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포르투칼의 높은 산>



내가 아는 얀 마텔이 아니었다. “파이 이야기”를 썼던 그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첫 이야기는 실망으로 치달았다. 주인공 토마스는 갑작스럽게 부인과 아들을 잃고 만다. 그는 슬픔에 못 이겨 뒤로 걷기 시작하는데, 하필 그 때 아내가 뒤로 걷는 사람을 봤다는 얘기를 한다. 어, 내가 읽은 책에도 뒤로 걷는 사람 얘기가 나왔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토마스는 포르투칼의 높은 산에 있는 교회에 특이한 십자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 부유했던 숙부는 세상에 처음 나온 자동차라는 것을 빌려준다. 토마스가 포르투칼로 가는 여정을 그린 1부, 1904년의 이야기, “집을 잃다”는 토마스가 가족을 잃고 상실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세상에서 자동차를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자동차로 포르투칼의 높은 산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간절히 바랐던 그 십자가상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자동차로 한 어린이를 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다 도망치고 만다.

2부 ‘집으로’는 1939년. 그러니까 토마스가 포르투칼로 갔다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끝난 지점에서 30년, 1세대가 지난 즈음에 전혀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 이야기를 시작한다. 단편소설이었나?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아이를 잃은 부부, 그리고 그 남편을 잃은 부인 마리아가 부검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를 찾아온다. 이야기의 연결고리는 이 마리아가 잃은 아이가 바로 1부에서 토마스가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그 아이라는 설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2부 이야기는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얀 마텔이 ‘파이 이야기’에서 보여준 식인호수에 버금가는 설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놀라운 상상력이자 그 상징성의 깊이에 그저 놀랄 뿐이다. 마리아의 집은 어디였을까? 아이를 잃고 남편마저 잃은 마리아의 집은 남편이었다.

3부 ‘집’은 현대로 넘어와 1980년이 된다.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그는 미국에 초청되어 갔다가 우연히 침팬지연구소를 방문하게 되고, 우연히 침팬지 오도를 데려오게 된다. 미친 짓임을 알면서 그는 그와 함께 살려고 한다. 그는 오도를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곳 포르투칼의 높은 산으로 간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집 한 채를 겨우 구하고 그 곳에서 침팬지와의 삶을 시작한다. 캐나다에 있는 아들도, 누이도 버려두고,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삶이 놀랍다.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 피터가 말하면서, 삶은 달걀과 감자가 담긴 냄비를 오도(피터가 데려온 침팬지)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생각에 잠긴 채 조용히 먹는다. 식사가 끝나자 오도가 다시 창밖으로 펄쩍 뛰어 나간다.

낡은 매트리스가 의심스러워 피터는 거실 테이블 위에 캠핑용 매트와 침낭을 깐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없다. 3주 동안 - 아니 한평생일까? - 쉼 없이 움직였는데, 이제 할 일이 없다. 무수한 종속절과 수십 개의 형용사와 부수가 들어가고, 기발한 접속사들이 문장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는 와중에 - 예기치 못한 막간의 촌극까지 끼어들고 - 하이픈 없는 명사들이 난무하는 장문이 마침내 놀랍도록 고요한 마침표와 함께 끝이 난다. 한 시간쯤, 꼭대기 층 계단참에 나가 앉아서, 지치고 조금 긴장이 풀리고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그 마침표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 문장은 무엇을 가져오려나? (얀 마텔, 포르투갈의 높은 산, 332쪽)

그는 침팬지를 닮아 점점 하등동물처럼 단순해지고, 침팬지는 피터를 닮아 지능적이 되어 귀리죽을 끓인다.

“피터는 침실에서 손목시계를 꺼내 온다. 아직 오전 8시도 안 되었다. 거실에서 테이블을 바라본다. 읽을 보고서도 써야 될 편지도 없고, 어떤 종류의 문서 업무도 없다. 구성하거나 참석할 회의도 없고, 우선적으로 처리할 일도 없고, 해결해야 할 세세한 일들도 없다. 걸거나 받을 전화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일정도 없고, 프로그램도 없고, 계획도 없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업무가 전혀 없다.

