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경제로의 전환 - 유럽 최고 석학 자크 아탈리, 코로나 비극에서 인류를 구하는 담대한 비전과 전망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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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비극이 벌써 1년째 이어지고 있다. 초반에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던 것이 어느순간 전세계가 마비되다시피 하는 지경까지 악화되어있었다. 유럽은 수차례 셧다운을 반복하고 있고 우리도 이제 병상이 부족해지고 있다.

코로나가 가져온 수많은 인명피해도 가슴 아프지만, 그로 인해 야기 된 경제 공황 문제도 심각하다. 방역을 위해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아예 막거나 무작정 도시를 셧다운 시켜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자크 아탈리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했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설립해 초대 총재를 지냈으며,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재임 당시 성장촉진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던 정치·경제·문화·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유럽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매일매일 코로나19와 관련한 국내 뉴스가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우리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생명경제의 전환>을 통해 유럽과 미국,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한국을 비교해 세계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인류에게 질병의 대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흑사병이 그랬고, 콜레라, 에이즈, 에볼라, 사스 등 다양한 유행병이 시대마다 등장했다. 코로나 19는 중국 후베이성의 우한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배워 전염병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해야했지만, 중국 정부가 보였던 최초의 반응은 너무도 한심하고 비극적이었다. 병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용기를 내어 입을 여는 의사들을 감금했다. 1월이 되고, 음력설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중국인들은 예년과 다름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이 기간 중에 우한을 떠난 사람은 700만 명에 이른다. 이후 감염자가 수천건을 돌파하여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결국 중국 정부는 도시 전체를 봉쇄했다. 철저히 독재정치의 방식이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지난 메르스 유행병의 경험을 토대로 코로나19 최초 감염자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신종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토대로 하는 진단 검사 키트와 마스크의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 1월 21일 최초 감염자가 나왔고, 다른 감염자들이 나올 상황에 대비해 질병관리본부는 환자를 찾아내는 절차를 확정지었다. 신속한 환자 추적과 마스크 공급 그리고 수많은 진단검사 덕에 한국은 경제를 완전히 멈추거나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지 않고도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되는 것을 어느정도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반면에 잘못된 선택을 한 나라들도 눈에 띈다. 유럽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한국이 아닌 중국의 방식을 따랐다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국가 한국이 아니라 독재국가 중국의 모델을 따라하는 광경을 연출했다는 건 확실히 인류의 불운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마스크와 진단 검사 키트 생산에 돌입하고 감염 경로를 추적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3월 중순 기어이 팬데믹 현상이 폭발하고야 말았다. 팬데믹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남은 선택지는 참담하게도 모든 경제를 올 스톱 시키는 것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감염자들은 치료는 커녕 검사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속절없이 죽어갔다.

질병의 해결책이라면 예방 백신과 치료제가 준비 될 때까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감염 경로를 추적해 필요한 경우 격리시키며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경제 쓰나미에 관련해서는 그 해결책이 훨씬 덜 명확하다. 이제는 아무도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비행기표를 사지 않는다. 이동 수단의 부재로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 많은 재화의 생산은 중단되었다.

세계 최빈국의 상황은 더 나쁘다. 그들은 인구 밀집 도시들을 먹여 살릴 기초 식량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격리 정책 때문에 아프리카의 농부들은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없고 농업생산량은 감소되고 수입품으로는 국내 생산품을 대체할 수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20년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프리카인 수가 2019년에 비해 3배가량 많아져 2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실업은 신흥국 내부에서도 특히 아무런 사회보장 안정망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먼저 공략한다. 인도에서는 1억 4000만 명이 넘는 이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어 극빈자 처지로 추락할 위험을 안고 있어 정부는 6월 초부터 전염병이 통제 불능으로 확산되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번 위기로 일자리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며 그 밖의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좋지 못하다.

