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의 사생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4
최민경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주(거의 매일) 인간 관계가 너무도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집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속에서. 때문에 이 모든 관계가 족쇄 같고, 짐 같아서 그 짐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날 선 모서리처럼 그들에게 뾰족함을 들이대 상처 주고,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내가 들이민 그 모서리로 나 또한 상처 받기도 한다. 그리하여 방어막으로 벽을 두르거나 금을 그어 철저하게 내 영역 안으로 그들을 들이는 것을 막기도 하지만 또한 모순적이게도 그로 인한 고립감으로 인해 외로움에 사무칠 때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우습게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감정들이란 것이다. 그들에게 나 또한 짐일 수 있다는 그 사실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이 이야기는 바로 나와 그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췌장암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짐처럼 무거웠던 아버지의 부재에 홀가분함을 느끼던 하나 모녀. 그런데 짐짝 같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사라진 후 모녀에게 찾아 온 것은 홀가분함이 아닌 적막함이었다. 그렇게 그들 집에 적막함이라는 벽이 둘러지던 참에 말희(마리)가 나타난다. 엄마의 절친의 딸이자, 하나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말희. 그 시절엔 존재감이 미미했던 그녀는 생기가 넘치지만 염치는 조금 없어 하나의 집에 눌러 앉게 된다. 그렇게 그녀들의 집에는 왠지 모를 온기와 생기가 돈다. 하지만 서서히 시간이 흐르고 마리는 그들 모녀에게 버리고 싶은 짐짝이 되어 간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 관계가 그렇듯 말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 시가 떠올랐다. 하룻밤 온돌방을 데워주면 그 뿐 그 후엔 처리하기 힘든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리는 연탄재. 때문에 사람들에게 괜스레 뻥뻥 차이며 여기 저기 지저분하게 굴러다니던 연탄재. 이 작품 속 마리는 바로 그 연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마리는 바로 현실 속 내 주변의 당신들이었다. 정작 나는 그 누군가에게 그런 온기 한번쯤 전해 준 적 없을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짐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인간 관계란 것은 전부 '애증'이란 말로 요약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인생이란 것은 애증 관계의 끊임 없는 순환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앞으론 '증'은 버리고 '애'만 남는다면, 그럼 정말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우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아마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정답은 '애'와 '증'의 적절한 밀당에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적절함'의 강도 찾지 못해 오늘도 나는 조금 힘들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그렇겠지. 그러다 지쳐 포기할 때도 있을테고, 또 어느날은 어쩌면 그 '적절한' 강도란 것을 찾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때엔 또 다른 밀당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p.119 "이렇게 평생 정상적인 사람들과 한 가족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개그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내 꿈이었거든. 네 말대로 꿈치고는 엄청 시시하지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의 생각들이 한꺼번에 정리가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러니까 그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엄마의 꿈이기도 하고 내 꿈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의 꿈이 그렇게나 시시한 것이었다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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