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웜 1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2
로버트 갤브레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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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갤브레이스 혹은 조앤 롤링>

전세계적인 초특급 베스트셀러 작가가 또 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여전히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보다 '조앤 롤링'이라는 이름이 훨씬 친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판타지 소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롤링이 이번엔 또 다른 장르 소설인 추리 소설에 도전한다. 코모란 스트라이크라는 사설 탐정과 그의 비서인 로빈의 활약을 그린 코모란 시리즈가 그것이다. 나는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쿠쿠스 콜링'을 읽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굉장히 궁금해 했으나, 다른 사람들의 평이 별로여서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런데 아마도 쿠쿠스 콜링이 저평가 된데에는 해리포터라는 너무도 거대한 작가의 전작 덕에 독자들의 기대치가 너무 컸기에, 또한 판타지에서 추리로의 장르 전환이 낯설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 또한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읽기가 망설여졌었으니까. 그리고 얼마전 코모란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인 '실크웜'이 출간이 되었고, 영국 출판계의 이야기라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영국 문단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롤링이 이야기 하는 출판계란 어떤 것일까 몹시 궁금했다.

 

<탐정의 매너리즘과 사건>

'탐정'이 하는 주된 업무는 무엇일까? 살인사건의 해결? 형사들에 대한 조언? 아니다. 사실 탐정들의 주된 업무는 '불륜' 뒷조사이다. 코모란 또한 이런 일들을 주로 하며 밥벌이를 한다. 그의 고객은 주로 상류층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밥벌이는 몹시 중요한 일이기에 현실적인 코모란은 이런 일에 큰 불만은 없다. 단지, 약간의 지겨움을 느낄 뿐. 이런 매너리즘이 폭발하던 어느날 아침 사건이 시작된다. 평소라면 결코 받지 않았을 의뢰를 받아 들이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무명 작가(오언 퀸)의 부인이 찾아와 자신의 남편을 찾아달라는 의뢰. 처음엔 단순한 실종 사건으로 보이던 이 사건은 오언 퀸의 출판되지 않은(정확하게 말하면 출판되지 못한) 작품 '봄빅스 모리'와 맞물려 복잡해져 간다.

 

<알고보면 풍자 소설?>

사실 이 작품은 여태 출간되어 온 추리소설의 패턴에 굉장히 충실한 소설이다. 사건이 터지고, 탐정이 조사하고, 해결하고, 약간의 반전이 등장하기도 하는. 그랬기에 플롯과 줄거리로만 보면 신선함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무난히 재밌게 읽힌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가지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바로 이 사건의 큰 축이며 사건 해결의 열쇠이기도 한, 오언 퀸이 쓴 '봄빅스 모리'라는 소설이다. 상당히 (내가 보기엔) 역겨운 상징과 은유로 전개되는 소설. 흔히 이런 소설들이 대중은 도무지 그 의미를 몰라 머리를 갸우뚱 하는데도 불구하고 평단에선 '대단히 훌륭한 순수소설'로 평가 받지 않던가? 그리고선 대중들과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오는 작품들(흔히 장르소설이라 불리우는 소설들)을 폄하하지 않던가? 나는 평소에 이런 시선이 참 불편했었다. 그런데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점은 이 작품 속 오언퀸이란 인물이 '홍보'와 '베스트셀러'와 같은 대중성에 굉장히 집착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란 것이다. 롤링은 아마 이런 이중되고 모순된 (소위 순수네 장르네 하며 선긋기를 하는) 문단에 대한 풍자를 오언 퀸과 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짐작해본다. 또한 소설 속에서 오언이 썼다는 다른 여러 작품들에 대한 묘사를 보다 보면 결코 롤링이 그런 류의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새삼 롤링의 대단함을 느꼈다.

 

<주인공들의 썸타기>

이 소설의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코모란과 로빈의 관계이다. 마치 엑스파일의 멀더와 스컬리 같기도 하고, ncis의 토니와 지바 같기도 한 그들. 샬럿이라는 아름다운(하지만 극단의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여인과 16년간의 사귐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얼마전에 진짜로 이별하게 된 코모란은 여전히 가끔 가끔 샬럿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로빈은 이제 곧 매튜라는 오래된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매튜는 로빈의 '일'과 '꿈'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해 둘 사이는 자주 삐걱거린다. 이런 상황임에도, 혹은 어쩌면 이러하기에 더더욱 코모란과 샬럿은 소위 말하는 '썸'을 타게 된다. 이런 과정이 나는 싫지 않았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마법사의 돌에서 죽음의 성물까지 길게도(하지만 아주 감질맛나게 조금씩) 이어져 온 론과 헤르미온느의 밀당을 즐겼기에. 그러고 보면 롤링은 로맨스 소설에도 소질이 있어 보인다. 이 코모란 시리즈가 언제까지 진행될지 모르겠으나, 나는 조심스럽게 결국 시리즈 말미엔 두사람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예측해 본다.

 

<누에에서 실을 뽑듯...>

이 소설의 제목인 실크웜은 누에를 뜻한다. 누에에서 비단을 뽑기 위해선 누에를 뜨거운 물에 삶아야 한다고 한다. 즉 누에의 희생이 있어야 아름다운 비단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작가의 희생(혹은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한편의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실크웜이란 제목이 상당히 사건 진실에 대한 돌직구적인 은유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물론 스포가 될것이므로 여기서 밝히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 '누에'라는 소재가 어찌보면 작가인 롤링의 삶 하고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해리포터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극한의 가난을 맛보았다는 그녀. 누에를 삶아 실을 뽑듯 그 고난과 역경의 과정을 거쳐 이제 전세계의 정점에 있는 그녀. 그녀는 지금 편히 갈 수 있는 길이 아닌 또 다른 험난한 도전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멋진 용기과 도전을 응원한다.(일단 쿠쿠스콜링을 읽어봐야겠다. 이것은 바로 완벽한 역주행;;)

 

<실크웜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Tip>

이 소설은 총 2권 5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의 번호 밑에 여러 작품 속에서 가져온 인용구가 나온다. 이 인용구는 그 챕터의 내용을 압축해주는데 사실 챕터의 시작에선 그 점이 눈에 잘 안들어오는게 사실이다. 그러니 한 챕터를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인용구를 읽어 보면, 아아! 하는 깨달음의 재미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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