결국 외환보유고라 할 만한 것이 있는 나라 또는 자국 화폐가 준비 통화로 쓰이는 나라들의 중앙은행과 정부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막대한 양의 자금을 각종 대출과 지원금이라는 형태로 풀어서 자국민들과 자국 은행, 자국 기업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한다. 일본은 국민총생산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의 경제활성화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 중 7퍼센트는 직접적인 공적 지출이 차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우선 4천억 유로로 시작해 후에 1조 5천억 유로를 차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재정적자가 국민총생산의 10퍼센트 선을 넘어설 것이며, 미국에서는 심지어 20퍼센트 선마저도 훌쩍 뛰어넘게 되었다. 공적자금 지원은 곧 한계에 이를 것이며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우리가 소비하고 생산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해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말로 생산 결핍이 절실하게 드러나는 분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분야 쪽으로 경제의 향방을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거래소 현황이 예고하는 내용으로 미뤄 짐작하건대, 앞으로 성장할 종목으로는 오락, 의료, 대규모 유통, 식품, 전자 상거래, 디지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이러한 분야를 묶어 새로운 지수를 만들었다. 이른바 '스테이 앳 홈'이라 불리는 이 지수엔 넷플릭스를 비롯해 이번 위기의 직접적 수혜자인 33개 기업이 포함되어있다. 시장이 이번 위기의 승자라고 인정하는 분야를 넘어서, 새로운 수요로 부상한 분야들을 따로 떼어내 저자는 '생명경제'라고 명명하고 있다.

생명경제에서 배제된 모든 분야는 말하자면 환경의 가장 큰 적이다. 자동차, 비행기, 화학, 플라스틱을 비롯해 많은 산업이 그러하다. 하지만 재전환을 통해 이런 분야도 생명경제에 당당하게 편입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경제는 환경과 기후 변화 최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역이다. 또한 탄소에너지를 가장 덜 쓰는 분야이기도 하다. 국토 개발과 관련한 법적 기제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생물 다양성 보존, 동물 존엄성 존중, 유기 농업의 구체적인 발전, 토양 인공화 방지 등에 나서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정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방역 전시체제로 돌입하면서 민주주의의 붕괴, 변질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극단적 자유주의가 아닌 민주적인 전시경제로, 방임형 민주주의가 아닌 전투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팬데믹은 우리를 어느 한 공간에 감금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리를 감금한다. 그 이후를 생각한다는 건 그러므로 광범위하고 폭넓게 생각하는 것이다. 삶과 인간의 조건까지도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인류와 모든 생명체의 삶까지.

-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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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 한국인의 비밀 무기
유니 홍 지음, 김지혜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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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 프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다가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한국인 아내에게 장가온 핀란드인 빌푸에게 핀란드 친구들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이게 필요하다며 선물한 '눈치의 힘'이라는 책이다.

한국인의 행복과 성공의 비밀을 담고 있다니 부제도 거창하기 이를데가 없다.

정작 한국인인 나는 처음 보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책이라니 너무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덴스토리라는 출판사에서 '(한국인의 비밀 무기) 눈치'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있었다.

외국인들에게 이미 유명하다길래 쓰여진지 제법 되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 최근에 나온 책인 걸 보면 방송에서 소개한건 간접광고였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담고있는 내용이 흥미로워 읽어보았다.

눈치란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약자들이 가지는 비밀 무기, 남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살피는 섬세한 기술, 쿨한 나라를 만든 한국인이 보유한 초능력이라고 책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눈치를 그냥 있다/없다로만 구분하는 것이 아닌 '빠르다/느리다'라고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책에서 눈치있게 행동하기 위한 8가지 법칙을 소개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분별력 있게 관찰하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선입견을 버릴 것

둘째, '눈치 관찰자 효과'에 유의하기. 말 한마디 없이 방 안에 있기만 해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두자. 화려한 등장은 필요없다.

셋째, 다른 이들이 나보다 더 그 방에 오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들을 관찰해 정보를 얻자.

넷째, 입을 다물 좋은 기회는 놓치지 말 것. 최대한 카드를 내보이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목표인 협상에서도 통용되는 법칙이다.

다섯째, 예절(매너)을 지킬 것.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여섯째, 상대가 직설적인 표현을 어렵게 꺼내기 전에, 먼저 상황을 이해하고 상대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을 파악하자.

일곱째, 상대에게 해를 끼쳤을 때 의도의 유무는 중요치 않다. 상대가 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있을 뿐. 관심을 밖으로 돌려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여덟째, 민첩하고 빠르게 행동하자.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생존한다.