그런데 시계를 볼 필요가 있을까? 그는 손목시계를 푼다.” (347쪽)

그는 끝내 자기 집을 찾았다. 토마스가 도달하려고 했던 집, 마리아가 안식하려고 했던 집, 그 집을 피터는 침팬지와의 삶 속에서, 토마스가 갔던 그 포르투칼의 높은 산에서 발견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흥 없이 실망하며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엄청난 희열과 충격과 감동으로 놀란 가슴을 쉬이 진정시키지 못했다. 역시 얀 마텔.

다양한 상징들, 예수, 십자가상, 집, 안식, 애통, 죽음 등 다양한 변주가 사방에 숨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모든 것들의 위대한 뜻과 깊이를 헤아릴 수 있었다.

결국 세 이야기는 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아빠, 아들과 남편을 잃은 아내

애통은 질병이에요. 벌집을 쑤신 것마냥 슬픔의 마맛자국이 생겼고, 우린 열에 시달리고 타격에 무너졌어요. 그 병은 구더기처럼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이처럼 달려들었죠. - 우린 미칠 정도로 몸을 긁어댔어요. 그 과정에서 귀뚜라미처럼 활력을 잃고 늙은 개처럼 기운이 빠졌어요. (244쪽)

결국 책은, 익명의 군중이 살해한 사람의 아들, 그 익명을 애통해하는 신의 눈물에 관한 이야기, 애통하는 자녀들에 대한 신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 구원의 여정으로 걸어가는, 전혀 높지 않은, 포루투칼 높은 산으로 걸어가는, 믿음의 이야기다. 예수의 십자가상이 어떤 사람의 눈에는 침팬지처럼 보여, 이게 신성모독이 아닌가 가히 의심스러운 매우 위험한 책일 수도 있으나, 그 팔이 긴 것은 모든 사람을 안으려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얼굴이 긴 것은 애통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다.

가장 인간적이고 우아하며 품위있는 영적 여행, 이라는 뒷표지의 한 문장이 매우 정확한 책이다.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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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가능한 미래
비벡 와드와.알렉스 솔크에 지음, 차백만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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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택 가능한 미래>

SF소설을 좋아하다보면 자연히 미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막연한 동경은 SF소설에서, 미래공상과학영화에서 힌트와 아이디어를 얻는다. 왜냐하면 영화와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하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막막한 임계점을 넘어 곧잘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설정과 장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영화와 소설을 통해 나타난 것들이 결국 현실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 예언적인 예지력 앞에 다시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우주 이야기 “스타트렉”은 1969년에 미국에서 처음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스타트렉의 많은 것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타트렉은 무수한 팬을 만들어내며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며 영화의 다양한 버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반면 지구의 멸망 이후를 다룬 영화인 “매드맥스”는 스타트렉보다 10년 뒤인 1979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때 멜깁슨이 풋풋한 모습으로 나온다고 한다. 물론 영화는 무척 황폐하고 황량하며 잔인하고 난폭하다고 하는데, 죽기 전 꼭 봐야 할 1001편의 영화에 소개되어 있어 나름의 의미를 가진 영화로 보인다.

“선택 가능한 미래”의 저자는 우리에게 “스타트렉”이냐 아니면 “매드맥스”냐를 질문한다. 둘 중 하나밖에 없다. 둘 다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이며, 하나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미래 또 하나는 매우 차가우며 자기중심적인 미래이다.

