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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5년 독서정산


한 해가 훌쩍 지나갔다. 올해 책을 약 80권 붙잡았고 그중 20권 정도를 완독했다. 만족스러운 독서는 아니었다. 붙잡은 책은 많았지만 끝까지 함께한 책은 적었다. 개인적인 일로 바쁘기도 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완벽주의였다. 많이 읽는 것보다 잘 읽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붙들고 매번 독서에 힘을 줬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책을 붙들지 않게 됐다. 책을 읽고 반드시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도, 단정한 글 한 편을 완성하지 않아도, 그저 읽는 일이 즐거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책을 대했을까. 즐겁게 읽다가도 생각이 너무 많아 답답해져, 헛소리를 편하게 끼적이던 때가 그립다. 다시 그때처럼 읽고, 그때처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 기억에 남는 책들


올해는 '올해의 책'이라 부를 만한 한 권이 없었다. 삶의 지평을 넓혀 준 책을 만나지 못했다. 그만큼 책을 밀도 있게 읽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붙잡았던 책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몇 권에 대해서만 끼적여보려 한다.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저, 안영옥 역,  『돈키호테』, 열린책들, 2014














돈키호테는 내게,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비좁은 자아에 굳건한 성을 세우는, 잘못된 독서의 해악을 보여주는 하나의 반면교사였다. 그의 모습은 책과 이상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았으며, 죽기 전 후회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내게 주곤 했다. 물론 책을 읽고 보니 간접독서로 이해한 돈키호테의 모습이 실제와 아주 달랐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런 식으로만 이해하기에 이 작품은 너무나 다채롭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돈키호테를 바라보는 시각이 큰 틀에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는 간과했던 '긴장'에 주목하게 됐다. 이상과 현실의 긴장 말이다.


이 책의 서사를 끌고나가는 것은 돈키호테의 욕망이다. 그 욕망은 바로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읽은 편력 기사들이 행한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영원한 명성과 이름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욕망, 달리 말하자면 이 이상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광기어린 이상주의는 그가 데리고 다니는 종자인 산초 판사의 소박한 현실감각과 대비되며,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 현실과의 괴리가 우스꽝스러움을 선사한다. 예를 들자면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돌진하는 것, 허름한 시골 여관을 성으로 여기는 것, 양떼를 군대로 보는 것, 대야를 맘브리노 투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돈키호테는 특정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고, 고난을 겪고 귀향하는 성장서사의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돈키호테는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나? 간단히 말해 본인이 가졌던 이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성장했다. 돈키호테는 고백한다. “편력 기사도에 관한 불경스러운 이야기들은 모두 나에게 증오스러운 존재가 되었소. 그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내가 빠졌던 아둔함과 위험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오.” 하지만 이렇게, 이미 당시 권위를 잃어버린 기사소설을 굳이 패러디해서, 돈키호테가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함으로써, 기사소설을 공격하려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세르반테스의 타겟은 단순히 기사소설을 공격하는 데에 있지는 않았다. 세르반테스는 종교검열을 피하고 교묘한 서술방법을 고안했으며 열린 텍스트임을 강조함으로써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함을 암시했다. 그리고 그 다양한 해석의 층위 속에서 내가 눈여겨 본 건 깔끔한 갈무리와 명확한 윤리적 결말이 아닌, 바로 '긴장'이었다.


당신은 이 책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존경심이나 의무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보시는 대로 무슨 말씀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15p)


얼굴을 알 리 없는 우르간다가 키호테에게 -

책 돈키호테여, 네가 조심해서

훌륭한 사람들에게 가면

경험이 없는 자도 네가 뭘 모른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네가 바보들의

손에 들어가고자

안달할 때면

설혹 그들이 똑똑한 척하더라도

즉각 그들은 바보임을

알게 될 것이다. (21p)


긴장은 "정세나 분위기가 평온하지 않은 상태"다. 어떤 역학관계 사이에 압도적인 우위가 없어 안정보다 불안정에 가까운 상태. 그런 점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란, 이 책에는 돈키호테의 이상과 그가 마주한 현실 사이에 뭐가 더 옳고 그른지 단정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앞서 돈키호테의 이상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말했지만, 모든 게 그런 건 아니다.


돈키호테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서사라는 큰 줄기를 따라가면서도, 두 사람이 마주치는 여러 인물들의 사연이 덧붙는 옴니버스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에피소드들은 당대 스페인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삶의 구체적 맥락, 은유적 교훈을 풍부하게 품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돈키호테와 산초가 보여주는 모습은 때로는 우스꽝스럽지만 때로는 현실을 이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며 현실 속의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끔 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돈키호테는 기사소설 속의 덕목을 추종하며, 요즘엔 '과거 사람들이 누렸던 행복은 사라지고, 부지런함보다 게으름이, 노동보다 오락이, 덕보다 악습이, 용기보다 오만이 유행하고 있다며 한탄'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통해 스페인 황금시대의 절정에서 쇠퇴로 가는 길을 모두 목격하며 느낀 혼란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모두가 창녀를 인간 취급하지 않을 때 인간으로서 대우한 건 돈키호테였고, 모두가 바보같다며 비웃음에도 누구보다 섬을 잘 다스렸던 건 산초였다.


그렇게 읽다 보면 돈키호테와 산초가 이상한 건지 현실이 이상한 건지 헷갈리는 상황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게 바로 현실과 이상의 긴장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은 현실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검증되어야 하고 현실은 이상이라는 기준을 통해 끊임없이 검토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라고.


2) Howard Sounes 저, 『Locked in the arms of a crazy life 』, canongate books Ltd, 2010















이 책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완독한 책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작년에 부코스키의 "호밀빵 햄 샌드위치"를 읽고 천천히 전집을 하나둘 읽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그 일환으로 찾아봤던 전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질문은 이게 아닐까 싶다. 나는 왜 부코스키에게 끌렸을까.


부코스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는 부코스키의 분신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삶을 짙게 반영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치나스키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 품위, 정상성의 기준 밖에서 그것을 냉소와 유머를 통해 조롱한다. 바닥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이 캐릭터는 그 바닥에서 받은 상처와 고통을 글쓰기를 통해 해소, 표출하면서도 음주, 성, 관계에서의 방탕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혐오와 허무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마주한다. 


그러나 치나스키가 아무리 부코스키의 삶을 닮았다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 페르소나일 뿐 실제 부코스키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부코스키의 실제 삶이 궁금했다. 그의 삶을 더 알면 이 매력적이고도 한 편으로는 반면교사인 치나스키라는 캐릭터를, 나아가 그의 소설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이해는 내가 내 삶을 더 잘 사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부코스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끌림을 느끼는 이유는 아직도 명확하진 않지만 거칠게 정리하자면 '남성성에 대한 고찰 및 반면교사', '쓰기를 향한 열정' 정도로 키워드들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성성은 특정 문화가 남성에게 요구해 온 정서, 관계, 권력의 사용 방식이며 생물학적인 성 그 자체보다 규범에 가깝지만 생물학적 요인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남성으로서 건강한 남성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이와 관련해 부코스키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두 키워드에 대해서는 추후 부코스키의 책을 직접 읽고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생각을 깊게 풀어 쓸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3) 가우탐 바이드 저, 김상우 역, 『투자도 인생도 복리처럼』, 부크온, 2023














2025년은 투자 공부를 진지하게 시작한 해였다. 이 책을 처음 어떻게 집어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제목에 끌렸던 게 아닌가 싶다. 성장이 관심이 많은 내게 '투자도 인생도 복리처럼'이라는 말은 삶의 주요 좌우명으로 설정해도 괜찮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확천금 또는 인생에서의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변화를 좇기보다, 지금은 작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더라도 하루하루 꾸준히, 조금씩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했다.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은 아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이 책은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투자 경험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투자법, 자기관리,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한 지혜를 모두 결합하여" 수립한 총체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두껍고 장황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한 번 읽고 끝낼 게 아니라, 심심하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펼쳐 읽으면 좋을, 그런 책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투자습관을 기르고 마인드셋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고, 사숙할 만한 스승들의 언어를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벼려 탄생한, 본받을 만한 선배의 기나긴 조언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틀을 잡고 세계관을 확장 중이다. 

 

4) 스티븐 내들러 저, 연아람 역, 『죽음은 최소한으로 생각하라』, 민음사, 2022














어느 분야의 전공자가 자신의 전공 분야를(특히 철학부분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쓴 대중서, 또는 연구서와 대중서 사이의 입문서나 심화서 수준의 책을 좋아한다. 이런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를, '자유인'이라는 개념을 자기가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자기 언어로 깔끔하게 설명한다. 스피노자는 철학자들의 그리스도라는 들뢰즈의 말처럼 그는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학자지만, 그의 이론을 정치하게 공부하는 것을 넘어 윤리적 실천의 관점에서 읽어내는 것조차 어려운 지라 이렇게 전공자가 스피노자를 해설해주는 책을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A free man thinks of death least of all things ; and his wisdom is a meditation not of death but of life. 자유인은 죽음에 대해 가장 적게 생각하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데에 있다.   


책의 원제는 'Think Least of Death'로 내들러는 에티카 4부에 등장하는 위의 문구에 착안해 책의 제목을 지었고, 이 책의 주요 키워드도 저 think의 주체인 free man, 즉 자유인이다. 내들러는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목표를 자유인homo liber, 이성의 안내에 따라 사는 인간상의 구현으로 해석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유인은 오직 자기 자신의 본성에 의해 규정되어 존재하며 행동하는 자로서 이 길은 사물을 참된 인과 질서에 따라 인식하는 능력인 이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자유인free man이 에티카 제5부에서 등장하는 현인wise man과 같은 건지, 자유인으로서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에게 자유인이 규범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일 뿐 실제로는 도달 불가능한 상태가 아닌지 등을 고찰하는데, 사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자유인이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상태이든, 삶의 규범 또는 이상이든 그가 제시하는 자유인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태이며, 그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해도 좋고 삶의 규범으로서 존재해도 좋기 때문이다. 붓다나 예수를 존경할 때,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실천이 중요한 거 아닌가.


스피노자의 자유인을 이해하려면, 그의 자유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이라는 개념과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후회는 'A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해서' 오는 의지와 연관된 감정이다. 하지만 스피노자에 따르면, 그런 의지를 독립적인 능력으로 보는 행위는 원인을 보지 못해서 생기는 착각일 뿐이며 그런 점에서 후회는 불필요하다. 할 수 있었다면 했을 것이며, 하지 못했다면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할 수 있게 만드는 역량이다.


예를 들어보자. B는 좋지 않은 생활 습관으로 살이 쪄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살을 빼고자 노력했지만 여러 번 실패했다. B는 매번 폭식을 하거나 야식을 먹고는 자책한다. '나는 의지가 부족한 인간인가봐. 내일부터는 정말 먹지 말아야지.' 하지만 대개 이런 의지를 통한 다짐은 실패한다. 인과관계, 즉 원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라면, 의지를 탓할 게 아니라 몸과 환경, 정서가 얽혀 작동하는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원인(수면, 스트레스, 동선, 유혹, 또는 유전적 요인)을 재배치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어떤 상태를 지적으로 이해하고, 인과관계를 재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늘려나가는 것. 수동적인 상태에서 능동적인 상태로 이행하는 것. 이게 스피노자가 그리는 자유, 그리고 자유인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유인이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면,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아니면 규범에 불과한지, 솔직히 우리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선 크게 중요치 않다. 그건 마치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와 같은 갈무리되지 않는 논쟁이 아닐까. 우리에게 중요한 건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의 실질적인 이해와 행동이다.


5) 포즈랑 저, 『포즈랑의 투자 이야기』, 에디터, 2025














투자를 시작한 이후 투자와 관련해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아직 편하게 대화를 나눌 투자 메이트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숙할 만한 스승과 선배들을 책을 통해 찾고 있는데, 올해 그렇게 책을 통해 만난 대표적인 선배가 바로 포즈랑님이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뭔가, 이런 동네형 같은(실제로는 한참 형님이지만) 투자 선배를 만나고 싶었달까. 최준철, 홍진채같은 분들은 롤모델이지만 살아온 궤적이 다르다 보니, 그보단 다른 루트를 밟다가 이후 투자쪽으로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 어떤 성과를 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니즈를 잘 충족시켜준 게 바로 이 책이었다.


기술적이거나 투자 전략을 아주 구체적으로 다룬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투자자로서 과거를 되짚어 보며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재미난 투자썰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일반 투자자로서 갖춰야 할 마인드셋, 투자전략 등 길어낼 수 있는 좋은 팁들이 너무 많아서 가우탐 바이드의 '투자도 인생도 복리처럼' 같이 종종 한번 씩 꺼내들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6) Sam Harris 저, 『Waking Up』, Simon & Schuster, 2015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종교에 관심이 많다. 각각의 종교, 상징, 체계, 교리 등이 흥미롭고 각각의 세계관이 그려내는 세상이 궁금하다. 종교를 이해하는 일이 즐거운 만큼, 무신론자로서 종교가 가진 긍정적 기능을 어떻게 세속화 할 수 있을지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집어들었던 책이다.


I still considered the world's religions to be mere intellectual ruins, maintained at enormous economic and social cost, but I now understood that important psychological truths could be found in the rubble. 나는 여전히 세계의 종교들을 광범위한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비용으로 유지되는 단순한 지적 폐허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중요한 심리학적 진실들이 그 잔해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해리스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UCLA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위의 발췌 구절만 봐도 종교에 얼마나 비판적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종교라는 게 정의가 다양한 만큼, 해리스가 주로 비판하는 건 서양의 전통적인 유일신 종교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보다는 종교에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기에 뭐라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다양한 종교들은 열심히 찾다 보면 금을 캐낼 수 있는 귀중한 금광과 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종교 없는 영성'(spirituality without religion)을 추구하며 영성이라는 게 종교적 교의나 믿음이 아닌, 경험과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핵심 도구로 해리스가 제시하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자아라는 환상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집착을 끊어냄으로써 의식과 고통, 정서의 인과를 더 맑게 이해하는 것. 그에 기반해 더 잘 살아가는 것, 나아가 타인과 함께 더 잘 살아가는 것. 이게 그가 말하는 종교 없는 영성이다. 여기에 어떤 종교적 믿음과 교의는 필요치 않다. 빗대어 표현하자면, 앞서 말한 스피노자의 자유인, 붓다가 말하는 깨달은 상태와 비슷한 지향을 갖는다.


물론 자아와 의식, 뇌와 인간, 나아가 세상과 우주를 과학과 이성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과 이성이 그런 제약 속에서도 충분히 잘 설명하고 있으며, 잘 설명할 것이라고 믿으며, 종교와 달리 모든 걸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과학과 이성이 제공하는 인간의 의식, 정서 등에 관한 메커니즘은 이미 실천적 관점에서 충분히 활용할 만한 수준이며, 삶의 의미 또는 자아에 관한 질문 또한 그런 과학적 성찰을 통해 탐구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7) 시그리드 누네즈 저, 정소영 역, 『어떻게 지내요』, 엘리, 2021














쉽지 않은 책이었다. 구조가 그랬고 작가의 의도가 그랬던 것 같다. 영화에서 시작해 호기심에 집어든 책이었고 '오 재밌어! 엄청나!' 이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아 뭐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찝찝한데?'라는 약간 불쾌한 감정을 자아내 나는 이 책을 탐정처럼 읽었다. 나도 작가처럼 의식이 흐르는 대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래의 단상이 탄생했다.


https://blog.aladin.co.kr/wintertrees/16230309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산만한 이야기를 하나의 줄기로 엮어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쉽지 않은 글이었다.


3. 2025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말독서정산을 간략히 훑어봤다. 17년에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화두였고 18년에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가 중심에 있었다. 다만 18년을 지나며 추상적 차원에서 '좋은 삶'을 좇는 방식은 멈추기로 했다. 19년에는 먹고살기 위한 공부를 했고 앞으로 무엇을 공부할지에 관심이 있었다. 20년에는 관심을 갖고 갈 큰 줄기를 세웠고 21년에는 '나는 읽고 써야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2년에는 그렇다면 무엇을 읽고 써야 하는지, 또 '쓰는 일'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23년에는 책을 조금 더 밀도있게 읽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24년에는 바빴던 사회생활과 망가진 루틴에 피로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정말 절박해진 만큼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내게 진짜 필요한 인생의 두 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독서정산을 훑어본 이유는, 지금까지 독서 방향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가는 게 맞을지 고민해보기 위해서다. 흐름을 따라가 보니 변화가 선명했다. 예전에는 불확실성과 위험, 고통이 두려워 안전한 곳에만 있으려 했다. 책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구석에서 책만 본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구체적 맥락 속으로 들어가 현실을 살아내야 했다. 그건 곧 불확실성, 위험, 고통에 몸을 내맡기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현실을 살아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슬퍼했으며, 무언가를 포기했고, 받아들였고, 도전했다. 책은 그런 현실 속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할 때만 읽으려 했다.


그래서 그런가. 2025년의 독서는 뭐랄까, 밀도나 질에 있어서는 아쉬운 게 많았지만 구조적으로는 깔끔했다. 내적으로 정리된 게 있어서다.


그동안 독서와 관련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욕심이었다. 지식의 노예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본성은 여우임에도 정서적, 윤리적 혼란을 견디지 못해 고슴도치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약간의 현상학 이야기와 이사야 벌린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후설은 '유럽학문의 위기'에서 과학적 태도를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로 절대화하는 객관주의, 과학주의를 비판했다.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 - 지향 - 이고 대상은 늘 어떤 시점, 거리,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데, 과학주의는 생활세계라는 맥락을 삭제하고 과학을 절대화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과학은 우리가 이미 살아가며 경험하고,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고, 행동하는 기본 세계인 생활세계에서 특정 관심(측정, 예측, 통제)에 맞게 추상화 한 관점일 뿐, 실재를 바라보는 유일한 접근법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의 절대화가 생활세계를 잊어버리게 하는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후설은 지적했다. 


예를 들자면, 물리학자는 나무를 "물을 내부의 다공성 통로로 이동시키며, 외부와 열, 질량(수분) 교환을 하고, 중력이나 바람같은 하중에 대해 탄성, 점탄성으로 변형하는 계층적 복합재 구조물"로 바라보지만, 더운 여름철 길을 걷던 노인에겐 그늘을 제공해주는 쉴 곳이다. 제지 업체 사장에게는 종이의 원료로 보일 것이고, 가구업체 사장에게는 가구의 재료로 보일 것이다. 게다가 과학적 관점 안에서도 물리학자가 아니라 생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나무는 다르게 다가온다.


이러한 현상학적 관점주의는 인간의 실제 삶으로 들어가면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인류 역사상 이른 시기부터 인간들이 고민해왔던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아포리아다. 아포리아는 '길이 막힌 상태,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난점'을 뜻하는데, 거칠게 보자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서 등장하는 게 이 현상학적 관점주의에 따른 아포리아의 구조다. 폴뤼네이케스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안티고네는 매장의무, 가족에 대한 의무로 오빠인 그를 매장하려 하지만, 크레온은 전후 질서 유지를 위한다는 국가에 대한 의무로 조카인 그를 매장하지 못하게 한다. 두 관점은 충돌한다.


후설이라면, 의미가 어떻게 주어지고, 가치가 어떻게 증거 있게 드러나는지 분석하며, 더 정당화된 이해와 높은 수준의 관점을 지향하겠지만(특정 관점의 절대화가 아니라는 점은 주의), 내 생각에 구체적인 삶의 맥락 속에서 그게 그렇게 깔끔하게 갈무리 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두 관점의 가치를 동시에 완전히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이를 관리하는 데 집중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이사야 벌린이 말하는 여우식 접근법이다.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저서에 등장한다. 


