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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하
신경숙 / 문학동네 / 1994년 3월
평점 :
절판
새 학기가 되면 싫어하는 것을 해보자! 는 생각으로 신경숙의 소설을 여러 권 빌렸다. '딸기밭' 서평을 쓰면서 미리 밝혔듯이 나는 신경숙의 소설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읽다 보면 도저히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 신경숙의 소설을 피해 가며 책을 고르게 되었다.
우선 깊은 슬픔은 영화로도 참 보고 싶었단 작품이다.(원작의 작가가 신경숙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으며 먼저 깨달아지는 건, 내가 낯설어 하는 게 신경숙의 Story는 아니구나..하는 생각이었다. 발음하다 보면 물기가 배어져 나올 것 같은 이슬어지, 그리고 은서, 완, 세.. 세 사람이 서로의 등만 바라보는 절망적 사랑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눈물 지었던가.
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에게서 버림받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에 알아 버렸던 은서의 가냘픈 운명에 코 끝이 새큰해졌다. 하지만 힘을 주어 읽으면 산산히 부서질 것 같은 신경숙의 문체는 여전히 당혹스럽다. 슬쩍 슬쩍 읽다 보면 머리 속에서 마구 뒤엉켜 버리고..
가장 낯설었던 것은 문체의 속도. 나는 벌써 은서가 슬픔에 잠기게 되는 상황을 받아 들이고, 은서의 눈물을 예측하는데, 책 속에서 은서는 여전히 슬픔에 잠기고 있는 '중' 이다. 신경숙만의 독특한 작품 속 시간의 흐름은 내 머리의 흐름보다 곱절은 느려서 나는 번번히 그 줄을 놓쳐 버린다.
하지만 '깊은 슬픔'은 신경숙에 대한 나의 편협한 편견을 없애는 디딤돌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나처럼 신경숙의 소설은 왠지 읽기가 어려워..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망설임 없이 '그럼 깊은 슬픔을 읽어 보렴'이라고 추천할 수 있겠다. 다음에 읽게 될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흐름을 늦춰 보아야 겠다. 생각의 보폭을 맞춰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