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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평점 :
『 p.331
'이런 일에 관련되면 선의여도, 꺼림칙한 구석이 조금도 없어도 괴로운 경험을 겪게 돼. 그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서도 무언가가 변하고 말지."
나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무언가가 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무엇이 변하는 것일까. 』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원서의 제목은 '베드로의 장렬'
한글판의 제목도, 원서의 제목도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십자가나 베드로라는 단어를 보고 종교적인 이야기인가도
싶었지요. 또 뜬금없는 '반지'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도 싶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며 제목의 의미를 파악했을 때, 조금 감탄했습니다. 조금
심오하지만 이 책의 주제를 참 문학적으로 잘 담고 있구나 싶었거든요.
미술에는 일자무식이고, 종교 분야엔 더더욱 백치여서 몰랐는데 렘브란트의 그림 중에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라는 그림이 있다는군요.
관리들과 군중에게 붙잡힌 예수 곁에 홀로 끝까지 머물렀던 베드로가 엄한 추궁에 결국 자신의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맹세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
하네요.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에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며 진실을 말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해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베드로의 장례
행렬을 뜻하는 '베드로의 장렬'이 원서의 제목. 거짓말은 했지만, 결국 그 거짓말을 회개한 베드로. 이는 이 소설 속 어떠한 인물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한글판 제목에서의 '십자가'라는 단어의 의미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네요.
『 p.406
하나의 꽃이 열매를 맺고 거기에서 수없이 많은 씨가 터져 나와 바람을 타고 퍼져서, 새로운 장소에서 작은 싹을 틔운다. 그런 것이다. 다만 그
꽃은 악의 꽃이었다. 』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기억인데, 하루는 아버지 지인분께서 집에 찾아와 정수기 판매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단계, 혹은
피라미드. 저희 아버지는 그런 걸 끔찍히도 싫어하셔서 아주 곤혹스럽게 거절하시는 걸 목격한 경험이 있습니다. 피라미, 혹은 다단계라는 덫.
물건 하나쯤 사주고 보는 손해...라면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조직에 가입하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붓고 결국 그 재산을 되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그 덫에 끌어들이는 무서운 조직. 그들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거지요. 그렇게 점점 퍼지고 뿌리 내려가는 악의 씨.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의 '절대 반지' 같습니다. 절대 반지는 그를 소유한 인물들은 점차 오염시키고, 마음을 좀먹고, 인격뿐만 아니라 용모도 바꾸어
버립니다. 그렇게 악은 전염되어 갑니다. 바로 여기서 제목에서의 또 다른 단어 '반지'의 의미도 찾을 수 있겠네요.
『 p.454
악은 전염된다. 아니, 모든 인간이 마음속에 깊이 숨겨 가지고 있는 악, 말하자면 잠복하고 있는 악을 표면화시키고 악행으로 나타나게 하는
'마이너스의 힘'은 전염된다고 할까. 』
이 소설은 반지를 통해 악을 퍼뜨린 인물이 결국 베드로처럼 회개하여 십자가를 지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발전하고
해결되는 과정이 조금 더디게 더디게 진행되지만, 이렇게 제목에서의 심오한 의미들을 찾고 되새기게 하여 어마어마한 분량인데도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 p.512
거짓말이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리는 까닭은, 늦든 이르든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거짓은 영원하지 않다. 사람은 그렇게 강해질 수 없다.
가능하면 올바르게 살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한 거짓말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없게 되어 언젠가는 진실을 말하게 된다. 』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제가 이 책을 통해 행복한 탐정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지라, 주인공인 스기무라가 겪는 위기와 내적 갈등과
그를 극복하고 한층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처음부터 그를 지켜봐온 독자만큼은 깊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말을 보아하니,
스기무라의 이야기는 아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한층 성숙하여 돌아 올 진짜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를
기다리겠습니다.
『 p. 795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인연이다. 살아 있고 피가 통하는 인연이 어떤 이유로 약해지고 가늘어지고 결국 죽어 버리면, 그 인연에 더 이상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
***이 리뷰는 출판사나 작가와 전혀 상관없는 몽실
서평단에서 지원받아 읽고 내마음대로 적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