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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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짐이 된다는 이유로

잠시나마 내 책들을 헌책방에 팔아넘기려고 했던 사실,

그리고 이 책을 꽤 오랜시간 고민하다 구입하게 된 사실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책에 대한, 심지어는 활자로 찍혀 나온 것들에 대한

걱정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내 집착이

이 책을 읽고나서 정당화되는 기분이다.

그리고 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껴안은 듯한 느낌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듯이

 책을 사랑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님을 깨달았다. " p.64

 

물론이다. 그리고 자기 방식을 남에게 강요해서도 안된다.

예전에 나는 책을 아주 깨끗하게 봤다.

그리고 아직은 책에 대한 그런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듯도 하다.

그러다가 내 친구 m양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준

책 몇 권을 읽게 됐다.

그 책들에는 누군가의 헌사 뿐만 아니라 밑줄, 자기 생각,

어떤 때는 책하고 아무 관련없는 메모도 적혀 있었다.

그걸 보고 난 그 책의 정체성을 발견했다.

그건 'm양의' 책이었다.

이제 내 책장에 꽂기 위해

난 그 밑줄에다 덧칠을 하고 새 메모를 덧붙여 내 것으로 만들었다.

두 사람의 손때가 묻고 책 가운데가 쩍 갈라진 그 책이

이제는 내 소유라는 사실이 뿌듯하다. 

책을 그렇게 '내 것'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내 흔적이 남은 책들은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다.

 

" 전자제품에 비유하자면,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는 것은 '멈춤'

단추를 누르는 것이고, 책을 펼친 채로 엎어놓는 곳은 '일시정지'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 " p.66

 

저 글이 적혀 있는 책장의 여백에 스마일을 그려 넣었다.

내 주변의 사려깊은 누군가가 날 위한답시고

나 대신 펼쳐놓은 책으르 덮어주는 건 너무너무 싫다.

읽고 있던 책과 나 사이에 그렇게 불쑥 끼어드는 짓은

아무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 p.93

 

작가가 최고로 꼽는 헌사이다.

이 책의 작가 만큼 그녀의 남편도 책벌레인데,

저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남편도 저렇길 빌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과도한 내 집착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먼 미래에 사다리까지 갖춘 서재를 갖겠다는 내 꿈을

격려해주는 것만으로도 난 내 남편에게 감사한다.

참, 책을 팔지 말라고 끝까지 말린 것도 남편이었다.

 

" 나처럼 책을 사랑하여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비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 p.96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너무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누군가 이미 다 한 이야기다. " p.148

 

가끔 글을 쓰고 싶다고 느끼다가도

슬며시 손을 놓아버리는 내가

가장 잘 하는 변명이다.

쓸 이야기가 없어. 누군가가 다 써버렸기 때문에. ㅋㅋㅋ

 

"장서를 흩어놓는 것이 꼭 시신을 화장해 바람에 뿌리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책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다른 책들과 공

존할 때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 그 맥락을 잃어버리면 의미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 p.208

 

내 아이들이 먼 미래에 엄마의 서재를 보면서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고, 뭘 좋아하고 사랑했는지

내 책들을 통해 알게 되길 바란다.

그 책 속에는 스무 살의 엄마, 서른 살의 엄마, 엄마가 된 후의 엄마가 있을 것이며,  

가족을 떼어놓은 상태의 온전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난 서재를 갖고 싶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아버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늦게 퇴근하시는 날이면, 자는 내 머리맡에 책을 사 놓으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야기 명심보감', '어린이 삼강오륜'

이런 책들이 베개 위에 단정히 앉아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다소 지루한 책일지 몰라도

그때의 백지같은 내 상태에서는 그 내용들을 쏙쏙 빨아들였다.

 

초등학생 때의 어느 해 생일에

아버지는 우리를 서점에 데려가서

갖고 싶은 만큼 책을 고르게 해주셨다.

당시 책이 2500원쯤 할 때, 나는 10만원 넘게 책들을 골랐고,

서점주인 아저씨가 덤으로 '몽실언니'를 준 기억이 난다.

