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믈, 동물, 자연, 환경에 관심이 많아 뒤늦게 관련 도서를 읽으며 지적 유희를 즐기고 있다. 이번에는 바다다. 그것도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그 어떤 바다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로 가득한.
빌 프랑수아의 <바다의 천재들>은 나름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의 바닷속 자연에 대한 지식을 모두 허물어뜨렸다. 단 하나, 심해 깊은 곳의 열수분출공에 사는 생물 이야기는 이미 다른 책에서 알고 있던 정보였는데 여기에도 소개되고 있어서 반가웠다.
문어의 자연스런 마술적 변모 이야기도 일반인에게 많이 공개되어 교양 과학에 속한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여기 <바다의 천재들>에서 색깔 부분에 소개되는 것만큼 다양하고 자세하며 신비스럽게 표현한 책은 없었다. 단순히 문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인데, 문어는 그 중 하나의 예에 불과한 것이었다.
저자는 바닷속 생물의 삶을 총 9개의 주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헤엄, 수중 환경, 경계면, 에너지, 빛의 존재, 온갖 종류의 색, 지각, 건축가, 불굴의 생명.
모든 주제가 다 신선하고 놀라웠지만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바다와 공기의 경계면에 사는 수표동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불사조처럼 계속 젊어져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생존할 수 있는 해양 생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가장 먼저, '물'이라는 물질에 대해 물고기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설명한다.
작은 물고기의 관점에서 볼 때 물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유체가 아니라,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분자들의 집단이고, 그것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작은 물고기일수록 '공'들을 밀어내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나아가는 속도가 느려진다. 게다가 알에서 막 나와 몸길이가 수 밀리미터에 불과한 물고기에게 물은 점성이 매우 높은 물질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물고기라면 마치 끈적끈적한 꿀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25)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우리가 공기 속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자유롭고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끈적끈적한 꿀 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 들 정도의 점성을 느낀다니. 나는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을 단단히 붙들고 이 책을 읽어야겠구나.
저자는 처음부터 나에게 감성을 요구하며 물고기의 독립성을 안타깝게 바라보도록 한다. 물고기는 알로 태어나는데 대부분 부모 없이 홀로 생존해야 한다. 그 고독함, 그 두려움, 그 외로움, 그 떨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갑자기 아득해졌다.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위대하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물고기 알은 물속 깊은 곳에서 산란되어 물결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며 이동한다. ... 깊은 바닷속에서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채 태어난 새끼 물고기들은 장차 자신이 살아갈 서식지를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 길을 알려주는 선천적 지식이 새끼 물고기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29)
특히 해표면에서 살아가는 수표동물의 이야기는 내 관심을 크게 끌었다. 물 위를 걷는 생물로는 소금쟁이가 있고 표면장력을 이용해 물 위를 걷는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 바다 소금쟁이는 물론이고, 날치가 해수면을 뚫고, 표면장력을 뚫고 날아가는 그 힘의 법칙이나, 날치보다 8배나 더 빠르게 날아가는 빨강오징어, 그리고 하늘에서 물속으로 먹이를 잡으러 중력의 23배에 이르는 충격을 머리에 받으면서 뛰어드는 북방가넷 새 이야기는 실로 놀라웠다.
풍선 표면처럼 늘 팽팽한 바다 표면은 지구에서 가장 큰 생태계이자 가장 덜 알려진 생태계 중 하나이다. (89)
위대한 항해가가 아니더라도, 공기와 바다의 경계면이 특별한 환경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데, 해수면은 항상 움직이고 거의 항상 밝은 햇빛이 내리쬔다. 이곳 동물들은 두 세계 사이의 경계면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이들은 극단적인 법칙과 힘의 지배를 받는데, 그 법칙과 힘은 우리처럼 한 번에 한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경험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91)
날치는 바닷속에서 해수면을 뚫고 공기 중으로 나가 공중으로 날아가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날치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아직 덜 자란 날치 새끼라면 그것은 온몸을 부딪쳐 벽을 깨는 것처럼 힘든 일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