이사야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비유를 통해 톨스토이를 해석하고 나아가 사상가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려 했다. 거칠게 읽어보면,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원리로 세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기질이다. 철학자로 예를 들자면 거대한 형이상학을 구축하려한 스피노자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까. 반면, 여우는 여러 원리를 함께 다루며 맥락에 따라 사고하고자 하는 기질이다. 라이프니츠가 딱 이 스타일인 거 같다.


벌린은 톨스토이가 역사와 삶의 복잡성을 잘 그려내는 여우의 재능을 가졌음에도 개인적 신념 차원에서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해 설명하고 싶은 고슴도치의 욕망을 지녔고, 그 간극이 그에게 고통과 긴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한다. 이걸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건 여기서 다루고 싶은 게 아니니 여기까지 하자. 중요한 건 그런 유사한 간극이, 내게도 고통과 긴장을 만들어 내왔고 오랜 시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갈팡질팡해왔다는 것, 갈무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애증을 내적으로 소화하지 못해 어리바리해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 느낌을 더 부연 설명하고 싶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 사족이 더 길어질 것 같다. 작년 독서정산에서 언급했던 페소아의 '비행동주의적 특성'과 '익명주의적 특성'에 내가 주목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 있어서다. 여하튼, 내 욕심과 내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갈등 탓에 오랫동안 나는 해석되지 않는 '나'라는 구절 앞에서 발싸심하던 인간이었는데, 소진되기만 하는 인간이었는데,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는데, 불확실성에 몸을 잘 내맡기지 못하는 인간이었는데, 올해는 이 내적 갈등이 정말 많이 해소되었다는 게 2025년 독서를 돌아보며 느낀 핵심이었다. 이전의 내가, 겨울엔 이 오리들이 어디로 가냐며 묻던 콜필드 같았다면,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며 내려놓은 콜필드 같달까.


아마 개인적인 사건들이 영향을 준 게 분명하다. 가정을 꾸렸고, 집을 구했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따봤고,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책을 이런 일련의 개인적인 사건들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읽다 보니, 항상 중심이 있었고, 모든 걸 포괄하는 관점이 아니라 나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 나의 경험과 내 감정에 중요한 것에 초점이 있는 관점을 취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느낌으로 책을 읽어나가지 않을까 싶다.


4. 2026년 독서의 세가지 축


현재 내 인생의 큰 축은 '영적성장, 실용성장, 삶의기반'이다. 독서도 일단 이 축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다.


1) 영적성장 : 지속적 탐구로 자기이해와 성장, 평안, 정신적 자유를 도모하며 그 과정의 통찰과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 철학, 뇌과학, 심리학 등의 책을 꾸준히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새롭게 책이나 작가를 또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해마다 이 분야는 꾸준히 팔로우 해놨기 때문에 그만 추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2) 실용성장 : 장기적 자립과 경제적 자유를 위해 가치 기반의 투자 전략과 실행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과정의 통찰과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게 핵심이다. 투자에는 심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영적 성장의 관점에서 읽었던 심리학, 뇌 과학책들을 교차해가며 볼 수 있겠고, 매크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정치나 경제 관련 서적들을 읽어볼 수도 있겠다.


투자 책의 기본 줄기는 가투연과 버핏클럽에서 주최해 선정한 '2021 우량투자서 35선'을 메인으로 하려고 한다. 읽은 책도 여럿 보이지만 아직 대부분 읽지 않았고, 제대로 이해하며 보기에 아직 내 내공이 부족한 것들도 많다. 조금 더 눈에 들어오는 걸 꼽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철학을 공부했던 약력이 매력적인 조지 소로스의 책이나 국내의 훌륭한 투자자분들의 좋은 책들도 구미가 당긴다.

















정치, 경제는 화폐와 금융, 의사결정, 역학관계와 관련된 책들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정당성/규범, 정체성과 감정의 측면에서 주로 관심을 두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가치저장과 보존, 나아가 가치증대의 관점에서 화폐와 금융은 알아야 할 게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트코인의 이상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가치저장과 보존의 관점에서, 비트코인은 가장 순수한 화폐가, 가장 비인격적인 화폐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러한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실험이라는 생각.


정치와 경제를, 특히 정치를 역학관계에서 보려고 했던 건 약간 본능적이었다. 늘 당위에 관심이 많았던 탓인가, 당위에 지쳐 당위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벗어나기 힘들어하던 때 관심을 두었던 게 바로 당위의 기저에 있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근대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의 발전 이후 인권 존중과 교정 중심의 형벌이라는 도덕적 진보 서사가 사실은 인간의 육체를 바라보는 권력이, 역학 관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푸코의 지적같달까.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봤기에 뮌클러의 "제국"이라는 책도 참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둘 다 거의 10년 전에 읽었던 책인지라, 특히 스터디를 하며 꼼꼼하게 읽었던 "감시와 처벌"과 달리 "제국"은 그냥 한 번 읽었기에 이 요약이 너무 거칠 수도 있는데, 내 기억에 뮌클러에 따르면, 세계의 질서 있는 평화, 국제 규범과 같은 당위는 사실 보편적 도덕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의 제국적 권력이 압도적 우위를 가질 때 제공되는 공공재와 같은 것이다. 그때 당시 이 책을 읽으며 뮌클러의 분석력에 감탄했고 그와 동시에, 부상하는 중국을 보며 약간의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을 보니 정말 이 책의 말대로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제국이 약화되면 도덕이 사라지는가라는, 다극 체제에서 인권과 규범이 가능한가라는, 미중 패권 갈등 사이에서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는, 그리고 나는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라는 질문이 중요해졌다.


3) 삶의기반 : 신체, 정서, 관계를 꾸준히 돌보아 내 삶의 기반을 단단하게 하고, 그 안정과 평안을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나누는 게 핵심이다. 내 마음과 육체를 잘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꾸준히 읽고, 정서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숙고한 기록을 남기는 것. 내 마음과 육체를 돌보는 데 도움이 되는 루틴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결정마찰을 최소화한 상태로 밀도있게 살아갈 것. 그리고 그렇게 건강해진 자아를 바탕으로 내가 사랑하고 관심 있어 하는 사람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으며 주거니 받거니 할 것.

이 부분은 읽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한 지라, 필요한 책들을 그때그때 찾아보지 않을까 싶다.


5. 2026년의 독서를 시작하며


요즘 계획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는 세우려 하지 않는다.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고, 호기심이 많고, 내적 상태를 중시하는 나의 특성 상 구체적인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그에 따른 심적 부담만 가중되는 탓이다. 상위 계획과 거시적인 흐름만 잡아 놓고 하위 실행은 가변적으로 하면서 변화를 흡수 할 수 있는 느슨한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26년 독서계획도 세 가지 축이라는 거시적인 흐름만 잡아뒀을 뿐, 그 이상 구체적으로 더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떤 책을 읽겠다.', '몇 권 읽겠다'가 아니라 '지금 필요한 영적성장(or 실용성장, 삶의기반)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나의 판단이나 기록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재료로 쓰일까?'라는 질문에 긍정적 답변을 할 수 있는 게 중요하겠다.


ps. 1월 중순이 지나갈 무렵 지독한 독감에 걸려 한 동안 고생했다. 1월 중순에 끝내고 싶었던 2025년 연말 정산을 이제야 갈무리한다. 훌륭한 책들과 함께 더 성장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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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독서정산


알라딘에 매년 독서정산을 끼적인 지도 어느새 8년 차다. 매년 반복하는 연말 정리 행위 중에서 가장 빠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행사인 만큼 11월부터 읽었던 책의 목록을 정리하는데, 올해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뭐 붙잡거나 읽은 책이 30권은 넘는 것 같지만 밀도 있게 읽지 못했으니 무슨 소용인가. 부끄럽다. 바쁜 부서에서 갈렸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여유 시간을 주로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기에 할 말이 없다. 작년과 달리 어느 정도 일에 더 적응이 되었고 사회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종 스킬을 터득한 터라 작년 정도의 번아웃, 만성피로, 스트레스로 괴로워하지는 않았음에도 많은 여유 시간을 내적 평화 및 성장을 위해 쓰기보다 쾌락을 가져다주는 도파민의 세계에 쓰곤 했다. 이제는 핸드폰 없이 살던 때의 그 느낌이 어땠는지 상상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은 습관이 일상이 됐다. 도파민에 절여진 뇌를 구출하는 데에 내 남은 인생이 달려있다는 생각도 든다. 심각하다.

읽었거나 붙잡았던 책 중 그나마 기억에 조금 남는 것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한 후 올 해를 구체적으로 반성하고 내년의 독서 계획의 방향성을 검토해봐야겠다. 뭐 어쩌겠나, 이렇게 반성하고 다시 실천하고 하는 수밖에.


2. 기억에 남는 책들


1) 찰스 부코스키 저, 박현주 역, 『호밀빵 햄 샌드위치』, 열린책들, 2016














그러고 보니 작년에 '올 한 해의 책'을 고르지 않았는데 - 지금이라도 골라보려 했더니 김혜진 작가의 "경청"과 로벨리 교수와 라훌라 교수의 저서가 비등비등해서 고르질 못하겠다 - 올 해도 거를 순 없다. 읽은 책이 많지 않아서 다행인 걸까. 그 중에서도 감응을 준 책이 많진 않아서 고르는 게 어렵지 않았다. 바로 찰스 부코스키의 "호밀빵 햄 샌드위치"다. 찰스 부코스키는 3년 전 독서정산을 할 때 앞으로 읽어야 할 주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정리해뒀던 사람이다.


한때 미국 주류 문단으로부터 외면 당한 이단아, 전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 1920년 독일 안데르나흐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살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 꾸준히 창작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하급 노동자로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다. 그러다 우연히 우체국에 취직해 우편물을 분류하는 사무직원으로 12년간 일했다.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해고 직전이었던 그가, 전업으로 글을 쓰면 평생 매달 1백 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방황, 아웃사이더, 정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 육체노동 등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여러 키워드가 등장하는 이력을 가진 작가로, 거친 삶을 살아왔던 만큼 이렇게 '날 것 그대로' 같은 소설은 처음이었다. 폭력적이고 무능력한 아버지, 정서적으로 나약하고 의존적인 어머니. 누군가의 피해자로 자라나 가해자가 된,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 모호해진 상태의 부모들에게서 자라난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 헨리의 주위를 규율하는 규범은 '사랑, 존중, 도덕같은, 가진 게 있는 사람들이나 주장하는 담론'이 아닌 '힘'이다. 

타고난 체격과 담력,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던 환경은 헨리가 힘을 중시하게 했지만, 사실 헨리는 짐승과도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이 최선이었을까,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어떻게 사는 게 맞을까. 헨리는 여린 마음을 냉소로 감추고 날 것처럼 살아가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자기 확신인지도 모르겠다.   


"어디든 삶은 없어, 이 도시에도 이곳에도 이 지친 존재에도 삶은 없어"(370)


"입닥쳐. 무슨 일인지 알고 싶다고!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319)


""어떻게 해야 씨팔 수업을 들을 수 있냐? 뭘 해야 해?"

"네가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어떻게? 어떻게 내가 알아? 이런 지식을 내가 안고 태어나기라도 했어야 해? 깨끗이 순서대로 정리돼서 필요하면 딱딱 꺼내 볼 수 있는 줄 알아?"(320)

 


2) 페르난두 페소아 저, 오진영 역, 『불안의 책』, 문학동네, 2015 





 


  



 

 



계획에 있던 독서도 아니었고 첫 인상도 좋지 않았지만 읽으면서 저자의 심리 상태에 점점 더 공감하게 되었던 책. '페소아'하면 이 책이 떠오르고 국내에도 이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조금 긴 단상에서조차 응집력 없는 짧은 편린이 나열된 경우가 많고, 이런 단상을 구성하는 활자도 지칭하는 바를 직접 지시 하지 않는, 은유적인 것들이 많아 편하게 읽어나갈 에세이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느 날 책 한 쪽을 펴고 시를 읽듯, 그렇게 읽어나가면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 정도이니, 이런 책을 한 번에 쭉 읽으려고 시도하는 건 어떤 점에선 좀 고역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기에는 딱 두 가지만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하나는 그의 '비행동주의적 특성'과 다른 하나는 '익명주의적 특성'이다.


실용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감성의 결여다. 실용적인 삶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행동을 추진하는 능력, 즉 의지다. 행동을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감성과 분석적인 사고다. 분석적 사고란 결국 감성을 동반한 생각이다. 모든 행동은 개성이 각자의 본성에 따라 바깥세상에 투사된 것이다. 바깥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는 대부분이 인간이므로 개성의 투사, 즉 행동이란 다름아니라 우리의 행동 양식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길을 가로지르고 그들을 방해하고 아프게 하거나 제압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개성과 아픔, 기쁨을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필요하다. 타인에게 잘 공감하는 자는 행동하지 못한다.(381)


페소아는 여러번 자신이 행동하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그 바탕에는 위와 같은 전제가 깔려 있는데 따라서 그는 일종의 정치적 회의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행동에 대한 영향이 비단 정치적 지향성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바 행동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그가 통합된 정체성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을(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알 수 있다. 아마 상당한 내적 분열을 겪었을 것이다. 이게 좀 추상적일 수도 있으니 예를 들어보자.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 고등학생 A가 있다고 해보자. A가 반에서 어떤 아이와 친해지고자 하는 '행동'은 사실 '선택'이고 선택은 어떤 점에서 '배제'를 함축한다. A가 B에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고, B와 함께 했던 시간을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려두는 것. 이에 대해 C는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A가 감수성이 풍부해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고려하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A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부정적 정서를 일으키는 게 걱정되어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A는 반 친구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하지만 A는 점점 내면에 부정적 정서가 쌓여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게 될 것이다. 삶의 원칙이 '나는 어떤 걸 하고 싶다.'(긍정형)가 아닌 '저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어 하면 어떻게 하지?'(부정형)과 같이 문제의 소거에 있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력은 언제나 형이상학적 원인이 있는 질병이었다. 내가 취하는 모든 동작이 이 세상을 방해하고 세상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 나는 내 모든 행동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정직함과 신중함을 취했다. 이러한 자세는 내 의식 안에 굳게 자리잡았고, 내가 현실 세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480)


페소아의 저런 비행동주의적 특성은 익명주의적 특성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두 특성은 또한 페소아의 뛰어난 감수성, 공감력, 그리고 그의 삶의 태도와 습관, 정서적 지향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 여러 사건 등 다양한 삶의 맥락과 환경의 결과이자 그런 공간 밖으로 나가는 걸 어렵게 하는 삶의 관성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 익명주의적 특성이란 이명을 창조하고 사용하길 즐겼던 페소아의 습관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현실 속 외로움과 불만족을 투사해 만들어낸 가상에 대한 욕망으로 시작한 부분도 있겠지만 단일하고 통합된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과도 같다. 그게 의도적이었든 비의도적이었든 말이다.

두 특성을 기초 짓는 그의 풍부한 감수성, 광활한 내면 세계, 그리고 그가 느꼈던 각종 고뇌와 내적 분열 등 페소아의 심리적 상태에 공감되는 만큼 분열된 자아에서 겪던 괴로움과 공허함은 반면교사로 다가왔지만 아직 나도 뚜렷한 확신을, 특히 이 분열된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확신을 얻고 있진 못하다.


2) Lewis Carroll 저,『ALICE IN WONDERLAND』, 1865Edition

3) 루이스 캐럴 저, 마틴 가드너 주석, 승영조 역

 『ALICE IN WONDERLAND』, 꽃피는책, 2023


 

 


   


 

   





모처럼 힘들게 읽었던 원전인데 단상을 별로 남겨두지 않아서 독서 때 떠오른 생각과 느꼈던 감정이 상당 부분 휘발됐다. 재밌긴 했지만 뭔가를 끼적이기엔 더 깊게 읽어야 할 텍스트라 느껴졌을 정도로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그래도 굳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몇몇 부분을 키워드로 표현해보자면 '동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은 작품'이자 '캐럴의 소아를 향한 순수성의 환상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는 것 정도. 후자는 고인 떡밥이고 다른 차원에서 추후 생각을 풀어써보고 이번엔 전자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끼적여보자.

흔히 동화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장르적 특성이란 특정한 교훈, 권선징악, 어른이 바라는 모습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게 목적인 것 등등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동화 속 앨리스의 모델인 앨리스 리들이 자신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달라는 말에 탄생한 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던 만큼 앨리스를 즐겁기 하기 위한 게 목적인 동화였고, 그만큼 이 동화는 동화라는 장르에 기대하는 특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How doth the little crocodile

Improve his shining tail,

And pour the waters of the Nile

One every golden scale!'

"꼬맹이 크로커다일 악어는요

빛나는 꼬랑지를 팡팡 휘두르며

솟구치는 나일강 물보라로 황금 비늘을 샅샅이 씻는다지요!"

(원서 19, 가드너 주석본 86)


가드너에 따르면 동화에 등장하는 이 시는 원래 아이작 와츠의 시 "게으름과 해코지에 맞서"라는 것으로 부지런함을 강조한 교훈적인 작품이었다.


How doth the little busy bee

Improve each shining hour,

And gather honey all the day

From every opening flower!

바삐 바지런 피우는 꿀벌은요

빛나는 시간을 살뜰히 아껴가며

활짝 핀 꽃송이를 낱낱이 찾아

온종일 꿀을 모은다지요!(가드너 주석본88, 89)


부지런함을 강조하며 "악마는 항상 게으른 일손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해코지를 일삼거든요"(주석본 89)라고 원 작품을 비틀어 자유롭게 뛰노는 크로커다일의 이야기로 바꾼 셈이다.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아이의 시선에서 쓴 동화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4) Erwin Schrodinger 저,『What is Life?』, 캠브리지대 출판사, 2012














슈뢰딩거가 1943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수행한 강연에 기초해 출판된 책이다. What is LIfe 다음에 붙어있는 Mind and Matter까지 읽었지만 "마음과 물질"의 경우엔 할 말은 많았으나 생각을 풀어 쓰지 못해 단상을 얼마 남겨둔 것도 없으니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글을 남겨두도록 하자.

슈뢰딩거의 "생명이란"무엇인가"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생명 현상의 본질을 규명하거나 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부제가 "The physical aspect of the living cell", 즉 '살아있는 세포의 물리적 측면'인 것으로부터 슈뢰딩거가 주로 생명 현상의 핵심인 DNA에 대한 물리적 추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유의해야 할 건 슈뢰딩거가 이 강연을 할 때 아직 DNA의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과학 책의 경우 시간이 지나 저자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만 보면 책에서 얻어갈 것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보다는 그가 무엇을 당연시 했고 무엇을 당연시 하지 않았는지, 그가 살았던 세계와 읽는 독자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부단히 자각하며 읽어야 재미도 있고 얻어갈 게 많다고 생각한다.

슈뢰딩거는 염색체도 알고 있었고, 유전자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DNA란 단어를 쓰지 않았고 유전자의 구조와 기초, 성분, 크기, 위치에 대해 '추정'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이는 세포 안의 핵에 염색체가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염색체에 안에 DNA가 있으며, 이 DNA안에는 유전정보를 포함하는 유전자가 있고, 각각의 크기나 위치는 어떠한지, 그리고 성분(단백질인지 핵산인지)은 어떠한지, 현재를 사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알 수 있는 이런 사실들을 슈뢰딩거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걸 감안해야만 슈뢰딩거가 유기화학자들, 생물학자들의 발견을 토대로 생명현상의 핵심인 유전자를 물리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흥미로운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5) 폴 오스터 저, 황보석 역,『뉴욕 3부작』,열린책들, 2003 

6) 서머싯 저, 송무 역,『달과 6펜스』,민음사, 2000














두 책도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읽히진 않았다. 그래도 쉽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일으킨 탓에 풀어 쓰지 못해 단상을 남긴 게 얼마 없다. 나중에 다시 읽고 갈무리를 하고 싶으니 여기에 박제 해 두자.


