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22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6
조지프 헬러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리뷰는, 이 소설책 두 권의 두께만큼이나 길어질지도 모른다.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 뭔가 개운치 않으면서도

그게 썩 기분나쁜 것만은 아닌, 그런 뒤끝을 남기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을 알게 된 경위도, 그리고 마침내 내가 이 책을 주문해서 손에 넣었다는 사실도 좀 우습다.

오빠의 영어선생님(캐나다인이라나?)이 이 책을 소개했다고 한다.

원래 소설제목이지만, 그 소설이 너무나 유명해져서

결국 보통명사화 되어 사전에 올라갔다고.

catch-22는 딜레마, 진퇴양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소설의 분량을 보고는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1권의 앞 부분을 읽는 일은 진심으로 고역이었다.

주인공들이 다 미쳐버린 듯 했고, 상황도 미친 듯 돌아가고,

오죽하면 소설가 안정효씨가 번역을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했더랬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탈리아의 작은 섬, 피아노사가 소설의 배경이다. 피아노사의 공군부대에서는 출격 횟수를 40회, 50회, .. 늘려가면서 군인들을 귀향시키지 않는다.

캐치-22라는 조항 때문인데, 미치지 않는 한 전역할 수 없다는 조항이란다.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미쳤다면 미쳤다고 판단할 수 없으므로 여전히 복무해야만 한다. 내가 미쳤으니 집으로 보내줘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몇몇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부자 아버지를 둔 수줍음 많은 샌님 네이틀리는 로마의 한 창녀에게 집착한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으로 그가 죽어버리고, 창녀는 그 소식을 전한 요사리안에게 원한을 품고 죽이려고 덤벼든다.


취사병이지만 수완좋은 사업가인 마일로는 사실 어떤 인물인지 알쏭달쏭하다. 적국과도 거래를 트면서 적군으로 하여금 자기 부대를 폭격하게 하는 사업가라니.. 그것을 단순히 비윤리라고 말해야 할지, 자본주의의 냉혹함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마일로 자신이 정말 원했던 바가 그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흥미로운 인물이다.


다네카 군의관은 이제 막 의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에 군대에 끌려왔다. 의무비행일수를 채우기 위해 비행일지에 이름만 올렸다가 그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멀쩡히 살아서 ‘전사자’가 되어 버린다. 이 행정절차와 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정신나간 인물들인지, 그 자체가 캐치-22이다. 한편, 아름다운 다네카 부인은 본국에서 사망통지서를 받고 남편이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위로금과 연금으로 남편의 사망을 ‘잘’ 받아들이게 된다.


보잘것 없이 생긴, 요사리안으로 하여금 마음 짠한 보호본능을 일으키면서도 요사리안을 미치게 만드는 오르. 비행을 나갈 때마다 격추당하거나 바다에 불시착하는데도 잘만 살아남다가 어느 날 격추당해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엔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평소, 요사리안에게 자신과 함께 출격을 하자고, 그러면 격추 당해도 살아남는 법을 배울거라고 끈질기게 권하던 오르의 말을, 요사인안은 들었어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고사포 파편을 맞아 끔찍하게 죽어간 스노든. 겨우 소설 말미에 가서 밝혀진 ‘스노든의 비밀’이란 건, 결국 ‘인간이란 물질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스노든은 온 몸으로 그 비밀을 알려주고, 비참하게 죽는다.


그 외에도, 멍청한 기회주의자인 캐스카트 대령, 그 밑에서 일하는 똑똑하지만 비열한 콘 중령, 늘 자는 얼굴 위에 고양이가 올라가 있던 헝그리 조, 스노든 못지 않게 끔찍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키드 샘슨, 간호사들, 군목,.. 정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그게 정상일지 모르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긴긴 소설을 이루고 있다.


요사리안. 그의 첫인상은 나에게, 고만고만하게 사기 잘 치고 겁 많은 미국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보여주는 그의 주인공다운(?) 면모에, 나중에는 요사리안이 느끼는 감정들이 내게 전혀 거리낌없이 이입되는 걸 느꼈다.

돌아오지 않는 오르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창녀의 어린 여동생이 길거리로 내쫒겼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이를 찾으려고 애쓰던 모습, 그리고 캐스카트 대령과 콘 중령이 내민 ‘더러운’ 협상 카드를 용감하게 차 버리고 차라리 위험으로 뛰어든 점, 그리고 “난 강렬한 후회가 없는 삶은 바라지 않아요.” ...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에 관해 생각했고, 인간에 대해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책이라는 것 자체와 작가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이 이렇게 두꺼워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캐치-22가 너무도 간명하고 뚜렷하게 그 뜻을 잘 전달하기 때문에 사전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이 소설을 칭찬하는 이유. 모든 것에 나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책 읽는 것 자체가 그렇게 짜증나고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너무도 긴 문장, 미친 등장인물들과 미친 대화, 참아 줄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이 책이 지난 반세기 동안 그렇게 유명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전에는 책을 덮고 싶지 않았다.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참을성을 갖고 1권의 반쯤을 읽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감탄과 놀람의 연속이었다. 방금 책을 덮으면서는 이 책의 리뷰를 가능한 한 빨리 남겨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받은 뚜렷한 인상이 조금이라도 흐려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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