저자는 미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에 관한 책을 썼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한국인의 비밀무기니, 한국인만이 가진 초능력이니 하며 거창하게 말한 것 치곤 한국인의 특성과 문화를 제대로 담아낸 것 같아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일본인의 특성에 가까운 것 같은 내용도 꽤 보였다. '눈치'와 '직감·육감(六感)'을 혼동하는 부분도 보인다. 아무래도 저자가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이 아닌, 미국인의 마인드를 가지고 한국에서 청소년기만 보낸 '외부인 관찰자'여서 그런 것 같다. 책 내용 전부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방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모습이 이렇게 비칠 수도 있구나 하고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눈치(사회적 신호를 알아차리는 능력)란 각 나라에서 표현하는 언어만 달라질 뿐 모든 문화권에서 필요한 능력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하는 기술이다.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눈치라는 기술은 '한국인만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그냥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저자가 한국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던 스킬일 따름이다.

 


책에는 챕터마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눈치있는 행동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퀴즈나 면접보기의 노하우, 새 직장에서 적응하기, 해외에서의 눈치, 좋은 배우자 고르기와 같은 흥미로운 상황도 실려있고 문장이 어렵지 않아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금방 다 읽을 수 있다. 책 첫머리의 추천사에 최근 가장 눈치없는 행동을 해 무려 '스님 활동 중단 선언'을 한 혜민의 이름이 올라와있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고 우습다.

이 책의 대상 독자는 치명적으로 눈치없는 사람이 되겠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업무관계에서는 책에 묘사하는 수준으로 눈치없는 이를 그닥 만나본 일이 없지만 의외로 사적인 관계에서는 흔하게 본 것 같다.

책에서도 예시로 든 자신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스토커, 자신보다 뛰어난 전문가에게 맨스플레인하는 사람들, 칭찬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영리함을 내보이려 애쓰다보면 다른 사람을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인생에서 성공을 도와주는 것은 주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미드 '프렌즈'의 로스처럼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노잼 공룡이야기를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의 반응을 섬세하게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다가는 맥락을 놓치고 비언어적 표현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를 읽어낼 수가 없게 된다.

사실 나도 침묵을 견디는게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못하고 프렌즈의 챈들러처럼(최근까지 제일 열심히 본 미드라 예시가 자꾸만 프렌즈만 떠오른다) 헛소리를 늘어놓곤 하는데 때로는 기다리고 들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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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것들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지음 / 노마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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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정말 재미있다.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라니. 사실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게 지적허영심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인데 그런 점에서 나 같은 사람을 공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지은 제목으로 보인다.

이 책은 크게 의, 식, 주 세 파트로 나누어 그 틀에 해당하는 것들의 최초의 기원이 담긴 유래와 에피소드, 변천사 등을 다룬다.

백 여개의 다양한 소재를 짤막하게 다루고 있어 백과사전 읽기를 즐겼던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성의 가슴은 시대에 따라 남성들의 취향에 맞추어 드러내거나 감춰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 최초의 근대적 브래지어가 나타난 것은 1913년의 일로, 그 전까지는 너무 꽉 조여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코르셋을 입었다. 착용시의 불편함보다는 속이 비치는 이브닝 가운을 입었을 때 코르셋의 윤곽이 드러난다는 외견상의 문제를 수정하고자 메리제이콥스가 뒤가 없는 짧은 브래지어를 만든다. 그녀가 만든 브래지어의 디자인은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했다. 1920년대 당시 '말괄량이 시대'에는 가슴이 작은 소년다운 패션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재봉사이며 디자이너인 아이더 로젠탈은 이 유행에 강하게 반대해 가슴을 강조하는 브래지어를 권했다. 여성의 가슴을 크기별로 분류해 만들었다고 하니 요즘의 속옷 개념과 가장 비슷한 디자인이 이 때 등장한 것 같다.


최초의 힐이 붙은 부츠는 승마용이었다. 남성화는 시대와 필요성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지만 여성화의 경우 어차피 긴 옷에 가려져 발이 잘 보이지 않기에 변화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이즈 맞춤이나 착용자의 발 모양을 고려하지 않은 불편한 구두들이 좀 더 신기 편안한 구두로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예쁜 발 콘테스트였다. 윌리엄 숄은 구두가게에서 구두를 판매하며 발의 물집이나 티눈, 평발이 얼마나 손님을 괴롭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의사들을 대상으로 발에 관한 해부학 책을 펴냈고 신데렐라 발 콘테스트를 열어 참가자들의 발을 정밀히 검사하고 계측하고 족형을 땄다. 그 이전까지는 물집용 패드를 붙인 맨발을 내보인 광고와 깔창에 얹은 발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광고는 외설이라는 항의가 쇄도했다니 얼마나 발에 대한 인식이 후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발에 대한 의식이 전국적으로 높아지고 편한 구두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 밖에 오늘날 우리가 먹는 과일들은 어떻게 개량되고 어디로 전래되어 왔는지나 햄버거와 펩시콜라, 껌, 커피와 초콜릿 등 재미있는 식문화의 유래와 백화점, 유원지, 영화관, 도서관 같은 공간들의 변천사가 소개되어 있다.

