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파도를 분별하라]
한줄평 : 생성형 오픈AI를 신학적 관점으로 균형있게 잘 분석하고 비평한 책
챗GPT의 열풍이 거세다. 몇 년 전 회사에 있을 때 챗GPT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표는 기업 CEO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챗GPT를 아침 회의 시간에 소개하면서 자신은 그것으로 영어 회화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영어 원어민과 대화하는 것처럼 대화가 가능하다면서 직원들에게도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그러다 정부 과제 제안서를 작성할 때 챗GPT의 도움을 받아 기존에는 하루 종일 걸리던 것을 30분 만에 완성했다며 다시 한번 챗GPT의 사용을 독려했다.
하지만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다. 당시 무료버전은 2년 전 자료까지만 기계학습한 상태여서 최신 자료를 사용해야 하는 나로서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고, 몇 번 질문을 해 본 결과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 그렇게 어물쩍하다 나는 퇴사가 아닌 퇴직을 했고 챗GPT와는 담을 쌓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 8개월만에 다시 취직을 하게 되어 내가 근무하게 될 회사의 대표와 면접을 하게 되었다. 그때 챗GPT의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내가 거친 세상의 경쟁에서 잠시 물러나 있는 동안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상태였다. 이제는 업무에서 인공지능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업무의 속도와 질이 달라지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 모 출판사의 <AI혁신>이라는 책 서평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성형 AI의 모든 것을 매뉴얼처럼 알려주는 책이었고, 곧 취직하여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단비와 같은 책이었다. 나는 어떤 필터링 없이 순수하게 인공지능의 사용에만 열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해서 내 업무를 좀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다.
그러다 이번에 익투스에서 펴낸 네 명의 신학자들이 각 분야별로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룬 <AI의 파도를 분별하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 내가 인공지능의 유용성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그것의 신학적 관점,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입장에서 무한히 증식하듯 성장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은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AI의 파도를 분별하라>는 책은 기존에 매뉴얼처럼 읽었던 <AI 혁신>에 비해 크기나 분량 면에서 반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처럼 만만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그것은 나의 교만이요 오만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총신대 교수님 네 명이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AI를 바라보는 신학적 접근은 내가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나라 교육부는 2024년까지 인공지능 교과서를 개발하고 2025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25년에는 수학, 과학, 정보, 특수 국어 교과부터 도입한 후 점차적으로 다른 교과목도 도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제 아이들도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공부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24)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나라 교육도 202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이제 세상은 인공지능을 잘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으로 양분되는, 디지털 빈부격차가 아닌 인공지능 격차가 발생하는 세상이 될 것이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자라날 때부터 인공지능과 함께 자라고 공부하겠구나. 생각하니 뭔가 착잡하면서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김수한 기독교교육학 교수가 설명하는 <인공지능의 개념과 발전 현황>은 인공지능에 대한 깊이가 있었고 매우 실제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인공지능을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었다. 특히 인공지능은 영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같을 수 없다는 지적은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근래의 염려를 상당 부분 해소시켜주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적용된 분야보다 적용되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고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까요? 인공지능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25)
인공지능은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는 진정한 의미의 인식과 감정을 갖지 못합니다. 특히 크리스천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영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사람과 인공지능에 차이가 있습니다. 나아가 인공지능은 스스로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 인공지능은 내적 의지가 아닌 외부의 자극(프로그래밍, 센서의 감지)에 의해 지각과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과 인공지능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27)
기독교인인 우리 삶의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가'입니다. 개신교 장로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 모든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아무리 성공확률이 높은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멀지 않은 시기인 2036년이 되면 우리가 양육하는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세상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45)
저자는 인공지능이 센서의 감지에 의해 지각과 행위가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과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지난 해 정부과제(첨단로봇)을 6개월 동안 수행하면서 느낀 것은 센서의 감지 수준이 거의 사람에 근접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다른 점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은 오감의 부족이다.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에 대한 기술이 인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시각은 상당 부분 능력이 개발되어 딥러닝을 통해 사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후각 역시 로봇코의 개발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지 결코 이르지 못할 단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더 큰 염려는 여기서 다루는 인공지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줄기세포를 이용한 복제인간이 나타나고 여기에 인공지능이 탑재될 경우, 영성의 문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복잡한 양상을 띌 것이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지르는 시대를 '특이점'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자신의 책이나 인터뷰에서 특이점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2035~2045년 사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특이점이 오면 사람이 무언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35)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즈와일의 말처럼 기술이 인간을 추월하는 시점이 곧 닥친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우리 자녀 세대에 대한 암울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기계와 경쟁을 하는 세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와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람보다 더 똑똑한 기계가 앉아있는 시대를 그리다보면 참으로 우울해진다.
