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에서 왔니 - 탄생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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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14]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탄생편

 

로마에 로마인 이야기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한국인 이야기가 있다.

이어령 선생님만이 쓸 수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우리네 이야기.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을 기억하나요? 당시 총괄 기획자였던 이어령 선생님에 의해 상상되고 실천된 이 굴렁쇠 소년은 세상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로 강하게 인식되었습니다. 모든 시간이 멈추고 소리도 멈추고 오직 드넓은 평면만 가득한 세계. 초록의 스타디움을 가로질러 굴렁쇠를 몰고가는 어린 소년.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조 뒤에는 늘 외로움과 정적, 그리고 암흑이 온다. 한밤의 태양이 아니라 대낮의 어둠이 있다.” 그는 77세가 되던 2009년에 그동안 신문에 연재한 내용과 텔레비전에서 강연한 내용을 풀어, 로마에 로마인 이야기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국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며 총 12권의 대규모 기획으로 77세에 첫 책 탄생편에 대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집필로 인해 뇌 수술을 받았고 10년의 긴 세월 동안 두 번의 암 수술과 투병을 거치며 2019년에서야 첫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도 집필을 이어갔는데 더 이상 컴퓨터에 있는 자료를 이용하지 못해 순전히 그의 기억에 저장된 내용만으로 이야기를 쓰고 고치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했다는 사실은 책 마지막 부분의 인터뷰 글을 읽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미리 그 부분을 읽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좀더 정성껏 한쪽 한쪽을 읽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제가 참으로 존경하는 학자요 작가입니다. 그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탁월합니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꼬부랑’ ‘아리랑’ ‘쓰리랑’ ‘너랑 나랑등 한국인이 즐겨 쓰는 랑 첨미소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합니다. 그 분석에 콩고물을 입히듯 그가 어린 시절 경험한 과거의 옷을 입히고 그가 학자로서 연구한 세계의 지식들을 인문학적으로 편집해 탈색합니다.

 

오래 전 그가 주장한 보자기론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과학적 논거가 없는 자기 주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가 싫다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그런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가 좋습니다. 한국인이 무심코 써오던 오래된 것들은 연구한 학자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자료나 사료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님은 이번 책에서 상당한 자료들을 첨언하여 자신의 주장에 대해 학문적 논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를 업는 포대기가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포대기의 영어 이름은 ‘podaegi’입니다. 한국의 호미가 영어로 ‘ho-mi’인 것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서양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전통적으로 스와들링이라는 걸 하는데, 이는 부모의 작업과 효율성을 위해 아이를 부모로부터 떨어뜨리려 했고 이는 아이를 꽁꽁 묶어 세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루소는 에밀’ 5부 중 1부에서 이를 비판하는데 할애합니다. 서양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전통적인 육아 방식을 비판한 것입니다.

 


(인터넷 구글에서 ‘podaegi’로 검색한 화면)

 

이어령 선생님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포대기는 아이와 접촉성과 밀착성을 최대한 높이는 매우 훌륭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서양식을 따라가 우리나라에서 포대기는 점점 사용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나 부모로부터 잠들 때 듣던 꼬부랑 할머니노래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한국인 이야기의 첫 책 탄생편은 바로 꼬부랑 할머니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인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유난히 이응으로 끝을 맺는 말들이 많습니다. 구부러진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다리, 굴뚝, 건물은 모두 직선이지만,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는 강, , 길은 모두 곡선입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말들도, 이야기도 모두 구부러져 있습니다.

