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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음...솔직히 이 재기발랄한 책을
뭉뚱그려서 내용을 간단하게 전개하거나
소설기법을 설명하거나 하는 식으로
누군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를 독자에게
억울한 훈수가 될 것이 분명한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근래에 내가 자주 받고 있던 '기억은 부재중' 메시지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끔 만드는
올리버의 기억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올리버다. 난 중요한 것은 다 기억한다. 기억력의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마흔이 넘은 사람들 대개가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다거나, 생각만큼 좋지 않다고 구시렁댄다. 솔직히 그건 이상할게 하나 없다. 사람들이 쓰레기같이 너절한 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는걸 보면 솔직히 보기 딱하다. 흔하디 흔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 50억 개의 운동경기 결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얼굴, 텔레비젼 연속극 줄거리, 카펫에 생긴 적포도주 얼룩을 지우는 방법, 국회의원 이름, 이 따위 시시한 것들로 가득 찬 기괴한 머릿속을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웃기는 허영인가.
우리 기억장치가, 걸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어느 기차역에서 시시한 소지품이나 맡았다가 돌려주는 수화물 보관원이라고 생각해 보라. 자, 당신은 그 보관원에게 무엇을 맡기려 하는가.
돈도 몇 푼 안 주고!
또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러니 근무시간 절반쯤은 카운터에 사람이 없는게 당연하다. 블라 블라~
오늘 서가 정리를 하다 발견한 이 책을 청소하다 말고 쭈그리고 앉아 정신없이 읽어넘기면서 얼마나 낄낄대고 웃었는지 모르겠다.
줄리언 반즈에 대한 영국평론가들의 비평은 정당하다.
그가 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너무 젊은 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했더라면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생각과 관점이 서로 다른 세 사람, 스튜어트, 질리언, 올리버가 끊임없이 나를 향해 조잘대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아침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올리버의 지론대로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잊을 것이다.
그저 읽는동안 재미있었었던 책 쯤으로만 기억하리라.
이 책의 내용을, 소설기법을 기억하는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하라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