각 주제들은 분리되어있어 목차를 보고 끌리는 것 부터 아무렇게나 골라읽어도 좋지만, 모두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라 자연스럽게 통으로 읽게 되는 것 같다.

유래를 설명하다보니 외래어가 많이 등장하고 년도, 어원 표시 등이 잔뜩 들어있어 잘 읽히지 않는 챕터들도 간간이 있지만, 사진과 그림들이 함께 잔뜩 실려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부록으로 찾아보기가 수록되어 궁금했던 것의 유래를 빠르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가지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우리가 몸에 걸치고 먹고 생활하는 공간 다방면의 소재를 넓고 얕게 소개하고 있기에 책 제목 그대로 알아두면 잘난 척 하기에 딱 좋은, 지적 허영을 충족시키는데 좋은 책이었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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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 1~2 - 전2권
네빌 슈트 지음, 정유선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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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표지가 너무 예뻐 눈을 뗄 수 없었던 책이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의 핀업걸을 연상시키는 표지이다. 처절한 지옥속에서 피어난 사랑이야기라, 호기심을 갖고 집어들었는데 놀랍게도 이 책은 실화를 다룬 내용이었다.

책의 저자인 네빌 슈트는 1899년 런던 일링에서 태어났고, 옥스퍼드 대학 배일리얼 칼리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항공업계에서 비행기 개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여가 시간에 소설을 쓰면서 엔지니어 경력을 보호하기 위해 네빌 슈트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1942년 일본군이 말레이반도를 함락한 뒤 수마트라를 침공했다. 네덜란드 여성과 어린이 80여명 정도가 수마트라섬 파당 인근으로 끌려갔으며 이후 이들에 대한 일본군의 책임 회피로 도로 몰려나와 수마트라 전역을 돌아다니던 2년 반의 여정 끝에 살아남은 사람은 채 서른 명도 되지 않았다.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은 1950년에 발표된 소설로, 일본군의 침공 당시 갈 곳 없던 여성 포로들의 강제 행진과 그들의 죽음이 담긴 실화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참혹한 전쟁 속으로 휘말린 파란만장한 여성의 이야기지만 어쩐지 끔찍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건 소설 전반에서 보이는 희망과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반세기도 더 오래 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술술 읽힌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포로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도 강단있어보이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1940년대를 살아갔던 사람이지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진취적이고 멋있는 신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훌륭한 러브스토리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춘 작품 /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에 소개된 책 이라는 추천사에 걸맞는 소설이다.

삶에서 에너지가 떨어진다 느껴질 때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실화 바탕이라 더 극적인 이야기였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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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1,000년을 하루 만에 독파하는 최소한의 로마 지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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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식문화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값비싼 장식으로 꾸며진 곳에서 비스듬히 나른한 모습으로 반쯤 누워 음식을 씹어서 맛만 보고 뱉어버리는 장면이다. 어릴적 읽었던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에서 봤던 내용이 꽤 인상적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번영했던 로마인지라 사치와 향락을 즐기다 못해 넘쳐나는 산해진미를 즐기고는 싶고, 있는대로 다 먹기엔 배가 부르니까 뱉어버리거나 토해내고 계속해서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로마의 식문화 전부였을까?

 

모든 음식은 로마로 통한다

2000년 전 로마인의 식탁에 올랐던 거의 모든 식재료들은 외국에서 들여왔다. 로마의 주식인 빵부터 물처럼 마셨던 와인, 가룸(생선 젓갈)과 황제와 상류층 귀족들이 사랑했던 굴까지.

이는 로마 제국의 팽창과 관계 있다. 여러번의 정복 전쟁을 하면서 속주에서 식료품을 빼앗았고, 그 식료품을 로마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자연스럽게 도로망이 발달하게 되었다. 도로가 건설되면서 많은 물류가 이동하게 되고, 경제가 활성화 되었다. 물류지를 중심으로 숙박업과 창고업도 흥행했다.

