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부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5
M. C. 비턴 지음, 문은실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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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한테 너무 매달려요. 내 말은, 감정적으로 말입니다. 그녀가 옆에 없을 때도 들러붙는 그녀의 존재가 느껴진다니까요. 나한테 빠져 있어요.... 지금 당분간은 그렇다는 거죠. 그녀는 끊임없이 숙주를 찾으며 걸어 다니는 기생충이에요.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죽음 시리즈 다섯 번째는 매춘부의 죽음이다.

 

이번에 해미시는 로흐두가 아닌 스트래스베인에 있다.

블레어 경감이 해미시를 불러들이고 로흐두의 경찰서를 폐쇄 조치 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미시가 없는 틈에 로흐두에 이사 온 백만장자 매기 베어드 여사를 주축으로 로흐두 마을 사람들은 해미시를 데려오기 위한 범죄를 만들어 내는 범죄 조작단을 조직한다.

 

끊임없이 자잘한 사건이 일어나는 로흐두.

이웃 마을 맥그리거 경 경사는 로흐두로 출장 다니는 것보다 베어드 여사를 상대하는 것이 더 괴롭다.

그래서 총경에게 로흐두에 범죄가 일어 순경이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때마침 해미시는 견딜 수 없었던 새 파트너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오는 길이다.

 

로흐두로 귀환한 해미시를 기다리고 있는 건 매기 베어드 여사와 그녀의 조카 엘리슨.

그리고 프리실라였다.

프리실라와의 관계는 전편에서 해미시가 마음을 접은 뒤로 소원해진 사이.

게다가 엘리슨이 은근 해미시에게 추파를 던지고, 베어드 여사는 마을의 좌지우지하려고 벼르고 있는 터.

돌아왔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해미시.

 

아니나 다를까 베어드 여사가 자신의 완벽한 변신을 위해 마을을 잠시 떠난 이후

운전면허증을 딴다는 구실로 엘리슨은 해미시에게 운전연습을 부탁하고, 마을에선 해미시와 엘리슨이 사귄다는 소문이 무성해진다.

이 와중에 프리실라는 엘리슨에게 질투를 느끼고, 그걸 알아챈 엘리슨은 교묘하게 해미시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프리실라를 견제한다.

 

사건은 없지만 뭔지 모르게 불안불안한 이 로흐두의 분위기는 베어드 여사가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화려한 옛날의 미모를 되찾은 베어드 여사는 예전에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들을 신랑감 후보로 초대한다.

자신이랑 결혼하면 부자가 될 것이고, 게다가 자신이 심장이 약해서 그리 오래 살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신랑 후보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동시에 엘리슨 앞으로 만들어 놓은 유언장은 효력을 잃게 생겼다.

배신감을 느낀 엘리슨과 호시탐탐 베어드의 돈을 노리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 4명의 신사들.

 

베어드 여사는 과거에 매춘부였다.

돈 많은 남자들과 사귀며 그들의 재산을 야금야금 갈취했다.

그녀가 불러들인 4명의 남자들은 예전에 진짜로 베어드 여사를 사랑해줬던 사람들이었다.

은혜라도 갚으려는 걸까?

베어드 여사가 잠시 마을을 떠났을 때 그녀의 회고록을 열심히 타이핑했던 엘리슨은 그녀의 역겨운 과거지사를 알게 되고, 젊은 나이에 암 투병을 하느라 시들어버린 자신을 가여워한다.

그런 그녀 곁엔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엘리슨은 엄마처럼 보살펴주는 토드 여사가 있다.

마을에 홀로 사는 토드 여사는 해미시를 엄청 싫어한다.

 

이렇게 이상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여 있던 그 집에서 어느 날 베어드 여사가 자신이 아끼는 차 안에서 불타는 시체가 되어 버린다.

엘리슨이 보고 있는 앞에서.

 

다들 베어드 여사가 심장이 안 좋았다는 사실을 내세워 단순 사고로 마무리 지으려 하지만

묘하게 살인의 냄새를 잘 맡는 해미시는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트래스베인에선 블러에 경감 대신 젊고 유능한 경감이 사건을 조사하러 온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상관을 만났다는 생각도 잠시, 블레어 보다 훨씬 교묘하게 해미시를 무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로써 블레어보다 더 해미시를 냉대하는 이언 도나티 경감.

과연 해미시는 이 새로운 강적을 만나서 어떻게 자신과 로흐두를 지킬 것인가!

 

매춘부의 죽음은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다.