(그 때 산 책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몽실언니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늙으신 아버지를 위해 내가 책 선물을 드린다.

아버지는 책을 받으시면 속지에다

날짜와 누가 준 선물인지를 꼭 기록하시고,

책 중간중간에 메모도 하신다.

피는 못 속이나 보다. ^^

 

책을 팔지 않기로 했다.

죄책감 없이 책에 낙서를 해댈 것이고, 헌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래의 내 서재는 요새 유행하는 거실 서재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서재가 아닐 것이다.

오로지 책과 책읽는 사람만을 위한

편안한 공간으로 꾸밀 생각이다.

일회용 책이라는 건 없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란 것도 없다. 적어도 내게는.

 

남편이 활자중독자라고 부르는 나는

정 읽을 게 없으면 내가 활자를 만들어내서 읽고야 만다.

살아있는 동안 적어도 책 만큼은 내 맘대로 사랑하며 살고 싶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노쇠하더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눈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손가락 하나쯤은

무사하게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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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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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번 리뷰는, 이 소설책 두 권의 두께만큼이나 길어질지도 모른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 뭔가 개운치 않으면서도

그게 썩 기분나쁜 것만은 아닌, 그런 뒤끝을 남기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을 알게 된 경위도,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이 책을 주문해서 손에 넣었다는 사실도 좀 우습다.

오빠의 영어선생님(캐나다인이라나?)이 이 책을 소개했다고 한다.

원래 소설제목이지만, 그 소설이 너무나 유명해져서

결국 보통명사화 되어 사전에 올라갔다고.

catch-22는 딜레마, 진퇴양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소설의 분량을 보고는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1권의 앞 부분을 읽는 일은 진심으로 고역이었다.

주인공들이 다 미쳐버린 듯 했고, 상황도 미친 듯 돌아가고,

오죽하면 소설가 안정효씨가 번역을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했더랬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탈리아의 작은 섬, 피아노사가 소설의 배경이다. 피아노사의 공군부대에서는 출격 횟수를 40회, 50회, .. 늘려가면서 군인들을 귀향시키지 않는다.

캐치-22라는 조항 때문인데, 미치지 않는 한 전역할 수 없다는 조항이란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미쳤다면 미쳤다고 판단할 수 없으므로 여전히 복무해야만 한다. 내가 미쳤으니 집으로 보내줘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몇몇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부자 아버지를 둔 수줍음 많은 샌님 네이틀리는 로마의 한 창녀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으로 그가 죽어버리고, 창녀는 그 소식을 전한 요사리안에게 원한을 품고 죽이려고 덤벼든다.


취사병이지만 수완좋은 사업가인 마일로는 사실 어떤 인물인지 알쏭달쏭하다. 적국과도 거래를 트면서 적군으로 하여금 자기 부대를 폭격하게 하는 사업가라니.. 그것을 단순히 비윤리라고 말해야 할지, 자본주의의 냉혹함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마일로 자신이 정말 원했던 바가 그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흥미로운 인물이다.


다네카 군의관은 이제 막 의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에 군대에 끌려왔다. 의무비행일수를 채우기 위해 비행일지에 이름만 올렸다가 그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멀쩡히 살아서 ‘전사자’가 되어 버린다. 이 행정절차와 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정신나간 인물들인지, 그 자체가 캐치-22이다. 한편, 아름다운 다네카 부인은 본국에서 사망통지서를 받고 남편이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위로금과 연금으로 남편의 사망을 ‘잘’ 받아들이게 된다.


보잘것 없이 생긴, 요사리안으로 하여금 마음 짠한 보호본능을 일으키면서도 요사리안을 미치게 만드는 오르. 비행을 나갈 때마다 격추당하거나 바다에 불시착하는데도 잘만 살아남다가 어느 날 격추당해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엔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평소, 요사리안에게 자신과 함께 출격을 하자고, 그러면 격추 당해도 살아남는 법을 배울거라고 끈질기게 권하던 오르의 말을, 요사인안은 들었어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고사포 파편을 맞아 끔찍하게 죽어간 스노든. 겨우 소설 말미에 가서 밝혀진 ‘스노든의 비밀’이란 건, 결국 ‘인간이란 물질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스노든은 온 몸으로 그 비밀을 알려주고, 비참하게 죽는다.


