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숲에게 길을 묻다 - ‘나고 살고 이루고 죽는’ 존재의 발견 (10주년 컬러 개정판)
김용규 지음 / 비아북 / 2019년 11월
평점 :
#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10] 숲에게 길을 묻다
글쓴이 : 김용규 (여우숲 주인장)
출판사 : 비아북
추천사 : 구본형 (변화경영 사상가)
쪽수 : 279
발행일 : 초판 1쇄 2009년 4월10일 / 개정판 1쇄 2019년 11월15일
숲에 살며 숲에게 배운 지혜를 나누는 글.
읽다보면 숲처럼 삶에 대한 시선이 울창해지는 글.
숲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에 얼른 시선이 가리라.
‘나로 살고 이루고 죽는’ 존재의 발견.
숲에게 길을 묻다니. 자연과 철학과의 만남은 읽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대나무 숲 서걱이는 바람처럼 쏴아아 소리내며 갈증이 사라집니다.
이 책은 2009년에 초판으로 발행된 책인데 작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발행되었습니다. 직선으로 표현된 나무의 모습과, 곡선으로 표현된 삶의 연결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표지로 읽혀졌습니다.
저자는 벤처기업 CEO를 하다 홀연히 괴산 숲으로 들어가 월든처럼 오두막을 짓고 숲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제는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과 함께 공부를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구본형 선생님의 추천사가 책에 실려 있으니 책이 더 단단하고 울창한 느낌이 듭니다.
저자는 월든처럼 오두막에서 살되 그저 1년 살아보고 다시 문명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계속 숲에서 숲과 함께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월든보다 더 숲과 자연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은 그 삶의 결정체다. 그가 숲에서 살며 숲과 이야기하고 숲에게 배운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는 숲처럼 느립니다. 삶에 대한 통찰이 신선한 공기처럼 꽉 차 있고 삶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햇살처럼 나무 잎사귀를 뚫고 내려와 우리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도토리라는 한 알의 씨앗 속에 참나무의 수백 년 삶이 이미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작은 원형질 알갱이 속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씨앗은 오로지 그 작은 알갱이에 담긴 양분만으로 땅을 뚫고, 뿌리를 뻗고, 잎을 만들어냈습니다. 수백 년의 삶을 시작할 최초의 미미한 움직임이 이미 그 자신 안에 모두 있었던 것입니다.” (028)
이 책은 뭐라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네이버는 장르를 지정하지 않았으며, 예스24는 자기계발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교보문고와 반디앤루니스는 인문학으로 분류했으며, 알라딘은 경제경영과 자기계발로 분류했습니다. 그렇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나 자연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책 속에 자연에 관한 이야기의 밀도가 옅다고 느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읽어보면 압니다. 이 책은 숲 그 자체의 본연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숲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도토리에서부터 연어, 철새, 개미, 버섯, 세균, 미생물까지 숲을 이루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가 도토리 알갱이처럼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책은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막은 숲의 탄생. 2막은 숲의 성장. 3막은 숲의 자아. 4막은 숲의 죽음. 저자는 이렇게 순환하며 흘러가는 숲의 탄생부터 죽음을 통해 우리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숲의 일생을 통해 사람의 일생을 반추합니다. 태어나는 것이 무엇이고, 성장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나로서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죽어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태어난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나무가 어떻게 햇빛을 받아들이고, 나뭇가지를 버리고, 몸을 비틀며 삶을 이어가고, 자녀에게 삶을 이어주는지 저자는 숲을 보며 그들의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동물과는 달리 단 한 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는 태어난 자리, 그리고 주변 생명체와의 관계가 숙명이 됩니다. 타자를 향해 총을 쏠 수도, 칼을 휘두를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것이 나무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온전히 서 있는 채로, 태어난 자리의 환경 및 주변과의 관계를 극복해야 하는 생명체입니다.” (041)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국가를, 성별을, 유전적 특징을 스스로 결정하고 태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조물주가 그 생명에게 부여한 자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이 조물주가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부여한 본래의 명, 숙명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우리 역시 나무처럼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숙명을 안고 태어난 존재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처지가, 탄생의 불가역성이 가혹하고 억울하다고 분노했다고, 분노를 안고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숲을 만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를 깨닫게 해준 것은 숲이었습니다. 그의 분노를 사랑과 감사로 바꾸어 준 건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숲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에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고, 흐르지 않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숲을 보며 우리가 평생 사막의 방식으로 일하고 다투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꽃들은 벌과 나비를 만나기 힘들다고 두렵다고 스스로 시들지 않습니다. 햇빛은 모든 생명체에게 구원의 빛입니다. 식물들이 광합성에 사용하는 태양에너지는 0.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햇빛 없이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을 향해 키를 키워냅니다.
“오늘도 그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을 향해 키를 키워내는 이유는 대부분 거기에 있습니다.” (073)
이 세상에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유인력은 현재까지 변함없는 불변의 진리이며 이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중력을 거스르는 생명체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것들은 모두 중력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그 거스름의 크기는 바로 빛이고 꿈입니다.
책을 읽으며 ‘중력을 거스른다’는 표현이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아, 중력을 거스를 수 있구나. 우리는 그런 존재구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위대하지만, 만유인력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도 위대하다고 말입니다.
“나무와 들풀은 오로지 자신을 꽃피우려는 꿈, 그래서 어떻게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를 증명하려 합니다. 나무는 숲을 지배하려는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들풀은 제 자리가 아닌 곳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꿈도 그렇게 나무를 닮아서, 들풀을 닮아서 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로지 자기다움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생명체에게 꿈이란 하늘 한 자락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임을 우리 모두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079)
[선한리뷰]
자신의 꿈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로 커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비와 벌이 오지 않는다고, 그런 세상이 두렵다고 스스로 시드는 꽃이 없듯이,
우리도 세상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숲, 햇빛 한 자락 마음껏 마시는 나무와 들풀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숲입니다.
이미 숲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