 

임어당은 서양과 중국의 예술을 비교한 아포리즘을 남겼다. ‘이 세상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곡선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죽어 있는 것은 모두가 경직된 직선이다. 자연은 항상 곡선을 탐한다. 보아라. 초승달이 그러하지 않은가. 솜 같은 구름. 꼬부랑 언덕, 굽이굽이 흐르는 냇물이 그렇지 않는가. 한편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마천루, 철도선로, 공장굴뚝, 모든 게 그렇듯이 언제나 직선적이고 꼿꼿이 솟아 있다.’ 꼬부랑 고갯길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만든 길이다.” (372, 373)

 

1880년 서주당 이씨가 작성한 태교신기라는 세계 최초의 태교지침서라는 책을 통해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게 태교를 시작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어머니 양수로, 기저귀로, 포대기로, 옹알이로, 우리의 숨어 있는 먹거리 나물에 이어 콩잎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을 피해갈 한국적인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 자궁의 양수를 이루는 원소 순위가 바닷물의 원소 순위와 거의 똑같다는 그의 이야기 앞에서는 그만 넋을 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상상력도 날개를 펼쳐 또 다른 저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지성은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거침없이 세계를 넘나듭니다. 서양에서는 아직도 태교라는 개념이 정확하게 없다고 합니다. 태명 또한 유일하게 한국식 문화이며 그 기원을 찾아 나선 그의 노력들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왜군에서 조선의 최고 장수가 된 김충선 사야가3권짜리 소설로도 읽은 바 있는데, 그가 왜 조선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뒷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이 되어 남원으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왜군의 칼을 피해 쫓겨가는 와중에도 조선인들은 등에 하나씩 뭔가를 업고 뛰는 게다. 먹을 쌀, 보리 자루가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였다. 이것을 본 사야가 장군은 야만한 국가가 문화의 나라를 쳤구나했단다. (231)

 

그는 우리나라의 어부바 문화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김충선까지 끄집어냅니다. 포대기의 어부바. 어린 동생이 더 어린 동생을 업는 어부바. 나이 들어 자녀들이 부모를 업는 어부바. 결혼식 모든 행사는 서양식으로 바뀌었지만 폐백에서 신랑이 신부 업어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칠순 잔치, 팔순 잔치에서도 자녀들의 부모님 어부바는 이어집니다.

 

그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를 들으며 꼬부랑 열두 고개를 넘다 보면 그 두꺼운 책이 어느새 끝납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뭐를 하나 꼭 집어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방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사실 한국 사람이라는 이름은 1962년 조선일보에 처음 나온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인의 역사는 짧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조선이나 고려, 꼬레아로 외부에 더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인의 역사는 짧지만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로 들어가면 우리의 이야기는 몇 천 년 저 아래 깊숙한 근원에 가 닿습니다.

 

세계의 석학들이 한국의 나물문화, 채집 역사를 알았다면 그들의 저술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채집해서 먹는 음식 문화가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미역을 그저 sea weed 바다 풀이라고만 부릅니다. 미역, , 자반, 톳 등 온갖 바닷나물을 채집해서 먹는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달래를 캐고, 쑥을 캐서 반찬으로 먹는 나라입니다. 유럽에서는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채집하면 불법행위가 되어 경찰에 잡혀갑니다. 실제로 외국에서 자녀를 따라 이민 간 한국인 할머니가 공원에 마구 자라고 있던 쑥을 캐다 경찰에 잡혀간 뉴스도 있습니다. 제 사설도 길어졌네요.

 

아무쪼록 존경하는 선생님이 건강하여 그가 뜻한 바 열두 고개, 열두 권 한국인 이야기책을 모두 완성하여 소중한 대작으로 후손에게 남겨놓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선한리뷰]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은 소중하다.

너랑 나랑 계속 사랑하자.

가슴이 아리어 아리랑, 가슴이 쓰리어 쓰리랑.

코로나로 우리 가슴이 아리고 쓰립니다.

그렇지만 봄이면 함께 쑥이랑 달래 캐먹고 자라난 우리 한국인.

쑥처럼 일어나고 또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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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어떻게 읽어야 할까? -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성경 읽기 방법 How Book Series 5
이대희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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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13] 성경, 어떻게 읽어야 할까?