미래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이며 그 발전속도에 대한 것, 발전 내용에 관한 것은 사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 나오는 많은 책에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절반 이상은 4차 산업 혁명이라든지, 인공지능을 다루는 다른 책들과 별 차이점이 없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몇 권의 책을 이미 읽어왔고, 관련 기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기에 저자의 정보성 글들은 그다지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름 좋은 평점을 얻게 된 것은 그러한 정보들이 그저 신기한 정보로만 역할과 기능을 하지 않고, 우리에게 인문학적인 질문거리를 던져주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을 읽는 당신은 미래에 대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재확인시켜준 것에 있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매우 희망적이면서 역설적인 책임까지 떠안겨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2장부터 4장까지 소개하는 인공지능, 로봇, 유비쿼터스, 드론, 마이크로바이옴, 자율주행, 3D프린팅, 태양에너지, 인공신체 같은 이야기는 사실 이제 식상한 주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각 주제의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서 단순한 정보제공에 그치지 않고 저자는 끊임없이 스타트렉과 매드맥스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어떤 선택의 지혜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점은, 그 모든 것을 나열하기에 앞서서 가장 먼저 1장에서 독자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는 데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건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기술을 좋은 일에 쓸 수도, 반대로 나쁜 일에 쓸 수도 있다.” (19쪽)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선택은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최신 기술의 정보들을 최대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활용하고 또 대처하는 것에 만족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당신의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당신이 나서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대한 정신이 하나로 모여서 집단지성을 이루고 힘을 발휘할 때만 법률제정자들은 변화의 방향을 조절하는 ‘상식적 정책’을 마련한다.” (56쪽)


우리는 지난 해 위대한 정신이 하나로 모여서 집단지성의 승리를 이룬 바가 있다. 그 경험과 노하우라면, 우리의 미래 역시 그렇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집단지성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투쟁해 왔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아갈, 그리고 우리의 자녀가 살아갈 미래라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는 더 정신을 집중해서 디스토피아가 아닌, 우리가 꿈꾸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지성을 모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앞질러 갈 거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지금부터 포기하고 체념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인공지능은 비록 단번에 바둑을 점령하고 은퇴해버렸지만, 현재의 로봇은 아직 빨래조차도 제대로 구분하고 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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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밀리언 특별판) - 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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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라는 자랑스런 문구가 띠지가 아닌 책 전면에 인쇄되어 박혀 있는 책.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이 문구가 인쇄 글자로 책 표지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와튼스쿨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와 함께 와튼스쿨 동문이라고 해서 더 유명해진 학교이다. 스쿨이라 해서 특별한 학교가 아니라, 와튼스쿨은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경영대학교를 말하며, 1881년 필라델피아 사업가인 조지프 훠턴(와튼)이 기부하여 설립된 학교라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와튼스쿨에서 20년간 전설적인 협상강의로 유명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강의를 통째로 옮겨놓은 책이라고 한다. 협상강의가 몇 강이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압축해서 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뒷표지 흰 색 전면 중앙에 단 하루도 이 책에서 배운 것을 사용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독자의 글귀는 또 새로운 독자를 유혹한다. “이 강의를 듣기 위해 9개의 강의를 포기해야만 했다.”는 와튼스쿨 학생의 글귀도 돋보인다.

 

책은 스튜어트 교수가 실제 강의하듯이 풀어서 서술되어 있어 읽기에 큰 무리가 없다. 실제적인 예화가 상당히 많이-어쩌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책은 술술 읽힌다.

 

초판이 나왔던 2011년에도 베스트셀러였고 그래서 언론과 광고에도 많이 노출되었는데,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원하는 것을 얻는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니, 너무 세속적으로 느껴졌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차라리 협상력을 높이는 기술”(너무 진부하긴 하지만) 정도의 수준으로 제목을 만들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겠지만, 지나치게 개인중심적인 제목으로 느껴지는 원하는 것을 얻는책이라니. 어쨌든 제목에 대한 느낌은 그랬다.

 

그런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오고 어찌어찌하여 이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1무엇이든 다르게 생각하라는 내가 좋아하는 창의성분야의 제목으로 일단 합격점을 안겨주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친 두 사람의 탑승 성공기는 꽤 반전이 있었고 계속 책을 읽도록 하는 힘을 부여했다. 와튼스쿨 2001학번이었던 레이엔 첸의 실제 경험담이 주는 반전의 충격은 꽤 길었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매우 현실적이었다. 이론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이론들은 현실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논리가 탄탄했고 실패할 가능성이 적은 이론이었다.

