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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전 이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로맨스'의 주인공은 충선왕. 원이 아닌... 린과 산. 그 둘이라고 했다.
(로맨스에선 사랑이 이루어지는 사람이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책에 끌린 이유는
충선왕의 이야기였기 때문이고,
출판사에서도 광고?를 통해서 충선왕의 이야기를 가장 크게 어필했기 때문에
허구의 인물인 린과 산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그닥 거슬릴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충선왕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나에겐 어쩔수 없는 일이었을까?
주인공들의 사랑에 더 집중해야만 하는 나는 (결국 로맨스를 읽고 있었으니까...)
충선왕인 원에게 더 집중하고 말았다.
덕분에 책을 읽기가 영 수월치 않았다.
1권을 읽는데 무려 삼일이 걸렸다.
간신히 간신히 악착같이 책을 읽어낸 결과가 삼일라니....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었다.
책이 재미가 없느냐? 그것도 아니였다.
책이 지루했었나? 그것도 아니였다.
초보작가의 첫 작품치고는 굉장히 잘 씌인 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글을 읽기가 힘들었던 것은
내 마음에서 도대체 그들을 받아들일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삐딱해져 버린 마음은, 내내 그들을 밀어내고 글에 집중할수 없게 만들었다.
내 마음은 원을 응원하고 있는데... 그의 눈이 보이지 않는곳에서 린과 산은 더운 가슴을 나눈다.
원이 배신감과 질투로 미쳐가고 있을때도.... 린과 산은 그들의 미래를 꿈꾸고 그를 버리려 했다.
끝까지 고고하기를 원했던 그들. 지나치게 올곧고 정의롭기만을 바랬던 그들.
그 앞에서 조금의 더러움도 치욕스러웠을 원.
그래서 더 미쳐가고 독해지고 교활해진, 그런 자신을 굽힐수 없었을 원.
마음이 아프다.
그들의 올곧음이 밉다. 너무너무 밉다.
어느순간에도 혼자였을 원이 너무 아프다.
왕은
왕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수 있지만,
또한 아무것도 할수 없다.
진정 자기가 원하는 것조차 손에 넣을수 없다.
원이 단을 버리고 산을 선택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산은 좋으나 싫으나 왕의 선택을 가타부타 바꿀수 없는 입장이었을 테고
이미 내려진 왕명은 번복될수 없었을 테니까.
또한 린이 절대.... 마음을 내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왕은
언제나 나 자신만을 생각할수 없다.
원의 행보가 곧 고려의 행보이고
원의 선택이 곧 백성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원은
사랑하고 번민하고 질투로 정신이 죽어가면서도 왕이기 때문에 사랑마저 자유로울수 없었다.
반면
린과 산은
아무리 왕을 사랑하였어도,
아무리 왕을 아끼고, 충성하였어도
그들은 자유로웠다.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끝까지 밀고 나갈수 있었고,
그래서 원을 책망하고, 등돌릴수 있었으며
사랑 하나에 모든걸 맡기고 자유로이 날아갈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밉고 싫다.
원은 린과 산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역할을 자청했지만....
그 마음의 한 가닥까지 남김없이 이해가 되고 마니.... 어느 누가 원을 나쁘다 할수 있을까?
린과 산 중 누군가가 반대의 입장이었다고 해도.....그들이 원과 달랐을까?
셋이 가지는 그 끈끈한 우정이 사랑으로 인해 조각나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야만 했던 그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원이 되어서 함께 미쳐가고 아파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아........이것은 온전한 원의 이야기 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의 이야기 인지...린의 이야기 인지...산의 이야기 인지....내내 햇갈리고 갈피를 못잡게 하더니....
책은 끄트머리에 가서야 정체를 드러냈다.
주인공은.
원 이었다.
이것은 오롯이 원의 이야기였다.
가질수 없었던 , 잡을수 없을던 , 그래서 더 영원할수밖에 없었던.... 그의 사랑 이야기.
작가는
실존 인물을 가지고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역사를 크게~ 왜곡시키는 전혀 다른 엔딩은 말들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상의 인물인 린과 산이 등장하고
그들과 어울려 원의 이야기를 펼쳐놓을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원의 이야기는 뻔하다.
이미 역사 기록에 남아 있으니까.
그의 생각이나 감정들은 읽어낼수 없겠지만, 그의 행보나 그의 인적사항은 이미 정해져 있는것이다.
내가 아무리 빌고 빌어도 ..... 그의 사랑은 마주볼수 없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책을 덮고나니
이제서야 포기가 된다. 에휴.
그동안 왕이 나오는 로맨스에서
왕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모든것을 알고 있고 모든것을 내다보는.....절대 군주.
물론....조금씩은 다르다고 하여도 주인공으로 그려진 왕은 늘 그랬다.
현명하고 어질고 바르고.... 사랑마저도 이루어내고 마는.
혹시 왕은 사랑한다 에서 그런 절대군주를 찾는다면
그만 책을 접으라고 하고 싶다.
그건 어쩌면 현실속에선 존재할수 없는 우리들의 판타지 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선 너무 현실적인 고려의 왕..! 충선왕이 주인공 이니까.
책을 읽는 내내
원이 안타까워서 나는 마음이 아프고, 또 아팠다.
린과 산이 죽도록 미웠다.
차라리 그누구의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기를 빌기까지 했다.
늘 올곧고 바르기만 한것 같은 그들에게 묻고싶다.
너에게 왕의 자리가 놓였다면 너희들은 그렇게 올바르기만 한 정치를 할수 있었겠냐고.
세상이 정말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다고 믿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