 

글쓴이 : 이대희

출판사 : 브니엘

발행일 : 2020.01.17

쪽수 : 231

 

(읽기 전에)

성경 읽기는 갈수록 매년 숙제 같은 것이 되었다. 처음 모질게 마음먹고 성경 1독을 시작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로 읽고 받아들인다는 마음 때문에 늘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날마다 읽은 성경은 그날의 영적인 무기가 되었고,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되었고, 힘들고 어려운 감정을 다스리는 약이 되었다.

 

하지만 1독이 성공하고 그 다음해도 성공하고 매년 성공이 쉬워지면서 성경1독은 습관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성경읽기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썰매개처럼 출발선에 모여 땅 하는 총소리와 함께 1231일을 향해 달려가는 숙제 같은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성경을 이렇게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새해가 되면 성경읽기는 목표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영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실체가 되지 못했다.

 

그런 즈음에 이 책을 발견했다. 책 소개는 성경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하는 성도들을 위한 아주 쉬운 바이블 리딩 가이드북이라고 되어 있어서, 내가 원하는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은 듯했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나의 나태해지고 형식적인 성경읽기를 바꾸는 데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이 책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나는 꿀송이처럼 달게 성경을 읽고 싶었다.

 

(읽고 나서)

저자인 이대희 목사님은 성경 통독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데 나도 그 부분은 크게 동의하는 바이다. 특히 성경을 빨리 읽기 위해 5배속으로 오디오 성경을 틀어놓고 눈으로만 좇아가며 성경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은 새해가 되면 성도들의 성경 일독을 위해 그렇게 해서 들어도 성경을 읽은 것으로 쳐주겠다며 독려한다. 물론 평생 성경을 한 번 읽기 힘들어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그런 방법으로라도 다가가는 게 필요할 수 있겠으나 모든 성도들을 그렇게 통독으로 성경읽기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자도 이 부분에 대하여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성경 통독 방식과 성경 읽기 방식을 비교하며 차이점을 역설한다.

 

성경 통독이 아닌 성경 읽기는, 성경 자체를 즐거워하는 성경 읽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즐거움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것이다. 숙제 해치우듯이 후다닥 고배속으로 읽어내어서는 안 된다.

 

성경통독은 본래 동양의 학습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경 통독은 대부분 전체를 한 번 읽는 데 만족하고 권별로 공부하는 데까지는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성경 통독은 몇 독 했느냐에 관심이 있고 시간을 정해서 빨리 일독하는 데 목적을 두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바리새인처럼 성경 읽기가 자기 의를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039)

 

저자는 성경 읽기의 방식으로 유대인들이 읽던 방식을 설명해주고 있다. 모세 5경인 토라가 원래는 하나의 성경으로 두루마리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후대에 와서 읽기 편하게 장과 절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성경읽기는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구약시대부터 성경을 읽는다고 하면 모두 소리내어 읽는 방식을 따랐다. 우리가 지금 눈으로만 읽는 묵독은 애초에 없었다. 예수님도 회당에서 성경을 읽을 때는 소리내어 읽었다. 이 부분은 새롭게 발견한 내용으로 꼭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히브리인의 성경의 명칭은 미크라였다. 미크라는 읽는다. 선포한다는 뜻의 히브리어다. 성경은 본래 읽는 책이다. 이것은 성경은 읽을 때 성경이 된다는 의미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소리 내 읽는 책이 성경이다. 읽는 순간 말씀이 선포되면서 듣는 자에게 치료와 창조가 일어난다.” (072)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성경대로 살기 위한 것이다. 즉 말씀의 실천에 성경 읽기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성경 읽기의 방법에 대하여 예수님처럼 읽기를 하라고 한다. 소리내어 읽기. 전체로 읽기. 통합적으로 읽기, 수평적으로 읽기, 수직적으로 읽고, 성령 체험하며 읽기 등이다.