이번 편에서는 해미시에게 자리 변동이 있었고, 프리실라와의 관계가 대등해졌고, 그렇게 해미시를 멸시하던 프리실라의 아버지 할버턴스마이스 대령에게 최초로 눈도장을 찍기도 해서 여러모로 변화의 태동을 알리는 계기가 되는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 어떤 상황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이 해미시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치가 자꾸 높아지는 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절대 이런 사람이라고 가늠할 수 없는 해미시 맥베스.

정의로우면서도 불법적인 것도 용납하고, 스스로도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남모르게 해치우는 이 묘한 캐릭터에 대한 무한 응원의 마음이 이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이중적인 잣대를 해미시가 너무나 당연하게 잘 소화시켜서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 편에서는 프리실라와의 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해서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진정한 연애담이 꽃 피우길 바라는 마음이다.

양파껍질 벗기듯 한꺼풀씩 벗겨지는 해미시의 매력이 시리즈마다 더해지는 이 코지 미스터리 소설이 점점 사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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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0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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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고 있지만 만화영화로만 봤지 원작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 고전이다.

작은 아씨들.

마치가 네 자매의 이야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으로 읽는 이 이야기는 중간중간 뜬금없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서로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나이 보다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씩씩해 보이기도 하면서 계몽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터에 가 있는 아버지를 그리며 어머니와 하녀 한나 네 자매는 꿋꿋하게 서로를 위해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어린 아가씨들은 모두 제각각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

메그는 가정교사로 이웃집 아이들을 가르치고, 조는 마치 할머니의 말동무로 용돈을 번다.

베스는 집안일을 돕고, 에이미는 막내지만 자신의 일은 야무지게 해낸다.

빈둥거리며 엄마가 모든 걸 다 해주는 시대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가난하지만 자존감 있는 이 자매들은 이웃집에 사는 부잣집 도련님 로리와 이웃사촌으로서 우정을 키워가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가며 성장한다.

자매들의 성격 묘사가 실제 자매들과 비슷해서 나는 어릴 때 메그에게 많은 공감을 했고, 조랑 똑같은 동생 때문에 골치를 앓았고, 베스와는 딴판인 셋째 동생의 성격을 보며 베스 같은 동생이 있기를 바랐다.

사랑은 두려움을 날려 버리고 감사함은 자존심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 로리의 할아버지와 베스의 우정이 잃어버린 손녀딸을 그리는 노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세심한 소녀의 배려로부터 이루어졌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고집 센 노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다정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은 불통 시대에 베스처럼 상대방의 진심을 알아주고 받아주는 마음이 결국은 소통의 끈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천방지축 조가 머리칼을 잘라서 25달러를 마련해 온 대목에서는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언제나 웃음과 감동을 주는 조의 이야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에는 몰랐는데 마치 여사의 가르침은 참 인내심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그려졌다.

화를 내는 적도 없고, 아이들의 고민거리마다 적절한 훈계와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는 대화법이 나조차도 숙연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과연 나는 마치 부인처럼 고상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상상해봤지만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는 걸 알게 될 뿐이었다.

자만심은 훌륭한 사람도 망치고 마는 법이니까. 진정한 재능이나 장점은 오랫동안 묻혀 있지 않아. 또 설령 아무도 몰라 준다 해도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제대로 발휘한다면 만족을 얻을 수 있단다. 겸손만큼 값진 것은 없는 법이야.

 

 

적당한 결핍이 오히려 자잘한 즐거움과 사랑을 더해 주기도 하는 법이거든.

나는 메그가 검소하게 시작하면 좋겠구나. 엄마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며, 한 남자의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자인 데다 그건 어떤 재산보다도 값진 것이니까 말이야.

 

 

과연 현실에서도 저렇게 말해주는 엄마가 있을까?

그렇다면 다들 섶을 지고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삶을 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참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읽으면서 내내.

고전은 역시 고전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이 가르침은 온당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부와 명성을 좇다 보면 결국 개인의 행복은 희생되기 마련이다.

그 희생은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희생을 갈구하게 되고, 악순환은 되풀이 되게 마련이다.

사랑 없는 부모에게 사랑 없는 자식들이 생겨나게 마련이고 그 자식들이 이룬 사회는 애정이 결핍된 사회로서 개인의 행복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사랑과 믿음은 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습득하지 못한 사랑과 믿음과 행복에 대한 것들이 왜곡되어 가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이 고전이 새삼 가슴에 남겨두는 따스한 감정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가족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워싱턴을 아무리 뒤져 봐도 우리 착한 딸이 아빠한테 보내 준 25달러로 살 수 있을 만큼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은 찾을 수가 없더구나.

 

 

 

딸이 머리칼을 잘라 마련한 25달라를 받아 쥔 아빠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럼에도 이렇게 다정한 말로 고마움과 사랑을 전할 수 있다니 아름다울 수밖에.