예전에는 퀸에게도 커다란 야망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 이미 서너권의 시집을 내고, 희곡과 평론을 쓰고, 여러권의 장편을 번역했을 정도니까.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퀸은 그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자신의 일부가 죽었는데, 자기로서는 그 죽은 일부가 되살아나 쫓아다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11)


뉴욕 3부작을 읽다가 남긴 얼마 안 되는 발췌 중 하나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내 내적 상태를 어느 정도 잘 묘사하는 것 같아서. 뉴욕 3부작이나 달과 6펜스나 정체성을 키워드로 다시 읽어보면 좋을 작품들이다.


3. 2024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성장이 아니라 퇴화를 걱정해야 할 때


내 삶을 추동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성장이었다. 서양의 근대인들이 가졌던 진보를 향한 열망과 비슷하다면 비슷할까. 그리 잘 살아온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 열망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힘들지만 내가 조금 더 성장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했고 그 성장의 주요한 동반자는 바로 책이었다.

막연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성장하진 않았던 것 같다. 때로 책은 진정한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잘 읽는 것이 중요했고, 깊이 읽는 것이 중요했으며 그렇게 깊이 잘 읽은 결과 얻은 성찰의 결과를 내 삶과 적절히 연결할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연결을 위해서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했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행위는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장은 뭐랄까, 꾸준히 찾아오는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진 않아서, 때로는 뭔가가 무너져 내림으로써 찾아오는 개안과도 같은 것이었다. 성장 후에는 조금 더 단단해졌고 시야가 넓어졌으며 내가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내리는 판단이 약간 더 신뢰할 만한 것이 되었다. 물론 내가 주로 지향한 것은 인격적 성장이어서 이 성장이 어떤 물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하고자 했던 다짐들은 있었다. 책을 왜 읽는지도 정리해보고, 지금 이 막힌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도 정리해봄으로써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뭔지를 지속적으로 정리해왔으니까. 그러나 어느 하나 제대로 실천한 게 없었고 이제는 성장은 커녕 퇴화를 걱정해야 될 때가 왔다. 어렵사리 깨닫고 체화한 좋은 습관들이 자극적인 인터넷 콘텐츠와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하나 둘 삶에서 희미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와 함께 나는 깊게, 천천히, 철저히 읽는 법을 잊어버렸다.


4. 2025년을 맞이하며


그래도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어차피 인생에 뚜렷한 답은 없고, 반성하며 하루하루 온전히 살아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주요 문제의식과 읽고 싶은 책들을 작년 독서정산 및 21년 독서정산과 비교하며 다시 점검해보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1) 주요한 문제의식들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에 관하여 : 어느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과 함께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평생을 다른 공간에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나가는 것이니까. 대화는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갈등이 생길 경우는?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 외에도 함께 살아가는 도중에 새롭게 마주하는 문제가 많을 테다.


원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원치 않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에 관하여 : 살면 살수록 많은 친구(지인)는 큰 의미가 없고 다만 적은 수의 친구라도 잘 사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좋은 사람을. 그러려면 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겠다. 외롭다고 억지로 사람을 만나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소중한 사람은 연결이 끊기지 않도록 어느 정도 노력할 필요도 있다.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삶에 관하여 :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최대한 긍정적 정서를 많이 누리고 살다가 미련 없이 떠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긍정적 정서를 적절히 누리는 것 자체가 좋을 뿐더러 긍정적 정서는 내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타인, 사회와 건전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내면에 부정적 정서가 가득한 사람은 그 정서를 외부로 투사 해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의식은 뇌과학, 심리학, 명상 등과 연결되는데 나의 경우 도파민 디톡스가 핵심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손해는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만큼의 경제 공부에 관하여 : 살면서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돈'을 좋지 않은 것으로 보고 멀리해왔다는 것. 삶에 중심을 돈에 두고 모든 걸을 돈으로 양화하며 바라보는 태도는 좋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멀리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고민은 이거다. 적당한 수준으로, 손해는 보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 공부라고 했지만, 투자 공부를 통해 번 돈을 통해 내가 정말 더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그걸 통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버는 게 빠를까, 나을까. 아니면 하고 싶은 것도 조금씩 꾸준히 하면서 경제 공부도 충실히 함으로써 결국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삶을 채우는 게 빠를까. 아니면 잠시 경제 공부에 올인하는 게 나은 판단일까.


그런데 위와 같은 문제의식은 조금은 일반론적인, 독서의 소비자적인 측면의 문제의식이다. 더 구체적이고 생산자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의식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읽고 쓰는 일로 돈을 버는 일에 관하여 : 어떻게 보면 구체적이고 생산자적인 측면에서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 아닐까. 읽고 쓰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 중요한 건 나만의 콘텐츠와 수입을 창출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써내고 싶은가? 나만의 콘텐츠가 뭔가? 내가 읽고 쓴 산출물로 타인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나? 돈을 위해서는, 결국 내 일부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을텐데,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나? 비즈니스 프로세스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아직도 갈무리되지 않은 질문들이 너어무나 많다.


삶의 초점에 관하여 :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통한 안정적인 가정 꾸리기 등 전에는 바랐던 적이 없던 걸 바라면서 필요한 것들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내게 많은 돈, 시간, 여유가 주어졌다면 도서관을 여기저기 쏘다니며 지식의 노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데, 현생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간과 여유가 제한된 만큼 적절한 분배와 집중이 필요하다. 산만할 수 있지만 적어도 초점은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내 삶의 초점은 무엇인가? 삶에서 평생 가져가고 싶은 우선적인 초점은 SBNR이고, 그 다음엔 투자(라고 요즘 생각하는 중이다)다. SBNR은 내 삶의 태도, 목표, 지향점, 그리고 내적인 안정감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부단히 공부하고 실천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투자는 재밌기도 하고 투자를 통해 불린 돈으로 직장을 그만둔 후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욕망을 꿈꾸게 하는 분야이긴 한데, 모두 다 열심히하고 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놓고 내적 갈등이 아주 심하다.


2) 읽고 싶은 책들


(1) 문학 : 21년에 필립로스, 나쓰메 소세키, 밀란 쿤데라, 찰스 부코스키, 에릭 호퍼, 김경미, 강석경, 최인훈, 이청준, 기리노 나쓰오까지 적었는데 조금 바꾸고 싶다. 김경미까지는 괜찮은데 강석경, 최인훈, 이청준, 기리노 나쓰오는 우선순위(전집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가 조금 밀렸고, 그 자리에 김혜진 작가와 플로베르를 넣고 싶다. 그리고 전에는 문학란에 순전히 문학 서적만 넣었는데 이번엔 문학이론, 평론과 관련된 서적들도 좀 추가하고 싶다.



  


  


















(2) 심리학 : 문학치유, 감정, 행복, 명상, 관계. 이대로 가도 무방할 듯하다. 감정이나 행복, 명상과 같은 키워드들은 뇌과학과도 연관되어 있다 보니 그 분야에도 좋은 서적들이 많다. 하지만 굳이 그 분야의 책들도 심리학 범주에 넣어둔 이유는, 나는 인간의 행복, 명상, 행복과 같은 키워드들의 물리적 기초를, 순전히 실천적인 이유에서, 그 지식의 심리학적 사용을 위해서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3) SBNR : SBNR은 21년 범주에서 기타로 빼놓았던 부분이지만 그때도 적어놓았듯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독서를 우선하기로 해서' 후순위로 밀렸을 뿐 사실 내 삶의 가장 주요한 줄기라고 할 수 있는 분야다. 이 SBNR에 대해 2020년 연말독서정산에서 처음 언급했던 거 같은데, 그때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내가 알아보고 싶은 길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지복에 이르는 길과 비슷하고, 붓다가 말하는 해탈에 이르는 길과 비슷하다. 또 한편으로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음(SBNR)'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려는 길과 비슷하다. 물론 이 길이라는 것들은 앎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한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인연(因緣)에 대한 자각, 역량의 증대를 위한 노력, 자유를 위한 노력, 읽고 쓰기, 명상하기, 봉사하기 등 부단히 해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궁극적으로는 그 길 자체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그 길이 체화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 길을 가는 데에는 심리학, 뇌과학 등과 같은 현대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기에 이에 대해서도 부단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위키백과에서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에 대해 "조직화된 종교를 영적 성장을 위한 유일한 또는 가장 가치 있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영적인 삶의 자세를 규정하고자 사용되는 대중적인 문구이자 두문자다."(is a popular phrase and initialism used to self-identify a life stance of spirituality that does not regard organized religion as the sole or most valuable means of furthering spiritual growth)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영적인 삶을, 조직화된 종교 단체, 제도, 교리에 따르는 게 아닌, 스스로 탐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핵심은 '영적인 삶'을, '스스로 탐구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삶(Spiritual Life)란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영적인 삶이란 1. 내 삶의 의미와 목표, 목적에 관심을 두는 것. 2. 내적 평화와 자아 성찰에 관심을 두는 것. 3. 타인과 자연, 세계 사이의 관계(연결감)에 대해 자각하고자 노력하는 것. 4. 윤리적 성장(나는 윤리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당위, 도덕이라는 질감을 싫어한다. 선한 삶, 착한 삶보다는 좋은 삶,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에 관심을 두는 것. 이런 맥락 안에 존재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런 삶을 사는 데 거창한 철학적 이론에 관심을 꼭 두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구체적인 실천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맥락에 대한 이해를 통한 생각의 깊이를 얻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는 말로 표현하면 괜찮을까. 사실 세상을 편하게 사는 건 구체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얻고, 그 능력을 통해 최대한 내게 이롭고 좋은 삶을 구현하는 것일 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그 방법을 통해 돈을 많이 벌고 경제적 자유를 이뤄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자본주의 사회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나? 돈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나? 돈만 잘 벌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사는 게 뭔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문제를 해결하는 독서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라, 개념을 이해하고 자아를 확장하는 독서도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들뢰즈는 "루크레티우스와 자연주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있나?'라고 묻는 이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여야 한다. 자유로운 인간의 이미지를 세우는 일에, 자기의 능력을 그냥 눌러 앉히기 위해 신화와 영혼의 혼탁을 필요로 하는 모든 힘을 고발하는 일에 도대체 철학 말고 그 누가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보이고 있는가? (...) 자연은 신화에는 대립한다." 들뢰즈는 철학이 자유로운 인간을 그려낸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는 부족함도 그와 관련되어 있다. 내가 그 개념과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만큼 더 많은 걸 직접 고민한 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스스로 탐구한다.'는 말과 연결되는 셈이다. 물론 철학적 담론, 개념어에 잡아먹히는 삶은 원치 않기 때문에 나는 구체적인 삶, 생생한 현실과 연결된 단어들을 더 가까이 하며 살고 싶긴 하지만 말이다.

여튼, 이런 SBNR이란 키워드와 관련된 스승으로 내가 삼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스피노자와 붓다, 들뢰즈와 프랑수아 줄리앙. 나는 스피노자와 붓다를, 그 길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걸어간 사람으로서 존경하고(스피노자는 실천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체계도 구축한 사람이긴 하지만. 또한, 실천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예수도 그런 길을 걸은 사람 중 한명이겠다), 들뢰즈와 프랑수아 줄리앙을 그 개념적 이해의 기반을 닦은 사람으로서 존경한다. 들뢰즈는 내재성을 서양사상의 내재적 관점에서 탐구했고, 프랑수아 줄리앙은 동서양 사상의 비교적 관점에서 탐구했다. 또한, SBNR에 대한 관심은 삶의 의미라는 키워드를 향한 내 문제의식이 확장된 것으로서, 삶의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과 관련 서적 또한 전부 내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서는 필로소픽 출판사에서 계속해서 내놓고 있는 Meaning of Life라는 훌륭한 시리즈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21년 연말독서정산에 이미 언급해 두었다) 나아가 사실상 심리학, 뇌과학, 문학 등에 대한 관심은 SBNR에 대한 관심으로 종합될 수 있는 만큼, 정리한 문학, 심리학 범주도 SBNR과 무관하지 않다.

뇌과학은 약간의 기록을 더 남겨두고 싶은데, 나는 주로 뇌와 관련된 학문들을  "인간의 행복, 명상, 행복과 같은 키워드들의 물리적 기초를, 순전히 실천적인 이유에서, 그 지식의 심리학적 사용을 위해서 궁금해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심리학의 범주에 넣어두기만 하고 읽고 싶은 책과 관련된 관심사를 제대로 정리한 거 같지 않기 때문이다. 21년 연말독서정산에서는 주로 감정과 관련된 뇌과학 서적만을 올려두었지만 내가 뇌와 관련된 학문, 서적에서 관심을 두는 주요한 키워드는 감정뿐만아니라 의식, 자아가 있고, 뇌과학 전반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조지프 르두와 리사 펠드먼 배럿의 책은 21년에 언급했고 여기에 안토니오 다마지오, 크리스토프 코흐, 에릭 캔델, 패트리샤 처칠랜드(뇌과학자는 아니지만) 등의 책을 조금 추가해둬야겠다.















(4) 자기계발 자기계발에서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읽고, 쓰고, 말하는 방법과 관련된 책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21년에 약간 정리해둔 바 있고, 그 다음으로는 생산성과 관련된 책들에 관심이 많다. 생각을 효율적으로 하거나 잘 정리하는 법.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고 사용하는 법. 아니면 생산성과 관련된 프로그램(요즘 핫한 AI관련 분야가 대표적이겠다), 앱 등에 관한 책. 이런 것들 모두가 생산성의 범주에 들어간다. 논증의 탄생과 같은 압도적인 책을 제외하고는, 관심 분야의 책들이 너무 많고 아직 교과서로 삼을 만한 핵심 저서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AI는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변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는 수밖에 없겠다.


(5) 경제 경제 쪽의 핵심은 아무래도 '투자'가 될 것 같고 그 외에 '내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이해' 정도가 되겠다. 투자 쪽으로는 통계와 프로그래밍, 각종 생산성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결합해 공부해보고 싶긴한데 시간에는 제한이 있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내적갈등이 심하다. 일단, 다음의 세 권의 책을 시발점으로 삼아 이런저런 고민을 이어가보는 수밖에 없겠다. (짧게 썼지만 삶의 초점을 SBNR과 '투자'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 투자, 수학, 프로그래밍 등 - 부분에 대한 관심도도 크다. 다만 아직 세부 관심사를 언급할 정도로 많이 알지 못할뿐...)








(6) 사회 사회분야도 늘 주요한 관심 대상 중 하나이고 특히 법, 정치, 사회문제, 젠더, 불평등, 기후와 같은 키워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관심도가 많이 떨어진 것도 같다. 회의감이 주요한 원인인 것 같다. '이런다고 뭐가 바뀌나? 그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나 집중하자'와 같은. 


3) 2025년의 독서계획 및 다짐


올 해는 작년이나 제작년에 비해 여유시간이 많을 걸로 예상되는 만큼 가능한 읽고 쓰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올해의 핵심 다짐은, 원하는 삶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원하는 삶이 되도록 집중, 노력할 것. 내가 원해서 유튜브를 보고 드라마를 봐 놓고 왜 괴로워하는 걸까. 뭘 복잡하게 고민하는 걸까. 그 행위가 즐겁지 않다면, 그 행위에 관심이 쏠릴 때 내 내면에 집중해보자. 쾌락 뒤에 오는 공허함, 기분 나쁨에 대해 집중해보자. 그리고 읽고 쓰는 활동이 줬던 지속적인 만족감에 대해 집중해보자. 왜 나는 이러고 살까,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복잡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풀릴 문제라는 걸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나.

염두에 두고 싶은 대부분의 다짐들은 22년에 어느 정도 정리한 바 있으나 23년 다짐과 함께 약간 더 정리하자면,


자각하며 읽기 : 자각하며, 그러니까, 머리를 굴리며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내 삶에 주는 영향의 차이를 많이 느끼지 않았나.

읽은 책은 기록을 남기되 남기는 기록에 가하는 다양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지자 : 이게 중요하겠다. 항상 정돈된, 명료한, 깔끔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 이제는 책을 읽고도 기록을 편하게 남기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매번 그렇게 공들여 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기록은 편하게 남기자. 알라딘 서재에 단상을 넘버링을 통해 편하게 끼적이자. 괴로운 글쓰기라는 카테고리의 제목을 행복한 책읽기로 바꾼 이유기도 하다. 이거저거 신경쓰지 않고 아무말이나 편하게 내뱉던, 그렇게 내뱉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던 때의 경험을 떠올리자.

규칙적으로 쓸 수 있는 루틴, 구조를 만들자 : 중요한 내용이다. 조금이라도 매일 읽고 쓰는 게 중요한데, 쉽지 않은 만큼 나는 억지로 그런 환경에 나를 욱여넣으려고 하곤 했다. 가장 쉬운 게 독서모임이나 공부모임 들어가기였다. 문제는 내가 만든 모임이 아닌 이상 나의 문제의식이나 나의 취향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것.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책이 있는데, 그냥 보면 좋겠지 하며 이런저런 책에 기웃거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책들을 계속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임에 들어가는 건 임시방편일 뿐, 모임을 최소화하면서 나만의 루틴,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읽고 쓴 걸 어떻게 생산적으로 나눌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 어려운 일이다.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 많다. 정체성, 드러냄의 어려움,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그 밖의 무엇을 더 부숴야 하나. 어디서, 어떻게 무너져야 더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


그래, 이런 다짐들을 바탕으로 올 한해 독서계획은 어떻게 꾸려나가고 싶은가. 


재밌는 거 읽자 그냥... 계획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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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독서정산


나는 왜 책을 읽는 걸까무엇을 위해?

내가 우선적으로 읽으면 좋을 책이 뭘까이렇게 많은 관심 분야 중에서?

어떻게 하면 꾸준히 밀도 있게 읽을 수 있을까?

 

  책과 관련한 고민이 많았던 한 해였다더 많은 책을 밀도 있게 읽고 싶었다하지만 그러진 못했다혼자 하는 읽고 쓰기의 한계를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느낀 한 해였달까일에 치이거나 퇴근 후의 고단함이란 벽에 부딪쳐 넘어지기 일쑤였고넘어진 후의 시간을 내적 평화 및 성장을 위해 쓰기보다 쾌락을 가져다주는 도파민의 세계에 쓰곤 했다결과는 번아웃만성피로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건강악화였다.

  마감이 필요했다그게 어떤 구조적인 것이든세미나 참여든기고 일이든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에 나가는 것이든 상관없었다책과 관련된 어떤 행위를 하게 하는 데드라인이 존재하고나의 그 데드라인과 타인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면 됐다그렇게 마감이 존재했을 때나아가 내가 하는 그 행위가 즐거웠을 때나는 꾸준히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혼자서는 안 됐다계속 실패했다무슨 짓을 해도 안 됐다동기부여가 안 됐다내 욕망만으로는 안 됐다.

  마감을 통해 어떤 일에 흥미가 붙어 구조적인 선순환이 만들어졌을 때에야 밀도가 생겼고 제대로 사는 느낌이 들었다그런 선순환을 유일하게 만들어낸 게 올해엔 영어공부였다처음엔 미약했다주에 1회 zoom으로 모여 영어 책을 함께 읽는 것이었다내가 발표하는 분량은 A4용지 1/4도 안 되는 적은 내용이었고내 발표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설렁설렁 읽었다. (읽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이거라도 꾸준히 해보자.’하는 마음에 조금씩 품을 더 들이기 시작했고재미가 붙었으며영어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었다덕분에 영어실력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읽고쓰는 일에는 그런 선순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시도를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정착을 못하거나 흥미가 떨어졌으며결국엔 혼자 시도해봤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다 실패했다무엇을 파고 싶은 걸까재미난 주제로 어떻게 1년 이상 꾸준히 공부해볼 수 있을까이와 관련된 마감을 어떻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내가 모임을 만들어봐야 하나다양한 고민이 스쳤으나 실행한 건 없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몇 년 동안 제자리인 느낌이다.