 

표준과 프레이밍을 이용한 협상, 감정을 중요시하는 협상, 가치의 교환으로 협상을 성공하는 방법 등의 내용들은 신선했고 적용했을 경우, 한국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조금은 더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한국에서는 막무가내식 또는 고개 하나 돌리지 않는 원칙주의자들이 있겠지만, 실제 이 협상카드를 내밀었을 때는 어떻게 나올지 잘 모르겠다. 물론 한국사람들은 일단 화를 내고, 큰목소리가 이긴다는 다소 원시적인 표준?이 있기 때문에, 저자가 미국에서 하듯이 상대와 개인적인 친교를 실시하여 감정을 열고 서비스를 받아가는 방법이 얼마나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럴 시간도, 그럴 여유도 없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래도 모든 곳이 다 그렇지 않으니 밑져야 본전인 셈치고 한번쯤 책대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협상이라고 하면, 비즈니스 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책에서는 모든 대상, 모든 갈등에 대한 영역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들과 협상하는 대목, 서비스 매장에서 협상하는 대목 같은 부분은 신선했고 재미도 있었다. 너무 세밀하게 들어가는 경향이 있지만, 아동심리학이나 상담학 영역으로 보여지는 부분을 가치교환 같은 협상 이론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이 유사하면서도 독특한 면이 있었다.

 

줄거리가 있는 책은 아니지만, 협상법칙을 공개해버리는 것은 책을 다음에 읽을 사람에게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자제한다. 물론 궁금하신 분은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면 너무 친절하게 온갖 법칙을 공부하듯이 적어놓은 분들이 있어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후기를 읽고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은 사서 보시든, 대출해보시든 책을 읽어보고 판단하시면 좋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 하나는, 저자가 북한 김정은과의 북핵 문제에 직접 트럼프의 지략가가 되어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세계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이스라엘 문제, 미국의 테러문제에 마지막 장을 할애했는데, 전 세계를 경악케하고 한반도를 핵의 중심지로 만든 김정은의 협상얘기가 빠져 있어 좀 서운했다. 다음 개정판 때까지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그때는 꼭 그 부분을 넣어주면 좋겠다. 물론 그 부분에 실제 협상하고 난 협상결과가 실리면 더 좋겠지만.

 

책을 읽고 나서, 반성을 좀 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따지길 좋아했는데, 그래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상대에 집중하라,는 조언은 참 좋았다. 그도 사람이니, 그를 화나게 하지 말고, 그를 존중해주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내 의견을 말할 때, 내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 쉽진 않겠지만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꼭 실험해보고 싶다. 거창한 광고문안 때문에 생긴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상당히 유용한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거창한 인류 평화, 아니면 내적인 성숙 같은 거대담론의 인문학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힘을 가져다주는 책으로 소개해도 무방하겠다.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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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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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마이파더”에서였다. 다니엘 헤니와 김형철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사형수를 미화하지 말라며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고, 한국영화로는 꽤 선전한 영화였다. 나는 DVD로도 소장하고 있어 자주 보는 펀인데,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영화는 뒷부분을 잘 보지 못하겠다. 그래서 좋은 영화임에도 더 자주 보지 못한다. 22년만에 입양아였던 다니엘 헤니가 친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왔는데, 아버지는 사형수였다.

내가 그 영화를 잊지 못하는 것은, 김형철이 사형 당하는 줄 알고 오줌을 지리며 질질 끌려나가는 장면이다. 물론 면회를 온 것이었지만, 교도관들은 결코 왜 끌고 나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특히 아침에 사형이 집행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아침에 사형수 면회를 가는 일은 금해야 한다. 어쨌든 아무것도 모른 김형철은 진짜 사형수처럼 복도를 질질 끌려 나간다. 사형수의 마지막 복도. 나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이라 불린 남자”의 주인공인 “마스”가 20년이 지나 사형집행이 이뤄지는 당일 풀려나는 도입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고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이 현대 추리소설에 버젓이 등장했다는 것도 충격적인 서사였다. 진짜 범인이 나타나 자백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주인공 “마스”가 엄청난 신체적인 조건을 가진 미국 미식축구의 “괴물” 같은 존재였음을 들어 마스에게 그 호칭을 불러주려고 했다. 괴물은 괴력을 지닌 사람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몬스터,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외계인, 정신병자처럼 부정적 의미로 갖다 붙일 수 있는 그런 호칭이다.

