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있어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는 한 방향으로 치우친 감이 많아요.일본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이 침략적이고 이기적이며 앞뒤의 모습이 다르고 작고 간사하다 등등이지요.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측면을 찾을 수 없네요.그들의 흐트러짐없는 질서라는 것도 웬지 인간적이지 않아 싫다라는 식으로 왜곡되어 있으니 이런 식의 저의 편견은 역사적인 열등감의 한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저의 이런 배타적인 감정도 좋은 책 한 권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무뎌지니 풍부한 정서를 공유한다는 것은 참 올바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오래전 인간의 조건이란 책을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죠.국가로서의 일본과 우리가 뭉떵그려 부르는 일본사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라는 생각이였습니다.이런 생각의 꼬리는 이 책에서도 계속 이어지지요.물론 작가가 일본 사람이 아니고,그림을 그린이가 우리나라 분이라는 사실이 좀 독특하지만, 일본의 문화적인 향기와 인간적인 정서를 함빡 느낄 수 있는데는 부족함이 없군요.이야기는 일본의 유명한 시인 바쇼와 시를 좋아하고 멋을 아는 여우가 늦여름 버찌를 누가 다 먹을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시 내기이지요.일본의 전통의상을 입은 바쇼와 여우의 모습이 일본색이 느껴지는 색채의 생소함과 어울려 참 이색적으로 다가오는데요,한낱 버찌를 두고 그렇게 진지할 수 있는 바쇼를 보면 그가 왜 좋은 시인인지 이해할 수 있죠.그리고 여우의 시에 대한 독특한 해석 앞에선 아이들과 크게 웃을 수 있어 좋더군요.여우의 말을 들으니 좋은 시란 대상에 따라 달라지고 생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시를 듣는 대상들의 경험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여우의 해석은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기준점을 세워둔 우리에게 허를 찌르는 정답을 제시한 것이죠.책장을 한장씩 넘기며 마지막 시에 대해 여우는 무어라고 이야기할까? 잔뜩 기대했었는데 그 대답의 허망함에 그만 허허 웃음을 터트리게 되네요.하지만 그 대답이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수준 높은 이야기를^^ 제 아이가 좋아하니 전 더할 수 없이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