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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받는 아이들 ㅣ 살아있는 교육 14
이호철 지음 / 보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분의 책을 읽으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우리가 언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요? 아이들의 상처쯤이야 철없어 하는 반항쯤으로 치부되고 너희들도 자식 낳아 키워보면 이런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날이 올 거라는 안일함으로 너무 쉽게 배척되어 오진 않았는지요. 하지만 전 아이들의 상처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이해되고 용서되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압니다.성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의 골은 더 깊어질 뿐. 단지 모르는 척 덮어두며 살 뿐이지요.
약자로서의 아이들의 인권이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른 지금 이 호철 선생님의 책은 사랑이란 미명하에 행해졌던 아이들의 짓밟힌 인권을 적나라하게 내보임으로서 그들의 삶이 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아이들의 목소리로 처절(?)하게 풀어나가고 있는 점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책 속의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은 잊고 살았던 가슴 속 응어리들을 수면위로 끌어내는 기분 나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 시절 풀지못하고 또 밖으로 뱉어내지 못해 항상 가슴 밑바닥에 숨겨놓았던 분노와 적의를 책 속의 아이들과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가족을 두고 분노와 적의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살벌하게 느껴져 꺼려지지만 돌려서 생각하는 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단순함은 부모의 모진 질책에 순간순간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자신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의 여린 싹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오는 분노를 이겨내기 힘들었습니다.
추천의 글을 쓰신 윤구병 선생님의 이 책이 아이들의 아픔을 드러내고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그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료해 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처럼 정말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에게도 선뜻 내보이기 힘든 이야기들을 일기라는 형식을 빌어 선생님께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 아이들은 이후 선생님과 헤어지더라도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지리멸렬한 삶을 그래도 건강하게 헤쳐나갈 힘을 자신 안에 가지게 될테니까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많은 부모들도 자신의 행동을 한 번쯤은 되돌아 보며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며 아이들의 상처와 마음을 따뜻이 어루만지려고 노력을 하겠죠.그러다 가끔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아이에게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내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곧 다시 아이에게 스스로를 낮추는 건강한 부모의 모습으로 되돌아 올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랑을 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을 줄줄 안다는 평범한 진리가 떠오르는군요.여기서 사랑은 건강하고 책임이 동반된 사랑이겠죠.무분별하고 권위적인 사랑만을 보고 자랐거나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두고도 그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자식의 마음을 서서히 병들게 만들지요.문제아 뒤에는 문제 가정이 있다지만 그 문제 가정 뒤에는 모순과 권위로 잔뜩 일그러진 문제 사회가 있는 건 아닌지요.
이호철 선생님께서 이 책을 펴내시면서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셨는데 전 이 책속의 부모들도 학대와 가난과 무시와 소외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결국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거듭나지 못한다면 좀처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는 힘들겠지요.그래서 이 글들이 개인의 자잘못으로 치부되거나 상대적인 소외감에 시달리는 농촌이라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의 일로만 한정지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수수하고 소탈한 웃음을 가지신 선생님과 그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내어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할 지는 우리 모두의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