그 외에도, 멍청한 기회주의자인 캐스카트 대령, 그 밑에서 일하는 똑똑하지만 비열한 콘 중령, 늘 자는 얼굴 위에 고양이가 올라가 있던 헝그리 조, 스노든 못지 않게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키드 샘슨, 간호사들, 군목,.. 정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그게 정상일지 모르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긴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요사리안. 그의 첫인상은 나에게, 고만고만하게 사기 잘 치고 겁 많은 미국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보여주는 그의 주인공다운(?) 면모에, 나중에는 요사리안이 느끼는 감정들이 내게 전혀 거리낌없이 이입되는 걸 느꼈다.

돌아오지 않는 오르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창녀의 어린 여동생이 길거리로 내쫒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이를 찾으려고 애쓰던 모습, 그리고 캐스카트 대령과 콘 중령이 내민 ‘더러운’ 협상 카드를 용감하게 차 버리고 차라리 위험으로 뛰어든 점, 그리고 “난 강렬한 후회가 없는 삶은 바라지 않아요.” ...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에 관해 생각했고, 인간에 대해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책이라는 것 자체와 작가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이 이렇게 두꺼워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캐치-22가 너무도 간명하고 뚜렷하게 그 뜻을 잘 전달하기 때문에 사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이 소설을 칭찬하는 이유. 모든 것에 나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책 읽는 것 자체가 그렇게 짜증나고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너무도 긴 문장, 미친 등장인물들과 미친 대화, 참아 줄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이 책이 지난 반세기 동안 그렇게 유명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전에는 책을 덮고 싶지 않았다.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참을성을 갖고 1권의 반쯤을 읽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감탄과 놀람의 연속이었다. 방금 책을 덮으면서는 이 책의 리뷰를 가능한 한 빨리 남겨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받은 뚜렷한 인상이 조금이라도 흐려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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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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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인도의 인구 중

16%를 차지하는 달리트, 즉, 불가촉천민들.

내가 몰랐던 종교적인 폭력의 희생자들.

 이 책의 저자인 나렌드라 자다브(위 사진의 사람좋아보이는 아저씨) 역시 달리트 출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이고 인도의 한 저명한 대학의 총장이며

나아가 인도의 미래를 책임질 대통령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그를 만든 그의 아버지 다무와 어머니 소누의 이야기다.

종교가 사람들에게 계급을 지워놓고 신전에 발도 못 들여놓게 한다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불가촉천민들의 지위가

신에 의한 것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죽을 때까지 끌고 살아가야 한다면? 신의 이름으로?

 

난 힌두교를 잘 모르고, 인도에 대해서도 보통 사람들이 아는 정도밖에 모르지만,

수많은 인도의 달리트들이 힌두교가 아닌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 밖에 없었다는

그 뼈아픈 과거에 분노를 느낀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진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평민의 평등, 남녀평등,. 그런 걸 쟁취해온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카스트에 따라 평생을 노예처럼

개보다 못한 삶을 산다는 건 당사자가 아니라도 화가 나는 현실이다.

 

저자의 아버지 다무는 그런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를 일깨운 건 바바사헤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암베드카르 박사였다.

그는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카스트제도에 저항하도록 달리트들을 이끈 지도자였다.

저항운동을 조직하고 달리트를 교육시키기 위해 강연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달리트'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자식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무는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고, 그의 말대로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그는 자신의 아내인 소누에게도 글을 가르치고 일깨우려 노력했고,

오랜 세월 신분에 의해 몸에 배어든 관성과 타성을 깨부수기 위해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힌두 사회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싸워왔지만, 

바바사헤브는 결국 힌두교를 포기하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카스트를 카르마로 여기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힌두 사회에서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힌두교도로 죽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

기본적으로 평등한 인간의 지위를 인정하는 불교로 개종한다.

다무와 그의 가족들 역시 바바사헤브의 개종과 함께 불교로 개종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도인에 대해 생각해봤다. 

인도인들은 특히 우리 분야(공학)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단다.