책에서도 여러 교수님이 언급했지만 튜링테스트가 있다. 인간과 대화해서 인간이 대화하는 상대방이 로봇임을 인지하지 못할 때 기술이 사람을 능가하는 때라고 한다. 수많은 의학자료를 딥러닝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과 수십 년 사람을 직접 진료한 의사 중에서 당신은 누구에게 자녀의 병 진단을 맡길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로봇 왓슨을 지목했다는 신문기사는 그저 웃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사람보다 로봇을 더 믿는 시대가 되었다.
정말 로봇, 인공지능이 설교하는 시대가 올까? 사람보다 더 성경을 잘 해석하고 설교도 더 잘하는 인공지능 로봇 시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도 챗GPT에 대한 열풍이 일어나고 있고 교회나 노회, 총회의 각종 모임이나 세미나에서 챗GPT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필수 능력이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계에서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 활용 방안에 대해서 신학적, 성경적, 교육적으로 조망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53)
2장에서 신국원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의 영적 분별력>이라는 제목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분별력으로 'Yes, But' 원칙을 따를 것을 제안하였다. 컴퓨터,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한 선물임을 지각하고 이를 수용하되 '그러나' 무엇을 위해, 왜, 얼마나,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기술도 과도하게 빠져들면 중독을 초래하고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뎃와일러는 오늘날 "기술은 세상이 더 빠르고 더 스마트하며 더 효율적으로 발전한다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는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91)
저자는 기술 진보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면 그것은 일종의 종교가 된 것이라며 인공지능의 우상화를 우려했다. 8개월만의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으로 진출한 나는 날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업무를 수행한다. 챗GPT가 없었으면 이 일들을 어떻게다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어떤 질문을 어떻게 잘 던지느냐에 따라 업무의 질이 달라진다.
그러나 신국원 교수는 분명하게 말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 당연히 인간처럼 독립적인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 역시 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지능도 인간의 것을 따라하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다중지능' 중에서 극히 일부를 구현할 뿐입니다. 인공지능은 자의식도 없습니다. 당연히 독립적인 의지와 감정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양심도 없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은 더더욱 질 수 없습니다. 시와 그림을 생성해내고 번역도 척척 해내지만 창작의 고뇌나 즐거움은 느끼지 못합니다. 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98)
나 역시 지금까지 많은 그림을 챗GPT를 통해 생성해내며 내 글의 수준을 좀더 있어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할 수 없는 것을 인공지능을 1분도 걸리지 않아 완성시켜 준다. 인공지능은 고민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자유의자가 있으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창조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인격적인 피조물입니다. 인격적 존재인 인간은 응답하고 책임을 지는 존재입니다. (103)
인공지능과 같이 강력한 기술을 반성 없이 따라잡기에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의 활용은 영적 분별력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술적 판단이 기준이 되거나 기술이 가진 매력 때문에 사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기술과 장비가 아닙니다. (115)
거의 날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다 보면 내 인생의 주인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주인이 되고 내가 그 하수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 개념이 무너질 때 우리는 또 다른 우상숭배의 영역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저자가 성경을 통해 통찰한 부분, 기술 발전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다.
