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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이치
코니 팔멘 지음, 이계숙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의 꿈을 간직한 스물 일곱살의 여대생이 일곱 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한다.
점성술사, 간질병환자, 철학자, 신부, 물리학자, 예술가, 정신과의사.
그리고 그들과의 사랑을 통해 그들에게 던지는 사랑과 인생과 우주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육체적(성적?)이고 지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국내에는 코니 팔멘의 두번째 작품인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적>이 출판됐었고 그녀의 글에서 풍기는 사유랄까 지혜? 아니 재치가 페이지를 멈추게 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명한 이치>가 서점에 나오기만 기다리다 입고됐다는 소식과 함께 득달같이 달려가 집어들었던 책이다.
(솔직히 이 책이 그녀의 데뷔작이라는데 대한 엄청난 시기심이 솟구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고 표지에는 쓰여있고 그녀의 사진은 지적이고 냉철한 시니컬하기 까지 해서 범접하기 힘든 멕 라이언을 보는 느낌....)

일상적인 공간과 사랑의 행위들마저 순식간에 철학적 사유의 순간과 행위로 바꿔버리는 그녀의 능력은 탁월한 언어 선택에 있는 듯하다.

소설은  일곱명의 남자들을 각각 하나의 장에서 다루는데 그녀가 어떻게 그들을 만나고 사랑하며 그들을 통해 세상을 다루는 법칙을 이해하려 하는가 풀어나가고 있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은 각자가 할 역할을 다하고 나면 마치 의무를 인계하듯이 그녀가 다음에 만날 남자들을 직접 소개해주거나 우연한 방식으로라도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점성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수호성의 이끔 같은 것. 인디언들의 영혼의 안내자와도 같은 역할이며 그렇게 해서 마리는 점차 자신의 의식과 인생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게 되고 자아를 찾는 여행을 계속해가지만 사랑은 구원이 아니고 인생의 완성도 아니다. 그녀가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만나는 남자들은 기실 그녀에게 삶의 주관하는 법칙에 관한 성찰을 안겨주기 위한 선생일 뿐이다.
마리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남자는 간질병 환자의 아버지인 정신과의사이다.
책은 그에게 마리가 지나온 생과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끌어낸 사랑과 인생에 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끝맺는다.

-때때로 저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시간에 제 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각자의 인생이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 말입니다. 각자의 인생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만나는 교차점이니까요. 이러한 교차점이 없는 인간은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인간일 겁니다......자기 자신의 인생을 가진 사람만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삶속에서 하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 순간의 그 무수한 다양함 속에서도 역사의 일관성을 알아차릴 수 있지요. 그런 인간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행복합니다....-


*巳足: <호프만의 허기>를 썼던 레온 드 빈터처럼 코니 팔멘도 네덜란드 사람이다. 관념적인 사람들의 나라. 사람이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천성'과 '환경'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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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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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고래다!
그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떠오른 말이다.
그의 소설과 딱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그를 일컬음에 부족함이 없는 단어이다.
그는 고래와도 같다. 깊은 바다 한 복판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떠올라 큰 숨 한 번 쉬니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물줄기.
답답하던 속이 툭 트인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요 근래 읽을 수 없었던 직설적이고 원시적이기까지 한 거친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한 줄 한 줄을 따라가다가 아! 하기를 몇 번. 그리하여 등에 전율이 오기를 몇 번. 내가 뱀을 패대기친 것처럼 손에 힘이 주어지기도 하고 날것으로 씹는 뱀의 육질이 입 안에 느껴지는 듯도 하고....
그야말로 살아있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묘사는 이야기꾼의 구수한 입담처럼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붉은 벽돌의 여왕'-춘희
그리고 그녀를 낳은 어미- 금복
'평대'에서의 금복의 위대한 성공과 몰락을 있게 한 국밥집 노파

고래는 이 세 여인을 중심으로 이어져나간다.

부드럽고 나의 서정성을 풍부하게 일깨워주는 달콤하기까지 한 단어들. 정제되고 또 절제된 단어들에 늘상 익숙해있던 눈은 생명을 잃은 뒤 바로 벗겨져 무두질 한 번 하지않은 가죽의 상태로 나의 정서의 표피에 와 닿는 거친 단어들에 현혹된다. 어지럽다. 따뜻한 피와 원시적 성의 냄새. 거칠고 뻣뻣한 촉감으로 나의 표피를 쓰다듬는, 아리고 쓰리지만 묘하게 나의 감각을 일깨우는 자극들.

천명관은 그의 소설이 하나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덩치 큰 여학생과의 스쳐 지나가듯 한 만남에서 그는 고래의 모티프를 가지고 여인 삼대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건너뛰면서 그가 눈 앞에 보는 듯 장면들을 그려낸다. 화자는 변사들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을 내뱉고 소설의 형식은 리얼리티에서 환타지까지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걸죽한 입담인 것만 같다가도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그의 한 마디에 진지하게 허리를 곧추세우게도 한다.

바나나나 가오리류의 깔끔함, 오정희의 한숨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섬세함, 신경숙의 저물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문체들, 오스터의 태피스트리 같은 풀롯 같은 것들에 익숙해있던 나는 순식간에 그의 글이 주는 칠리 페퍼와 같은 매혹적인 맛에 푹 빠지고야 말았다. 책장을 덮고 난 후에 그림이 펼쳐진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듯한 느낌이 든다.

창작 수업을 받아본 적도, 대학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제도 교육에 물들지 않은 그였기에 저렇게 생생한 인물들이 태어난 것일까?