  올해 붙잡았거나 완독한 책들의 목록을 간략히 정리하고 훑어봤는데 대략 6~70권 정도였다이 중에서 끝까지 완독한 책은 20권이 좀 넘는 것 같다기록은 10~15권 정도 남긴 거 같은데이런저런 글을 구상만 하고 갈무리 하지 못한 게 많은 탓이다아쉽다분명 더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읽고깊이 감명받고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 기회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2. 기억에 남는 책들

 

1) 우자와 히로후미 저,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사월의 책, 2016














  난 아직 자동차가 없다주변 친구들 대다수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확실히 난 조금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다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우선굳이 차를 살 필요성을 잘 못느꼈고다음으로는차를 썩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차보다는 뚜벅이대중교통을 더 좋아한달까뚜벅뚜벅 천천히오감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감각하며 걷는 맛버스나 기차전철같은 걸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어떤 낭만과 달리(아 물론 출퇴근 지옥철이나 만원버스는 좀 힘들긴 하다..) 자동차는 비쌈시끄러움먼지와 같은 부정적 키워드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의 제목이 유독 구미가 당겼던 것 같다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저자가 말하는 핵심은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이 충분히 내부화되지 못했고이로 인한 외부 불경제 효과를 신고전파 경제학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니 이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이론적인 부분은 차치하고나는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이 충분히 내부화되지 못한다는 말이 유독 인상깊었는데그도 그럴게 한국은 도시 자체가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 충분히 내부화되지 못한 비용을 그저 감당하고 사는 게 디폴트가 된 나라기 때문이다.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게 뭘까말 그대로 자동차를 이용하기 편하다는 것이다도로가 넓고 많은 것주차장이 많은 것과 같은 사실이 대표적이다자동차 이용이 편하니 자동차를 많이 사고자동차 통행량이 많아지고통행량이 많아지니 자동차 이용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그러다 보니 자동차는 더 늘어나고그렇게 이 비좁은 나라에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2,500만 대가 넘게 됐다많은 자동차는 소음먼지매연환경오염교통사고로 인한 각종 피해 등으로 이어졌고 말이다.

  자동차 이용이 편하다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이 살기엔 불편하다는 말이다그런데 특히자동차로 인한 불편함은 대개 어렵게 사는 사람이 더 많이 겪는다는 문제점도 있다한국의 자동차 위주의 정책에는어떤 점에선 자동차로 인한 효용 대부분을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져가고자동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많은 부분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 더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함과 불평등함이 내재되어 있다.


2) 요한 하리 저, “도둑맞은 집중력”, 어크로스, 2023















  스티븐 잡스가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을 처음 소개했을 때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나쁜 의미로 말이다전역 후 첫 스마트폰을 샀을 때 참 신기하고 편리한 게 생겨났다고 생각했을 뿐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만 쳐다보고 다닐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내 삶과 관련해서도 그랬다끝없이 이어지는 유튜브 쇼츠를 목적없이 쳐다보다가 늦잠자서 다음 날 하루 종일 피로에 저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요한 하리도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일상화된 스마트 기기와 각종 SNS 어플 등의 영향으로 우리는 집중력을몰입감을깊게 사고하는 능력을숙면을건강을 잃었다는 것이다스마트폰과 각종 어플 때문에 만성적인 스트레스각성 상태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다만기기 자체기술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저자는 기기보다는 스마트 기기의 각종 어플리케이션프로그램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구글유튜브인스타 등 각종 플랫폼의 사업의 수익은 대부분 광고에서 나온다광고의 효과를 높이려면많은 사람이 광고를 오랫동안 보게 하는 게 핵심이다. “이 기업들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더 오래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다그게 전부였다.”(181) 사람들이 더 자주많이 들여다보게 하기 위해 각종 어플리케이션은 가능한 한 사람들의 집중력을시간을 많이 뺏어올 수 있게끔 세밀하게 설계되었다대표적 사례가 무한 스크롤이다. “보수적으로 추산하면 무한 스크롤은 트위터 같은 웹사이트에서 시간을 50퍼센트 더 많이 보내게 만든다.”(185)

  이 책은 개인의 디지털 디톡스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왜 문화시스템에 내재한 거대한 문제와 관련해 자꾸 단순한 개인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는가이런 해결책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데도 해결책이 실패하면 개인이 시스템을 탓할 수 없게 만들고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을 탓하게”(235)된다저자는 우리의 집중력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걸 건드릴 수 있는거대하고 담대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3) 칼 포퍼 저,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포레스트 북스, 2023














  제목에 혹해 구입하고는 생각했던 내용과 달라 당혹해할 수 있는 책이다그럴만 한 게 자기계발서적같은 제목과 달리 과학철학자로 유명한 칼포퍼의 과학철학 및 역사정치철학적 에세이와 강연집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이다원서를 뒤져보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의 원문인 All life is problem solving은 단 한번 등장하며여기에서의 life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의 이라기보다는 생명체 일반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반증가능성구획의 문제 등 과학철학적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포퍼의 대답이 역사정치철학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면이 책을 윤리학적으로 읽어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포퍼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태도비판적으로 논의하려는 태도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려는 태도다정치든 사회든 과학이든 역사든 독단적 태도는 뭔가가 더 나아질 수 있게 하는 걸 가로막는 장애물이다도그마를 고수하는 과학자에게 성장이 없었듯전제정치와 독재정권처럼 비판적 논의와 건전한 토론이 불가능한 곳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문제의 직시다포퍼가 강조하는 태도들이나 반증가능성 기준이라는 과학철학적 입장같은 것들은 문제의 직시를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다문제를 직시해야 독단에 빠지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삶도 마찬가지다문제는 삶의 디폴트값이다중요한 건 문제를 향한 태도다문제를 제대로 보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행착오와 잘못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철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으나 문제와 사랑에 빠져 도전하고실패하고배우고 하는 과정을 통해 저명한 철학자로 성장한 포퍼처럼 말이다.

 

4) 김영하 저, “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가즈오 이시구로 저클라라와 태양민음사, 2021




  










  인공지능, AI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는 요즘이라 그런가 인간다움이 뭔가에 대해 좀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시발점은 이 두 책이었다클라라와 태양은 따로 기록을 남겨둔 게 없긴 하지만 무척 따뜻한감동적인 소설이었던 거로 기억하고작별인사는 내가 생각하던 인간다움에 닿아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는 클라라와 태양보다 좋았지만그 주제를 소설적으로 펼쳐나가는 데에 많은(너무나도 많은… 이렇게 좋은 주제를… 조금만 더 묵혀서 정치하게 써주셨으면 좋았을텐데아쉬움이 있었던 소설로 기억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인간다움의 핵심이 인간으로서 지니는 나약함비참함에 대한 자각과 수용이라고 생각했다이 자각과 수용이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들며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주요한 원리들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롤즈가 원초적 입장을 통해 도출해낸 차등의 원칙을 생각해보자사람들은 내가 나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최소 수혜자가 최대 이득이 되는 기준을 수용하려고 한다여튼그래서 나는 작별인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휴머노이드였던 철이가 유한함을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철이의 주요한 질문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가 해소됐다고 생각했다진짜 인간들이 망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유한함을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5. 빅터 프랭클 저,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20














  삶의 의미와 관련된 책이나 각종 인문학 서적에서 정말 자주 봤던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드디어 읽었다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삶의 의미와 관련된 더 좋은많은 책들이 나왔고그것들을 일부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처음 알았던 10년 전에 봤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기술한 것이다그건 바로, ‘인간이란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삶에 책임을 지며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핵심은 의미의 발견이다어찌되었든 자신 만의 삶의 의미가 있던 사람은 수용소에서의 고단함을 버티고결국엔 살아나가는 경우도 많았는데그게 아닌 사람은 자신을 포기해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많은 걸 견뎌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그래서 삶의 의미란 뭐고그걸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한 방법론의 제시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게 목표인 책이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한데 이건 가물가물하다여튼나만의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는 게 중요하다~!, 정도로 갈무리하게 넘어가야겠다.


5. 김혜진 저, “경청”, 민음사, 2022














구체성을 잃지 않은 말이 빚어내는 삶의 복잡성과 모순지난함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책을 읽고 알라딘 100자 평에 남긴 글이다정말 좋게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어서 김혜진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샀던 기억이 난다. (출간한 작품 전체를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던 많지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세상을 아름답게만추상적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더 곱씹고 추가적인 단상들을 남겨놓지 않은 건 아쉽다.


6. 어맨다 레덕 저,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을유문화사, 2021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다그런데 동화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 특정한 편견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며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도록 한다면저자인 어맨다 래덕은 이야기특히 동화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리도 없고 목소리도 없는 에리얼(인어공주의 주인공의 이름이다.)이 왕자를 얻을 희망을 꿈꿀 수 없다면다리를 절지도 않고 모든 능력을 온전하게 가져야만 고통과 괴롭힘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나 같은 장애 소녀는 어떤 희망을 품으며 살 수 있을까?”(197)란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7. Carlo Rovelli , “The Order of Time”, Penguin Books, 2019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완독한 영어원서다. (자잘한 각색 원서 제외하고책에 대한 단상은 약 4년 전번역서를 읽고 남겼던 독서단상의 일부로 대체솔직히 책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 시간을 관계론적인사건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내게 그리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았다캉길렘이나 푸코펠드먼 배럿들뢰즈붓다같은 사람들을 통해 변화생성관계사건구성과 같은 키워드의 의미를 엿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내가 보는 세상은 거친 수준에서 말하자면 로벨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상시에 내가 생각한 시간도 실재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성된 개념에 불과했다물론 물리적 기반 없이 마음대로 구성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필요하다. ‘물리적 변화와 주기.

우리가 흔히 시간의 정지를 묘사하는 방식을 떠올려보자나를 제외한 모든 게 잿빛으로 변하고 멈춘다변화가 존재 하지 않는 상태를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 여기는 것이다은연중에 시간을 변화(운동)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다만모든 게 멈춰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절대 시간이라는 뉴턴 이후의 시간관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을 뿐이다시간이라는 건 변화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옆에 두고 보는 시계는 무엇을 가리키는 거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세계적으로 동기화되어 마치 절대 시간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니까그러면 시간을 재기 위한 시계의 시간은 어떤 시계가 재는 걸까여기에서 중요한 게 주기역사적으로 인간의 시계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주기를 지닌 변화(운동)’를 기초로 만들어지곤 했다해를 예로 들자면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해가 지면 하루가 끝나는 식으로 해의 주기적 변화를 시계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시계도 자전과 공전이라는 천체의 주기적인 변화를 기초로 만들어졌고지금은 이를 더 정밀화하고자 세슘133이라는 원자의 진동주기를 기준으로 1초를 정의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주기적으로 운동(변화)하는 것이 곧 시계고 그 변화의 기간이 시간인 셈이다물론 여기에는 물리적 변화와 주기를 시간으로 개념화하는 인간이라는 주체도 필요하다주기적으로 운동하는 물체가 있어도 이것을 시간이라는 관념 으로 개념화하지 않는다면변화를 기억하고 이를 기초로 스키마를 형성해 끊임없이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려는 뇌의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시간 또한 없을 것이다.

 

2. 사실 뉴턴 이후 시간의 동기화’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시간을 변화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일반적이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란 변화(운동)의 척도로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뉴턴과 동시대 인물인 라이프니츠도 시간이란 동시에 공존하지 않는 것들의 보편적 인과적 질서에 부여한 관념이라는 식으로 이해했다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보통사람은 시간을 지각 가능한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식하며 여기에는 다양한 편견이 숨어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절대 시간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뉴턴은 그런 통속적인 시간 개념과 달리 변화와 상관없이 흐르는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의 존재를 주장했고그 절대적인 시간t가 흐르며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통해 다양한 운동을 예측했다물체의 상태를 시간(t)에 대한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그게 바로 F=ma이런 절대시간 개념은 뉴턴의 권위와 자본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철도 운행을 위한 시간의 동기화노동 효율성을 위한 시계의 보급 등)와 함께 상식이 되어 현재 우리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그렇게 변화사건과의 관계를 통해 시간을 정의하려던 아리스토텔레스나 라이프니츠는 패배한 듯했다.

 

3. 물론 뉴턴의 시간관에도 문제는 있었다뉴턴처럼 시간을 수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면 시간의 방향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실제로 뉴턴 방정식은 t와 -t를 구분하지 않았다우리는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뉴턴 방정식에 따르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도 상관이 없는 셈이다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가과학자들은 뉴턴의 운동법칙이 틀린 게 아니라시간은 원래 방향성이 없으나 운동의 특성상 방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식의 설명을 하게 된다바로 엔트로피의 개념을 통해서다.

엔트로피란 특정 물리계의 무질서 정도를 뜻하는 단어로엔트로피의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델타 S>=0)은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예를 들자면물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나며 물감이 물 전체로 퍼져나가지만퍼져나간 물감이 다시 뭉치진 않는다이를 비가역성이라고 한다이것이 곧 시간의 방향을 형성하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공기의 분자 하나하나라는 미시적 상태가 아니라 어느 강의실 공기의 압력온도와 같은 거시상태(열역학 상태)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미시상태와 거시상태의 관계를 이해해야 열역학 제2법칙의 의미를 조금 더 명료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거칠게 예를 들어보자면특정한 거시 상태를 표상할 수 있는 미시적 상태의 배열이 10억 가지가 있다고 해보자이 10억 가지가 표상할 수 있는 특정한 거시 상태는 1·2·3·4·5로 5가지다그리고 1을 표상하는 미시적 상태의 배열이 1가지고, 2는 2가지, 3은 3가지, 4는 4가지, 5는 9억 9,999만 9,990가지라고 해보자이런 상황이라면 특정 계의 거시상태는 5에 있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물감이 물에 섞여 퍼져나갈 확률이 물감이 다시 뭉칠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우리가 목격하는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인 셈이다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으므로미시적 배열이 얽히고 얽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쪽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시간의 방향인 것시간이 과거로 향하지 않고 미래로 향하는 이유는 확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확률이 높다는 것즉 덜 특별하다는 것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미시적인 상태를 전부 다 고려할 능력이 없는 데서 오는 희미함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로벨리는 이를 두고 시간은 방향성을 잃었다과거와 미래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엔트로피의 흐름과 우리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일치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도 가능한데 이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4. 아리스토텔레스와 라이프니츠의 짙었던 패색은 과학자들이 빛의 정체를 두고 발싸심하면서 옅어졌다.

과학자들은 입자인 줄 알았던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파동을 만들어 전파하는 전자기장인 에테르의 존재를 추정했다하지만 에테르의 존재는 광속 차 측정 등의 관측 사실과 모순됐다빛이 파동이라면 에테르가 필요한데 에테르를 가정하면 실험 결과와 모순되는 상황이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1905년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다아이디어 자체는 간단했다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를 더 밀고 나가서맥스웰 이론에서도 상대성 원리가 똑같이 성립한다고 가정했던 것이다여기에서 추론되는 게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같은 값으로 나타난다는 광속불변의 원리다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원리를 받아들여 뉴턴의 운동 방정식을 재구성했고(로렌츠 변환이게 바로 특수 상대성 이론이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직관적으로라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지라 여기에서 딸려 나오는 효과만 조금 정리해보자면, ‘시간의 유일함 상실’(로벨리가 말하는 현재지금의 끝도 여기에서 파생하는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과 흐려진 시간과 공간의 경계’ 정도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두 효과 모두 광속 불변의 원리를 가정하기에 나타나는 효과로 이제 시간은 속도질량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되었고공간과 시간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그리고 이러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등속 운동 뿐만이 아니라 가속 운동에까지 확장한 게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여기에서도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공간과 시간에너지와 물질이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이 정도면 로벨리의 말뜻을 대략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벨리는 아리스토텔레스라이프니츠의 시간관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부활해 뉴턴의 시간과 통합되었다고 말한다우선뉴턴이 말했듯 시간과 공간은 실재한다시간과 공간은 물질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시간과 공간 그 자체의 실재성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시간과 공간은 물질들의 관계 자체가 만들어내는 효과니까로벨리가 중력장이 곧 시공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테다반면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된다시간과 공간은 물리적인 씨실과 날실들의 관계망이 직조해낸 네트워크 자체로물리적 변화의 양상에 따라 휘고 구부러지기 때문이다.

 

5.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 씨실과 날실의 관계망이라면 양자적인 특성도 지녀야 했다시간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입자성불확정성관계적 양상이라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이 아이디어를 간단히 풀어보자면시간이 물리적 씨실과 날실의 관계망이 직조해낸 네트워크라면해당 물질들을 미시적인 수준으로 봤을 때 양자적인 특성을 똑같이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그것은 무언가와 상호작용하기 전에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다가 상호작용이 있을 때만 구체적인 게 되는입자적 특성과 파동의 성격을 모두 지닌 무엇이다.

로벨리는 이처럼 양자적인 특성을 생각했을 때우리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사물이라는 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마주침되어감 등의 과정 그 자체로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장을 한다.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실체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관계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자는 말이다어느 것과도 상호작용하지 않으면서 그 자체로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렇다는 말은 모든 사물이 사건이라는 말이며(사물 자체가 관계적 상호작용 후에 구체성을 띠니까), 사건이라는 말은 모든 사물이 시간이라는 말이다이게 로벨리가 모든 사물은 시간이다.”라고 말했던 이유다.

변해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인간이 지닌 문법의 부적당함을 지적하고(비동사가 서양의 철학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생각해보자), 시간 변수 t가 없이도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한 로벨리는 마지막으로 그만의 우주론을 통해 시간을 다시 이해하길 시도한다.

여유가 없으므로 로벨리가 요약한 것을 참고하자면중요한 건 관점이다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우주 전체가 아닌 특정한 계에 속해 특정한 계와만 상호작용을 한다이 계는 과거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에 있다가(‘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라는 것 자체가 로벨리에 따르면 관점의 효과다.) 점차 높은 엔트로피의 상태로 변화해간다그리고 이런 열적 시간을 시간의 흐름의 흐름 자체로 재구성할 수 있는 건 우리 인간의 관점 때문이기도 하다이렇게만 정리하는 건 아쉽지만거칠게 요약하자면 내가 앞서 시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7. Walpola Sri Raula, “What The Buddha Taught”, one world, 1997

















하루에 1쪽씩 3달 동안 읽어서 완독(뒤의 발췌 부분 빼고)했다. 붓다의 핵심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 20세기 서양인이 한참 전의 붓다의 가르침을 최대한 오독하지 않게 강조한 포인트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Among the founders of religions the Buddha (if we are permitted to call him the founder of a religion in the popular sense of the term) was the only teacher who did not claim to be other than a human being, pure and simple. (p1)


3. 2023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앞서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무의식적으로 자주했으나 갈무리 되지 않은 질문들이다이 질문들을 좀 곱씹어보려는 건 최근의 독서경험이 썩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걸까무엇을 위해?

내가 우선적으로 읽으면 좋을 책이 뭘까이렇게 많은 관심 분야 중에서?

어떻게 하면 꾸준히 밀도 있게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책을 왜 읽는 걸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쾌감이다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입이 즐겁고 좋은 향을 맡으면 코가 즐겁다좋은 음악을 들으면 귀가 즐겁고 좋은 풍경을 감상하면 눈이 즐겁다책에서 느끼는 쾌감도 이와 같다좋은 책을 읽으면 머리가 즐겁다뭔가를 알게되고이해하고배우는 데서 오는 쾌감재밌으니까 읽는다.

