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저항력이다 - 무기력보다 더 강력한 인생 장벽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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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문제는 저항력이다. – 내 속엔 내가 아닌 내가 있다.

내일부터는 다이어트 해야지!’, ‘내일부터는 금연해야지’, ‘운동하면서 건강에 신경써야지하면서 나와의 약속 또는 다짐을 한다. 그런데 3일을 넘지 못한다. 3일이 먼가 3시간도 안되어 자신과의 약속을 깨뜨린다.

왜 그럴까? 책에서는 저항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한다. 저자도 인지과학의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KAIST 김대식 교수는 약속하는 나행동하는 나가 다르기에 자신과의 약속이 힘들다고 한다. 우리 뇌는 허상을 잘 만들어 낸다. 결국 이런 허상과의 약속이기에 자신과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저항력은 무엇일까? ‘심리적인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닌, 오히려 자신을 막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저항력이라고 본다면, 김대식 교수의 이야기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김대식 교수는 뇌의 허상으로 만들어진 약속 하는 자와 행동하는 자의 차이를 말한다. 결국 허상과의 약속이기에 내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리적으로 행할 수 있는데 자신이 막는다고 했다.

자신이 자신을 막는데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가령,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자면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이 경우 금연보다 흡연이 뇌가 느끼는 쾌락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는 행하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은 지속적으로 하라고 시키고, 행동을 해서 재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행동을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편한 일, 재미있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곱씹으면서 다시금 저항력이란 단어를 떠올리니, 하고 싶지 않은 일, 해야 하지만 귀찮은 일 등은 뇌의 저항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항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의지가 아닐까 한다. 의지 박약인 나로서는 저항력>의지의 부등호가 되어버린다.

중학교 기술 시간에 라디오를 만든 적이 있다. 전류의 세기가 크면 이를 줄여줄 수 있게 저항을 중간에 설치했다. 그래야 전류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으니까. 저항이란 힘의 세기뿐 아니라 의지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저자가 저항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의지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다툼을 할 수 있는 것은 저항과 의지가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저항과 의지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균형 잡힌 하나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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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기의 교실밖 인문학 - 소크라테스부터 한나 아렌트까지
최진기.서선연 지음 / 스마트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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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최진기의 교실밖 인문학

 

대학교 2학년 때 전공과목으로 <고중세 정치사상사>를 배웠다. 교수님이 준비한 원서가 교제였다. 다행히 제본을해서 8천원 정도에 교재를 구입할 수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수업시간마다 무작위로 문단을 해석해보라고 했다.

 

어느 날, 내가 걸렸다. 준비한 해석을 발표했더니 교수님 왈, '음... 사전을 더 찾아보세요.'했다. 사전을 더 찾아보니원서의 문장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 고중세의 언어를 현대의 언어로 해석했으니 해석이 제대로 되었겠나. 해석한 문장이 껄끄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대학교 때의 에피소드를 끄집어낸 이유는 바로 '개념'이 달랐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특히나 학문에서의 용어는 일상어와는 개념이 다르다. 이런 다른 개념으로 인해 '나의 해석'과 '너의 해석'이 다르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전설의 불사조와 같다. 끊임없이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무함을 극복하여 결국 영원 회귀에 이르게 된다. 영원 회귀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는 다르다. 윤회는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서 다른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는 사상이다. 이를테면 홍길동은 살면서 행한 선악에 따라 죽은 뒤 극락이나 지옥으로 갈 수도 있고, 개미로 태어날 수도 있다. 반면 영원 회귀란 영원히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오늘 한 일이 그대로 반복된다. 즉, 존재의 쳇바퀴가 영원히 돌아가며, 모든 것은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동시에 다시 생긴다." ( p 132 ~ 133 )

 

문장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말하는 '영원 회귀'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듯 개념이 정확하지 않으면 올바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두 개념 모두를 모르면 찾아 볼테지만, 윤회'라는 뜻을 알고 있다면 '윤회'를 '영원 회귀'와 묶어버려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논술을 준비(?)하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는 책이라고 했다. 인문학적 지식이 있는 분이 읽는다면 그리 재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나라는 용매에 글을 녹이면 그 글은 그리고 생각은 내것이 되기 때문이다.