 

저자 이대희 목사님은 스스로 성경 읽기를 하면서 만든 바이블 리딩맵을 만들어 책 속에 수기로 작성한 많은 자료들을 삽입하였다. 성경을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통합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어주니 처음 읽으려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 1독에만 목적을 두어 날짜를 정해 후다닥 성경 통독을 하기보다는, 날마다 영의 양식으로 정해진 분량씩 조금씩 읽고 말씀이 주시는 뜻을 생각하고 하루하루 실천하는 크리스천이 되면 좋겠다.

 

삶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것은 성경을 읽는 데서 시작된다.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지표가 된다. 하루의 길을 밝히는 등불과 같다. 말씀 없는 삶은 영적으로 보면 어둠에서 길을 잃어버린 삶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058)

 

[선한리뷰]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

성경 읽기는 숙제가 아니다. 날마다의 영적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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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서신 안에 담긴 위대한 복음 - 빌레몬서 강해
이상웅 지음 / 솔로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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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12] 작은 서신에 담긴 위대한 복음

 

글쓴이 : 이상웅

발행처 : 솔로몬

발행일 : 초판 12018820/ 220181025

쪽수 : 179

 

(한 줄 평)

가장 짧은 성경, 빌레몬서 1장이 위대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읽기 전)

작년(2019) 성경 1독을 위해 열심히 성경을 읽다가 빌레몬서를 지날 때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후루룩 컵 라면 먹듯이 스쳐 지나가던 빌레몬서였지요. 그 내용이라는 것도 바울이 빌레몬의 노예였다 도망쳐 바울의 동역자가 된 오네시모를 잘 봐달라고 편지하는 게 다 아니던가요. 특별히 개인적으로 뭔가 와닿는 부분이 없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가던 장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작년 겨울은 달랐다. 달랐다는 건 뭔가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빌레몬서를 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다른 성경에 비하면 참으로 시시해 보이는 이 빌레몬서가 어떻게 성경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혹시 내가 모르는 위대한 비밀이 숨겨진 성경 아닐까? 빌레몬서를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책을 고르며)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빌레몬서가 제목으로 나오는 책을 검색해 훑어보았습니다. 빌레몬서가 한 장짜리 성경으로 분량이 많지 않아서인지 책은 대부분 다른 성경을 포함해 한 권의 책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빌레몬서만을 다룬 책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골로새서 빌레몬서’, ‘메인 아이디어로 푸는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스펄전 설교전집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해외 저자이든 국내 저자이든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계속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책 제목에는 빌레몬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유일하게 단독으로 빌레몬서만으로 강해가 이루어진 책이었습니다. 그것도 한국 목사님의 책. 더 이상 다른 책을 찾아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책 소개에서 저자인 이상웅 목사님은 빌레몬서 강해를 위해 전 세계에 나온 빌레몬서와 관련된 모든 주석집과 관련 서적을 공부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본 강해서의 토대가 된 것은 대구 산격제일교회에서 담임목회하던 시기였던 2010년 경 빌레몬서의 세계가 열리어 새벽 강단을 통해 10회에 걸쳐 강해를 하고 여름 수련회를 통해 다시 나누었던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빌레몬서를 일반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곽선희 목사님의 2002년 빌레몬서 강해 네 편을 오디오로 들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발단이 되어 빌레몬서에 대해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구하여 읽고 연구하고 설교 원고 형태로 준비하여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먼저 나누었습니다.” (서문에서)

 

단 한 장짜리 바울의 옥중서신, 다른 편지는 교회에 보내는 공적인 편지 형식인 반면, 빌레몬서는 동역자 빌레몬에게 보내는 개인서신이라는 점. 빌레몬서에 대한 궁금점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저자는 25절로 이루어진 빌레몬서를 한두 절, 또는 두세 절 또는 단 한 개의 절만으로 목차를 구성하여 총 10개의 목차로 강해를 하였습니다. 25절을 10회로 나누어 강해하였으니 얼마가 그 깊이가 깊은지 말로 이루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1장의 1절은 빌레몬서의 중요성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쓴 유일한 사적인 편지글입니다. 바울 신학자인 랄프 P. 마틴은 빌레몬서에 대해 바울의 인격을 알기 위해 열려진 창문이라고 평했습니다. 딕 루카스는 신약의 특별한 보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책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1절부터 시작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의 마지막 25절 인사까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바울의 신학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책 전반에 성령님의 특별한 동행이 함께 이루어졌음은 물론입니다.