  그리고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삶을 돌아보면 참 많은 걸 책을 통해 배웠다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예전에는 왜 그렇게 힘든지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재했기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괴로운 적이 많았다그런 악순환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 건 크나큰 경험과 사건 때문이기도 했지만그 경험과 사건을 해석 및 정리하고 교훈을 이끌어내게끔 하는 어떤 기준과 원칙을 제공해준 독서때문이었다책이 제공한 지식으로경험을 해석 및 정리함으로써 성장하며 그 지식을 체화했던 게 핵심이었다이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지혜로워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다음으로이것도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다만지혜로워지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아닌 실용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다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접근할 때면 늘 먼저 책을 몇 권 읽고 시작한다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내 경험을 조합해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다이런 책은 책에서 지혜를 길어내는 목적으로 읽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속독이 가능하다지혜를 위한 독서는 깨달음과 체화를 위해 천천히음미하며 읽는 반면지식을 위한 책은 정보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첫째정서적 쾌감을 얻기 위해서둘째지혜로워지기 위해서셋째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이렇게 보면 책 만한 것도 없다즐거운 데다가 각종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지혜로워지기까지 하니까그런데도 요즘 나는 왜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걸까독서경험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뭘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도파민 중독이다중독의 대상이 유튜브 쇼츠같은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이라는 게 문제다천천히밀도있게집중함으로써 잔잔하게 느껴지던 정서적 쾌감(만족)이 아닌 즉각적으로 손쉽게 느껴지는 쾌감거의 남는 게 어려운 데도 그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비생산적인 대상을 향한 도파민 중독이 불만족스러운 독서경험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라는 생각도 드는데독서경험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만족감이 더 컸다면 오히려 더 활자에 중독되었으면 중독되었지 핸드폰을 그렇게 붙잡고 있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맞지만 여기서는 이 질문에 더 집중해보고 싶다독서경험을 더 만족스럽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게 필요할까어떻게 하면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보다 책읽는 게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핵심은 결국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그리고 이 환경은 다음의 세 가지에 다름아니다첫째분위기 조성둘째마감셋째선택과 집중분위기 조성이란독서하는 공간이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집중하기에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집에서 그 분위기 조성이 잘 되지 않는다면그 의지란 것을 집에서 집중할 수 있게 노력하기 보다스터디 카페로 나가는 데에카페로 나가는 데에 쓰는 게 맞다.

  다음으로 마감마감은 읽고쓰기의 동기부여를 위한 어떤 규칙과 기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언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쓸지 기한을 정해놓는 것이다그리고 이 마감 기한은 사적인 것에서 최대한 공적인 게 될수록 좋은 것 같다나 혼자 기한을 정해놓고 하는 것보다는 그 기한을 옆 사람에게 알리는 게 좋고옆 사람에게 알리는 것보다 함께 기한을 정한 후 읽고 쓰는 게 낫다.

  마지막으로선택과 집중독서와 관련하여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큰 어려움 중의 하나가 선택과 집중이었다관심사는 많고욕심도 많은데시간과 기회는 한정되어 있다전에는 충분히 숙고하면 선택과 집중하고 싶은 분야가 조금은 더 명확해질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여전히 모호하다그런데 이렇게 욕망의 과잉상태로 이것저것 붙잡다보니 독서에 대한 흥미가 점점 사라졌다만족과 재미보다는 부담감강박이런 부정적 정서가 더 자주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어디든 상관없겠다란 생각. Lewis Carroll의 “Alice In Wonderland”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Would you tell me, please, which way I ought to go from here?’ ‘That depends a good deal on where you want to get to,’ said the Cat. ‘I don’t much care where-‘ said Alice. ‘Then it doesn’t matter which way you go,’ said the cat.” 애초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명확하지 않다면관심있는 수많은 분야 안에서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 않을까이 관심사가 적어도 현재의 내 삶과 크게 동떨어진 게 아니라면그 안에서는 어디로 가든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내가 직접 뭔가를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기보다 괜찮은 커리큘럼 등의 환경 속으로 나를 여기저기 욱여넣어보고하루하루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는 것이다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에 나를 가져다두는 것그렇게 살다보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

  결국, 2023년의 독서경험에 대한 아쉬움은 이 환경조성의 부재 또는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게 한 해를 돌아보며 주로 들었던 생각이다책이 내게 주는 즐거움지식과 정보지혜를 비롯해 내가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책밀도 있게 읽기 위한 방법은 환경조성을 통한 구조적인 선순환이 형성되면 획득될 것들이다.


4. 2024년의 독서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담아보려고 하긴했다하지만 역시책보다는 문제의식을 위주로 정리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다 읽지도 못할 책욕심만 많아진다.


  복잡하게 말고 최대한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보자.


1)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에 관하여

2) 원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원치 않는 사람과 적당한 관계를 맺거나 말려들지 않는 것에 관하여

3)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행복하게 사는 삶에 관하여

4)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당한 수준으로손해는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만큼의 경제 공부에 관하여.

5) 의미있는 삶에 관하여


5. 2024년을 맞이하며 하고 싶은 독서 다짐

떠오른 글이 하나 있었다. 6~7년 전에 썼던 글이다돌아가신 신용복 선생의 마지막 인터뷰 글을 읽고는 떠오른 감상을 끼적였던 거다.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인터뷰를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특히 이 말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웹진 <다들>에서 2015년 10월에 신용복 교수와 나눈 대담이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인터뷰웹진에서는 신용복 교수에게 깨달음과 공부를 주제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20년의 감옥생활을 견딘 힘이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라고 하는데그 깨달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깨달음은 바깥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고안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성찰입니다."라고.

신 교수는 깨달음이 많은 지식을 얻는 것많은 책을 읽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책이 중요하지 않고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자기의 삶속에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기 재구성 능력이 훨씬 중요하지요." 자신이 접한 수평적 정보들을 수직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기 인식을 심화하면서 재구성 능력을 높여가는 게 바로 공부고 학습이라고 한다그래서 신 교수는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 아래서 책을 읽기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려고 했지요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생각을 높이는 것은 '가슴으로 하는 공부'를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공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애정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공부라는 뜻이다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다.가슴으로 하는 공부에 대한 신 교수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처음 5~6년 감옥살이할 때 함께 징역 사는 숱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들을 대상화하거나 분석하곤 했지요그러다 차츰 '나도 저 사람 부모 같은 사람 만나 저런 인생 역정을 거쳤으면 똑같은 죄명으로 감옥에 앉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나더라구요대상화하고 분석하는 근대적 인식틀이 조금씩 깨져나갔던 것이지요그 사람들과의 공감과 애정이런 게 생기면서 내 공부가 가슴까지 온 것입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와 가슴으로 하는 공부의 차이는 실천에 있다. "단순히 배우기만 한다고 기쁜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개인적사회적 실천과 연결이 되어야 진정한 공부라는 거지요." 그래서 가슴으로 하는 공부는 개인적 변화로도 이어진다또한,"공부는 이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게 되고그러기 위해 "당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변화시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분석이 있어야"한다고 한다이 말도 인상적이다.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사유를 학습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니까요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죄다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글을 읽으며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면서도 내가 변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가슴과 괴리된 지식을 모으는 데에만 열을 올렸던 탓이었다넓히는 것에만 열중했지 생각을 높이는 일에는 소홀했다며칠 전 일기에 썼던 "생각을 머리로만 하지 말고 느껴보기"라는 이야기와 같다생각의 속도가 삶과 괴리된생각을 체화하지 못하는 내 삶. '생각의 속도를 삶과 괴리되지 않도록 하는 연습내 생각을 곱씹으며 느끼는 연습생각을 체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지만몇 가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친구가 "생각을 너무 대자적으로 하는 거 아냐?"라고 말했는데그 말이 참 맞다내 삶타인의 삶에서 자꾸 거리를 두고 '대상화하고 분석'하려 든다이러니 내가 사는 현실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다생각이 마음과 괴리되고 삶과 괴리된다생각을 많이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실천하지 않았던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생각을 대자적으로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구체적인 현실에 적극참여하면서 공부의 대상에 애정공감을 느끼고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것이게 필요하다그런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을 대자적으로 하는 습관은 삶의 관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내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지 못하고나를 대상화 한 후 외부에서 주입한 가치에 빗대어 나를 평가하는 습관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게 아니라 억압하는 습관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안 돼' '아니야' '바꿔야해'라고 외친다타인의 시선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도덕적 기준사회적 기준 등 외부의 기준에 맞게 나를 억압하고나를 평가한다그러니 갈등하고소모되고공허해지고무기력해진다종국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된다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인터뷰 글을 보며 책 읽는 방식도 반성하게 됐다.지적호기심에 기대 마구잡이로 책을 읽으며 지식만 쌓길 바랐다책 읽는 게 마음을 울리지 못하고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못했다그것은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듯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며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는방종한 안일함에 푹 빠진 향락"에 불과했다아타루는 "읽어버리면 미쳐버리고 맙니다."라고 하는 데 나는 미치지도 않았고불편하지도 않았고그래서 바뀌지도 않았다내가 섭취한 지식이 나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지 못하는데감동시키지 못하는데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들었다.

몸으로가슴으로 느끼려 노력하고 느낀 걸 풀어 쓰기내가 다다른 결론은 이거였다나를 자극하고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매체는 책이 될 수도 있고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뭐든 머리로만 생각하기보다 몸으로 함께 느끼려하고그 느낌을 계속 풀어쓰는 연습을 하다보면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그러니까 매일 블로그에 일기 쓰는 연습을 더 게을리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가슴으로 느낀 바를 부여잡고 구체화해 풀어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기에.

 

다짐은 이걸 다시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도 충분하겠다아 그리고 하나 더어떻게든 규칙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그 환경 속으로 나를 욱여넣기.

 

고생했다, 2023야무지게 살아보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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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2024-03-0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3년의 정산 글도 유익하고 재밌네요! 매년 기다려져요! 올해도 기대해 봅니다

Faith4ciel 2024-07-30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말정산 잘 봤습니다. 분량이 꽤 되는데 쇼츠보듯이 일독했습니다. 이것도 상호작용의 과정인지 모르겠지만 엔트로피 성장을 위해 저도 올해도 기대해볼게요 반기나 분기정산도 환영합니다. 여유되시면 뇌과학 감정분야도 한번 건드려 주세요~
 

1. 2022년 독서정산


보고 싶은 책을 다 읽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고,

그런 짧은 인생을 나는 참 허투루 산다.


  앞의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그런 아쉬운 한 해를 보냈다. 분명 시작은 창대했다. 그런데 끝은 왜 이리 미약해진 걸까. 잡다한 핸드폰 게임, 유튜브, 만화, 드라마에 쏟은 시간이 근 3년 중 가장 많았던 것 같을 정도로 자극적인 활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많이 스며들었다. 도파민 중독이다. 길을 잃었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2. 인상 깊었던 책들


1) 로버트 프리츠 저, 박은영 역,  『최소 저항의 법칙』, 라이팅하우스, 2022















  그래도 영감을 줬던 책이 몇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 로버트 프리츠의 "최소 저항의 법칙"이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추상성' 때문에 아쉬움이 없던 건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많은 걸 느끼게 해 재밌게 읽었다.

책의 핵심은 '문제 해결형 삶의 구조가 아닌 창조 지향형 삶의 구조에 따라 살아야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제목 '최소 저항의 법칙'에서 시작해보자.

  최소 저항의 법칙이란 '우리의(자연의) 에너지가 저항이 가장 적은 곳을 향해 움직인다'는 말이다. 물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물이 저항이 작은 길을 따라가듯, 우리도 저항이 작은 방식의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가 말하는 바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데 폭식하거나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데 게임을 하는 행동은 의지의 탓이라기보다 최소 저항의 경로가 우리의 욕망과 갈등하는 방식으로 짜인 탓이다. 그리고 이 최소 저항의 경로를 정하는 게 바로 '구조'다.

  물의 움직임과 흐름, 방향을 결정하는 건 '물길'이라는 '구조'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구조는 무엇인가? 저자는 구조를 "우리 자신의 내적 메커니즘, 자기 이미지, 욕망, 신념, 문화적 고정관념, 가정, 외적 이상과 객관적 현실" 등 다양한 요소가 관계적으로 작용해 형성되는 무언가로 정의한다. 실천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썩 마음에 드는 정의는 아니지만, 하여튼,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구조는 또 대충 '반동-순응 지향형 구조'와 '창조 지향형 구조'로 나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문제를 해결하는 삶'과 '창조를 지향하는 삶'이다.

  '반동-순응 지향형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삶'은 쉽게 말해보면 '소거하는 삶'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명성, 재산, 좋은 유대 관계, 멋진 가족 등 외부 환경에 '바르게 반응"하면 보상을, '잘못' 반응하면 "징역형, 사회적 물의, 사망", 가난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고 배웠다. 그래서 외부 환경에 순응하거나 부정적 결과를 소거하려는 방식으로, 문제를 없애려는 방식으로 사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문제를 소거할 수 없기에, 또는 문제의 소거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기에 '냉소적임, 무기력함, 반항심'이라는 부정적 정서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그 반동-순응의 악순환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했다가, 폭식했다가, 이상화한 신체를 강요하는 사회 담론에 반항적으로 됐다가(그런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도 않고), 다시 그 분위기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아예 냉소적, 무기력해지는 식이다. 저자는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삶이 진동추처럼 반복되는 이유가 자신이 반응-순응 지향형 구조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창조적 구조 안에 있는 삶은 다르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라며 미움받는 문제적 상황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삶과, '저 사람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하지?'라며 내가 원하는 결과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삶의 차이랄까. 창조를 지향하는 삶은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끊임없이 구체화하고자 하며 그 결과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현실)이 어떤지를 끊임없이 객관화하고 인정하며, 내가 원하는 결과와 현실 사이의 간격을(구조적 긴장) 최대한 좁히고자 계속해서 노력한다. 단순한 차이 같지만 두 구조가 반복됨으로써 가져오는 결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꽤나 다르다.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삶은 일단 불행해지기 쉽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끝없는 문제로 점철되어 있고 그 문제는 모두 해결될 수 없다. 게다가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현실을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냉소적으로 보는 경향이 생긴다. 피해 의식이 생길 수도 있다. 문제에만 집중하는 탓에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잘 모르기에 구조적 충돌에 취약하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과 친해져서 외로움을 해소한다.'라는 욕망과 '혼자서 쉬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다고 해보자. 이 두 가지 긴장-해소 시스템은(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상태, 원치 않는 것을 가진 상태가 긴장이고 사람은 이 긴장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 서로 배타적인 탓에 구조적 충돌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원하는 게 뭔지 몰라 내적 갈등을 겪거니와 문제의 해소(외로움의 해소, 피로함의 해소)에만 집중한 탓에 지속적인 피로와 외로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한다.

  반면, 원하는 바에 집중하는 삶은 다르다. 늘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초점을 맞추기에 문제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자기에 대해 더 잘 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원치 않는 결과를 피할 수 있을까?'를 묻기보다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으니까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반응-순응적인 삶에서 겪게 되는 반복되는 악순환, 내적 갈등 및 분열에 쓰는 소모적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결과와 현실과의 간격을 좁히는 데 쓸 수 있다. 문제라는 외부 대상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지향하다 보니 자기효능감(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한다. 삶의 기본 구조를 어떤 식으로 짜놓느냐에 따라 이런 다양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차이가 얼마나 커다란지는 직접적인 삶을 통해 충분히 실감하는 중이다. 아직도 삶의 방향성은 오리무중이고 내면은 온갖 분열, 갈등이 가득하다. 아직도 내가 원하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게 다 반응-순응적인 구조,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구조로 삶을 이끌어왔기 때문인가. 참, 어렵다.


2) 에드 트로닉 외 1인 저, 정지인 역, 『관계의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북하우스, 2022















  이 책도 좋았다. 관점을 바꾸게 한 올해의 책 중에 하나. 에드 트로닉과 클로디아 M.골드가 공저했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문제는 표준이다. 중요한 건 복구다.'라는 명제를 되뇌곤 했던 게 기억난다. 이 명제에는 두 가지 중요한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첫 번째는 '평안과 평탄'이 디폴트가 아니라 '문제의 상황'이 디폴트라는 점. 두 번째는 중요한 건 '문제'가 아니라 '복구'라는 점이다.

  뭇사람은 대부분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상투적인 말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고통, 불화, 불안, 불확실성과 같은 부정적 상황 또는 정서와 마주하면 회피하기 바쁘다. 지긋이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일이 잘되려면 물 흐르듯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들에 의하면 이 전제 자체가 현실과는 다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 상황'이 기본이 아니라 '문제적 상황'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문제적 상황이 기본이라면 중요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다. 저자들은 '복구'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삶은 문제적 상황을 계속 복구해나가는 과정과 같다. 자기 감각과 정체성, 자존감, 외부와 관계하는 법 등 모두가 문제를 어떻게 복구해나가느냐에 달려있다. 회피하고 억누르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힌다. 반면, 문제를 계속 마주하고 복구해나가는 사람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고, 성장하고, 나아간다.

   이런 이야기를 각종 임상 사례와 실험을 통해 설명한다. 평탄하지 않은 상황, 뭔가 삐걱거리는 상황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짜증 날 때도 있지만 문제적 상황은 기본이니까. 중요한 건 이 문제를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뭐냐는 질문이다.


3) 필립 로스 저, 김한영 역,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문학동네, 2013

4) 필립 로스 저, 박범수 역, 『휴먼스테인1』, 문학동네, 2009

5) 필립 로스 저, 박범수 역, 『휴먼스테인2』, 문학동네, 2009

















  작년에 읽은 필립 로스의 소설 대부분은 '유대인의 미국적인 남성되기'가 주제였다. 올해 읽은 그의 책들도 그 주제와 무관한 건 아니나 그보단 한 개인과 '역사, 사회, 국가'와의 관계에 집중한 작품들이었다. 주커먼 시리즈에 해당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주커먼이라는 유대인 작가가 공통으로 등장해 붙여진 이름이다. "유령작가"에서 시작해 "유령탈출"까지 총 9개의 작품에 해당한다. 여기에 '미국 3부작'으로 유명한 "미국의 목가"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휴먼스테인"이 포함된다. 각각 베트남전쟁, 메카시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키워드를 다뤘다.

  아쉬운 건 이런 명작들을 읽고도 별다른 글이 남겨두지 않아 단상도 남기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연초에 읽었는데 아무런 글을 남기지 않았고, "휴먼스테인"은 읽으면서 '와, 로스는 어떻게 매번 이런 명작을 쓸 수 있는 걸까.'라고 감탄하며 이런저런 메모를 끼적이긴 했으나 더 심화시키지 못한 편린이 대부분이어서 써먹기가 애매하다. 워낙 명작이라 언젠가 분명히 다시 읽을 작품들이긴 하다. 특히, "휴먼스테인"은 콜먼이라는 캐릭터에 더해 포니아라는 캐릭터도 흥미롭고, 다른 작품에서 만난 한나라는 캐릭터와의 연관 속에서 읽어볼 여지도 많아서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나지 않을까 싶다. 


[1998년 여름, (…) 미국 전역은 경건함과 순수함을 주장하는 목소리로 야단이었다. (…)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적 열정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불온하고 파괴적인 쾌락인, 자기만 성자인 척하는 감정적 도취가 부활했다. 의회와 신문, 방송에서는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눈길을 끌어보려는 볼썽사나운 인간들이 남을 욕하고 개탄하고 응징하지 못해 안달이 나서 도처에서 맹렬하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들 모두 오래전 미국이라는 나라가 막 생겨났을 무렵 호손(…)이 “박해 풍토”라고 명명했던 계산적인 광분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 열 살짜리 딸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도록 온 세상을 평온하고 안전하게 해줄 엄격한 정화의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1998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혼자만 성자인 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휴먼스테인1 - 12, 13)


  발췌 해 놓은 초반의 문장을 다시 읽어봐도 이건 미쳤다. 생각이 전부 같은 건 아니지만 분명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작품이었다.


6) 허먼 멜빌 저, 김석희 역, 『모비딕』 , 작가정신, 2011
















  "모비딕"도 재미나게 읽었다. 관련 작품으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도 봤다. 단상은 책을 읽고 짧게 끼적였던 글로 대신한다.