춘희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미지이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그들의 낯을 살피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에는 무디지만 자연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같이 느껴버리는 ...게다가 키는 훌쩍 크고 통뼈이며 체중이 백이십키로그램을 거뜬하게 넘는 그녀는 웬만한 장정을 쓰러뜨릴 수 있는 힘과 혼이 깃들인 벽돌을 만들 수 있는 장인정신을 지녔다. 그녀가 붉은 벽돌-흙과 물과 불과 공기의 혼합물인-을 만드는 것을 보면 그녀를 태모신인 가이아의 현신으로 그려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나 그는 그러한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신화적 메타포를 읽어내려는 이 우둔한 독자의 몸무림은 계속 이어지지만 작가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다(한 때 신화를 너무 읽은 탓이다. 모든 것에서 신화적 원형 이나 이미지 찾기의 작업은 아직도 나를 진정한 소설 읽기의 정도를 벗어나 곁길에서 맴돌게 한다).

고래를 읽으면서 생각난 것 하나.
글읽기는 글쓰기의 또 다른 방법이다.
왜냐고?
그건 당신들이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사족 하나. 사실 문학이, 소설이 처음 생겨났을 때, 문학이란 이래야 해 혹은 소설은 이런 것이어야 해 라고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문학이나 소설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찾아헤매는 후대의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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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의 낭만적 딜레마
마야 스토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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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한 자들은 사랑을 하지 않는가? 그럴리가....

그런데 이상하다. 강해보이는 사람들...능력있고 자신의 일뿐 아니라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나갈 것 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남자들을 보면 ...영 마초같은 남자.....그런 아니러니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융학파의 분석심리가로 자신의 상담케이스를 통해 만났던 강한 여자의 심리 분석을  그림형제의 동화 <손없는 아가씨>를 통해 이끌어나간다. 무의식의 원형들인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림자를 통해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원인들을 제시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 숨어있는 연약한 소녀를 극복한 후 완전한 자기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장기에 완벽한 부성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잘못된 부성관을 가지게 됨으로써 자신의 아니무스를 그릇된 방향으로 발전시키게 되고 이것이 어른이 된 후에도 올바르지 못한 사람에게 이끌리는 이유가 된다는....

어떻게 생각하면 뻔한 이야기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솔깃할 정도로 먹혀들게 글은 매끄럽게 쓰여있다. 굳이 융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한 사람의 이성을 만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완전한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릴케였던가?

꼭 사랑뿐만은 아닐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것은 '내 자신의 정립'이다.

어쩌면 '나'와 '너'와의 관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날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속의 소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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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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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개는 말할 것도 없고'과 함께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옥스포드 시리즈라고 한다.
무려 5년에 걸친 자료 조사끝에 완성했다는 덧글처럼 중세의 한 마을의 생활상에 관한 그녀의 서술을 읽고 있노라면 얼마나 생생한지 정말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코니 윌리스가 시간여행을 주제로 하는 sf작가군에 들고 수상 경력이 화려함에 비하면 그녀의 주제가 너무 일상적인 역사상의 이야기에만 한정되어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나름대로 경쾌했었다.
그렉 이건이나 테드 창 등의 진지한 '의식의 확산(번역자 김상훈님의 말마따나)'을 경험하고 난 후에 코니 윌리스의 책을 읽는 것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줄 것이라 생각해서 고른 책이었는데....

수다의 여왕답게 2054년(마치 책이 쓰였던 1992년 영국의 일상을 보는 듯 하지만)이라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부분은 많은 부분이 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 외엔 생각하지 않으며 주고받는 대화들을 읽고 있으면 끊임없이 자신에 관한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현대인의 일상을 그대로 그려내는 듯 싶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대화를 읽고 있으면 머리가 어찔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확연하게 느껴져 암담하기까지 하다.
인플루엔자의 발병원인은 금방 드러날 듯 하면서 드러나지 않으며 키브린이 잘못된 시대에 강하를 하게 된 것 또한 밝혀질 듯 하면서 밝혀지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엔 키블린을 구하려는 로슈신부나 던워디 교수, 그리고 자신 역시 애정 결핍이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되기 위해 뛰어다니는 어린 소년 콜린의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는 긍정적인 세상을 암시함으로써 작가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간여행을 주제로 하는 그녀의 원칙이 '인과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주인공들은 그 시대의 상황에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하더라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났던 역사연구가들의 의식의 변화가 미래의 사건이나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고려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면 그녀는 한 인간의 사고의 변화쯤은 전 지구적인, 아니 전 우주적인 사건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 사람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서로 연결된 인간의식의 한 부분으로써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과거로의 강하를 경험했던 역사연구가들의 의식의 전환이 미래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기본 구조로 삼은 책이 한 권쯤은 나와준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과학적 기술이 발전한 2054년에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과의 연결에 전화라는 매체를 사용한다는 점. 그녀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일까? 아니면 그런 설정을 함으로써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기위한 현대인의 노력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은 번번이 좌절되는 상활을 그려내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였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거의 800페이지에 이르는 그녀의 책은 정말 더디게 읽힌다.
특히 소통되지도 않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건너뛰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지루함이 결말로 치닫기 위한 그녀의 전략이라면야.......감수해야겠지.

*둠즈데이북의 열렬한 팬들이 속편을 희망했고 그것이 '개는 말할 것도 없고..'라고 하니 둠즈데이북을 먼저 읽는 편이 나았을까?

*별 넷(대화의 기술에 들인 그녀의 노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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