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우리 나라에 전해오는 전설 속에 불가사리라는 동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불가사리라는 이름은 익숙한데 그 이름과 표지 속의 그림이 영 딴판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가서 이런 말 하면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고 뭐 했냐고 핀잔만 들을까요.^^ 올해 다섯 살 되는 둘째 아이도 꼭 저처럼 엄마가 분명히 불가사리라고 말했는데 정작 책을 펼치면 자신이 알고 있는 별 모양의 불가사리가 어딜 봐도 등장하지 않으니 불가사리 찾아달라고 고집을 피우기도 한답니다. 시중에 불가사리에 대한 책이 몇 권 나와 있는데 이 책이 그 중에서 이야기를 제대로 소화한 책이라는 평론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전쟁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잃고 깊은 산골 외딴집에서 홀로 살고있는 한 아주머니가 밥풀을 뭉쳐 작은 인형을 만들고 불가사리라는 이름을 지어 준데서 시작합니다. 아주머니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기 때문에 칼이나 창을 만드는 쇠를 몹시 싫어하지요. 아주머니는 불가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노래를 부른답니다. 세상의 모든 쇠를 먹어 치우라고.. 쇠를 먹고 먹어 집채만큼 커진 불가사리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온갖 쇠들을 먹어 치우지요. 그러던 중 오랑캐들이 쳐 들어와 전쟁이 일어나고 쇠를 찾아 돌아다니던 불가사리는 전쟁터로 나가고.. 칼이며 창, 대포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자 오랑캐들은 겁을 먹고 도망을 치지요.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이 불가사리를 칭송하고 그 이름을 드높이자 마침내 임금은 불가사리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하고 위협을 느끼게 된답니다. 그런 임금에게 외눈박이 점쟁이는 불가사리를 잡는 방법을 일러주고.. 임금은 곧바로 일을 꾸민다는 이야기로 전개되지요. 불가사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생사가 아이들에게 상상의 여운을 남긴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불가사리라는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절대로 죽일 수 없는 동물인 반면 불로 죽일 수 있는 동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코끼리 몸에 소의 발, 곰의 목에 사자 턱, 범의 얼굴, 물소의 입, 말의 머리에 기린의 꼬리를 단 불가사리는 나쁜 꿈을 물리치고 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하여 옛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동물이라고 하는군요. 고려가 망해 갈 즈음 나타나 온갖 쇠를 다 먹어 치우고 다니다가 조선이 세워지면서 사라진 동물이라 하니 이참에 우리의 역사를 조금 알아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겠네요. 어쨌든 이 책은 무시무시할 것만 같은 불가사리의 첫인상과는 영 딴판으로 진한 감동과 무거운 슬픔으로 다가오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덮고 나면 큰아이에게서 순간의 침묵을 느낄 수 있죠. 아직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둘째 아이는 엄마 왜 이렇게 됐어? 불가사리가 죽었어. 하며 어리지만 슬픔을 조금은 이해하는지 애처로운 얼굴로 책을 들여다 보고 있구요. 앞으로 숨어있는 이런 신화나 전설 설화가 좋은 그림책으로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많이많이 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