 

마지막 25절은 유일한 바울의 개인서신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빌레몬서의 가정교회 전체에 읽혀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데 그것은 너희 심령이라는 복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은혜라는 일반화된 용어에 있어서도 저자는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바울신학과 신약성경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찰해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낮아지심으로 진흙 같은 우리 인생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 회복이라고 하는 창조의 목적 회복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166)

 

이 책은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동역자에게 그의 종이었던 오네시모,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났던 노예 오네시모, 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를 바울이 어떠한 심정으로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지, 종이 아니라 동역자로 대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어떻게 신학적으로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빌레몬서는 바울의 구원론, 교회론,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가 모두 들어있는 신약의 보배로운 성경이 됩니다. 빌레몬서를 읽으면서 그냥 지나쳤다면 이제 이 책을 읽고 다시 빌레몬서를 읽는 은혜를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십자가 때문에 일어나는 사랑의 관계 변화인 것입니다.” (157)

 

[선한 리뷰]

과거의 관계에 얽매이지 말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갑과 을, 주인과 종이 아니라, 모두 한자녀, 한형제이다.

작다고, 짧다고, 얇다고 깊이까지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바울의 편지를 받은 오네시모의 주인 빌레몬이라면,

내가 도망쳐 온 노예 오네시모를 만난 바울이라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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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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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11]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글쓴이 : 이영산

출판사 : 문학동네

발행일 : 초판120171031/ 1420181113

쪽수 : 385

 

(독자 카피)

만남은 삶을 바꾼다.

저자를 몽골에 자리잡게 한 진짜 오랑캐와의 만남 이야기.

 

(책을 읽고)

몽골에 꼭 가보고 싶다.

광활한 대륙을 바람을 가르며 말을 타고 달려보고 싶다.

몽골에 대한 나의 생각은 거의 환상에 가깝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지독하게 소외시켜 왔던 몽골.

몽골인 비지아를 만나 몽골에 푹 빠져버린 저자가 아예 몽골로 거처를 옮겼다. 저자는 몽골에 출판사를 차리고 몽골과 한국을 엮어주는 출판일을 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몽골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진짜 참 오랑캐의 진짜 마지막 지상의 후손이라고 밝히는 비지아를 몽골 가이드로 만난 것, 그것이 인생역전의 시작이었다.

 

거대한 중국과 유럽을 점령했던 징기스칸의 후예들.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은 우리나라 역사의 참혹한 암흑기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몽고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왕의 비굴한 패배와 수많은 고려인들의 포로, 매년 끌려간 수많은 여자들. 게다가 우리 신체에 남아있는 몽골반점까지. 지울 수 없는 몽골과의 인연은 자연스레 몽고에 대한 불편하고 부정적인 시선을 두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덥석 주문하였는데, 몽골 초원을 가르는 것처럼 시원하게 책을 읽고(저자의 몽골 이야기에 푹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나도 그만 몽골에 푹 빠져 버렸다.

 

소설보다 재미있고 여행기보다 생생하며 문화인류학보다 깊이 있다,는 책 뒷표지의 뻥같은 자기자랑이 결코 자랑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건 소설보다 더 재미있어!!