양장본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자세가 더 중요한 거지. 책을 읽고 기본적인 개념을 이야기하면 튼튼한 개념이 정립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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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살림지식총서 472
이강룡 지음 / 살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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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슬림한 책이지만 글쓰기에 대해서 기초개념을 잡을 수 있는 책이었다.

자신은 남의 글을 대강 읽으면서 자기 글은 뉘앙스까지 꼼꼼하게 읽히기를 바란다.” ( p 26 )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 또한 그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의 의도를 글 읽는 사람이 알까?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는 상대방의 글을 그리 심도 있게 읽지 않았다.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상대방을 알려는 노력은 게으르게 했던 나를 반성해 본다.

저자는 몇 몇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가치, 개념, 범주, 추상, 유추, 상징 등 이런 용어들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잡아야 글쓰기가 향상된다고 했다. 개념의 정의가 명확히 되어야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떻게 운이 좋아 한 번 잘 쓴 글이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매번 운을 바랄 수는 없으니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몇 몇 문장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쓰지 말라고 했다. 가만히 보니 나도 그렇게 쓰고 있었다. 우리말 실력이 떨어지니 이를 극복하려고 어거지 문장을 만들려 한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웬지 머리에 잘 안들어 온다. 읽히긴 하지만 제대로 읽히지 않는 것이다.

책 제목처럼 요즘은 디지털 글쓰기가 대세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나를 수 있고, 누구나 생각을 첨가해서 글을 쓸 수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의 홍수다. 너무 많은 글이 있으니 다 읽기도 버겁다. 이런 글을 만나다 정말 잘 쓴 글을 만나면 오아시스를 만나 기분이 든다.

글쓰기의 교안이라 불렸던 기사도 이제는 그리 신뢰를 받지 못한다. 오죽하면 기레기란 말이 나올까. 기사는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전체를 담지 않고 일부분만 오려서 쓴다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 된다. 물론 주장을 쓰는 글이 있긴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글은 신뢰성이 떨어지긴 한다.

그래서 기사, 인터뷰는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해야 하고 근거가 많을수록 신뢰성이 높다. 외국 저자의 책을 보면 뒤에 참고문헌이 정말 많다. 주장을 담는 우리나라 저자들과 비교하자면 이들의 주장에 신뢰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100페이지 정도의 슬림한 책이지만 글쓰기 기초개념 잡기에는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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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설계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전성수.이동희 옮김 / 반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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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생명설계도, 게놈 인간의 삶은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게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염색체이다. 1번부터 23번까지 개불(?)처럼 생긴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모양을 한 염색체들이 인간의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한다. 성격, 외모, 혈액형, 기억 등 인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인간답다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은 모두 이 염색체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게놈은 DNA에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DNA를 떠올리면 나선형구조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서나 이런 모양으로 DNA를 설명하니까.

작년 최재천 교수의 강연에서 우리의 DNA는 우리의 조상에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부모의 X, Y 염색체를 물려받았기에 이를 추적하면 본래의 DNA를 찾을 수 있다고. 어쩌면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DNA에 의해 실험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결정론적 시각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인간은 죽지만 DNA는 자식에게 영원히 물려지기 때문이다.

책은 좀 난해했다.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서 생물학(?), 유전학(?) 등에 취약한 나로서는 이해하는데 좀 애를 먹었다. 요약을 잘하는 것은 책을 잘 읽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요약하기 힘드니 책을 잘 못 읽었다고 본다.

질병을 설명하는 9번 염색체에서 이 부분은 의미가 있었다.

“A 유전자는 B 보다 콜레라에 강하다. AA를 가진 아이들은 BB보다 더 많이 살아남게 된다. 그러면 B형은 도태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AB가 가장 많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즉 가장 건강한 아이는 AABB를 가진 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이들 모두 AB형이고 콜레라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강하다. 만약 ABAB와 결혼한다면 반수의 자녀들이 AB형이고 나머지 반은 AA BB를 가진다. BB는 가장 약한 타입니다. 이상하게 세계는 행운이 꼬인 것 같다. 가장 이로운 조합을 가진 사람에게서 확실히 약한 자손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 p 180 )

