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하도 싸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이번 여행 앞에 '오랜만에'라는 단어를 갖다 쓰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심적으로는 오랜만이라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한 번 가봤던 곳에 또 간 적이 많았다.(예를 들면 태국) 이번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중국 서북부 지역에 다녀왔고 그래서 오랜만에 진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나는 예전부터 여행 갈 때는 반드시 책을 챙겨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자책 리더기를 사기 전에는 종이책을 두세 권씩 배낭에 넣어서 다녔고 전자책 리더기를 사고난 후에는 반드시 여행 갈 때 리더기를 챙겨간다. 여행에서 독서는 절대 뺄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다녀보니 생각보다 여행 다니면서 책 읽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1)시간 부족의 문제, 2)심리적인 문제, 이렇게 두 가지를 가장 크게 느꼈다.


우선 시간 부족의 문제. 여행 다니면 책 볼 시간이 없다. 낮에는 여행을 해야 하고 밤에 숙소에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날 뭐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매일매일 여행 기록을 저장해두는데 그것만 해도 엄청난 중노동이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느라 새벽 세 시까지 못 잘 때도 있었다ㅠㅠ. 여행과 기록과 계획만으로도 너무 벅찼기에 독서의 ㄷ자도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심리적인 문제였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서도 일종의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책을 읽으면 어쩐지 이중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이중의 여행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다.


물론 여행지랑 완전히 찰떡인 책인 경우에는 잘 읽힌다. 예를 들어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 이번에 둔황 가는 기차 안에서 <둔황>을 읽었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조행덕이 과주(瓜州)를 지나 사주(沙洲)로 향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마침 기차가 과주 역에 멈춰섰을 때 느낀 그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책은 여행지와 그렇게까지 찰떡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라오스에 간다고 해보자. 라오스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열심히 생각해봐도 딱 떠오르는 게 없다. 가장 최근에 간 라오스 여행에서는,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이 쓴 <전쟁의 슬픔>을 읽었다. 습하고 비가 많이 오고 삼림이 울창한 라오스의 풍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어쨌든 내 몸은 라오스에 있고 정신은 베트남 전쟁 당시를 헤매고 있으려니 피로한 것도 사실이었다.(책 자체는 당연히 좋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여행지와 완전히 찰떡으로 어울리는 책이 아니고서는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여행할 때는 여행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독서는 여행 전이나 후에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맞다는 걸 깨달았다.(물론 한달살이는 예외다. 해외 한달살이 할 때는 시간도 정신적 여유가 많으니까 독서가 가능하다.)


독서는 여행 전과 후에 하는 걸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먹으니까 예전만큼 여행지에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안달복달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와 딱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꼭 챙겨가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지와 딱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네이버에 내가 갈 여행지와 '책' 혹은 '독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지만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리미리 '이 책은 어디 가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기억해두는 편이다. 


둔황 갈 때 <둔황> 읽은 것은 솔직히 일차원적인 해답이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정답 말고 생각지도 못 했는데 그 여행지에 찰떡인 그런 책들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다. 여행지와 책을 엮어서 쓴 책인 <여행자의 독서>는 그런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책이다.(물론 이 책에서 소개한 책도 그 여행지와 완전히 찰떡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참고가 된다.)


이제 여행이 끝났으니 또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 관련된 책을 읽는 거, 너무 좋다. 여행과 독서를 동시에 해야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여행과 책은 최고의 짝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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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이승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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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나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이런 종류의 책은 지나치게 어려워서 읽기 힘들거나 지나치게 쉬워서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이 책은 적당히 어렵고 재미있었다.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아서 아마도 두고두고 재독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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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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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전개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카이펑에서 사주(=돈황)로 이어지는 조행덕의 일대기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모래 바람 부는 쓸쓸한 사막에 안성맞춤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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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활자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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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책이 전자책으로 나와서 바로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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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 일러스트레이터 이다와 함께 걷는 도시의 열두 달
이다 지음 / 현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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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출간 알림 떴길래 바로 구매했다.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언제 어디서든 펼쳐볼 수 있게 태블릿에 담아서 가지고 다닐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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