정인 인물입니다. 보통 활자로만 이루어진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인물들을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리곤 합니다. 저는 구로사와라는 인물을 머릿속에서 이미지로 그려가다 보면 아주 아주 섹시한 남자가 떠오르곤 합니다. 하루(중력삐에로 주인공)처럼 꽃미남은 아니지만 그는 분명 섹시가이일 거라고 제멋대로 상상해버리지요. 어쩌면 이름 때문에 검정색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중요한건 구로사와의 섹시함이 강하게 느껴질 때는 '탐정'일 때보다는 역시 '도둑'일 때라는 점입니다. 아아, 자기 일에 열중하고 몰입는 남자는 섹시해 보인다더니 바로 그런건가 봅니다.(ㅋㅋㅋ) 아무튼!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섹시한 구로사와를 다시 만날 수 있었서 반갑고 기뻤습니다.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은 이사카코타로라는 작가의 취향이 한껏 발현된 작품집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에 '작가의 성취감과 독자의 즐거움은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지만,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즐겁게 봐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의 취향이 독자이자 팬인 제 취향에도 꼭 맞는다니 일단 기뻤고, 때문에 앞으로 더욱 애정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역시 이사카코타로는 그 이름만으로도 책장을 열기도 전에 이미 설레고 즐거워 지는 작가입니다. 그런 작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목부남! 감히 단언하건데, 목부남은 그의 최고의 단편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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