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화재감시원', '개는 말할 것도 없고'과 함께 코니 윌리스의 시간여행 옥스포드 시리즈라고 한다.
무려 5년에 걸친 자료 조사끝에 완성했다는 덧글처럼 중세의 한 마을의 생활상에 관한 그녀의 서술을 읽고 있노라면 얼마나 생생한지 정말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코니 윌리스가 시간여행을 주제로 하는 sf작가군에 들고 수상 경력이 화려함에 비하면 그녀의 주제가 너무 일상적인 역사상의 이야기에만 한정되어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나름대로 경쾌했었다.
그렉 이건이나 테드 창 등의 진지한 '의식의 확산(번역자 김상훈님의 말마따나)'을 경험하고 난 후에 코니 윌리스의 책을 읽는 것은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줄 것이라 생각해서 고른 책이었는데....

수다의 여왕답게 2054년(마치 책이 쓰였던 1992년 영국의 일상을 보는 듯 하지만)이라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부분은 많은 부분이 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 외엔 생각하지 않으며 주고받는 대화들을 읽고 있으면 끊임없이 자신에 관한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현대인의 일상을 그대로 그려내는 듯 싶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대화를 읽고 있으면 머리가 어찔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확연하게 느껴져 암담하기까지 하다.
인플루엔자의 발병원인은 금방 드러날 듯 하면서 드러나지 않으며 키브린이 잘못된 시대에 강하를 하게 된 것 또한 밝혀질 듯 하면서 밝혀지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엔 키블린을 구하려는 로슈신부나 던워디 교수, 그리고 자신 역시 애정 결핍이면서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이 되기 위해 뛰어다니는 어린 소년 콜린의 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는 긍정적인 세상을 암시함으로써 작가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간여행을 주제로 하는 그녀의 원칙이 '인과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주인공들은 그 시대의 상황에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상황에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하더라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났던 역사연구가들의 의식의 변화가 미래의 사건이나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고려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면 그녀는 한 인간의 사고의 변화쯤은 전 지구적인, 아니 전 우주적인 사건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 사람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서로 연결된 인간의식의 한 부분으로써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과거로의 강하를 경험했던 역사연구가들의 의식의 전환이 미래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기본 구조로 삼은 책이 한 권쯤은 나와준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과학적 기술이 발전한 2054년에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과의 연결에 전화라는 매체를 사용한다는 점. 그녀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일까? 아니면 그런 설정을 함으로써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기위한 현대인의 노력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은 번번이 좌절되는 상활을 그려내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였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거의 800페이지에 이르는 그녀의 책은 정말 더디게 읽힌다.
특히 소통되지도 않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건너뛰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그 지루함이 결말로 치닫기 위한 그녀의 전략이라면야.......감수해야겠지.

*둠즈데이북의 열렬한 팬들이 속편을 희망했고 그것이 '개는 말할 것도 없고..'라고 하니 둠즈데이북을 먼저 읽는 편이 나았을까?

*별 넷(대화의 기술에 들인 그녀의 노력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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