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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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0원짜리 이태백들이 삼포시대를 살아가다.>

인기 아이돌이 TV 광고에 나와 작년보다 쪼금 올랐다며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커피 한 잔 값이랑 비슷한 5580원이라고 말한다. 중국 최고의 시인인 이태백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이십대 태반이 백수로 검색하시겠습니까?' 라는 안내 문구가 뜬다. 배추 셀 때나 쓰는 단위인 '포기'라는 단어는 연애, 결혼, 출산이란 단어들과 어울려 쓰이며 삼포시대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그야말로 웃픈 시대이다.

 

<로민, 로라? 아니 바로 우리 이야기.>

로민과 로라는 대학생 남매이다. 아버지의 가구 공장이 문 닫기 직전인 터라 생계가 어려워, 엄마까지 마트에서 알바 중이다.엄마가 제일 무서운 건 밀린 관리비로 인해 수도가 끊기는 것이다. 로민과 로라는 학자금 대출 (원금이 아닌) 이자를 갚기위해 각종 알바를 한다. 그들이 제일 제일 두려운 건 학자금 대출 이자를 매달 갚지 못해, 다음 학기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대학 졸업해봐야 남는건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고, 취준생이라 쓰고 백수라 읽는 타이틀 뿐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라이프로 똘똘 뭉친 로민, 로라네 가족. 그런데 이것이 비단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일 뿐일까? 내 주변을 살펴 보자. 아버지의 조금 이른 퇴직 후,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시겠다며 환갑인 나이에 요양보호사 일을 하시는 엄마가 있다. 법정 최저 임금 간신히 받으며 매달 힘들게 일하며 버티는 동생도 있다. 대학 졸업 후 산더미처럼 불어버린 학자금 대출을 그나마 이자만 간신히 갚아가며 몇년 째 공무원 시험 준비중인 사촌 동생도 있다. 나......? 여기서 내 이야기까지 구구절절 늘어놓으면 너무 구차하고 내가 너무 비참해지리라... 그러니 내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아끼도록 하자. 이렇게 로민, 로라네 가족과, 그리고 내 가족들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집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도 많다. 그들이, 내가 그리고 당신이 결코 게으르거나, 무능해서가 아닌데도 말이다. 억울하다. 참으로 억울하고 분할 뿐이다.

 

『 p.134 실체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에 의해 내 운명의 레벨이 정해진 것 같다. 빠르게 회전하도록 설계된 거대한 트레드밀 위에 뚱뚱한 고양이가 서 있다. 로라가 서 있다. 엄마가 서 있다. 관리자가 서 있다. 그레이스 케이가 서 있다. 내가 서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의 위로.>

이렇게 시절이 수상하기만 하다. 내일은 반드시 내 인생에도 쨍~ 하고 해가 뜰거야!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을거란 희망 따위는 믿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내리막 뒤엔 더욱 경사진 내리막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고 다 놓아버릴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참 애매하고 무책임한 말인것 같으면서도 또한 위로가 되는 그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버텨 보는 건 어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웃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니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보면 우린 꼭 행복해질거야...라고 말할 순 없어. 그렇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그렇게 작가가 독자를, 그리고 내가 나를 토닥토닥 보듬게 만든다.

 

『 p.180 나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엄마가 혹시라도 사는 걸 포기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엄마는 식사를 거르지 않았고 불면증에도 시달리지 않는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주말 드라마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으며 윗니 아랫니가 20개쯤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때가 많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지만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안다. 』

 

 <풍자와 해학, 희비극의 미학>

나는 희비극이란 장르를 참 좋아한다. 그 옛날 우리 조상님들의 재치가 넘쳐흐르는 시조 한수, 판소리 한자락 속에 동시에 존재하던 한과 해학을 사랑한다. 힘들고, 진지함을 가볍고 유쾌하게 전하던 그 쿨함을 사랑한다. 이 알바 패밀리라는 소설은 바로 그런 풍자와 해학, 희비극의 묘미가 참 잘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담담하게 그려내는 현실을 보다보면 씁쓸해지다가, 조금은 과장된 듯 묘사되는 인물들을 보노라면 어느샌가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오다가, 인물들의 가족에 대한 애잔한 감정이 드러나기라도 하면 그런 참엔 뭉클해져 눈물도 떨구다가. 이렇게 작가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쏟게 만든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참 즐겁고 중독성이 있다. 시절이 수상하다고 한없이 냉소적인 (도통 이해할 수 없고 몹시 재미없는) 글만 쏟아지는데, 독자를 들었다 놨다 웃고 울리며 여운까지 전하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꾼'을 앞으로 더욱 주목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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