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오겠지.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이  바로 저 문장이 아닐까.


1년간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사와자키는 비어있는 사무실에 노숙자가 진을 치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그 노숙자는 사와자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의뢰인 대신.


십여 년 전에 고시엔 야구 결승에서 승부조작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우오즈미 아키라는 그 당시에 자살한 누나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사와자키에게 의뢰를 한다.

자살로 마무리된 사건을 그것도 십여 년이 지나서?

사와자키는 무슨 수로 이 사건을 풀어낼까?






"살인이라는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자살이라고 주장한 세 가지 증언 모두 모호한 것이 되고 말았어."


책을 읽는 내내 뿌연 안갯속에서 흐릿한 빛을 내는 가로등 아래 홀로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이야기 내내 나는 뿌연 안개가 뿌려대는 밤거리를 걷는 기분이었다.

사와자키의 담배 연기 탓일까?


하라 료의 글엔 트릭이 없는 거 같다. 그저 묵묵히 진실을 향해 가는 발걸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하라 료의 인물들에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써 내려가지 않아도 그 자체로 품고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느끼기에 그 어떤 인물도 미워할 수 없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지지 않는 게 하라 료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매력이다.



천인공노할 소재이지만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저 이해가 될 뿐.

그게 인간 아니겠나.. 하는 이 달관된 느낌은 오로지 사와자키 탐정 이야기에서만 통용된다.


죽을 고비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건달들이 도와주고

그를 닦달하는 형사마저도 그를 어쩌지 못하는 것은 사와자키만이 가지고 있는 뚝심을 그들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억 엔을 가지고 도망친 그의 동료 와타나베마저도 그가 자신을 찾을 거라는 걸 알았겠지.

그렇기에 건달들도 형사도 사와자키를 닦달하면서도 지켜보는 것이다.


오래된 비밀

아무도 들춰지길 바라지 않았던 비밀

어쩔 수가 없었던 상황들

그것들에 발을 들인 사와자키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탐정의 느낌을 오롯이 가지고 있다.

진지한 탐정, 잔재주를 부려도 밉지 않고, 듬직한 형사 같은 탐정 사와자키.



나는 <안녕, 긴 잠이여>의 모든 페이지를 다 읽었다.

그러길 잘했다.

하라 료는 마지막에 초단편 이야기를 심어 두었다.

폐암에 걸린 사와자키가 계속 담배를 피워대는 장면에서 나는 순간 아찔했다.

이렇게 깜찍한 초단편을 숨겨 놓은 하라 료의 글을 놓치면 안 된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작가의 두 편의 후기, 번역가의 두 편의 후기가 있다.

그것마저 읽어야 이 이야기를 끝냈다고 할 수 있다.


번역가님 말씀처럼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권을 집필하다 가신 하라 료 작가님의 뜻을 이어 마지막 권이 출간되기를 바랄뿐이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는 다른 탐정이나 형사 시리즈에서 갖지 못한 분위기가 있다.

해리 보슈와, 해리 홀레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탐정 사와자키만의 묘한 매력.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안녕 긴 잠이여>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