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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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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여성의 인권은 백년 전에 비해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중동 어느 나라에서 여전히 여자들이 이혼을 했다는 이유로 친형제에게 맞아 죽는 일이 벌어질 때, 동유럽을 여행하는 여학생들이 납치되어 인신매매를 당할 때, 대한민국에 소라넷이라는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때. 페미니즘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는 여전히 암흑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역사를 들춰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암흑보다 더 짙은 어둠을 발견한다.

   '그들'은 1937년부터 시작한다. 모린의 어머니 로레타가 열여섯이던 시절. 디트로이트 외곽의 빈민가에서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삶 속에서도 낙관적인 미래를 꿈꾸는 한 소녀에게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채 50페이지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미래는 부서져 내린다. 로레타는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돈을 가지지도 않았다. 기분이 상하면 옆에 끼고 걷던 여자의 얼굴을 칼로 아무렇지 않게 그어버리는 남자들이 활보하는 동네에서 그 사실은 그녀를 더없이 약하게 한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위해 거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남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로레타는 몸을 주고 결혼을 한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이야기는 세대를 건너 그녀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모린과 줄스. 그들의 삶이라고 더 나을 이유가 없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 모린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를 악물고 발버둥친다.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위해, 깨끗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이상 남자들의 손에 모든 걸 잃는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그녀의 부단한 노력은 종종 벽에 부딪히고, 가족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모린은 벗어나는 데에 성공한다. 그리고 작가를 통해 세상에 이 이야기를 전한다. 너무 멀지 않은 과거에 실재했던 어느 끔찍한 이야기를. 실제 이 세상에 살았던, 혹은 아직도 살아있을 개인들이 살아낸 역사를. 그 이야기는 무섭도록 생생해서 어떤 악의에 찬 범죄소설보다도 진득하게 기억에 달라붙는다. 이건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끝끝내 모린을 찾아낸 줄스가 현관에 서서 묻는다. '그들'을 떨쳐내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모린의 악착같은 노력을 비웃듯이. 결국 너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너의 인생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비웃는다. 그 질문에 대해 모린은 입을 다문다. 여동생의 아픈 과거를 들쑤시며 마지막 상처를 남긴 오빠 줄스는 영원히 떠나 그녀를 자유롭게 하지만, 아마 모린에게 지울 수 있는 기억은 없었을 것이다. 먼 훗날 야간학교에서 만난 오츠에게 털어놓게 될 만큼, 그 이야기들은 그녀 안에 똬리를 틀고 지키며 언제나 머물렀을 것이다.

   그녀는 줄스의 말처럼 '그들' 중 하나였을까? 그런데 '그들'이 대체 누구일까? 모린의 어머니, 외삼촌, 베티, 줄스. 그들을 '그들'로 만드는 게 무엇이기에? 1967년의 폭동, 디트로이트. 그 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는 중요한 무언가를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언제나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서로 닮은 사람들이었다는걸.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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