  멜빌을 알게 된 건 6년 전이었다. 첫 만남은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서였다. 세계문학 단편선에서 왜 멜빌의 그 작품만을 찾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문학을 거의 읽지 않던 때 찾아 읽은 얼마 안 되는 문학 작품 중 하나였고 이런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작품을 쓴 멜빌이라는 작가를 뇌리에 새기며 독서 일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16년 3월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멜빌이 "모비딕"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하여튼,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네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사가 약하다는 점이었다. 모비딕은 서사가 흥미진진한 소설이 아니다. 끝내 마주하는 결말은 사실 소설 초반부터 충분히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멜빌이 힌트를 준다. 서사가 약하니 이야기의 흡입력은 떨어진다. 대중의 관심을 못 받은 이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안 그래도 약한 서사의 몰입도를 더 떨어뜨리는, 이야기의 중간에 자주 삽입된, 고래에 대한 백과사전식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멜빌이 왜 이렇게 많은 고래 이야기를 했는지 명확히 이해하진 못하겠다. 고래를 신비화하면서도 이렇게 분석적인 관점에서 고래를 해체해 묘사하는 양가적인 관점을 취한 이유도. 세 번째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 사이에 백과사전식 글이 늘어져 있는 장을 끼어 놓는 등의 요인 때문에 소설의 장르적 특성이 모호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멜빌답게 희극이라는 장르를 상당히 뒤섞기도 했는데, 멜빌이 이렇게 장르를 섞고 뒤틀면서 노리고자 했던 효과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는, 멜빌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룬 신학적 논제의 맥락을 잘 모른다는 점 때문이었다. 소설은 신비주의적, 종교적 상징과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만큼의 지식이 부족한 탓에 멜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읽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을 뒤집어 보며 논점을 모아 줄기를 잡아보면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지기도 했다. 그 퍼즐은 뭐랄까, '이 소설은 19세기에 신정론을 다룬 변형된 욥기'같다고 하면 괜찮을까. 그러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서 서사는 어차피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신정론에 대한 논제는 핵심인물, 나름 무고해 보이는 인물이 고통을 받아야 제기된다. 그게 바로 에이해브다. 소설 초반에 펠레그 선장은 에이해브가 "좋은 사람"이며 "위엄 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 같은 사람", "왕관을 쓴 왕이었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뒤 행복한 가정을 꾸리자마자 다리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비극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이 그 비극의 불가해함 앞에서 분노하다가 결국 체념하지만 에이해브는 그렇지 않았다. 미쳐버린 핍이 영적 지혜를 얻은 것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미쳐버린 에이해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실 - 신의 이중적 면모 - 을 보고 그것을 끝까지 파헤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이 지닌 이중적 속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게 고래였다. (흰색이라는 색깔에 대한 이야기로 언급된 게 그런 면모였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래에 대한 그 수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이슈메일이 고래를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신도 멜빌에게 그런 대상이었던 것 같다. 멜빌은 모순적이고 양가적이고 말이 안 되는 듯한 신학적 논제들을 다양하게 들춰냈을 뿐 명료하게 갈무리한 것 같진 않으니까.

  읽긴 힘들었지만 이야기하자면 할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었다. 특히, 에이해브가 매력적이었는데 오이디푸스나 욥도 떠오르고 스네이프도 떠오르게 하는 인물이었다. 선과 악의 저편에 있는 그 욕망에 관해 언젠가 구체적으로 더 생각해보고 무언가를 말해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7) 윌리엄 포크너 저, 하창수 역,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 윌리엄 포크너』, 현대문학, 2013 
















  번역이 아쉬웠지만 포크너 단편선도 인상 깊었다. 단상을 꽤 많이 남겼던 거로 기억한다. 11~12편 정도의 단편이었다. 한 두 작품 빼고 모두 뭔가 적어 놓은 게 꽤 된다. 서사가 강한 작품이 아닌데도 이렇게 몰입하게 만드는, 멍하게 만들고 무언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니. 첫 소설인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의 장미"부터 인생 영화 중 하나인 '그녀의 추억'(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메모리즈 시리즈의 첫 작품)과 관련된 키워드(과거, 변화, 생성, 변하지 않음, 그리고 '장미')가 많아 흥미로웠고 '곰'에 이르러 흥미는 절정에 달했었다. 담론, 사회 구조 등의 급격한 변화 과정에 놓인 개인이 그 변화와 마주해 변해(갈등 또는 고집)가는 모습을 많이 담았던 만큼 인간에 대해서도 많은 걸 말해주는 작품이 많았다.


8) 모니카 마론 저, 김미선 역,『슬픈 짐승』, 문학동네, 2010 
















  마지막으로 고른 작품은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다. 미시마의 "가면의 고백", 엘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까지 10권으로 할까, 아니면 8권째로 미시마의 책을 고를까, 엘리네크의 책을 고를까 고민했지만 모니카 마론의 책을 골랐다. 읽은 후 남겨둔 짧은 단상, "종교, 정치, 사랑. 세 이상주의라는 트릴레마 속에 갇힌 서양인. 그리고 사랑을 택한 주인공." 속에 나오는 키워드들이 조금은 더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랄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녀는 여러모로 반면교사로서 더 의미가 있었다.


3. 2022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다시 반복한다.


보고 싶은 책을 다 읽기에 인생은 너무나 짧고,

그런 짧은 인생을 나는 참 허투루 산다.


  올 한 해는 앞의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애초에 '읽고 쓰는 일'을 일상에 구조화하지 못했기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연초엔 분명 이것저것 시도해본 것도 많았다. 문학 계간지도 구독해보고, 온라인으로 계간지 읽는 모임에도 들어가 보고, 문학 책도 많이 읽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오히려 읽고 쓰는 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계기가 됐다. (물론 루틴이 망가지게 된 원인은 이것 말고도 많으며 복합적이다)

  덕분에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문학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인간은 아니구나. 특히, 다독은 정보를 가져다주는 책, 머리를 쓰게 만드는 책에나 어울리지 내 문학 독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내게 문학은 뭐랄까, 최소 한 달 동안 곱씹으며 읽고 캐릭터나 상황에 몰입해 종국에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로 이어지는, 그리하여 삶의 미세한 변화로라도 이어지는 독서로 이어졌을 때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때, 그 느낌을 활자화하여 마침표를 찍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럴 때에만 나는 변했다) 그게 아닌 문학 독서는 소화하지 못할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과식이다. 내게 남는 건 복통과 설사뿐.

  이것 외에 독서에 관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읽고 써야 하는 건 맞는데, 무얼 어떻게 읽고 무얼 써야 하나. 어떻게 읽고 쓴 걸 남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읽고 쓰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내면의 갈등, 걱정, 두려움 등 성장과 나아감, 시도를 방해하는 부정적 정서에 맞서 매번 패배하고 마는 걸 보면, 이젠 좀 방법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핵심은 하고 싶은 걸 찾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걸 하지 말기. 뭔가를 하게 만드는 구조 속으로 나를 욱여넣기.


4. 2023년의 독서를 생각하며


  독서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당장 더 읽고 싶은 거, 필요한 거 읽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관심 있는 분야, 작가, 책에 대한 대강의 개요는 이미 그려놨고 보관함에 한 해 동안 담아둔 약 100권의 책과 관련해 어차피 또 이것저것 추가한다고 해봤자 읽지도 못한다. 그래도 굳이 추가한다면, 23년에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이 책 한 권을 더 얹고 싶은 정도.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집필한 "책 읽어주는 남자."다. '더 리더'라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됐다. 영화의 여운이 짙어 관련된 정보를 이것저것 찾다가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법학자이자 소설가인 작가가 집필한 것으로 사랑과 이별, 정체와 성장, 선과 악, 죄의식, 감당과 책임 등 어찌 보면 광범위할 수 있는 주제를 깔끔하게 잘 버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올해 봤던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상 깊게 본 작품인지라 소설을 향한 관심도 크다.

  독서 우선 순위 정도는 정해두고 싶은데, 1순위는 자기계발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법)이 메인이고 여기에 '시간, 루틴, 습관'과 관련된 책들을 더해 주로 읽고 싶다. 2순위는 심리학이다. 나머지는 약간의 문학과 철학, 그리고 기타 책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5. 2023년을 맞이하며 하고 싶은 독서 다짐


  23년은 책을 많이 읽지 않을 것 같다. 자꾸만 지식의 노예가 돼버리는 모습을 보니 책이 선물(gift)이 아닌 독(gift)이 되어버렸던 지난날이 떠올라서 책은 최소한으로 읽고 오감으로 받아들인 내면과 세상에 관한 생각을 벼리고 활자화하여 쏟아내는 데 더 집중하고 싶다. 신영복 선생이 했던 말, "평소에도 독서보다는 사색에 더 맘을 두고 지식을 넓히는 공부보다는 생각을 높이는 노력에 더 힘쓰고 있습니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고 싶다.


  1) 자각하며 읽는다 : 지식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각하며 읽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읽는 도중에 자각하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특히, 더 중요한 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왜 읽지?', '이 책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게 뭐지?', '이 책을 다 읽으려면 얼마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이 책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나?', '다 읽고 단상마저 남기지 못할 거면 읽지 않는 게 낫지 않나?'와 같은 질문을 통해 사금을 걸러내듯, 제한된 시간 안에 조금 더 필요한 책, 더 읽고 싶은 책을 골라내야 한다. 어차피 직장인으로서 책을 읽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을 조금 더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우기 위해서는, 더 생산적인 것들로 채우기 위해서는, 막연한, 무작정적인 동기에 의해 독서를 시작하는 걸 참아야 한다.


 2) 읽은 책은 기록을 남긴다 : 단상도 좋다. 짧은 글도 좋다. 읽은 책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책은 삶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3) 남기는 기록에 가하는 다양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진다 : 저간에 쓰는 걸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루틴적인 요인도 있지만, 쓰기에 가하는 다양한 제약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분명 전에는 자의식 과잉으로 점철된 글, 헛소리,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도 자유롭게 끼적이는 일에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글을 나만 보는 일기장에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다. 물론 나중의 내가 봐도 알아먹을 수 있을 정도의 글을 쓰는 건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글에 대한 동기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수준이니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독서 후에 남기는 글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한 편의 정갈한 글을 쓰려고 하니 안 되는 거다. 활자와 마주한 후 샘솟는 다양한 헛소리를 막지 말고 그냥 계속 나오게 두자. 그리고 그걸 적자. 형편없어도 괜찮다. 김현 선생은 "김용택의 ‘맑은 날’은 지루하고 상투적이다. 농촌 세계의 가족적 정황이 수필같이 드러나 있으나 감동을 주진 않는다. 민요 쪽으로 빠져나가면 출구가 있을지 모른다."와 같은 짧은 단상도 거리낌 없이 남겼다. 어차피 한 편의 정갈한 글도 저런 짧은 단상이 깊어지고, 확장됨에 따라 나오는 법이다.


 4) 독서정산을 처음 쓴 17년부터 반복되어 온 다짐을 상기한다 :

  -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읽기

  - 일상 언어를 잃지 않기

  - ‘나’를 중심에 두고 책을 읽기, 머리로만 책을 읽지 말기

  - 정리하지 않으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이번의 다짐과 같다)

  - 책 읽는 데 돈을 아끼지 말자

  - 집에서 책을 읽을 환경을 조성하자. 잘 안 되면 무조건 나가라

  - 이 책을 읽는 이유, 목적을 잃지 말자(이번의 다짐과 유사하다)

  - 막연한 공허함을 채우고자 강박적으로 책을 읽지 말자

  - 당장 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책에 관심을 두자

  - 밀도 있게 기둥을 세우고 싶은 분야를 찾자

  - 불편한 책을 읽자, 성장을 위해

  - 책을 계획적으로 읽는다(이건 내년은 제외)

  - 가능하면 함께 책을 읽는다

  - 내가 읽고 쓴 걸 어떻게 생산적으로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한다

  - SNS에 독서 활동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남긴다

  - 규칙적으로 쓸 수 있는 루틴, 또는 구조를 만든다

  - 이런저런 글쓰기 대회에 많이 응모해보자


  안녕 2022년. 2022년을 보내는 데 아쉬움이 크지 않은 걸 보니 내 정신도 어지간히 타락했구나. 내년엔 좀 제정신으로 살자


"오늘도 보람 없이 하루를 보내는구나.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움이 없다니, 내 정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은 나 자신도 이때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전태일 일기 중)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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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년 독서정산


  올해 붙잡았거나 완독한 책들의 목록을 적어봤다. 대략 130~140권 정도다. 이 중에서 끝까지 완독한 책은 4~50권 정도. 글로 뭔가를 남긴 책은 20권 정도다. 이런저런 내적 고민과 갈등, 좋지 않은 강박으로 시간을 꽤 허비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확실히 많은 책을 붙잡고 읽었다. 일단 틈틈이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작년보다 나아졌으니 장하다!!’

  아쉬운 점은 꾸준히 쓰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다. 작년에 했던 독서 모임을 올 초에 그만둔 영향도 있었다. 직접 운영하던 오프라인 독서 모임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전환한 후 내 미흡한 운영능력 탓에 동기부여를 잘 하지 못했다. 글쓰기 습관을 유지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거나 그런 환경에 나를 욱여넣으려는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블로그 개편한다고 개인 SNS, 알라딘 서재에 썼던 독서 리뷰를 다 지워버려 놓고는 아직까지 갈무리를 못해 규칙적으로 리뷰를 올릴 동기를 마련하지 못했고, 함께 읽고 쓰는 모임에 기웃거리긴 했으나 조금 더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행위까지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내년에는 ‘한 달에 에세이 한 편 쓰기, 한 달에 책 한 권(문학)에 대한 리뷰 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그런 모임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꾸준히 써야 글에 대한 감을 잃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는 내 생각들이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 자체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결과물로 이어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도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책과 글을 주제로 남과 소통할 때 가장 몰입하고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니까. 올해 유일하게 써낸(써내고 싶었던 독후감 대회가 많았는데 모두 실천하지 못했다…) 한 전국 독후감 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올 초까지 했던 독서 모임 때문이기도 했다. 우연히 대상 도서가 겹쳐 그때 끼적인 2페이지짜리 독후감과 해당 책을 다시 읽고는 2~3배 분량으로 고쳐 쓴 게 수상으로 이어졌다. 미리 정리해둔 생각의 편린이 없었다면 짬을 내 그렇게 글을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하튼, 다짐은 뒤에서 다시 정리하기로 하자. 먼저 올 한 해의 책, 베스트 10을 선정해 봤다. 그다음 올 한 해의 독서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읽어가고 싶은 서적이나 다짐 등을 정리해 봤다.  

 

2. 인상 깊었던 책들


1) 나카지마 아쓰시 저, 김영식 역, 『산월기』, 문예출판사, 2016





  올 한 해 한 권의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고르고 싶다. 특히, 나카지마 아쓰시의 이 단편집 중에서 「산월기」 말이다. 단편소설 「산월기」는 당나라의 「인호전(人虎傳)」의 형식을 빌린 작품으로 당 현종기 농서 사람 이징(李徵)을 다룬 짧은 이야기다. 일본 교과서에 60년 이상 실려온 작품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실려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 호랑이로 변했다고 한다. 왜 변했을까? 특별한 능력이 있어 호랑이로 변해 뭔가를 변화시키고 성취하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될 수도 있겠고, 아니면 마음의 어떤 특징 또는 정서적 상처 때문에 호랑이로 변해버린 사람을 다루는 방식으로 서사가 진행될 수도 있겠다.  「산월기」 는 후자다. 이 경우 호랑이로 변해버린 사람은 타산지석의 표본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이 중요해진다. 마음의 어떤 부분이 이징을 호랑이로 만들었는가? 이징의 어떤 부분이, 그를 인간에서 짐승으로 만들어버린 것인가?

  “외고집에 자부심이 대단히 강한 그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위에 안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징은 출중한 능력을 갖춘 데다가 박학다식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일찍이 진사시에 급제하여 강남위로 임명되어 관리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급 관리로서 속물 상관 앞에 고개를 숙이는 일을 혐오했다. 그는 곧 관직에서 물러났다. 고향 괵략에서 칩거하며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그게 원하는 건 하나였다. 시인으로서 문명(文名)을 얻어 이름을 남기는 것.

  문장으로서 이름을 떨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는 초조해졌다. 눈빛과 용모는 험상궃어졌다. 몇 년 후 곤궁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그는, 처자를 먹여살리고자 어느 지방의 관리직을 다시 얻었다. “과거의 동료는 이미 높은 지위에 올라 있으니, 그 자신이 옛날에 우둔하다고 깔보던 그들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왕년의 준재 이징의 자존심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주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늘 불만에 가득 차 마음이 즐거울 때가 없었”다. 미쳐버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발광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어느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고 다니는데 그 호랑이가 이징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자는 진군 사람 원참이었다. 감찰어사인 그는 이징과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한 이징의 친한 친구였다. 사실, 어떤 과정을 거쳐 호랑이가 되었는지 독자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겠다. 어쨌든 그는 호랑이로 변했고, 인간의 마음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원참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인간의 마음 덕분이었다. 중요한 건 이징이 호랑이로 변한 연유다. 곰곰이 생각한 이징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까는 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가 밝힌 맥락은 바로 그의 내면에서 자라났던, 그리고 그를 잠식했던 부정적 정서였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물론 지난날 고향에서 불린 내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것은 소심한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 내가 옥구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性情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 호랑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나를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며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내 외모를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 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위의 긴 구절을 잃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얼마나 오래갔던지. 나는 이징과 얼마나 달랐나. 나도 내면에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이라는 맹수를 오랫동안 키워오지 않았나. 적어도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리고 취업 후 지금까지. 욕심은 있지만 확신의 부족과 부족한 재능의 폭로가 두려워 뭔가에 헌신하지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많아 불평불만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나. 그러면서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을 신경 쓰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던 탓에 쌓였던 피해의식,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리던 나에게 만족하여 그저 가능성의 세계에 나를 가둬두고 안전하게만 있으려 했던 소심한 자존심, 속물들 사이에 끼는 걸 수치스러워하면서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 타인, 공동체,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던 거만한 수치심까지. 포효하며 숲속으로 사라진 이징을 보며 나도 그처럼 내면의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게 아닌지 두려웠고, 나카지마 아쓰시가 마치 내가 보라고 쓴 듯한 구절들에 마음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언제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외치면서도 매번 내면의 다양한 정서, 적절한 나침반을 따라 때에 맞게 행동하고 책임지며 그에 헌신하고 살 수 있을까. 자꾸만 다른 세계를 힐끗거리는 탓에 내가 선택한 삶의 헌신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애초에 오랜 기간 세상의 속물적 기준에 부합하는 삶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차를 한 잔 마실 여유가 있는 삶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서재가 있는 집이 있으면 더 좋겠으나 집 값이 너무 올라서 언제쯤 집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른 맥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타인의 삶을 자꾸 나와 비교하지 말자. 나는 나고 남은 남이다. 살아온 맥락이 다른 데 어떻게 비교를 하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으로 나를 방어할 필요도, 나를 드높일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마주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오는 좋은 것을 잘 누리되, 좋지 않은 게 가져다주는 부정적 정서는 최소화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2)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 『포트노이의 불평』, 문학동네, 2014

3)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 『울분』, 문학동네, 2011

4)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 『굿바이 콜럼버스』, 문학동네, 2014
















  3년 전 필립로스의  『에브리맨』을 처음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사실적이고 담백한 언어에 끌려 술술 읽어나갔지만 한 번 읽고는 이 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와닿진 않았다. 난해했다고 할까. 하지만 서평을 쓰기 위해 반복해서 읽고 주제와 글감을 뽑아 읽다 보니 그의 문체나 서사의 진행 방식뿐만아니라 소설에 담긴 메시지에까지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흡입력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필립로스의 책들은 언젠가 전부 보고 말테다.’라는 다짐을 마음으로만 새기다가 4분기쯤에 들어서야 조금씩 실천해나갈 수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올해 읽은 로스의 책들은(이걸 쓰고 있는 게 12월 초니까, 아마 올해가 가기 전에 한 권이 더 추가되기는 하겠지만)은 30년대에 태어난 청년의 성장 문제, 특히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닌 저작들이다. 『포트노이의 불평』은 33년에 태어난 앨릭잰더 포트노이가,  『울분』은 32년에 태어난 마커스 메스너가, 『굿바이 콜롬버스』는 3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닐 클러그먼이 주인공으로, 세 명 모두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정체성(젠더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등 다양한 맥락이 복잡하게 교차된)의 문제를 겪고 있다. 『에브리맨』과는 꽤나 다른 주제인데도 이 세 소설을 꽤 인상 깊게 읽은 이유는, 필립로스의 문체나 해학적인 서술 방식 등도 영향이 컸지만, 정체성의 문제가 내 인생의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임이나 술로의 도피 등 주로 회피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했다는 점에서 저 세 주인공과는 다르지만 나도 저 세 주인공이 느꼈을 정서적인 혼란과 결핍, 허용과 금지의 애매모호한 경계 앞에서의 어리바리함을 공감할 수 있었고, 그런 혼란을 가져다준 가족, 젠더,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맥락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유대인의 미국적인 남성되기’라는 어떻게 보면 특별한 주제를 다루는데 이렇게 많은 독자를 거느릴 수 있게 된 이유도, 그런 특수성을 뭇사람도 공명하게 하는 필립 로스의 능력 덕분일 것이다.