 

몽골인에 대한 편견은 책 17쪽부터 이어지는 세 가지 이야기에 그만 넋을 놓고 만다. 이는 저자가 몽골에 가서 느꼈던 그 충격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인데, 집 없이 떠돌아 다니는 유목생활의 몽골인의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큰지 책을 읽어보지 않고는 실감할 수 없다. 스포가 될까봐 좀 그렇지만 한 가지만 설명한다면 누군가 방문할 것을 대비해 양을 치러 멀리 집(게르 천막)을 떠니 비울 경우 게르 안에 손님이 오면 먹으라고 식사를 풍성하게 차려놓고 떠난다는 것.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받은 문화적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어렵사리 도착한 게르엔 그러나 사람이 없었다. 허망한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다.

괜찮아요.”

유목민 출신의 비지아가 입에 붙다시피 한 말을 던지곤 게르로 들어갔다.

언뜻 봐도 가난한 집이었다. 좁고 낮은 게르 안은 허리를 펴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그런데 게르 한가운데, 음식이 차려진 탁자가 보였다.

 

주인이 집을 비우게 되면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놓고 나가요. 유목민의 전통이죠.” (19)

 

웃음으로 세월을 이겨내는 민족, 저장하지 않고 몽땅 나누는 민족, 우리가 보기엔 오랑캐로 보이지만 그들은 늘 집 없이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에 공자 맹자가 필요 없었다. 그건 우리들이 정한 기준이고 잣대였다.

 

유목민들은 오천 년간 적으로 살아온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유교적인 눈으로 바라본 도덕과 가치, 도와 예, 군자지도를 초원에 이식한 적이 없다. 음풍농월 따위를 부러워한 적도 업속, 족보를 이고 다니지도 않는다. 공맹의 도를 따져 야만인을 선발한다면 몽골 유목민들은 오랑캐가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잣대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213)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인에게 몽골 가이드를 하는 전통 오랑캐 비지아의 이야기와 그를 바라보는 저자의 눈을 통해 전해지는 순박한 몽골 이야기.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지적 희열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나온다.

 

나무가 태어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삶과 죽음을 이어가듯, 몽골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고려, 조선, 중국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몽골인으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적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이웃이었는데, 이제라도 진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언젠가 꼭 몽골에 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 책, 대단하다.

 

[선한리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타인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무를 이해할 땐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체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고,

몽골인을 이해할 땐, 늘 움직이는 유목민임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해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당신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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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게 길을 묻다 -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존재의 발견 (10주년 컬러 개정판)
김용규 지음 / 비아북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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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10] 숲에게 길을 묻다

 

글쓴이 : 김용규 (여우숲 주인장)

출판사 : 비아북

추천사 : 구본형 (변화경영 사상가)

쪽수 : 279

발행일 : 초판 12009410/ 개정판 120191115

 

 

숲에 살며 숲에게 배운 지혜를 나누는 글.

읽다보면 숲처럼 삶에 대한 시선이 울창해지는 글.

 

 

숲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에 얼른 시선이 가리라.

나로 살고 이루고 죽는존재의 발견.

 

숲에게 길을 묻다니. 자연과 철학과의 만남은 읽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대나무 숲 서걱이는 바람처럼 쏴아아 소리내며 갈증이 사라집니다.

 

이 책은 2009년에 초판으로 발행된 책인데 작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발행되었습니다. 직선으로 표현된 나무의 모습과, 곡선으로 표현된 삶의 연결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표지로 읽혀졌습니다.

 

저자는 벤처기업 CEO를 하다 홀연히 괴산 숲으로 들어가 월든처럼 오두막을 짓고 숲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구본형 선생님의 추천사가 책에 실려 있으니 책이 더 단단하고 울창한 느낌이 듭니다.