마치 할머니처럼 속과 다른 말을 내뱉는 어른도 있고, 로렌스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수 있는 어른도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됐다.

어른이랍시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이겨먹으려고만 하면 스스로 단절을 가져온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김지혁 일러스트의 아름다운 그림이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즐거웠다.

그녀들의 가르침을 어른이 된 지금에도 계속해서 상기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사랑하고, 상처 주었으면 바로 사과하고, 가족에게서 나온 힘으로 세상을 좀 더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곧 영화도 개봉된다 하니 그 영화도 봐야겠다.

원작과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줄 테니.

고전은 읽을수록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니 책 읽을 맛이 나는 시리즈다.

작은 아씨들.

이 네 자매의 후속편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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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고양이
모자쿠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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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내게 요란하게(?) 다가온 고양이가 있다.

잔소리 고양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잔소리들의 폭격.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낄낄 거리게 된다.

고양이가 강아지 보다 귀엽고 다정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컴퓨터 화면을 얼마나 계속 보고 있는 거야?

벌써 한참 지나지 않았어?

그러다 점점 눈 나빠진다!!

가끔은 멀리 보고 그러라고!!



 

꼭 그거 사야 해?

전에도 비슷한 거 샀잖아?

또 충동구매?!

쓸데없는 소비 줄이자고 말했잖아!!

 

 

 

4컷 만화에 담긴 끝이 없는 잔소리가

나중엔 애정의 척도로 느껴진다.

게다가 단순한 모습에 표정이 잔소리 모드인 이 고양이가 화를 내고, 야단치고, 어르고 달래주는 모습이 예전 엄마한테 듣던 소리나 동생들한테 듣던 소리라 자꾸 그 시절이 생각나서 뭉클했다.


잔소리라는 게 듣기는 귀찮지만

근본적으로 애정이 깔려 있기에 마음에 남는 게 사실이다.

잔소리하던 사람이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애정이 식었다는 뜻이니까.


이 책은 나의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은 책이다.

고양이의 잔소리가 귀엽게 느껴지고 너무 잘 어울려서 내게 있던 무서움이 사라지는 중이다.


트위터에 올렸던 4컷 만화가 입소문을 타고 책으로 새로 태어났다.

세상 어디에서건 공통으로 쓰이는 잔소리가 고양이의 입에서 나오니 더 실감 나는 이유가 뭘까?


잔소리에는 나를 위한 애정이 담겨 있음으로

잔소리 고양이를 보다 보면 덜 외로워진다.

누구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잔소리.

그 잔소리의 진수를 고양이가 말해준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님들에게도

나처럼 고양이가 무서웠던 사람에게도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해줄 사람이 곁에 없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그리움을 달래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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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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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분명히 예전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




준은 소심하고,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집을 알아보러 갔다가 강도를 만나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는다.

병원에서 깨어난 준은 점점 회복되어 가는 와중에 자신이 뇌 이식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을 목숨을 극비리에 진행된 뇌 이식으로 살려낸 도겐 박사와 다치바나와 와카오 두 조수가 그를 보살핀다.

회복이 잘 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준.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과격해진 자신의 성격으로 회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메구미에게도 예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내 마음은 변하고 있다. 이건 분명하다.

메구미, 너를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간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 준은 뇌 이식을 할 때 자신에게 뇌를 기증해준 기증자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기증자의 성격은 예전의 준과 거의 비슷한 성격이었다.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성격변화와 과격한 공격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뇌 이식.

간이나 심장과 같이 뇌도 이식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뇌를 이식받은 사람?

뇌를 기증한 사람?


다른 사람의 뇌를 기증받아 목숨은 살았지만 점점 기증자의 성격과 행동을 갖게 되는 준.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는 준은 자신이 다중인격을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도 동료들의 무능함을 비웃고, 싸움이라도 나면 죽일 듯이 덤비고, 사소한 시비에서 살의를 느끼는 자신을 점점 제어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준은 메구미의 사랑마저도 거절한다.


이 뇌 이식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이 있다.

준의 존재를 감추고 그를 실험실의 도구로 생각하는 그들은 준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받고 그를 죽이려 한다.

실패한 실험용 쥐는 살처분하는 게 그들에겐 당연한 이야기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도겐 박사.

그의 변화를 눈치채고 떠난 메구미.

그를 도와주는 척 접근해서 그에게서 정보를 빼가려는 다치바나.

준은 결국 자신에게 뇌를 기증해준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고, 자신을 지배하려는 그와 담판을 짓기로 한다.


획기적인 기술의 성공은 좋았지만, 그에 걸맞은 윤리의식과 사후 방비가 없었던 것에서 참극이 일어난다.

뇌는 생각을 관장하는 곳이다.

우리 몸 여기저기에 이러이러해라라고 명령을 내리는 곳이다.

