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닝햄의 책은 항상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세 번을 읽고야 이 책의 전부가 눈에 들어오다니 내가 어리숙한 건지? 엄마의 어슬픔에 아이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당당한 표정이 주눅들게 만든다. '엄마는 이제 아이가 아니니까 어린 아이들의 세계를 잘 몰라서 그래.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는 다르니까.'라고 얼버무려 보지만 아이는 도대체 엄마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표정하게 나만 쳐다볼 뿐이다.아이에게 처음 책을 읽어주다 보면 글을 쫓아가기 바빠 그림을 여유있게 들여다보기가 힘들다.특히 존 버닝햄의 책은 예외없이 내용이 어느 정도 내용이 파악된 후에야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그래서 존 버닝햄의 책은 그림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한다. 책을 살펴보면 한쪽 면에는 간단하게 스케치해 놓은 흑백의 그림이 다른 한쪽 면에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다정한 모습이 컬러로 채색되어 있다.흑백의 그림은 시간을 앞서가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면서 할아버지의 추억과 손녀의 상상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고,물론 컬러 그림은 그 추억과 상상을 대화로 나누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현재 모습이다.그리고 할아버지와 손녀의 대화도 글씨의 굵기로 구분하게끔 되어 있어 특이하다싶을 만큼 간단하다.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설명도 없어 읽는 사람이 글과 그림을 끼워 맞추며 읽어 나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림과 글의 조화로운 읽기가 시작되면서 할아버지와 손녀의 다정함과 때로는 서로를 등지는 감정의 변화가 너무 자연스러워 푸근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관망할 수 있게 한다. '물고기를 잡으면 저녁에 요리 해 먹자'는 할아버지 말씀에 '근데 할아버지,고래를 잡으면 어떡하죠?'라고 묻는 손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눈에 들어오는 정말 `나 잡아봐라`는 듯이 안면 가득 엷은 웃음을 머금고 가늘디 가는 낚시줄을 물고 있는 고래의 그림은 쿡쿡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이 하나의 이야기만으로도 난 편안한 일상의 반전을 항상 책의 반대편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또 이야기의 마지막에 덩그러니 비어버린 할아버지의 의자를 책의 반대편 페이지에서 나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손녀의 그림은 가슴을 쓸고 가는서늘함으로 남는다. 언제나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편안하고 행복했던, 철없던 조그만 여자 아이가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웃자라버린 듯 낯설게 다가오는 반전도 이 페이지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박히게 만든다. 나는 훗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가끔씩 이 책을 읽었던 오늘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것 같다.아름다운 이야기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