  물론 세 소설 모두 그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로서 희망적인 미래나 이상은 없다. 인식의 확장을 노려볼 순 있겠지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은 독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5) 캐럴라인 냅 저, 정지인 역, 『욕구들』, 북하우스, 2021





  올 한해 크게 매력을 느낀 두 여성작가가 있다. 한 명은 조앤 디디온,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위의 책을 쓴 캐럴라인 냅이다. 캐럴라인 냅은 『명랑한 은둔자』로 먼저 알게 되었고 사실 이 책이 더 좋지만 완독하지는 않았기에 『욕구들』을 꼽았다. 뭐, 이 책도 서술 방식 등 아쉬운 게 있긴 했지만 인상 깊게 읽은 건 분명하다. 매력적이었다. 작가가, 그리고 문체가.

  이 책은 특유의 정서적 지진계로 자기 신체에 새겨진 상흔을 살피고 내면과 가정, 그리고 나아가 사회의 풍경을 활자로 더듬으며 여성의 욕구와 가부장제를 사유한 결과물이다. 그 상흔은 바로 거식증이었다. 거죽 사이로 앙상하게 튀어나온 갈비뼈와 피골이 상접한 162cm, 37kg이었던 몸. 시작은 코티지치즈였다. 브라운대학 3학년 생이던 어느 추수감사절의 주말, 저칼로리 치즈에서 움틋 씨앗은 6년 간의 거식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표면적인 단순함과 달리 맥락은 복잡했다. 기질과 가정의 영향이 있었다. 정서적 안정감과 충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로 자라난, 완벽주의적 경향이 있는 아이였고, 아버지의 외도 고백과 부모의 별거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거식증이라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지은 가부장제가 있었다.

  에세이와 학술서 사이의 경계를 오고간 탓인지 난삽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욕구 - 특히 여성의 욕구 - 를 둘러싼 당위 및 통제와의 갈등, 혼란과 강박, 그리고 결핍과 공허의 감정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보여준 자기고백적 진술에 담긴 그 용기가 부러웠고 그 개인적 진술을 유의미한 사회적 진술로 확장한 저자의 능력에 감탄했으며 그 진술을 수려한 문체로 묘사한 저자의 글쓰기에 감동했다.


6) 조앤 디디온 저, 김선형 역,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돌베게, 2021





 디디온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미국에서는 꽤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트로 2005년에는 The Year Of Magical Thinking으로 논픽션 부문 전미도서상을 받기도 했다. 깔끔하면서도 밀도 있는 문체로 많은 추종자를 양산했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 이 제작되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작가다. 그리고 그 영향력의 시발점이 된 게 바로 이 책,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다. 이 책은 1968년에 출간된 논픽션 저서로 1965~1967년에 걸쳐 잡지에 기고한 글을 솎아 출판한 것이었다.

  특이한 제목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재림’이라는 시에서 따온 것이다. 마음에 드는 시라 전문을 인용했다. 책의 앞 쪽에 실렸다.



“넓어지는 회오리 속에서 돌고 돌고

매는 매잡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산산이 해체된다. 중심이 버티지 못한다.

그저 무정부 상태가 세상에 풀려 퍼지고

피로 흐려진 조수가 풀리고 사방에서

무구함을 받드는 의식의 물에 잠겨 가라앉는다.

가장 훌륭한 이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가장 저열한 자들은 

치열한 열정으로 충만하다.


틀림없이 뭔가 계시가 임박해 있다.

틀림없이 재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재림! 그 단어를 내뱉자마자

‘세계정신’에서 광막한 이미지가 나와

내 시야를 괴롭힌다. 어딘가 사막의 모래 속에서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가 붙은 형상이,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이

느릿한 허벅지를 움직이고, 그 주위로 온통

성난 사막 새들의 그림자가 비틀거린다.

어둠이 다시 툭 떨어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이십 세기에 걸친 돌 같은 잠이

흔들리는 요람에 동요해 악몽으로 변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어떤 거친 짐승들이, 마침내 도래한 그들의 시간을 맞아,

태어나 베들레헴을 덮치려 웅크리고 있는가?”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애시베리 지구에서 히피를 취재한 글의 제목이기도 한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1968년의 시대적, 서양의 사상사적 분위기와 연결된 글구로서 디디온이 차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시에서 등장하는 해체, 버티지 못하는 중심, 무정부 상태, 잃어버린 신념과 같은 구절이 암시하는 것처럼 개인을 구조화, 조직화하던 당위, 가치, 신념이 해체되고 그 순기능을 잃은 혼돈의 상태를 전제한다. 이 경험을 그녀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원자화의 증거, 만물이 해체되는 물증을 정면으로 직접 다루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갔던 이유는 몇 달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였다. 글쓰기가 무의미한 행위고 내가 아는 세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일하려면 반드시 무질서와 화해해야 했다. 그래서 내게는 그 글이 중요했다.”

   무질서, 혼란과 마주했을 때 그녀에게 늘 중요한 건 글, 언어였다. 예이츠가 스핑크스의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으로 ‘세상을 조직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비유했던 것처럼, 그녀는, 그 자신이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는 스핑크스가 되어, 그 혼란과 무질서를 마주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벼려내 조직화했던 것이다. 나는 디디온의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뚜렷한 자기 주관성, 그리고 그 주관성을 남들도 납득하게 하는 필력, 그리고 그 필력을 돋보이게 하는 문체. 그녀는 이런 능력을 통해 혼란을, 무질서를 극복하려고 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게 어떠했는지 기억하라.”(193)

“글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13)



7) 정세랑 저, 『시선으로부터』, 문학동네, 2020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드문드문 읽던 소설 중에서도 최근의 한국 문학을 붙잡고 읽었던 적은 더 드물었다. 왜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끌리지 않았달까. 약한 서사 탓인가, 아니면 지나치게 유행을 좇는 경향 탓인가. 비좁은 세계관 및 경험 탓인가, 끊임없이 사방에서 자극이 오는 우리나라의 환경 탓인가, 윤리성이나 도덕주의를 향한 강박 탓인가. 분명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지만 한국소설을 잘 붙잡지 않았던 이유는 그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재미있는 한국소설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애초에 한국에 번역된 외국문학은 어느 정도의 작품성이나 시장성이 입증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소소하게 접한 한국문학은 그런 필터에 걸러진 것들이 아니다.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알려진 작품을 읽는다 하더라도 번역된, 유명한 외국 문학 작품에 비해 좋은 작품을 고를 확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조금 읽어본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전하영 작가의 소설만 해도 꽤나 흥미롭게 보지 않았나.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한 데에는 이 소설의 영향이 컸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말이다.

   처음 읽었을 때 인상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많은 인물들과 산만한 에피소드, 입체성이 떨어지는 사건과 캐릭터들, 서사가 약해서 느껴지던 루즈함 등 독서모임 때문에 읽고 있긴 했지만 ‘내가 왜 이 책을 붙잡고 있는거지.’란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다시 한번 읽었을 때, 정세랑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현재 우리가 마주한 특정 문제를 나름대로 사유해보고자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생각보다 괜찮은 소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8) 나쓰메 소세키 저, 송태욱 역,  『마음』, 현암사, 2016





  하고픈 말이 많았는데 기록을 해놓지 않아서 아쉽다. 재미있게 읽었고, 재독하며 발췌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다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만두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소세키 전집을 조금씩 사 모아야 겠다던 다짐도 이 글을 쓰다가 다시 떠올랐다. 맞다,  『산시로』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다가 그만뒀었다. 

  소세키 입문서로  『마음』을 대개 권하는 이유가 있다. 재미있다.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천천히, 한 달 동안 조금씩 문학에 가까워지려고 펼친 책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소설에 빨려들어가 10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다 읽어버렸다. 담긴 생각, 사상은 일단 차치하고 서사의 흡입력이 정말 대단했다.

  이 소설을 완전 독특한 방식으로 읽어내려 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읽어내고자 했던 건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타인의 마음이란 건 상대방이 ‘나’에게 건네는 미세하고 다양한 감각에 의지해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파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마음’을 다룬 이 책은 추리소설처럼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남기지 않은 메모에 의지해서 추후에 다시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분명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윤리적인 방식으로 -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방식이 아닌 - 읽으려고 했다. 

 

9) 이상용 저,  『봉준호의 영화 언어』, 난다, 2021





  흥미로운 생각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며 읽은 책. 덤으로 이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겸사겸사 봉준호의 영화를 거의 다 봤는데, 그 과정도 즐거웠다. 연출한 작품으로 장편(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은 다 봤고, 단편으로는 백색인, 프레임 속의 기억들, 인플루엔자, 이키를 뺀 세 편을(지리멸렬, 싱크 & 라이즈, 흔들리는 도쿄) 봤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봉준호 감독 영화를 일일이 챙겨 보진 못했을 테다.

   책의 저자는 이상용. 씨네21에서 신인평론상을 받았던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꾸준히 활동해온 사람이다. 그는 이 책에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즉 봉 감독의 영화적 원리에 집중해 그걸 키워드로 삼아 영화를 풍부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10) 호메로스 저, 천병희 역, 『일리아스』, 숲, 2015





  올 해 큰 업적 중 하나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완독한 일이다. 그것도 매 장마다 발췌하며 참고서적을 여럿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과 방대한 정보에 길을 잃어 독후감이나 서평을 남기지 못한 건 아쉽지만 충분히 농익지 못한 편린이 가득한 탓에 조금 더 길게 곱씹으며 천천히 생각을 다듬어 나가고 싶다. 굳이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나 짤막한 소감은 10월의 월간 독서정산 때 남긴 바 있다.


  [10월에 꽤 노고를 쏟은 책이다. 읽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썼다. 생경한 고유명사가 많고 따분한 설명이나 묘사가 잦아 초반 가동성이 안 좋았다. 애를 먹었다. 그래도 독서모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읽었기에 꾸역꾸역 완독할 수 있었다. 10월의 크나큰 성취 중 하나다. 뿌듯하다.

  『일리아스』는 두 가지 뚜렷한 목표를 지닌 채로 펼쳤다. 하나는,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자명함을 깨닫게 할(자각 또는 깨달음을 가져다줄), 어떤 이질성을 맛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말과 사물』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르헤스가 인용한 어떤 중국 백과사전을 푸코가 접했을 때의 충격을 바랐던 것이라고. 사유가 불가능했던 지점까지 가는 것은 차치하고, 약 3,000년 전의 이질적인 생각이 담긴 이야기를 읽고 내가 뭘 놓치고 살고 있는지 숙고해보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유럽인을 만들어 낸 희랍적 사유의 원형을 맛보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동서양 사유의 환경을 노니는 일을 시작이라도 해보고 싶었고 그들의 맥락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해보고 싶었다. 예를 하나 들자면, 테레자가 기르던 카레닌이 안나 카레니나의 남편 이름이라는 걸 알 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더 풍부하게 다가오듯, 『오뒷세우스』를 읽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보면 『오뒷세우스를』 모른 채로 『율리시스』를 읽을 때와 울림이 다를 것이다. 동서양 사유의 환경을 노니는 일은 프랑수아 줄리앙이 『운행과 창조』에서 했던 작업이었다.

   많은 걸 느꼈다. 필멸의 인간,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 영웅주의, 분노와 감정의 효과, 책을 읽고 보니 더 관심이 생기는 헥토르라는 인물 등. 이렇게 많은 키워드의 관계가 만들어낸 많은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핵심은 역시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였다.]



  그리고  『일리아스』를 읽는 과정에서 브루노 스넬의 책과 조대호 교수의 책을 알게 되어 문제의식과 관심사를 더 확장시킬 수 있었다.  『정신의 발견』과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상상세계』다. 특히, 조대호 교수의 다음 책이 무척 기다려지는데, 다음 책에서  "『국가』를 자세히 읽어 가면서 플라톤이 호메로스에 대한 긴 반론을 어떻게 펼치고, 그에 맞서는 대항 이론을 어떻게 구축하는지를 살펴보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내 관심사와도 맞닿아 있고 플라톤의 『국가』는 6년 전에 한 학기 동안 강독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다.
















3. 2021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상반기가 아쉬웠지만 작년보다는 나은 한 해였다.


  작년 말, 한 해의 독서활동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많이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하게 놀기만 한 것 같다. 당연히 책도 별로 읽지 않았다. (…) 왜 그랬던 걸까. 루틴을 잡지 못한 것, 내적 갈등이 있던 것,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지 못한 것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건 분명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두렵다는 이유로 하지 않고 다른 걸 욕망한 데 있는 것 같다. 즉, 자기중심성이 부족했던 탓이다. (…) 

실용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게 맞는 건지. 그보단 세속적인 성공을 보장해 줄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갈등하고 생각만 하면서 선택하지 못하니 '책을 계획적으로 읽기'는 커녕 놀기만 했다. '당장 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책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자꾸 쓸데없이 멀리 봤다. 자격증을 따둬야 하는 건 아닌지, 법이나 경제-경영 공부를 해둬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런 질문 앞에서 어리바리해 하며 시간만 축냈다.

앞으론 그러고 싶지 않다. 멀리 보려는 건 막연한 불안감, 강박, 초조만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면 늘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어차피 멀리 보고 계획대로 살고자 해도 살아질 삶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반기까지도 그 불안감, 강박, 초조를 버리지 못했다. 경제, 투자 서적 등의 주위만 자주 기웃거렸던 거 같다. 불안, 강박을 가지고 책을 읽으려다 보니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고, 게임이나 만화, 드라마 등으로 도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억지로라도 책을 읽으려고 이런저런 리뷰 이벤트를 마구잡이로 신청해 억지로 썼는데, 안 그래도 회사일도 바빴던 터라 번아웃을 겪기도 했다. 거기에 회사일 스트레스로 술까지.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한 건 상반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했고 책을 읽고 서평을 써오는 한 달짜리 모임에 들어갔다. 일기를 조금 더 편하게 쓰고자 갤럭시 탭 6 라이트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습관이 쉽게 변하진 않았는데, 다만, 각성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디스크 초기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번아웃, 번아웃 후에 찾아오는 강박의 시간, 그 시간에 지나치게 몰입해 만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탓에 돌보지 않았던 나의 몸, 그리고 예전부터 좋지 않던 자세 습관. 어느 날 오른쪽 팔이 끝에서부터 저리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디스크 초기 증상이었다.

  덕분에(?) ‘아, 내가 또 개망나니처럼 살고 있었구나.’라며 각성했고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바뀌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하반기에는, 생활 전반에 대한 점검 및 피드백과 함께, 가능하면 함께 읽는 모임에 들어가려고 노력했고, 구체적인 목표를 지닌 채로 책을 읽으려 노력했으며, 나의 건강한 마음과 평안함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다. 아직도 쓸데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정보 홍수 속에서 정처 없이 헤엄치는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작년보다는, 그리고 상반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읽고 쓰는 일이 덜 어색해졌다.


나는 일단은, 읽고 써야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적어도 작년부터 이런 자기 의심 또는 불안과 계속해서 마주했다. ‘이게 최선인가? 맞는 길인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또는, ‘뒤늦게, 급하게 준비해 들어온 직장이라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여럿 있는 만큼 더 괜찮은 곳으로 이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게 낫지 않은가?’ 뭔가를 선택했으면 그에 헌신하며 꾸준히 밀고 가야 하는데 막연한 불안에 근거한 저런 자기 의심은 계속해서 삶으로의 헌신을 방해했다. 괜히 이런저런 자격증을 찾아보고, 더 좋은 직장에 대해 알아보고, 여태 걸어왔던 길과 완전히 다른 길을 생각해 보고 등등. 정보를 만족스럽게 모으고 정리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판단하기에 충분할 만큼 모았다고 보는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다는 건, 끝이 없는 욕심과 정말 더 원하는 게 뭔지 세심히 살피지 않는 태도, 그리고 원하는 것을 자꾸만 외면하는 비겁하고도 소심한 태도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지금 내린 선택과 결정은 점점 더 무를 수 없는 게 되는 건 맞다. 하지만 이 선택과 결정이 정말 내게 최선인지, 그에 대한 흠결 없는 확신은 사실 죽기 전까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숙고한 끝에 내린 선택이 최선이 되게끔 노력하는 일일 테다. 그렇다면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간단히 말해, 읽고 쓸 때다. 잘 읽고 잘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읽고 쓸 때 행복과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조금씩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실제로도 조금씩 더 나아졌던 사람이었다. 올 상반기가 끝날 무렵, 악순환에서 탈출하고자 먼저 했던 게 쓰는 일 아니었나. 읽고 쓰는 일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의미를, 성장을 가져다주는 행위였고, 혼란스러운 이 삶에 일시적이나마 구조와 질서를 부여해 주는 행위였다. 적어도, 읽고 쓰기를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삼지 않는다면, 읽고 쓸 때라야 조금 더 사람다워졌다.

  앞으로도 분명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번뇌할 것이다. 일단, 너무 멀리 보진 말자. 적어도 내년은 부단히 읽고 쓰는 한 해로 만들고 싶다.


무얼 읽고 무얼 써야 할까? 어떻게 읽고 쓴 걸 남들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읽고 쓰는 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올 한 해의 독서를 돌아보니, 읽고 써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무얼 읽고 무얼 써야 하냐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읽고 쓴 걸 가지고 남들과 소통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 나아가 글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 이런 문제들이었다. 소통과 관련된 문제나, 글로 먹고사는 문제는 개인 브랜딩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나는 이런 분야에 있어서는 특히나 젬병이라 많은 노력이 필요한 만큼 막막함이 크다.

  일단은 ‘독후감, 독서치유, 서평, 평론, 에세이’ 정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책 자체를 향한 애정과 잡다한 관심사와 어울리는 게 독후감, 서평이니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분야이기도 했다. 독서치유는 내가 읽고 쓰는 이유이자, 읽고 쓰기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해서 파고들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분야다. 에세이는 읽는 것도 좋아하고 쓰는 것도 좋아한다. 일기처럼 써서 좀 그렇지만… 평론은 서평에 관심이 있는 데다가, 대학원에 가지 않고도 조금 더 아카데믹한 글을 써보기에 좋은 분야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개인 브랜딩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내년에는 알라딘 서재랑 개인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봐야겠다.


4. 2022년의 독서를 생각하며


1) 특히, 2022년에 읽고 싶은 책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어느 정도 방향을 설정해놓으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부터 한 해의 독서계획을 대강 세워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실천하게 됐다. 대강의 목표 권수를 적어놓긴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책이라는 게 무작정 많이 읽는다고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까.