콜라레에 민감한 O형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말라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O형은 다른 형에 비해서 말라리아에 저항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각 혈액형마다 저항력과 생존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특정 질병에 약하다고 해서 그 혈액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세대에는 조금 줄어들 수는 있으나, 그 후대에는 다시금 평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DNA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들은 한 세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생명의 삶에서 유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결정론적 시각에서 게놈을 봐야 할까? 한 강연에서는 그랬다. DNA에 의해서 우리의 23개 염색체는 각기 고유한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만이 공존을 하고 자신의 결정된 운명(DNA에 의해서 결정된)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요즘 우주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어찌되었던 나도 한 입장에서 보면 이 우주와 인공지능을 이해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잘 이해해야 이들이 보일 것 같았다. 게놈을 읽으면 나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분야에 기본지식이 없어서인지 읽기엔 좀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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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니체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7
이진우.백승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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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삶을 사랑한 그의 이야기

 

간혹~ 사람들 중 이 책의 끝 페이지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고론데~ 이 책이 딱 그랬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할까? 니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러다가 뒷 페이지가 얼마 안남은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 조마조마했다. 니체의 이야기를 더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책을 나름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고 싶었다. 내가 요약한 문장은, “위버멘쉬(Übermensch)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 삶은 데카당스(Décadence)에 가까워진다.”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니체의 고민은 삶의 심연으로 들어가 이 고민이 왜 생겼는지 자아(self)에게 질문하는 듯했다. (니체는 ‘I'와 ’SELF'을 구분한다.)

 

보통 서평을 쓰면 내가 관심 있었던 구절,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바를 썼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지 못하겠다. 한 페이지마다 줄을 치지 않았던 문장이 없었고,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말들이었다. 그만큼 내 삶에 대한 고민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나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면 니체의 말을 쳐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리지 못했다.

 

“니체에 의하면 행복은 승화된 불행이며, 불행이란 아직 수용되지 않고 작업되지 않은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은 ‘승화’다.” ( P 55 )

 

행복은 이제 숙제처럼 되었다. 행복에 대한 책도 많다. 그런데 왜 우린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을 할까? 각종 지표에서도 아이들, 어른 할 것 없이 우리나라는 행복의 순위에서 꼴찌다. 행복에 순위를 메긴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여튼 우린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 행복감이 낮다.

 

그럼,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일까? 불행하면 아플까? 고통이 있겠지.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인류에게 널리 퍼져 있던 저주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였다.” ( P 58 )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야 진정으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을까? 어떤 일에 아파하는 사람을 보고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게 힘들어?’, ‘야! 나는 더 힘든 일도 있었어!’

그래~ 각자의 기준으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상대방이 힘든 모습을 보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기준으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야 그것이 진정으로 아픈 고통이 된다. 고통이 무의미해진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닌데 말이다.

 

니체는 이런 고통은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고통이 삶의 필연적 계기인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 p 61 )

우린 항상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만족할 수 없기에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만족한다면 힘에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의미를 거두면 행복할까? 그런데 현대인은 군중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고독 속에서 마주하는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 176 )

 

"니체가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일컫는 세 가지, 즉, 유행, 여론, 그리고 순간이 지배하는 곳이다. (중략) 모여 있는 군중은 변덕스럽다.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 생각하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섞어놓으면 자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 p 178 ) 결국, 군중 속에 있는 ‘나’는 진정한 ‘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의 대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념의 형성은 ”같지 않은 것을 같게 만드는 Gleichmachen des Ungleiche"과정을 거친다. 즉 대상의 개별성과 구체성과 독특성과 일회성은 배제되고, 일반성과 공통성과 평균성이 주목되며, 게다가 그 주목마져 특정 관심과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 p 161 ) 니체는 대화는 오해라고 했다. 각자 자신만의 경험과 이해로 상대방의 말을 걸려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오해가 시작이라고 했다. 이런 한계를 가짐을 인정하는 것. 니체 만쉐~~

 

잘 정리하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정리하지 못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정돈’의 개념을 니체에게 던진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면, 니체는 ‘무질서’를 말하지 않을까? 질서없음은 현실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는 반증이며, 내일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라 말할 것 같다. 니체가 말하는 ‘이성적 죽음’을 대비할 때 비로소 ‘정돈’이라는 개념이 나온다고 니체가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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