그래서 단순 기능만 하는 콩팥이나 간과는 다르다.


도겐 박사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을 등한시했다.

그로 인해 준의 목숨은 살렸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의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이 뇌 이식 이야기는 어쩜 조만간 이루어질 근미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미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도 모른다.


근데 도겐처럼 생각하는 의사 때문에 준과 같은 희생자가 생긴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기증자의 뇌가 이식자의 뇌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이 이야기는 섬뜩하다.

하이드와 헐크처럼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 본래의 자신은 사라지고 기증자의 살의만 남는 준.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준은 살인자의 인격과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노화와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단지 젊게 오래 살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도겐 박사가 저지른 일은 분명 그런 문제의식 없이 자신의 연구성과만을 생각하며 일처리를 했기에 벌어진 참상이었다.

이야기처럼 뇌 이식도 가능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과연. 뇌라는 복잡한 기능을 가진 조직을 그렇게 떼어서 이어 붙여도 되는 걸까?

인간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뇌가 다른 뇌와 접합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이 이야기처럼 더 강하고 더 과격한 성질을 가진 뇌가 득세한다면 한 사람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는 걸까?


생각할수록 섬뜩한 소재다.

준의 선택만이 답이라면 뇌 이식에 관한 연구가 발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1991년에 발표한 작품이라니 게이고의 앞서가는 상상력이 더 돋보인다.


노화를 막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결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지는 않는 거 같다.

자연 그대로. 그렇게 살고 싶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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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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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은 모든 사람의

귀와 눈을 멀게 한다.

특히 누군가를

죽게 했을 땐.

 

 

 

 

형이 살해당했다.

나는 울지 않는다.

우는 건 룰에 맞지 않으니까.

대신 나는 형이 숨겨둔 총을 꺼내 베개 밑에 넣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대로 갚아주는 것이 이 동네의 룰이다.

나는 누가 형을 죽였는지 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익숙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다.

완벽한 스릴러이거나 범죄소설을 기대했던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처럼, 음악처럼, 광고 카피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형식이지?라고 되뇌며 읽어가는 동안 점점 가슴이 묵직해진다.

최소한의 서사와 최소한의 글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만큼 강렬하고, 그만큼 애절하다.

 

 

형이 숨겨둔 총을 허리춤에 감추고 윌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가 L 층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은 60초.

그 60초 동안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한 명씩 사람을 태운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라져간 사람들이 윌에게 말을 건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거리.

그 거리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이 층층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한 사람 한 사람씩 탄다.

어릴 적 친구, 동네 형, 삼촌, 아빠. 그리고... 숀.

윌의 형 숀.

어제 총에 맞은 숀.

가슴이 뻥 뚫린 숀은 윌을 보고 운다.

 

 

그들은 내리 그렇게 살아왔다.

서로의 가슴에 구멍을 내며.

때로는 잘 못된 구멍이 새로운 복수를 낳기도 했다.

경찰도 법도 그들의 방식이 아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뿐.

 

 

윌도 그 길을 가려 한다.

내 형을 쏜 자는 형의 친구였다.

그저 갱단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 친구를 쏘았다.

형은 단지 비누를 사러 갔을 뿐이었다.

가려움에 긁어대서 짓물러진 엄마의 손에 그 비누가 약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일들이 운명을 갈라 놓는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윌에게 모두 무언가를 보여준다.

윌이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을 그들은 이미 지나갔다.

 

 

"안 와?"

 

 

친숙한 이 말이 가슴을 친다.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윌이 윌의 길을 갔기를.

윌이 가슴에 구멍 난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기를.

 

 

하지만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작가는 우리가 생각하게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하도록 두었다.

 

 

누군가는 비난을 감수하며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일생을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손가락질이라도 분명 정의롭지 못한 것이니 이겨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는 용기 있는 자만이 끊어낼 수 있다.

 

 

윌에게 그 용기가 생겼기를 바란다.

 

 

강렬함이 내 안으로 쏟아진다.

시로 쓴 소설은 더 많은 감정을 가지게 했다.

 

 

이 새로움을 새해에 알리고 싶었다.

앉은 자리에서 30분도 안되는 시간에 읽어 버릴 이야기지만.

절대 그렇게 읽고 끝내지지 않는 이야기다.

 

 

어두운 거리의 희망은 스스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선택의 이야기다.

나에게 주어진 길에서 빤한 길을 갈 것인지, 다른 길을 갈 것인지.

어린 소년도 선택해야 하는 길이 있다.

 

 

어려운 고비에 설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이 있었지만 같이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

그리고 같은 길을 갈 거라 믿었던 어린 소년의 선택에 대해.

 

 

아픈 영화 한 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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