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p.223 가장 예쁜 글씨로 '모두 다 죽을 거예요.'라고 쓴다. 그 아래에는 굵은 글씨로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쓴다. 그 옆에는 스마일 얼굴을 그린다.

 

 밀리는 7살 소녀이다. 아빠가 병으로 죽었고, 엄마는 아빠를 잃은 상실감으로 밀리를 버렸다. 밀리는 아빠와 엄마를 동시에 잃은 상실감을 견뎌야만 했다.

 타이피스트 칼은 사랑하던 아내인 에비를 잃었다. 그 역시 견디기 힘든 상실감에 휩싸여 아들 집에 의탁하지만, 결국 요양원에 맡겨지고, 거기서 탈출하게 된다.

 애거서 팬더는 7년 전 남편을 잃었다. 그를 사랑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결혼 생활이었지만, 그녀 역시 남편을 잃은 상실감으로 모든 외부 사람을 차단하고 집에서 은둔하며 살아간다.

 

 이 책 속 주인공인 세사람의 공통점은 전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봤고, 그로 인한 상실감을 견뎌내는 중이란 것이다. 나 또한 밀리와 같은 나이에 태어나서 '죽음'이란 것을 가까이 지켜봤었다. 연로하신 증조할머니의 죽음이었고, 그땐 너무 어려 '죽음'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엔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언제나 살뜰히 손주들을 챙겨주시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너무 큰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아직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그리고... 그 후엔 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여지껏 없었다. 하지만 문득 문득 나는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도 죽는다...의 삼단논법처럼...지금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할머니, 엄마, 아빠)이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그렇게 나는 홀로 남겨지겠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두렵고 우울해진다. 미리 그런 걸 생각해 봐야 아무 의미도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밀리와 칼과 애거서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결국 또 두렵고 우울해져버렸는데...결말에선 한편으론 위안도 얻었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럴 경우 우린 상실감을 극복하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애도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밀리와 칼과 애거서처럼.

 

 작가는 어머니의 충격적인 죽음(교통사고였다고 한다.)을 애도하는 방법으로 이 소설을 쓰고, 어머니의 그 차를 몰고 다닌다고 한다. 분명 그녀의 이런 애도의 과정이 아프고 슬플테지만, 그녀의 용기있는 애도의 방법을 응원한다.

 

P.179 내가 확실히 아는 건, 누구도 바다 밑에서나 우리 머릿속에서, 혹은 우리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도 괜찮아, 내 생각엔. 버스를 운전하거나 다른 뭔가를 할 때 우리한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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