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세 살보다 무려 x배나 나이가 많다. 그리고 에바 같은 열세 살 딸을 두고 있지도 않고 (큰 딸은 무려 두 배나 많다.) 주변에 열세 살 비슷한 조카나 손녀나 친구의 딸이나 친구의 친구의 딸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 살 에바의 학교생활 일기를 훔쳐보고 싶었다. 내가 거쳐갔던 열세 살이지만,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열세 살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리고, 만약 혹시라도 열세 살 아이를 만난다면, 좀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자만 입학하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빡빡 밀었고, 까만 일본 잔재의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학교는 인권 없는 교권만 권력으로 가득했고, 시험을 치고 나면 학년별로 100등까지 석차와 이름이 교무실 앞에 나붙었다. 기를 쓰고 100등 안에 들려고 노력했다. 100등 안에는 들어야 우등생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의 유일한 따뜻한 기억은, 국어 시간에 들어온 교생이 책에 있던 시 낭송을 시켰고, 모두 교과서 읽는 전형적인 딱딱한 음정으로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마지 못해 시를 읽고 앉을 때, 유일하게 감정을 넣어 읽음으로써 단번에 젊은 여자 교생 선생님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하게 되었던, 그래서 시간마다 교생 선생님들은 나에게 시를 읽어보라고 시켰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
또 하나의 불행한 기억은, 독후감에 대한 것이다. 중학교에서도 시 쓰고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갑자기 3학년 국어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불렀다. 무슨 잘못한 일이 있나 싶어 갔더니 급하게 되었다고, 내일까지 아무 책이나 읽고 독후감을 써오란다. 급하게 맡길 사람이 없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고민이 되었다. 책을 읽지 않고도 대충 독후감을 써낼 수는 있었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읽은 책이 없어 독후감을 쓸 책이 없었다. 그러다 양심을 지키는 범위에서 선택한 책이 에드가 엘런 포의 “고양이”였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그러나 이 책은 장르문학이었다. 순문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 그러니까 그 당시 분위기로 보면, 심심풀이로 보는 만화책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추리소설을 독후감으로 작성해 갔다. 원고지를 받아든 선생님은 묘한 웃음(사실은 약간 비웃음)을 흘리고는 두고 가라고 했다. 나중에 그 독후감은 제출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내게 중학교는 억압, 단절, 강요 같은 단어들이 더 많이 부유하는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았다. 첫 중학교를 부임했던 원더우먼 별명을 받은 너무너무 예뻤던, 모든 학생들이 우리반을 부러워했던, 영어 담임 선생님이 만우절날 기적적으로 다른 곳으로 전근 가는 바람에 펑펑 울고 난 뒤로 중학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에바는, 중학교를 정말 새로운 곳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건 사실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새 친구, 새 선생님. 새로운 과목. 모든 것이 낯설고 물설고 그래서 외톨이가 되기 딱 좋은 시스템으로 첨벙, 홀로 뛰어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