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이해
존 버거 지음,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업이 왜 정치적일까? 이십세기 중반에 발터 베냐민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긴급 상황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다. 이러한 통찰에 부응하는 역사 개념을 가져야 한다." 이런 역사 개념을 받아들이면 모든 단순화, 혹은 모든 이름표는 행사하는 이들의 이익에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권력이 광범위하면 광범위할수록 단순화를 바라는 권력의 욕구도 커진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이 눈먼 권력 아래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나 그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지금은 물론 머나먼 미래에도, 다양성과 차이, 그리고 복잡함에 대한 알아봄과 인정이다.
이 사진들은 그 인정과 알아봄에 대한 하나의 기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밤이나 낮이나 동료 인간들과 함께, 모든 인간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 행렬이 앞뒤로 너무 길어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뒤에 선 사람들이 앞에 선 사람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더 이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점점 더 드물게 만나고, 점점 더 드물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잡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 본문에서 발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그라미 안에 남자의 부츠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 신발, 물감을 주사기로 뿌린 다음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색을 입혔다고 한다. 검은색은 가정용 비닐, 페인트였다. 부츠의 끈이 풀려 있고 그 위로 혀가 나와 있다. 부츠 안에는 나뭇가지가, 과실수나 올리브나무의 가지처럼 보이는데, 한 다발 들어 있고, 그 끝에는 꽃봉오리 대신 시계 문자판이 달려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문장 문학과지성 시인선 504
김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놀이가 거듭될수록 언어의 허점이 드러난다. 그 틈사이를 비집고 떨어져 나온 언어의 운명은 한 문장이 이어질 때마다 공명을 일으키며 변화를 거듭한다. 언어가 갈구하는 지점은 소멸을 통한 해방에 있다. 해방은 비로소 언어가 가 닿아야 할 처음의 지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성복 선생님의 시집 래여애반다라 속에 뷔히너 문학전집 이 실려 있다. 시를 읽고 책을 검색했더니 절판이다. 재판매 요청을 해 놓고 보니 제목만 알지 안 읽은 책이 참 많다. 치매 환자처럼 잠시 정신이 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텅빈 머리로 걷고 있는 나를 만난다.

뷔히너 문학전집

한 번은 뷔히너가 그렇게 읽고 싶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한 문장, "그는 머리로 걸었다" 뭐 그런 뜻의 문장, 오래전에 나는 머리로 걷는 일을 포기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정말 텅 빈 머리로 걷게 되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뷔히너 문학전집』이 번역되었다는 걸 알고, 학교 서점에 주문했더니 절판이었고, 도서관에 마침 책이 있어 얼마나 기뻤던지.... 구내 복사실에서 복사를 뜨고 원본은 학생들 오면 책 만들어주라고 놓고 왔다 그리고 며칠 뒤 책꽂이를 닦는데, 아 거기 빨간 껍데기의 『뷔히너 문학전집』이 꽂혀 있었다 분명 내가 읽고 밑줄 친 흔적까지 있었으니, 십수 년 전 사놓고 아껴 읽다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참에 복사실에서 전화가 와, 저번에 맡긴 책이 다른 책에 휩쓸려 분실되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겠느냐고……… 내게 마침 원본이 있으니 그걸로 반납하면 된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그러니까, 텅 빈 머리로 걷다가 내가 가진 원본을 잃어버린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 바빌론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 그, 바다 때깔, 보나, 니가 글을 쓸 줄 알게 되몬 그 때깔 이바구 먼저 써다고.˝
나는 그 순간 할머니가 보던 바닷빛을 내 가슴에 끌어넣은 것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지 못하는 아직 고대에 머물러 있던 할머니가 바라보던 바닷빛을, 바닷빛을 그토록들여다보는 삶의 한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렁이는 바다, 그때 그 순간의 바닷빛을 나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 당시 할머니의 치부책에 들어 있던 돼지의 숫자는 기억나는데 할머니가 빛을 바라보던 순간은 어떤 환한 빛으로만 남아 있을 뿐. 나는 아직도 할머니를 고대에서 불러내지 못하고 있다.

- 많은 말을 품고도 풀 수 없어 안고 있어야만 하는 아픔을 간직한 슬픈 얼굴, 바닷빛을 바라보던 눈, 할머니와 바다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 바람냄새, 소리가 순간을 붙잡고 계속 리플레이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