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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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라는 게 이렇게 사연 많고 침울할 수도 있는 거구나.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인데도 움찔!하게 만드는 반전요소가 있어 놀라웠다.
아니, 실은 반전이라기 보다는 경악이 더 비슷한 느낌.
'식빵 굽다' 하면 고양이만 떠올랐는데 이제는 이 책도 같이 생각이 나겠구냥

화장실을 들락거리거나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때때로 이모나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고는 하였다.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앉아 있는 그 검은 형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불면처럼 습관이 돼버리고 말았다...나는 새벽마다 일종의 무언극을 관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나는 아침마다 버터와 우유를 듬뿍 넣은 터키 국기 모양의 크루아상을 만들었겠지. 그녀가 원한다면 달팽이 모양이나 바람개비 모양으로도 만들어주었을 텐데.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 세상에 없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모습은 대부분 많은 것을 가리고 있고 숨기려 한다. 그에 비해 옆모습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는 벌거벗은 몸을 연상시킨다. 콧날의 선과 다문 입술의 각도와 속눈썹의 그늘짐. 목울대의 섬세한 굴곡. 나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상대방의 내면을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광고회사에 다닌다고 하였다. 광고회사? 나는 그의 옆모습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그의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직업을 물어보는 이모에게 그냥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둘러댔을 것만 같았다.

일층에는 제과점을 내면 되겠더구나, 길목이 좋은 곳이야.

그것뿐만이 아니라 생각해보면 나는 어머니의 처녀 적 시절에 대해서도 들은 게 별로 없다...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다섯 살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 전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혹시 어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스물두 살이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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