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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평점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든지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감성감성한 시로 제 여고 시절 센세이셔널 한 시인이었던 류시화. 그는 시인으로서 시도 쓰지만, 종종 잠언집이나 에세이 여행기 등을 내기도 했죠. 그런 그가 이번엔 '우화집'을 냈네요. 우화의 특성이 본래 그렇기도 하지만, 함축된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시인이 쓴 우화라니 더 생각해 볼 거리가 많겠구나 싶었고, 그래서 더욱 끌렸던 책입니다. 게다가 블라드미르 루바로프라는 러시아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일러스트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가독성과 비롯해 그 소장가치를 높여 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서두에 일러두기를, 이 안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폴란드의 작은 마을 헤움이라는 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류시화 시인이 모아서 재구성하고 혹은 새로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안에 담긴 수십 개의 이야기들은 전부 헤움이라는 마을에서, 그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헤움은 사실 신이 천사에게 세상의 모든 어리석은 자들을 자루에 담아오라 했는데, 세상에 어리석은 자들이 너무도 많았던 나머지 가득찬 자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천사가 휘청하다 결국 자루가 찢어지고 덕분에 그 자루에서 쏟아져 나온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이 떨어진 바로 그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으니 그 마을이 곧 헤움이었다고 합니다. 즉, 헤움은 바보들이 모인 동네라는 거죠. 그렇게 그들이 벌이는 일이란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동경하다 결국 여행을 떠난 신발 수선공은 여행 도중 방향 감각을 잃고 도로 헤움에 돌아오게 되는데 그곳이 자신이 살던 마을이고, 자신의 집이고, 자신의 가족들임을 깨치지 못하고, 어찌하여 이곳이 자신의 마을과, 집과, 가족들과 같은지에 대해서 아직도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헤움에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때에는 나무를 비라고 부르며 가뭄을 면하고, 홍수가 나려 하자 다시 비를 나무라 부르며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고요. 어째서 헤움엔 시인이 없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시인을 찾기 위해 공모 아닌 공모전을 여는데, 헤움엔 시인이 없었던 게 아니라 결국 마을 사람 모두가 시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하죠.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수십 개가 이어지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실소를 터뜨리고 말지요. 때로는 전혀 바보같지 않은 바보들의 재치에 감탄하기도 하고요. 어떤 땐 우리들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쓴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끔은 그 우화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렵기도 해 고민에 빠져들기도 하고요. 결국 우화를 읽는 재미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헤움에서 찾은 가장 큰 깨달음은 '행복'이었습니다. 헤움의 이 바보 같은 마을 사람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거든요. 그들은 모든 일을 단순하고, 그리고 긍정적으로 헤쳐나가니까요. 가끔, 아니 자주 어처구니없는 방식을 이용하긴 하지만... 그들의 이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은...세상을 너무 복잡하게만 바라보는 우리가 좀 배워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는소크라테스만큼이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헤움의 바보들도 존재해야 세상이 원만하게 굴러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곁에 두고 종종 꺼내 다시 읽으면 웃다가 그 웃음 끝에 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귀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