성경은 가인, 라멕, 바벨탑, 느부갓네살의 경우처럼 인간이 기술 발전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것을 경고합니다. (121)
기술에 대한 우상숭배를 끊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선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만을 삶의 토대로 절대시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그대신 공동의 삶과 모든 구성원을 돌보는 방안을 제시하는 진정한 '예언자적 시각을 발전'시킬 때 문화 회복의 길이 열립니다. (131)
3장에서는 김희석 교수가 <성경해석과 설교를 위한 AI의 유용성>에 대해서 다양한 설명과 위험을 이야기한다. 내가 설교자가 아니어서 이 부분을 깊이 있게 읽지는 않았지만, 실제 챗GPT를 통한 사례가 없이 이론적인 접근으로만 서술되어 있는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저자는 구약 본문에 대하여 다양한 주석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답이 있는 게 아닌데 반해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종합하여 하나의 답변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을 설교에 활용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주석 혹은 주해 작업 곧 '구약 당시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기계적인 논리의 종합 이상의 개입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즉 독자가 가진 인격적 관점과 본문을 꿰뚫어 보는 종합 능력 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AI가 이런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해석을 인간 주석가가 시도한 해석의 수준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AI를 한 인격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158)
이런 부분에서도 실제 AI를 통해 비교해주면서 설명했다면 좀더 분명하게 인공지능과의 차이점을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내가 한번 챗GPT를 통해 기독교 교리에 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Q.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위격을 갖는 존재인가?
A. ChatGPT
기독교 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위격을 가진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로 설명되며, 삼위일체는 성부 하나님(아버지), 성자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세 위격(Person)을 갖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신약 성경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됩니다. 이는 그분이 신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동일한 위격: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성자)가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동시에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신 분으로 설명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하나의 하나님이지만, 각기 독립적인 인격적 존재로 구별됩니다.
초기 기독교 공의회, 특히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이 교리가 명확히 정의되었으며, 이는 기독교 주요 교파들이 공유하는 신앙의 핵심 요소입니다.
인공지능은 자신의 의견이나 특정 주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그것을 가지고 답변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좀더 질문을 깊게 들어가 진화론과 창조론, 그리고 그에 대한 인공지능을 의견을 물었을 때 인공지능은 분명하게 진화론이 더 합리적인 이론이라고 답변을 내놓았다.
4장에서는 함영주 교수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인공지능을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교육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로봇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문화명령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로봇이 인간의 보편적 윤리에 반하여 행동하거나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거스르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입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거나 로봇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과학주의적인 신념을 가지고 로봇을 활용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로봇을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 문제를 해결하는 도움의 수단으로 삼아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문화명령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보조재로 삼아야 합니다. (185)
저자는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들이 이를 자유롭게 잘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는 보조적인 작업으로서의 활용이지 언제나 모든 지식의 최상위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다음 세대들을 위해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스마트 기기, 어플리케이션, 미디어 편집 프로그램 등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204)
성경은 모든 지식보다 우월하며 그 지식을 해석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최고의 권위를 가지며 모든 것의 최종적 판단 기준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높은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그 가공된 지식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정보의 옳고 그름은 성경을 통해 판단받아야 합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정보들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기독교교육 교사는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를 맹신해서는 안 되며 학생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오직 성경만이 최고의 진리이며 모든 지식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220)
마지막에 네 명의 저자와 대담하는 부분으 부록으로 실려 있었는데, 매우 현실적이고 유익한 부분이었다.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이 글을 집필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하는 부분들이 잘 언급되어 있어 참 좋았다. 특히 다음세대 아이들을 위한 인식은 우리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내용이다.
특별히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라고 부르는 다음 세대 아이들은 디지털,AI 네이티브인데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부모는 사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라 디지털 이미그런트(이주민)입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거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인공지능을 기독교교육에서 활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236)
인공지능도 문화의 한 부분이므로 창조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되 돌보고 가꾸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문화 명령은 다스림과 돌봄과 가꿈이 같이 가야 하는데, 현재 개발자들은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인문학자나 신학자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여 가꾸고 돌보는 쪽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50)
인공지능으로 더 많이 편리해지고 좋아졌지만, 그만큼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신 선물로 판단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의 말씀에 기반하여 잘 활용하느냐, 아니면 바벨탑을 쌓아가던 그때처럼 하나님을 이기려는 마음으로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느냐는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인공지능이 세상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꾸고 있는 이 때 정말 신학적인 관점에서 이를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책을 펴낸 익투스 출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할 때마다 이 책에서 읽은 하나님의 관점을 잘 적용하여 내가 기술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성품으로 빚어진 자녀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