오늘날 현대인은 하루 세 끼 음식을 먹고 최근들어 그것이 많다해서 간헐적 단식이 유행하고 있는데 의외로 인류사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먹은 장면은 그리 발견되지 않는다.

로마인들은 현대인들과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옌타쿨룸(아침), 프란디움(점심), 케나(저녁), 메렌다(야식/군것질), 콘비비움(파티)를 즐겼는데 이는 로마가 얼마나 풍요로운 사회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로마인이 비스듬히 누워 식사한 이유

앞서 말했듯 로마인들의 식사 장면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이 비스듬하게 누운 듯 앉은 자세이다. 실제 로마시대 연회나 식사 장면을 묘사한 벽화들을 보면 그런 모습들이 관찰되는데, 이 자세는 그리스인들에게 배워왔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인들이 먹는 것 처럼 수저나 포크 나이프를 가지고 식사한다면 이러한 자세는 몹시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로마인들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었으므로 이러한 자세는 편안하고 안락한 자세였다. 아마 우리가 쇼파에 반쯤 드러누워서 과자나 팝콘 같은 간식을 집어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이렇게 반쯤 눕듯이 식사한 것은 아니며, 여성과 아이, 하인과 노예는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한쪽 팔로 상체를 받치고 비스듬히 누워 다른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동작은 '자격이 있는 성인이 격식을 갖춘 식사에 참석해 요리를 먹을 때 취하는 자세'였다. 이것이 로마 제국이 팽창함에 따라 점차 여성들도 식사에 참여해 함께 누워있는 벽화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 1세기 초 기록과 유적들을 살펴보면 여성들이 사업에 참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아마 케나(저녁식사)를 하면서 남녀가 함께 술과 유흥을 즐기며 인맥을 넓히고 비지니스를 논의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전성기 로마 제국에서는 아이들도 상류사회의 사교를 가르치기 위한 조기교육의 일환으로 저녁 만찬에 참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렇듯 로마의 저녁 만찬 케나를 통해 로마 사회의 구조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미 부른 배를 비우고 음식을 더 먹기 위해 토하거나 음식을 삼키지 않고 맛만 보고 뱉었다는 소문은 진실일까. 실제로 먹기위해 토했다는 기록이 서기 42년 세네카가 제 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분노를 사서 코르시카로 추방됐을 때 어머니 헬비아에게 쓴 <위로문>이라는 편지에 나타나 있다. "그들은 먹기 위해 토했고, 토하면서 먹었습니다." 하지만 몇 몇 기록으로 전체를 일반화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그에 반해 로마 상류층이 미식을 즐기기 위해 아예 연회장에 별도로 '토하는 방(보미토리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보미토리움'은 라틴어로 토한다는 뜻의 '보미투스'에서 비롯된 말로 보는데, 마치 출입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토하듯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서 생겨난 것으로 극장이나 콜로세움 같은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일시에 드나들 수 있는 통로(입구)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굴 사랑으로 인한 로마의 기술 혁신

로마의 황제들이 그렇게 사랑했다는 굴.

유통기술과 냉장보관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생굴을 택배로 배송받을때는 상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음식인데 몇천년전의 로마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굴을 운반해 즐길 수 있었는지 상상해보면 경이롭다.

영국에서 로마까지 최고급의 신선한 굴을 실어다 날랐다고 하는데 그 거리는 도보 기준으로 최단 직선거리가 1,730킬로미터다. 로마시대에 마차로 쉬지않고 달릴 경우 50여 일이 걸리는 거리이다. 자연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류층 귀족들이나 황제들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될 수 밖에 없는데 귀한만큼 그 가치 또한 높다보니 잇속이 밝은 이들에겐 군침도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보였을 것이다.

알프스산맥에서 실어온 얼음과 눈으로 굴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저장기술이 발달하고, 굴 양식을 위한 운하 건설, 건축 기술의 발달과 겨울철 굴을 위한 난방 기술이 발달했다. 이 난방기술은 엉뚱하게도 로마의 목욕 문화 발달로 이어지게 된다. 굴 하나로 다방면의 기술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이 밖에도 소금 운송, 와인 산업, 로마인의 의식주를 책임지던 올리브 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이 책은 음식들을 통해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로마가 궁금했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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