 (1) 1순위는 문학이다

   2022년의 1순위는 문학이다. 지금 내 삶에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그렇다. 가상 현실이긴 하지만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좋고, 다른 삶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으며, 매력적이거나 흥미로운 캐릭터를 접하며 위안을 얻거나 나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비교적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을 읽다 보면, 내가 나를 이해하는데,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언어가 익숙해진다는 점도 좋다. 서평쓰기에 가장 좋은 게 문학이라는 것도 그렇고. 뭐, 핵심은 내가 나로 잘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① 필립 로스

    2022년에는 국내에 번역된 필립 로스 전집을 다 읽어볼 계획이다. 글만 안 쓰면 완독 자체는 어렵지 않을 듯하다. 재밌기도 하고 로스가 끈질기게 붙잡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주제는 내 관심사이기도 하다. 로스의 책들을 읽고, 관련 연구서를 읽다 보면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② 나쓰메 소세키

    2022년에는 작년에 읽다가 그만둔 현암사 소세키 소설 전집을 조금씩 다시 읽어볼 계획이다. 왜 소세키냐고 묻는다면 『나의 개인주의 외』에서 읽었던 특정 구절들과 『마음』을 읽을 때 묘하게 나의 내면을 수없이 두드린 그의 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 3~4권 정도는 보고싶다.























   ③ 밀란 쿤데라

    지금까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가를 꼽자면 주저없이 쿤데라를 꼽을 것이다. 쿤데라의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철학을 공부하지도, 읽고 쓰는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것치고 쿤데라의 작품을 많이 보진 않았다. 앞서 읽었던 세 소설은(농담, 삶은 다른 곳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다양한 방면으로 해석하며 읽을 수도 있으니 다시 읽고 싶기도 한데, 일단 내년에는 2~3권 정도 그의 새로운 글을 읽어보고 싶긴 하다.

























   ④ 찰스 부코스키, 에릭 호퍼

    호퍼는 4년 전에 만났던 기억이 난다. ‘밑바닥 노동생활, 정서적 불안전, 방황, 상처, 자기 회의, 불안, 죄의식, 수치심’과 같은 키워드에 매료되었고, 한 권의 책을 물류센터에서 노가다하면서 출퇴근 시간에, 대기 시간에, 점심 식사 후 쉬는 시간마다 읽고 서평을 썼다. 집과 관계의 문제로, 그리고 나약한 자아의 문제로 내가 지닌 가치와 믿음이 모두 흔들려 방향감을 상실했던 때,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기자라는 직업을 도전도 하기 전에 점점 포기하던 때, 내 삶은 왜 이렇게 괴로운지 이해하고 싶던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막막했던 때였다. 그럴 때 적응불능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개척자, 창조자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던 호퍼의 글에는 가슴을 후벼 파는 글귀가 많았다. 자신을 구조에 욱여넣지 못해 『울분』의 마커스처럼 울분을 토해내며 내 삶을 여러 번 저 바닥으로 끌어내린 나로서는, 호퍼는 양가적인 존재였다. 닮고 싶은 사람이자, 극복해내고 싶은 사람.

    2~3권 정도가 목표다.

















    찰스부코스키도 호퍼처럼 이력에서 매력을 느낀 작가다. 읽어본 책은 없지만 내력을 보면, 기질적으로 호퍼보다는 덜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만큼 닮지 않은 부분에서 닮고 싶은 부분이 있어 관심이 가는 작가기도 하다. 보니까 고양이에 대한 책도 썼네. 고양이 덕후로서 꼭 읽어봐야 겠다. 2~3권 정도가 목표다.

























   ⑤ 김경미

    근래에 잘 읽진 않지만 20대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개인적으로 많이 읽고, 많이 필사했던 시를 쓴 작가다. 아직까지 김경미 시인의 시만큼 많은 울림을 주는 시를 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비망록은 필사를 몇 번이나 했던지… 유일하게 시 전집을 모으는 작가기도 하다. 내년엔 절판되고 품절된 도서를 중고 책방에서 찾아보는 게 목표다. 특히,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를. 종종 쓰시는 산문도 너무나 좋아하는데 더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⑥ 강석경, 최인훈, 이청준, 기리노 나쓰오

    한 권의 책, 소설이 유독 인상 깊게 남아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던 작가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유사한 점을 묶어볼 수 있는 소설을 쓴 작가들이기도 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극단에 대한 반감이랄까. 『숲 속의 방』이나 『광장』은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소문의 벽』은 그런 극단이 가져온 폐해를 다루고 있다. 나쓰오의 『일몰의 저편』은 앞의 세 소설과 다르게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극단주의가 가져온 프레임 씌우기의 문제를 언급하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나같은 맥락주의자가 설 자리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느끼는 내 감정과 공명하는 작품들이라고 할까나. 어디가선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고, 어디에서는 수구꼴통이라는 소리를 들을, 어디에서는 페미냐는 이야기를 듣고, 어디서는 한남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점점 조심스러워지는 나니까. 앞의 세 소설과 『그로테스크』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⑦ 기타 : 최근 국내 문학, 문학지, 고전 문학, 기타 에세이 등

    위의 작가와 소설들 외에도 관심 가는 작가, 소설이 많지만, 목표한 정도를 읽는 것도 벅찰 테다. 위의 작품 외에도 특별한 필요나 상황에 의해 다른 책을 읽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일단은, 문학지를 읽어보기로 했는데 창비만 구독 신청한 상태다. 겨울호는 이미 받았다. 클럽 창작과 비평을 신청해 1월부터 읽어나갈 계획이다. 여력이 되면 문학동네 계간지도 구독하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문학지 구독과 함께 최근 국내 문학도 조금씩 읽어보려고 한다. 사두고 읽지 않은  『나인』과  『밝은 밤』이 우선이다.

    간간히 독서모임에 들어가면 고전 문학을 읽을 테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모모』,  『부바르와 페퀴셰』도 읽어보고 싶긴하다. 여기에 이기호의 소설이나 이성복의 시론, 산문까지 곁들이면 좋을 텐데. 여하튼, 필요에 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적은 바운더리 안에서 문학 작품을 읽어나갔으면 좋겠다.

































  (2) 2순위는 심리학이다

   2순위는 심리학이다. 문학보다는 덜 읽겠지만 22년 한 해 동안 주로 붙잡고 싶은 분야다. 3~5년 전 배우고 익혔던 좋은 심리학적 지식들이, 방법들이, 습관들이 많이 사라진 지금, 또는 그때 막혀 뚫지 못했던 부분이 나를 괴롭히는 지금, 정서적으로 안정감있게,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심리학을 공부하고 거기에서 얻은 도구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


   ① 문학치유

    문학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지만 나는 문학의 치유적 기능에 가장 관심이 있다. 작년 연말 독서정산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학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거창한 말 말고 뭐랄까, 글은 다만 ‘계기’를 제공할 뿐이다, 라고 하면 괜찮을까.” 위안받고, 자극받으며, 생각하게 되고, 성장하게 하는 계기 말이다. 그런 계기에 주목해 나를 돌아보면 상황이 급격히 나아지지는 않아도 어제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닌, 책이 현재의 이 삶을 더 나아지게끔 하려면 어떻게 읽고 써야 할까? 내가 특히, 문학 치유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문학치유, 독서치유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책들이다. 아는 책이 얼마 없지만, 위의 네 책만 2회독 이상씩만 해도 만족이다. 읽다 보면 더 좋은 책도 알 수 있게 되겠지.


















   치유 및 성장의 독서와 쓰기는 분리할 수가 없다. 내 생각에, 책이 내 마음을 건드리는 지점을 끊임없이 파고들며 그것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다시 곱씹으며 적절한 방식으로 갈무리를 해야만 뭔가가 바뀐다. 그래야만 잠깐의 위안이 아닌, 삶에 스며든 위안과 변화, 성장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꼭 활자화된 글을 읽지 않아도 된다. 활자화된 건 아니지만 내 과거와 현재라는 책이 있지 않나. 사실 문학을 읽는 것도, 문학이 나의 과거와 현재를 건드려 공명하게 해, 그 공명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활자화하고 갈무리하기 위함이니까. 그러니 나 자체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치유와 관련된 글쓰기 책은 찾아보니 꽤나 많았다. 도서관에서 괜찮은 책을 추려 3~4권 정도 읽어보고 싶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다. 나에 대해 쓰는 게 진짜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


    ② 감정

    심리학과 관련된 주요 관심 주제가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내 철학적인 관심사 내재적인 삶과 인본주의자로서의 삶과도 밀접하게 관련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 알아야만 하는 것으로서도, 의미있는 삶을 위한 척도로서도 매우 중요한 키워드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방법들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감정은 다양한 분과학문이 얽혀있는 만큼 관심을 두고 있는 책들도 심리학으로만 한정되진 않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내 감정을 다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한 책들이다. 이지영 선생의 『정서조절 코칭북』이 단연 으뜸인데, 이 책은 어디가서 사람들에게 늘 추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22년에는 이 책을 한 3~5회독 하며 구체적으로 실천만 해도 여한이 없겠다. 기본은 이 책이고, 구체적인 키워드로 주제 삼아 그 주제를 파고든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관계, 두려움, 불안, 수치심 등과 같이 내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키워드들.



 








    감정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조지프 르두 교수를 좋아하는 터라,  『느끼는 뇌』와  『불안』 정도만 읽을 수 있어도 뿌듯할 듯. 


    ③ 행복

    행복도 내 주요 관심사다. 행복이란 개념의 철학적, 형이상학적 의미만 자주 ‘공부’했을 뿐 구체적인 삶 속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론이나 노력에 힘을 오래 쏟아본 기억은 없다. 내년엔 구체적인 행복과 관련된 책을 최소 4권 이상은 보고 싶다. 행복과 관련된 책은 너무 많아서 좋은 책 고르는 것도 품이 좀 들듯…


















    ④ 명상

    명상에 목숨이 달려 있다, 는 안희영 교수의 말을 종종 생각한다. 명상을 꾸준히 했을 때의 그 효과를 알아버린 만큼, 명상을 계속 멀리한 요즘 겪는 문제가 명상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 명상은 책이 그닥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나랑 잘 맞는 방법을 찾고 직접 실천하는 게 중요하지. 여하튼, 그래도 골라 보자면, 『8주 마음챙김 워크북』 하나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명상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책도 몇 권 곁들일 수 있으면 더 좋고.











    ⑤ 관계 

    관계라는 단어에 내가 담는 문제는 다양하다. ‘부모, 가족, 연인, 친구, 회사, 지인 등’과 같이 관계를 맺는 대상과의 적절함에 대한 문제라던가 그 문제 속에 내포된 ‘착한 아이 콤플렉스,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 잘 하는 법, 무례한 사람 거르는 법,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 호구로 보이지 않는 법 등’과 같은 특정한 주제들이 그런 것들이다. “매력적이고 현명하며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기”가 내 22년 주요 욕망 중 하나인 만큼 매력적이고 현명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연습을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보다 정체성이 조금 더 확고해지고, 경계를 어느 정도 세울 줄 알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은 요즘, 이제는 내게 잘 맞지 않는 관계 맺기 습관을 많이 바꾸고 싶단 생각도 많이 든다. 특히 2021년이 그런 한 해였다.

    이 분야는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정하고 읽으면 될 것 같은데, 일단 인간관계, 회사 동료 관계 부분에 대한 책이 시급하다… 아는 책이 없어서 도서관이나 서점을 좀 둘러봐야 할 듯.

















  (3) 3순위는 자기계발이다

  3순위는 자기계발이다. 쓰고, 읽고, 말하는 능력,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 시간 관리, 회사업무 관련 책을 좀 읽어보고 싶다. 이거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읽는 게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쓰기와 관련된 책은 꾸준히 볼 필요가 있겠다. 

  서평이나 에세이 쓰는 법과 관련된 책들은 여러 권을 봐야 할 것 같고, 논증 글은 『논증의 탄생』, 스토리 텔링은 『스토리텔링, 어떻게 할 것인가』면 충분하다. 

























  인사/노무 책도 좀 곁들이고











  (4) 기타

  쓰다 보니 계속 길어져 이제는 적당히 끊어야겠다. ‘내재성, SBNR, 인본주의, 행복한 삶, 의미있는 삶’과 관련된 과학, 철학 책을 두고 고민을 꽤 했는데, 22년에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독서를 우선하기로 해서 후순위로 밀렸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나 책은 작년에 어느 정도 정리했고, 큰 틀은 크게 바뀌지 않았으니 따로 다시 정리하진 않았다.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적인 부분인 만큼, 작년에도 말했듯 평생 읽어가야 할 책들이다.


















  필로소픽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Meaning of Life 시리즈 전집에 관심이 있고, 스켑틱 정기 구독에도 관심이 있다. 뇌과학이나 의식, 감정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고.































  재테크나 경제 공부는 욕심을 덜 부리기로 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로 읽고, 자산관리를 꾸준히 해 안정적인 삶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 부자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젠더 문제에도 여전히 관심이 많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도덕주의와 관련된 관심은 아니고 순전히 ‘내가 나로 잘 사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잘사는 것’과 관련된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고민에 대한 관심이다.











  정치, 법 공부도 재밌는데 내년엔 거의 들여다 볼 일은 없지 않을까. 굳이 좀 꼽자면, 작년에 정리한 것에 더해서 이민열 교수가 번역하거나 펴낸 책들 정도. 아, 특히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꼭 읽어보고 싶긴 하다. 나오자 마자 샀는데 읽다가 어려워 관둔 기억이 있다.











  사회 쪽은 위에서 말한 젠더와 ‘불평등, 기후’ 정도가 현재 관심사다.











  어차피 많이 소비해봤자 욕심만 더 커지니까, 적게 잘 쓰고, 적당히 소비하며 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마지막으로 ’디아스포라, 경계인.’ 문학 분야에 넣어두는 게 나았을 텐데, 늦게 생각나 여기에 추가한다.











5. 2022년을 맞이하며 하고 싶은 독서 다짐

 12월 초부터 조금씩 썼는데 쓰다 보니 너무 늘어졌다. 내년엔 독서계획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올 한 해도 아쉬운 게 많지만 작년보다 더 나아졌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을 준비를 하자.


 1) 책을 계획적으로 읽는다 :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르는 삶을 사는 데 늘 어려움을 느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도 않았고, 그런 계획을 망가뜨리는 다양한 변수에 노출되다 보니 사실 그때그때 될 대로 산 인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계획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적어도 1~3년 정도의 중장기 계획은 세워놓고 삶에 어떤 흐름과 깊이를 만들어낼 노력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계획대로 살진 못하지만, 이렇게 세워둔 계획이 어떤 준거점이 될 수 있고, 피드백할 때도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의식적으로 특정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인 삶을 사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굳이 번거롭게 올해 독서정산에는 약간의 독서 계획을 세워본 것이니, 큰 변수가 있지 않은 이상 이 흐름에 맞게 독서 활동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2) 가능하면 함께 책을 읽는다 : 올해 몇몇 독서모임에서, Zoom으로 읽은 책을 주제로 수다를 떠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책을 읽고 수다 떠는 걸 무척 좋아하는구나를 다시 한번 자각했다. 일상에서의 일반적인 관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스몰토크에 재능도 없고, ‘생산적이지 않은 비난을 하는 이야기, 속물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관계가 힘겹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 공간에 놓여있을 때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고 함께 하고자 내뱉게 되는 말 등이 나 자신의 자존감이나 자아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그런 관계에서 어떤 공허함이 크게 느껴진 게 올 해이기도 했다.

 내년엔 좀 달라지고 싶다. 책도 좋고, 영화도 좋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불완전한 존재로서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남에게 상처도 주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나 보고 싶다. 아직 몇 년 전에 받은 상처와 관계의 회의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아니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시니컬해져 있는 것보다는 찾아 나서는 게 좋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 바로 독서모임이다. 독서모임에 가면 읽고 쓰는 행위의 동기부여도 잘 되고, 자극을 주는 사람도 만날 수 있으며, 나와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 거 자체가 시야의 확장과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니 내년에는 가능하면 함께 책을 읽는 공간에 나를 자주 출몰시켜보자.


 3) 내가 읽고 쓴 걸 어떻게 생산적으로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한다 : 내 활동이나 경험, 생각, 지식이 어떤 쓸모가 되는 느낌을 받거나, 누군가 인정해주거나, 고맙다는 말을 해주면 기분이 무척 좋다. 하지만 대개 그런 건 일상적인 관계에서의 단편적인 활동으로 그쳤을 뿐, 내가 좋아하는 읽고 쓰는 활동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진 않았던 거 같다. 읽고 써온 시간을 생각해 보면, 읽고 씀으로써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 나는 정서적으로 더 건강해졌고, 긍정적이게 되었으며,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읽고 쓰지 않았다면 나는 전처럼 불행과 우울에 허우적대고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과 생각을 어떻게 하면 생산적으로 나누며 살 수 있을까? 22년에는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조금은 실천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4) SNS에 독서 활동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남긴다 : 블로그, 서재를 꾸준히 운영하고 싶다. 18년에는 거의 5년 동안 운영하던 블로그를 닫았는데, 그때는 그 블로그가 별로 상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블로그로 옮기고 싶은 욕망에 저질러 버렸었다. 그리고 올해는 얼마 전에 블로그를 닫았는데, 글을 잘 올리지 않았고, 올려도 전의 블로그와 다르게 노출이 잘 안 되어서 동기부여도 잘 하지 못했고, 블로그를 너무 일기장처럼 써서 다른 분위기의 블로그를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에 저질러 버렸다. 이제는 이렇게 지우지 말고 꾸준히 좀 운영해보고 싶다. 계속 구상 중이긴 한데 너무 깊이 생각말고 그냥 좀 이것저것 썼으면… 블로그 운영을 시작해야 알라딘 서재에도 독후감이나 서평을 다시 올릴 텐데 말이다.


 5) 규칙적으로 쓸 수 있는 루틴, 또는 구조를 만든다 : 어려운 일이지만 했으면 하는 일. SNS를 하게 되면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러려면 분량이나 디테일 조절이 필수다. 가령 일주일에 한 편의 서평을 쓴다 했을 때 일반 직장인이 쓸 수 있는 서평의 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분량의, 어떤 형식의, 어느 정도 깊이의 서평을 써야 일주일에 한 편을 꾸준히 쓸 수 있을까? 에세이도 마찬가지겠다. 그리고 이런 가벼운 서평, 에세이만 쓰면 생각 갈무리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조금은 더 길고 품을 많이 쏟는 글은 어느 정도의 주기로 쓰는 게 나을까?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게 나을까?

 쉽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틀, 구조를 만들고 그에 따라 규칙적으로 쓰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자. 매일 쓰는 시간을 정해놓는 것도 좋고.


 6) 이런저런 글쓰기 대회에 많이 응모해보자 : 대회에 나갈 책과 글은 꼼꼼하게 보게 된다는 점에서 쓰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된다. 받는 상금도 좋고, 이런 것들이 글쓰기 관련 스펙이 된다는 점도 좋다. 내년에는 이런저런 응모 회수를 늘려보자. 쉽지 않겠지만, 불완전한 글이라도 계속해서 내보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7) 독서정산을 처음 쓴 17년부터 반복되어 온 다짐을 상기하자

 -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읽기 

 - 일상 언어를 잃지 않기

 - ‘나’를 중심에 두고 책을 읽기, 머리로만 책을 읽지 말기

 - 정리하지 않으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

 - 책 읽는 데 돈을 아끼지 말자

 - 집에서 책을 읽을 환경을 조성하자. 잘 안 되면 무조건 나가라

 - 이 책을 읽는 이유, 목적을 잃지 말자 

 - 막연한 공허함을 채우고자 강박적으로 책을 읽지 말자

 - 당장 내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책에 관심을 두자

 - 밀도 있게 공부해 기둥을 세우고 싶은 분야를 찾자

 - 불편한 책을 읽자, 성장을 위해


 안녕 2021년. 내년엔 21년보다 알찬 22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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