미국 드라마만 봐도 어떤 분야의 드라마든 인도인들이 등장한다.

인구가 많은 만큼 그들이 전 세계에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도 무한하다.

 

가끔씩 우리나라에 유교가 없었더라면

'열린' 사고방식이,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더 빨리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뭐, 지금 그런 사고방식이 완벽히 뿌리박았다는 뜻도 아니고,

유교가 완전히 나쁜 점만 있다는 뜻도 아니다.)

만약 인도인들에게 카스트제도가 없었더라면?

인도인들의 저력은 엄청났을 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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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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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빌 브라이슨 아저씨. 

책을 덮고 나니 이 분의 얼굴이 너무 궁금해져서 

미국 야후를 통해 빌 브라이슨씨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책 앞표지 그림이랑 너무 똑같이 생기셨다. -_-;
 

그리고, 책 속에 나타난 이미지처럼,

기계치에, 뭘 잘 까먹고, 어디 잘 부딪치고,

친절하지만 잘 투덜거릴 것 같은 인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영국에서 20년을 보내고

영국인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성인이 되서'  

미국으로 돌아와서 겪게 되는 일들을 칼럼 형식으로 소개한다.

 

특히, '삶의 미스터리'에 관한 장은 


웃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전깃불이 생기기 전에는 밤에 벌레들이 무얼 했을까?

전화벨이 울리면 왜 항상 누군가가 "전화야?"하고 물어보는 걸까?

엘리베이터에는 왜 '정격하중 550킬로그램' 같은 문구가 씌어있을까?

그리고 그 문구는 왜 엘리베이터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부착되어 있는가?

내가 늦으면 비행기나 기차, 버스 등이 정시에 도착하고

내가 정시에 도착하면 비행기, 기차, 버스가 늦어지는 것은 왜일까?

 

 

또한 '삶의 규칙'

 

2. 제조회사의 이름이나 로고가 선명하게 드러난 옷을 입은 사람들은

'나는 얼간이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를 달고 다녀야 한다.

3. 차를 주차할 때 하얀색 선으로 표시된 주차 공간 안에 차를 넣는 시간이

심장 수술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걸리는 사람은

그 주차공간에 차를 주차할 수 없다.

7. 호텔방의 모든 조명은 문이나 침대 근처에서 끌 수 있게 되어 있어야 하며

스위치가 조명기구 자체에 부착되어 있는 경우에는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한다.

만약 고객이 침대에 누워서 스탠드 불을 끌 수 없다면

그 날 밤 숙박료는 면제되어야 하며....

10. 모든 자동차는 양쪽 측면과 후면에 주유구가 있어야 하며,

주유구의 호수는 적어도 2미터는 되어야 한다.

15. ...한꺼번에 10명이 들어가는 거대한 회전문은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서로 아는 사이고

사전에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로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한 불법이다.

 

저자가 이렇게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단순히 '재미있다'라고만 하기에는

어쩐지 아쉽고 석연치 않다.

 

이 속에는 비판도 있다.

너무너무너무 풍족하고

너무너무너무 융통성 없으며

너무너무너무 불합리한 미국의 단편도

빌 브라이슨의 글 속에는 재미있게 녹아있다.

하지만, 내가 가보지 않고서야

미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수야 없지 않은가.

 

사실, 조금은 겁이 난다.

미국땅을 밟기 두 달 전인 나로서는

빌 브라이슨의 이런 꼬집음과,

그 특유의 과장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어마어마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미국은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삶의 기회와 가능성에 대해 본능적으로

긍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지 않은가.

그 외에도 미국이 좋은 점은 많다.

 

하긴....

한국도 그렇다.

어딘들 안 그렇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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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하니까

얼마전에 읽었던 '행복의 지도'가 생각난다.

그 책의 서평에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의 절묘한 조화?

정확하진 않지만 뭐..그 비슷한 말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빌 브라이슨이 더 궁금해졌는지도 모르니까.

(알랭 드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 통찰력 운운..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행복의 지도'와 관련해서 이 책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행복의 지도'의 서평이 꽤나 정확했다는 점이다.

