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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최양윤 지음 / 청어람 / 2014년 9월
평점 :
대체로 자주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기호나 취향 같은 것이 존재한다.
글을 읽을때도 집중하는 부분이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도 제각각인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문체나 글 전체의 분위기에 홀릭해 책을 읽는 편인데 ..... 자각을 읽으면서 그동안 자각하지 못했던 또 한 부분을 발견했다.
문장의 매끄러움에 몹시 집착하는 여자 였다. 나는.
자각을 읽는 동안 내내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문장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글 자체는 술술 읽고 금방 덮을수 있는 책이었는데 같은 문장의 시작과 끝이 다른 말을 하거나 미묘하게 어긋난 문장들의 이음새에 당황했다.
글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듣는거다.
내가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 먹는 사람이었나 ... 당황스러움이 마구마구 몰아쳤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라는 글이 바로 전 문장에 버젓이 존재하는데 뒷편에서는 '그곳에 가서 쇼핑을 하고 있다' 던지 하는 식으로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고,결국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라는 물음표만 동동.
슬렁슬렁 대강 읽었다면 아마 모른체 그냥 넘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너무 열심히 읽은 내가 문제인걸까?
글은 그녀의 시선으로 진행 되어진다.
그렇다고 정확한 1인칭 시점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애매한 포인트가 여러곳에 등장하니까.
대체로 1인칭에 가까운 시점으로 글이 진행되는 덕분에 주인공인 여주의 생각들을 구구절절히 전해 들어야 했다.
정리되지 않는 그녀의 감정들은 널을 뛰듯 수시로 변해대고 너저분하게 널려진 생각들 속에서 나는 어떤것에도 동감 할수가 없었다. 그저 지쳐갈뿐.
그녀의 생각들은
착각과 오해와 지레짐작뿐이다.
혼자만의 생각들로 같은 장면을 봐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매번 자기방어에 급급해 '진실'은 궁금해하지 않고 자신의 속단만을 믿어버린다.
짝사랑에 빠진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가장 친한 친구의 연인이 되어버린 상황에 .... 겉으론 쿨한척 하지만 속에선 질투와 자기비하에 빠져서 허우적 댄다.
남주가 어떤 행동을 해도 오로지 사랑에 눈먼 남자로 포장되어져 버리고, 계속 오해와 오해를 거듭한다.
오로지 자신의 세상에만 갇혀 사는 여자.
글 중간 중간에 공주님이라고 바르르 하다가 또 공주님인걸 인정했다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공주님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그냥 공주님인 여자.
그녀는 남들만 속단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속단하는 여자였다.
내내 덤덤한척 건조함을 유지하는 문장덕분에 그나마 그여자가 진상으로 보여지지 않았을뿐이지
사실 무겁고 갑갑한 분위기와 건조한 문장이 아니였다면 여주는 혼자 삽질하는 진상공주님에서 한발짝도 못벗어나지 싶다.
책은 처음부터 의심을 키우더니 결국 마지막에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툭 꺼내놓았다.
사랑이 없어보이는 남주의 모습과 여주가 듣고 바라보는 '지영을 사랑하는 남주'의 모습 사이에 갭이 커서 무언가 비밀이 있겠거니 했었는데....이렇게 큰일을 겪었다는게 생경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로맨스로 시작해서 추리로 끝나는건가? 싶은 생각을 아주 살짝?했었다.
뭐 그래도 앞부분의 그 지나치게 늘어지고 무겁고 갑갑한 느낌을 뒷부분의 사건으로 인해 좀 상쇄시켜줘서 오히려 나았던 것도 같다. 나는.
단지.
여주가 나름 복수를 하는데 헛웃음이 나는건 .... 지금까지 책을 읽던 중 처음있는 일이었다.
모든걸 듣고 싶지 않다 만나고 싶지 않다 하던 여자가 갑자기 복수를 해야겠다고 마구잡이로 화를 내고 끌어내는걸 보면서 통쾌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이 장면이 도데체 왜 필요한걸까?
읽는 내내 어린애 땡깡 부리는 기분이 들어서 뒷맛이 썼다.
그전까지 여주는 혼자 삽질을 할지언정 그래도 평상시엔 다 큰 성인의 모습을 하고 살았는데.... 말그대로 부잣집 공주님의 정점을 찍어줬던 장면이지 싶다.
짝사랑 이야기 참 좋아하는데
이 작가님 짝사랑 이야기는 이게 두번째인데
이분의 짝사랑 방식은 나와는 코드가 어긋나는것만 같다.
그리고 배경으로 묘사된 장면장면들이 사진처럼 찍혀 입력되는게 아니라 그냥 글자의 나열들로만 느껴져서 참 아쉬웠다.
글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공감하고 끄덕였던 부분은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그 거짓이 밝혀지기까지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평판과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것이 멀쩡한 사람을 어떻게 망가트리고 힘들게 하는지.
타인의 평가로 결정되어 보여지는 삶에 대한 무서움. 같은 것들이었다.
살면서 뒷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늘 나의 이야기들은 또 어디에서 누구의 입을 통해 각색되어 부풀려서 나돌아 다닐까.
그따위껏 아무것도 아니라고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지만.....나도 어쩌면 이 글의 여주처럼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쿨한 척 연기를 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