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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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소설의 대가가 쓴 도둑 이야기>

경찰 소설의 대가라는 요코야마 히데오. 그의 최고의 경찰소설이라는 명성을 달고 있는 '64'를 나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내 돈 주고 산 책들은 숙제에 밀려 미루고 미루게 되니까. 그런데 그 경찰소설의 대가가 이번엔 도둑들의 이야기를 한단다. 원체 '도둑'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한탕 시원하게 털려나...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예상은 아주 깨끗하게 빗나갔다.

 

<도둑 탐정>

요즘 추리소설들을 보면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참 다양해졌다. 경찰과 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가나 동물이나 어린이 등등. 이 소설에선 급기야 그 탐정이 '도둑'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인 마카베 슈이치가 의뢰를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슈이치는 자신이 체포된 그 날 밤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출소하자 마자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그 인물들의 사연을 듣고, 거기에 따라오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의 진실을 캐낸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알아낸다.'는 점이다. 그렇다. 시원하게 한 탕 터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슈이치가 돈을 위해 집을 터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밤중털이를 할 뿐. 솔직히 일반인 입장에선 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가?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누군가 내 집을 털어간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이치(그리고 게이지)라는 인물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사연 있는 남자는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 탓일까? ^^;

 

<추리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리다.>

7편의 단편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결되는 연작 소설. 한편 한편 기구한 사연들과 미스터리에 궁금증이 증폭 돼 무섭게 책장을 넘겼더랬다. 그리고 점점 그들의 기구한 인생에 한없이 연민이 느껴졌더랬다. 급기야 몇 몇 단편에선 눈물까지 보이고 말았다. 추리 소설을 읽고 울어 보기는 처음이다. 범죄자는 범죄자일 뿐인데...... 그렇지만 그전에 그들도 사람이기에..... 게다가 어쩌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 그들 스스로이기 보단 이 사회 그러니까 곧 우리일지도 모를 일이니. 그러면서 마음이 먹먹해지고, 또한 따뜻해졌다. 참 아이러니 하다. 저 밑바닥 범죄자들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다니.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단 반증이겠지.

 

<나에게는 아직 '64'가 남아있다.>

책을 읽으며 거듭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면모 뿐 아니라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능력. 그림자 밟기는 먹먹하게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나에겐 아직 '64'를 비롯한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작품이 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64'를 보고 있자니 그 책을 읽을 어느날이 벌써 부터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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