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그림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예전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던 길이 생각난다.그 땐 제법 먼 길도 걸어 다닐 때라 우린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 철망같은 것을 통과해서 꼬불꼬불 미로같은 길을 다니길 즐겨했다.물론 일직선으로 뻗은 차도를 낀 지름길이 있긴 했지만 그 길을 웬지 낯설어 보이고 어린 우리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크고 먼 느낌이라 미로를 찾 듯 오늘은 이 길로,내일은 저 길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통학을 했었다.그 좁은 골목길이 어떨 땐 두렵고 무섭게 느껴져 머리 끝이 쭈뼛거릴 때도 있었지만 호기심많은 어린 우리들에겐 신기한 일이 더 많았고 탁 트인 신작로보다 더 안정감있게 다가온 것 같은 아련함으로 기억된다.멀리서 신작로를 내려다 보며 오늘은 저기로 함 가볼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좀 힘이 들지만 재미있는 놀이와 같은 그 길을 선택했었다. 그 미로를 돌다 보면 부모님들끼리 아는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을 지나칠 때면 어떤 기대감으로 대문을 빼꼼 열어보며 웬지 설레던 기억이 난다.그 집 아줌마는 내가 보이는 날이면 반갑고도 귀한 손님이 들른 마냥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내가 일찍이 맛 보지 못한 귀한 과일을 어린 손에 꼭 하나씩 쥐어서 보내셨기 때문이다.난 그 과일을 받아 든 순간 목적을 달성한 기쁨으로 내 마음이 들키지 않게 쾌재를 부르며,얼른 인사를 드리고 처음엔 사뿐히,그리곤 곧 뛰듯이 돌아서왔다.그렇게 돌던 그 길의 한 가운데가 어느 날 갈아 엎어져 있을 때의 그 막막함.난 거기서 내가 어디로 가야할 지 순간적으로 생각 속에서 길을 잃었었다.잠시 후 다시는 그 길로 다닐 수 없다는 허전함은 금방 그리움으로 가슴 한켠을 찡하게 만들었고... 우린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무자비한 도시화와 경제 개발의 논리 속에 빼앗기고 살아왔나 보다. 난 사직동은 잘 모른다.하지만 도시화로 황폐해진 이 땅의 모든 곳이 사직동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연스레 우리의 미로는 잊혀지고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가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우린 그 길로 걸어다녔다.그렇게 익숙해져 버린 그 길을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면 높은 담 뒤에 숨어 있는 우리의 그리움과 돌아가고싶다는 회귀본능이 또 다시 나의 가슴 한켠이 서늘하게 만든다. 요즘은 그 길로도 걷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달리는 차 속에서 단지 바라 볼 뿐... 나의 사직동을 보고 있으니 뿌옇고 희미했던 그림들이 세세하게 떠올라 너무 반갑다.자칫 나의 사직동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난 이 기억들을 영원히 놓치지 않았을까! 이런 푸근함을 아이들에게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따름이다. 우리 다시 돌아가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