빌 브라이슨은 너무 깊이 들어가진 않는다.

'가볍다'는 말이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기에 사용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무튼, 빌 브라이슨의 이야기는 가볍고..유쾌하다.

행복의 지도는, 이보다는 약간 무거웠다.(표현이 과연 이것밖에 없는지..-_-)

아무래도 '행복'이란 주제 자체가 '여행'과 어우러졌을 뿐,

그 자체로는 철학적인 주제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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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됐건,

담번엔 이분의 다른 책들을 읽어볼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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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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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긴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요즘 여행에 관한 책들에 자꾸만 손이 간다.

 

왜, 여행을 결심했고,

어떻게, 여행을 행동으로 옮겼으며,

무엇을, 여행을 통해 얻었을까?

사실 내 경우엔 이 세 가지가 모두 정해져 있는 편이지만,

(그래서 엄밀히 따지자면 여행이 아닌듯도 하다 -_-;)

가능한한 불확실성과 융통성을 늘려보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다.

 

이 책은 행복한 나라를 찾아 세계를 여행하게 된 에릭 와이너의 재미난 여행기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알진 못하지만 글발에서 느껴지는 에릭 와이너는

조금은 냉소적이고(어떤 땐 오만하게까지 느껴진다), 투덜거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음 속엔 애정이 깊이 깔린 사람인 듯하다.

 

그가 찾아다닌 곳은(책 뒤표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마리화나가 불법이 아닌 네덜란드.

치밀한 완벽함과 속 터지는 소심함의 한 끗 차이, 스위스.

국왕이 친히 국민행복지수를 챙기는 부탄.

세금도 안 걷는데 국민들에게 용돈까지 주는 부자나라 카타르.

실패를 권장하면서 다양한 인생을 격려하는 아이슬란드.

불행한 나라 몰도바.

쿠데타 정도는 신경도 안 쓰는 태국.

tv의 행복실험에 동원됐었던 불행한 마을 영국의 슬라우.

진리의 가르침과 뻔뻔한 사기꾼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인도.

영원한 스위트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이사하는 사람들의 미국.

 

순간적으로 용돈까지 주는 나라 카타르가 몹시도 부러웠지만,

조금더 생각하고 나니 내게 딱 맞는 나라는 아이슬란드가 아닐까 싶다.

 

실패가 비난의 대상이 아닐 수 있는 나라.

그래서인지 너도나도 작가고, 시인이고, 예술가일 수 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또한, 프로체스선수였다가 기자, 건설회사 중역, 신학자, 음반 프로듀서의 직업을

고루고루 맛본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글쎄.. 나처럼, 뭐 하나 뚜렷하게 잘 하는 것 없이

이것저것 흥미만 많은 사람에겐 아이슬란드가 딱이다.

게다가 주말이면(당.연.히.) 흥건하게 취해 있는다쟎아!!!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 행복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기도 하다.

사실, 나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행복'이란 것이 고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행복이란 아이를 해부대위에 올려놓고 보니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고 있다.

이 세상에서 '고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건 없지 않을까? 놀라운 깨달음이다.

내 뒤통수를 아주 쎄~게 때린 한 마디는

불행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아예 다른 동전이라는 구절이었다.

이 문장은 아마도 '눈물이 많다고 해서 나약하다는 증거는 아니야.'라는

나의 오래된 합리화 문장과 함께 고이고이 내 머릿속에 저장될 것이다.

 

여행이랍시고 어떤 나라를 방문해서 불쾌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을까?

기본적으로 난 <여행>이란 꼬리표만 붙여준다면 안 그럴 자신이 있다. 어디서든.

<여행>지는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르기 때문에.

하지만 그곳이 내가 사는, 살아가야 할 곳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래서 난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 다른 나라에서 살더라도

"나는 여행을 하고 있어."라고 마음먹기로.

어차피 인생 자체도 여행이 아닐까?

 

"사람의 목적지는 결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확신.

이 말은 프롤로그에 나온다.

똑같은 장소이거나, 두려운 장소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여유만 있다면,

또한 약간의 행복을 위해 약간의 자기기만을 허용할 수 있다면,

난 지구별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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