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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 가족만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한 당신을 위한 생존 심리학
유드 세메리아 지음, 이선민 옮김 / 생각의길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음식 메뉴를 쉽사리 정하지 못하고, 본인 만의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부모와 의논하는 사람. 인생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거나, 성인이 되어서도 술, 도박, 중독 등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며 부모 탓만 하는 사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 가족 중 혹은 주변에 이런 사람들 한두 명 정도는 꼭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의존적 성인'이라 명명하며, 그들의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해 함께 고통받는 가족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프랑스 심리치료사 유드 세메리아 저자의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는 이러한 의존적 성인으로 인한 '의존적 관계', '의존적 괴롭힘', '의존적 갈등' 등을 살펴보며 원인과 해결 방법을 '실존주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살펴본다.
'나는 누구인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존재
흔들림의 근본을 보는 실존주의 심리학
저자는 이러한 ‘의존’의 근본 원인을 ‘실존주의 심리학’을 근간으로 한 진단을 시도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불안과 심리적 고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데, 인간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아래 네 가지로 분류된다.
1. 죽음과 비존재: 인간의 삶이란 유한하며, 누구라도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에 공포감을 느낀다.
2. 실존적 고립: 인간은 누구나 혼자 왔다 혼자 간다. 아무도 나와 모든 것을 같이 할 수 없는 고립된 존재다.
3. 삶의 무의미성: 이 세상의 의미,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스스로 답을 해야 한다.
4. 자유와 책임: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죽음, 고립, 삶의 무의미성 등의 문제를 마주하다 보면 인간은 불가피하게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고,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종교에 매달리거나, 자아에 관한 질문을, 책임을 거부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난다.
타인에게 의존하며 불안을 해소하는
의존적 성인의 방어기제
이런 실존적 물음에 직면한 성인은 타인과의 의존적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실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 독립된 인격체가 되고, 타인에게서 분리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 (P 114)' 한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성장하지 않고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며 부모 권위에 복종하는 '성장 거부', 자기를 폄하하고 매사에 한 발 뒤로 물러나 타인의 지배를 받으려 하는 '자기 제거', 행동을 회피하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모든 일을 미루는 '행동 거부', 그리고 정서적 욕구불만, 시기심, 이별 거부 등으로 나타나는 '분리 거부'까지 네 가지 정도로 규정된다.
그들 옆에서 괴로운 당신,
'조력자' 역할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때
의존적 성인이 있으면, 그들이 기대는 '대상' 있기 마련이다. 책에서는 이들을 '조력자'라 명명한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 같은 '의존적 성인'을 보살펴 주고, 그들 대신 결정을 내려주며,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는 이들은 '내가 없으면 안 돼'라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역할을 감내해 낸다.
여기서 핵심은 조력자 역시 의존적 관계에 매달리고 있다는 거다. 책은 '결국 지목된 조력자 또한, 스스로 깨닫지 못하지만 분리 및 유기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정서적 의존성이 높은 어른 (P276)'이라고 말한다.
결국 함정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목된 조력자가 의존적 괴롭힘의 상황에서 진정 벗어나고 싶다면, 조력자 스스로가 자신이 도와주려는 가족과 어느 정도로 의존적 결합을 바라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P 277)
'그 건 너의 선택이야'라고 말하세요.
책에서 소개된 한 사례에서, A는 늘 형의 자해 협박에 시달린다. '뛰어내리려고 옥상에 올라왔으니 빨리 날 보러 와라'라는 식이다. 늘 형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형이 잘 못되면 스스로의 잘 못이라고 자책하며 괴로운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던 동생은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그건 형의 선택이야'라고 말하는데 성공한다.
의존적 관계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을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선택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문제를 스스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인 간의 적절한 거리를 두며 '온전한 개인'으로 설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일 것이다.
실존주의 심리치료를 통해 이끌어내는 변화의 궁극적이고도 당연한 목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내'가 되는 것입니다. (P 285)
의존적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나 자신과 의존적 가족 사이에, 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P 2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