저자의 전작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인데 물론 전작을 잃지 않고 읽어도 무방하다. 전작에서 똑같은 미식축구 선수활동을 하다 쓰러져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는 과잉기억증후군 환자인 데커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형사를 하다 아내와 자녀가 살해당하는 사고를 겪고 경찰직을 버리고 부랑자처럼 살아간다. 전작을 다 얘기할 수 없지만 데커는 어떤 동기에 의해 FBI 수사 컨설턴트로 다른 사건 해결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때 책 마지막 부분에 “괴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전편에서 범인으로 등장하는 “와이트” 역시 과잉기억증후군 환자였는데, 그녀는 동네에서 몹쓸 짓을 당하면서 그 증상을 얻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과 데커가 만나 대화를 한다.

범인이 말한다.
“너랑 나만 괴물이야.”
그러자 데커가 대답한다.
“넌 괴물이 아니야. 나랑 똑같은 사람이지.”

본의 아니게 전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후편 “괴물이라 불린 남자”를 동시에 읽게 된 나는, 그래서 고맙게도 “괴물”이 가지는 중의적인 뜻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괴물처럼 인식하는, 그러나, 신에 의해 똑같이 지구별에 태어난 너와 나와 같은 사람.

틀린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로 채워진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
괴물이라 불릴 순 있어도 괴물이 아닌 사람.

“괴물이라 불린 남자”에서 전편의 데커는 FBI의 공식 요원으로 등장한다. 그는 괴물이라 불린 “마스”와 거의 동급인 체격을 가진 요원으로, 모든 것을 기억하는 과잉기억장애를, 범인을 잡는데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새롭게 등장한 주인공 마스.
새롭게 범인으로 등장하는 A와 B.
그 외에는 대부분 전편에 등장하는 FBI 보거트 반장. 형사 파트너였던 랭커스터, 그리고 기자였던 재미슨이 함께 한다.

아마 3편이 나온다면, 이제 데커는 재미슨과 좀더 가까워질 것 같다.
단순하게 시작한 사건은 계속 커지고, 확대되고 넓어지고, 칸을 넘어 다른 이야기로,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종결한다. 보거트 요원도 없고 랭커스터 파트너도 없는 곳에서 데커는 죽기 직전에 살아난다.

한 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는 책.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을 잡을 것.

600쪽에 육박하지만, 200쪽처럼 읽어내릴 수 있는 책.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형법 등에서 사형 판결은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1997년 12월30일 사형집행이 이뤄진 뒤 현재까지 집행이 미뤄진 상태다. 일부 사람들은 강력한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이유로 사형집행은 연기되고 있다.

“무고한데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단 한 명도 너무 많죠. 그리고 분명히 한 명은 넘을 테고.”
추리소설이지만, 가볍게 사형문제를 잽으로 날린다.

원작과 제목이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 표지는 흑인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웠다. 더 범죄소설처럼 보인다.

그에 비하면 원작 소설 표지는 추리소설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떤 차이가 있어 이런 변신이 일어났을까, 궁금하기고 하다.
우리나라 표지는 확실히 인종차별이라는 숨겨진 사회적 문제를 보다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거나....

저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발다치”다. 데이비드는 한국 기독교 성경 방식으로 읽으면 “다윗”이다. 발다치는 우리말로 치면, 발 다쳐다.

저자 사진을 보니 참 선하게 생겼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못 쓸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는 책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인종차별 문제도 강력하게, 그러나 잽으로 날린다.

우리는 재미있게 책을 읽지만, 책의 활자들은 우리 뇌로 들어가, 든든한 영양소가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괴물이라 불릴 수는 있지만, 괴물이 아니다. 함부로 괴물이라 부르지 마라. 그러다 발 다친다. (아재개그가 좀 심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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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어쨌다고 13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 1
부키 바이뱃 지음, 홍주연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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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어쨌다고>
-열세 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


