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자, 이제 <화이트 래빗>을 완독하였으니 리뷰를 써 보도록 하자. 참고로 이 작품의 문체가 상당히 독특했고, 그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에 최대한 따라해 보려고 한다. 그러니 이 글을 혹시라도 읽어 주는 분이 있다면 이 의미를 알 수 없는 글투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거나, 혹은 "이 작품 문체가 독특하다고?" 하고 호기심을 가져 준다면 더없이 감사하겠다.


먼저 주인공인 구로사와에 대해서 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작가 이사카 고타로는 데뷔한 지 18년차이고 때문에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남겼으니 그래서 그가 창조한 개성 강한 인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은 곧 자식이나 다름없을 테니 그 어느 인물 하나 아끼지 않겠냐만은 그의 구로사와 사랑은 유독 눈에 띈다. 작가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에게서 이름을 따왔다는 이 구로사와라는 인물은 본업은 빈집털이, 부업은 탐정, 가끔 상담도 해주며, 요샌 낚시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면모 때문인지 작가의 다양한 작품, 특히 단편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연급 인물에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이 없음에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에겐 팬도 많다. 일본의 한 잡지 조사에서는 치바를 이어 인기 인물 순위 2위에 등극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의 팬이다. 시크하면서도, 도둑 주제에 친절하고(러시라이프나 흰토끼에 언급되는 영수증 참고), 탐정답게 똑똑하고 예리하며,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아마 외모는 꽤 잘생겼을 거라고 예상되는 섹시가이 구로사와. <화이트 래빗>에서는 그의 매력 포텐이 200% 폭발한다. 이번 작품에선 그의 커리어(?)에 스펙이 하나 늘어나니까 말이다. 그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여기서 밝혀드릴 수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럼 이제 작품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야기는 한 유괴 벤처 기업의 두 직원이 어떤 여성을 유괴하면서 오리온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괴가 무슨 벤처냐? 유괴하는 와중에 그 무슨 낭만적이게 별자리 얘기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묻고 싶을 거라는 거 안다. 하지만 이사카고타로의 작품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작가의 말빨, 혹은 인물들의 말빨에 설득당하고 만다. 심지어 이 때문에 키득대며 웃음까지 터트리게 된다. 믿을 수 없다고? 그럼 직접 읽고 확인해 보시라 하는 수밖에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무튼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 유괴 벤처 기업의 매입 담당(...!!!!) 직원인 우사기타에겐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가 유괴를 당하고 만다. 자업자득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래 사실 나도 그랬다. 자업자득이 아니면 뭐겠는가. 그런데 우사기타의 아내인 와타코는 우사기타가 유괴범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와타코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억울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라. 유괴범의 아내가 유괴되었다니. 이 말장난 같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가 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니 독자는 계속해서 책장을 넘겨 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와타코 짱의 유괴 이후에 갑자기 구로사와가 빈집을 하나 털더니, 곧이어 인질 농성으로 사건이 급변한다. 그러더니 SIT가 등장하고, 한 번은 농성 사건의 범인의 시점으로, 다시 SIT 과당 대리의 시점으로 시점도 왔다리갔다리 한다. 그러면서 전지전능한 전지적 서술자가 자꾸만 등장하여 사건을 설명하려 든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 무슨 럭비공 같은 전개인가 싶을 테지만, 작가의 스타일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들이 결국 다 연관이 되어 있으리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조금 더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그 구체적인 사항까지 눈치챌 수 있으리라. 작가의 10년차 팬으로서 나 역시 그랬다는 걸 굳이 밝히며 어깨를 으쓱해 본다.


아무튼, 이런 구성과 전개 속에 작가는 여러 개의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전지전능한 서술자가 수시로 나타나 이건 이러이러합니다, 하고 설명했으면서 그 반전에 대한 힌트들은 쏙 빼놓았었던 것이다. 참으로 의뭉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그 의뭉스러움 덕에 웃음이 새어 나오게 되니 이게 또 이 작품을 읽는 가장 큰 재미가 되는 것이다. 


자자, 그래서 유괴 사건과 인질 농성 사건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거냐고 묻고 싶은가? 그걸 내가 여기서 말해 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건 직접 작품을 읽고 확인하는 즐거움을 부디 놓치지 마시라. 단언컨데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 중에 가장 경쾌하고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라 펼친 즉시 끝을 보게 될 거라 장담한다. 게다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구성도 썩 복잡하진 않은 편이라 더욱 쉬이 읽으실 수 있을 것이다. 헐! 이게 안 복잡한 편이라고?...하고 묻고 싶은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인데 어떡하겠는가. 이 정도면 이사카 고타로 작품 중에서는 가장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지전능한 서술자님이 수시로 나타나 사건 개요와 반전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부디 그 묘한 전지전능한 서술자님의 서술을 한번 직접 맛보시라. 그리고 흰토끼에 홀려(?) 앨리스처럼 토끼 굴에 빠져 버린 우리들의 검은 도둑 구로사와도 꼭 한번 만나 보시라 적극 추천드리고 싶다. 


잡담1) 그러니까 이 작품은 <레미제라블>의 오마주 비슷한 작품인 걸까? 소개되고 있는 레미제라블의 주옥 같은 대사들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이마무라처럼 5년에 걸쳐 레미제라블을 읽어 볼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1챕터를 통째로 프랑스 지하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설명을 보자마자 그 마음을 접었다. ㅋㅋㅋ


잡담2) 센다이역 동쪽 출구 근처에 있는 실내 낚시터에 가면 구로사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빠, 별의 일생과 비교하면 우린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자, 태어났습니다. 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 죽었습니다.예전에 아이카가 한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시간이야. 아빠는 내가 무슨 말만 했다 하면 아무 의미도 없으니 다른 집과 비교하지 말라고 화를 냈잖아. 우리집은 우리 집이고 남의 집은 남의 집이라면서. 별의 일생과 비교하는 건 더 의미가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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