 

저자는 월든처럼 오두막에서 살되 그저 1년 살아보고 다시 문명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계속 숲에서 숲과 함께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월든보다 더 숲과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은 그 삶의 결정체다. 그가 숲에서 살며 숲과 이야기하고 숲에게 배운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는 숲처럼 느립니다. 삶에 대한 통찰이 신선한 공기처럼 꽉 차 있고 삶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햇살처럼 나무 잎사귀를 뚫고 내려와 우리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도토리라는 한 알의 씨앗 속에 참나무의 수백 년 삶이 이미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원형질 알갱이 속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씨앗은 오로지 그 작은 알갱이에 담긴 양분만으로 땅을 뚫고, 뿌리를 뻗고, 잎을 만들어냈습니다. 수백 년의 삶을 시작할 최초의 미미한 움직임이 이미 그 자신 안에 모두 있었던 것입니다.” (028)

 

이 책은 뭐라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네이버는 장르를 지정하지 않았으며, 예스24는 자기계발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반디앤루니스는 인문학으로 분류했으며, 알라딘은 경제경영과 자기계발로 분류했습니다. 그렇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나 자연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책 속에 자연에 관한 이야기의 밀도가 옅다고 느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읽어보면 압니다. 이 책은 숲 그 자체의 본연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숲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도토리에서부터 연어, 철새, 개미, 버섯, 세균, 미생물까지 숲을 이루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가 도토리 알갱이처럼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책은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막은 숲의 탄생. 2막은 숲의 성장. 3막은 숲의 자아. 4막은 숲의 죽음. 저자는 이렇게 순환하며 흘러가는 숲의 탄생부터 죽음을 통해 우리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숲의 일생을 통해 사람의 일생을 반추합니다. 태어나는 것이 무엇이고, 성장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나로서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죽어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태어난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나무가 어떻게 햇빛을 받아들이고, 나뭇가지를 버리고, 몸을 비틀며 삶을 이어가고, 자녀에게 삶을 이어주는지 저자는 숲을 보며 그들의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동물과는 달리 단 한 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는 태어난 자리, 그리고 주변 생명체와의 관계가 숙명이 됩니다. 타자를 향해 총을 쏠 수도, 칼을 휘두를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것이 나무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온전히 서 있는 채로, 태어난 자리의 환경 및 주변과의 관계를 극복해야 하는 생명체입니다.” (041)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국가를, 성별을, 유전적 특징을 스스로 결정하고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조물주가 그 생명에게 부여한 자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이 조물주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부여한 본래의 명, 숙명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우리 역시 나무처럼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숙명을 안고 태어난 존재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처지가, 탄생의 불가역성이 가혹하고 억울하다고 분노했다고, 분노를 안고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숲을 만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를 깨닫게 해준 것은 숲이었습니다. 그의 분노를 사랑과 감사로 바꾸어 준 건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숲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에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고, 흐르지 않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숲을 보며 우리가 평생 사막의 방식으로 일하고 다투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꽃들은 벌과 나비를 만나기 힘들다고 두렵다고 스스로 시들지 않습니다. 햇빛은 모든 생명체에게 구원의 빛입니다. 식물들이 광합성에 사용하는 태양에너지는 0.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햇빛 없이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을 향해 키를 키워냅니다.

 

오늘도 그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을 향해 키를 키워내는 이유는 대부분 거기에 있습니다.” (073)

 

이 세상에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유인력은 현재까지 변함없는 불변의 진리이며 이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중력을 거스르는 생명체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것들은 모두 중력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그 거스름의 크기는 바로 빛이고 꿈입니다.

 

책을 읽으며 중력을 거스른다는 표현이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릅니다. , 중력을 거스를 수 있구나. 우리는 그런 존재구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위대하지만, 만유인력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도 위대하다고 말입니다.

 

나무와 들풀은 오로지 자신을 꽃피우려는 꿈, 그래서 어떻게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증명하려 합니다. 나무는 숲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들풀은 제 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꿈도 그렇게 나무를 닮아서, 들풀을 닮아서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로지 자기다움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생명체에게 꿈이란 하늘 한 자락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079)

 

 

[선한리뷰]

자신의 꿈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로 커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비와 벌이 오지 않는다고, 그런 세상이 두렵다고 스스로 시드는 꽃이 없듯이,

우리도 세상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숲, 햇빛 한 자락 마음껏 마시는 나무와 들풀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숲입니다.

이미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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