나는 열세 살보다 무려 x배나 나이가 많다. 그리고 에바 같은 열세 살 딸을 두고 있지도 않고 (큰 딸은 무려 두 배나 많다.) 주변에 열세 살 비슷한 조카나 손녀나 친구의 딸이나 친구의 친구의 딸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 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를 훔쳐보고 싶었다. 내가 거쳐갔던 열세 살이지만,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열세 살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열세 살 아이를 만난다면,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자만 입학하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고, 까만 일본 잔재의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학교는 인권 없는 교권만 권력으로 가득했고, 시험을 치고 나면 학년별로 100등까지 석차와 이름이 교무실 앞에 나붙었다. 기를 쓰고 100등 안에 들려고 노력했다. 100등 안에는 들어야 우등생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의 유일한 따뜻한 기억은, 국어 시간에 들어온 교생이 책에 있던 시 낭송을 시켰고, 모두 교과서 읽는 전형적인 딱딱한 음정으로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마지 못해 시를 읽고 앉을 때, 유일하게 감정을 넣어 읽음으로써 단번에 젊은 여자 교생 선생님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하게 되었던, 그래서 시간마다 교생 선생님들은 나에게 시를 읽어보라고 시켰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불행한 기억은, 독후감에 대한 것이다. 중학교에서도 시 쓰고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갑자기 3학년 국어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불렀다. 무슨 잘못한 일이 있나 싶어 갔더니 급하게 되었다고, 내일까지 아무 책이나 읽고 독후감을 써오란다. 급하게 맡길 사람이 없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고민이 되었다. 책을 읽지 않고도 대충 독후감을 써낼 수는 있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읽은 책이 없어 독후감을 쓸 책이 없었다. 그러다 양심을 지키는 범위에서 선택한 책이 에드가 엘런 포의 “고양이”였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그러나 이 책은 장르문학이었다. 순문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 그러니까 그 당시 분위기로 보면, 심심풀이로 보는 만화책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추리소설을 독후감으로 작성해 갔다. 원고지를 받아든 선생님은 묘한 웃음(사실은 약간 비웃음)을 흘리고는 두고 가라고 했다. 나중에 그 독후감은 제출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내게 중학교는 억압, 단절, 강요 같은 단어들이 더 많이 부유하는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첫 중학교를 부임했던 원더우먼 별명을 받은 너무너무 예뻤던, 모든 학생들이 우리반을 부러워했던, 영어 담임 선생님이 만우절날 기적적으로 다른 곳으로 전근 가는 바람에 펑펑 울고 난 뒤로 중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에바는, 중학교를 정말 새로운 곳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건 사실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새 친구, 새 선생님. 새로운 과목. 모든 것이 낯설고 물설고 그래서 외톨이가 되기 딱 좋은 시스템으로 첨벙, 홀로 뛰어드는 곳이다.


에바는 스스로 모든 면에서 나은 게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서 남들보다 적응이 더 힘들었다. 심지어는 학교 급식마저도 그랬다. 식단이 문제가 아니라, 3학년부터 배식을 받고 1학년은 맨 마지막에 받으면서도, 식사는 더 빨리 끝내야 하는 불공평함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특별 시간에도 결정장애로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해 자습만 하는 반에 배정받고 만 에바.

소극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에바. 그 모습은 대부분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유난히 사교성이 많고 활달하여 적응을 잘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말 없는 소수가 더 많다.

표지에 나타난 에바의 온갖 모습들을 보라. 딱 소심한 내 모습이다. 그건 중학교에 갓 들어가지 않더라도, 첫 고등학교, 첫 대학교, 첫 직장, 첫 동호회 등 어디서나 나타난다.


말없이 조용히 앉아만 있거나, 시키는 대로만 하거나, 자기 정체성을 결코 드러내지 않고 불평도 안으로 삼키고, 혼자 힘들어하는, 모두 열세 살 에바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에바는 무미건조한 자습반에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기 시작한다. 간식 바꿔먹기. 우리가 늘 하던 먹방놀이가 아니던가. 혼자 먹는 일 없이 늘 나눠먹기 좋아하는 우리네 사람들. 에바는 한국인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렇게 에바는 작은 일 하나를 시작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간다. 에바는 아무것도 대들고 반항한 것이 없었지만, 교칙을 위반하고,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주의만큼 철이 들었다. 열세 살에서 열네 살이 될 준비를 마쳤다.


중학교에 갓 들어가는 친구들에게 추천한다. 소심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나, 친구의 친구에게 추천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에바다. 사실 우리 모두가 열세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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