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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온기 -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ㅣ 작가의 숨
윤고은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평점 :
쉽게 잘 읽히지만 누군가에게 그 책을 소개하거나 설명할때 뭐라 얘기할지 모르겠는 책들이 종종 있다. 소설이라면 이야기의 줄거리를 자기계발서라면 책이 알려준 기술을 말하면 되겠지만 이 책은 소설가가 쓴 소설이 아닌 글들이다. 그러니 하나의 줄기로 된 이야기는 없으니 이런 책이다. 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지만 빈틈의 온기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을 수 있는 책이었다.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라는 부제처럼 나는 이 글을 출퇴근길에 주로 읽었다. 그래서일까 라디오 진행을 위해서 전철을 타고 오랜시간 출퇴근을 하는 작가의 글이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쉽게 읽혔으나 가볍게 느껴지진 않았다.
라디오에 나오는 소소한 사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매력적이었는데 그중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낮이 지고 밤이 스며드는 시간에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새삼 깨닫는다' -136p- 이다. 해가 지는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라져가는 해가 슬며시 물들인 강물이 빛나는 그 빛깔과 점점 어두워져 멀리 불빛들만 수놓은 까만 밤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찌보면 매일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쳐있을지라도, 아니 오히려 피곤한 하루를 견뎠기 때문에 더 그 시간이 소중할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에 함께 탄 사람들의 구경하며 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 또한 너무도 나와 같아서 아, 사람들이 생각하는건 전부 비슷하구나 싶어 피식- 하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그렇게해서라도 우리는 그 무료할 수 있는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로 한강을 달리는 것은 안된다고하면서도 지하털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과감하게 치마를 입고 가디건으로 덮고 달리는 똘기. 그래서 결국 자전거 바퀴에 걸려 가디건이 찢어져도 제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려는 강한 의지가 마치 나의 모습과 같았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드는가. 지하철은 어지간해서는 연착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는 것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우리를 놓고 그대로 출발해버리기에 우리는 자전거를 탄 채로 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금만 더 서두르면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머리와 몸은 따로 놀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서두를 수 없고 그런 불상사를 겪어놓고도 결코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게으른 것은 아니다. 게으르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에 옷을 찢기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노력하는 것 아니겠는가.
작가의 변명과도 같은 빈틈이 가득한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 같아서 그 허술함에 슬며시 동조하게 만들고 읽고있으면 위로가 된다. 빡빡하고 복잡한 삶에 필요한 것은 이런 온기가 아닐까. 책을 덮으면 금방 사라져버릴지라도 언제고 다시 이 책의 어느 부분이나 들추면 타인의 이야기지만 곧 내 이야기일지도 모를 삶들이 가득해서 우리는 그렇게 위안을 얻을 것이다.
‘낮이 지고 밤이 스며드는 시간에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새삼 깨닫는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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