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여행의 역사 -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 박진희 옮김 / 궁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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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기술의 문화사 -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절대적이고 참되고 수학적인 시간은 그 자체로 흘러가며 본성상 등속이고 어떤 외적 대상과도 관계하지 않는다.”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절대 시간을 주장했을 때만 해도 뭇사람의 시간관은 우리와 아주 달랐다. 우리가 생각하듯, 동기화되고 수학적으로 흘러가는 정연한 시간은 없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이 있을 뿐이었다. 지각 가능한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 시간을 인지했기에 런던 주민의 시간과 리딩 주민의 시간은 달랐다. 그들의 시간은 울퉁불퉁했다. 이런 시간관이 현대의 과학관1)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이런 관계적이고 고유한 시간관이 근대화되는 과정, 나아가 그 과정에서 철도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철도의 영향력을 알게 된 건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 여행의 역사를 읽고 나서였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노르 베르트 엘리아스의 영향을 받은 작가로, 주로 정신사(History of mentalities)적인 연구 방법론을 사용해 문화사를 연구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도 으레 떠오르는 철도 관련 역사 서적이라기보다는 기술이 인간의 인지구조 및 여러 담론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궤적을 좇은 문화사에 가까운 책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문화사적인 작업의 선구작이다. 선구작 답게 흥미로웠고,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됐다. 철도는 근대화의 첨병이라는 사실, 철도 산업의 본성 - 절대, 독점, 거대, 피상 등 - 자체가 곧 근대성의 표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시작은 동력의 기계화였다. 산업 혁명으로 탄광 수요가 늘어났으나 세금의 영향 및 자연적인 제한으로 인간과 가축들의 노동력은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 때문에 자본가들은 인간과 가축들의 노동력을 대신할 발명품을 진작하는 데 수많은 자본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증기 기관의 발전이었고 열차의 등장이었다. ‘근대 생산 방식이 유기체 자연의 틀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육로 교통에 영향을 주었고 열차에 석탄이 아닌 사람을 태우자는 주장이 주목받았다. 열차에 타는 느낌이 마치 짐짝이 된 듯해 불쾌하다며 꺼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증기력은 곧 가축력을 대체했다. 효율을 향한 욕망에 철도는 순식간에 주요 운송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먼저 체감됐던 건 공간과 시간의 소멸이었다. 영국에서 초기 열차의 평균 속도는 32~48Km로 마차의 약 3배였다. 같은 거리를 3배 빠른 시간에 돌파하게 된 것이다. 시간의 단축으로 공간이 단축된 듯한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공간을 더 단축하기 위해선 철로를 확장하면서 멀리 떨어진 지역들 사이의 울퉁불퉁한 시간을 동기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지역적인 시간표가 없다면 열차 운행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따라서 개별적인 시간 - 고유성. 저자가 벤야민의 말을 빌려 꺼낸 아우라라는 개념 - 은 철도 운행을 위한 표준 시간에 포섭되며 모두 사라진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시간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보편 시간의 탄생 과정은 철도 산업의 본성과 근대성과의 상호관계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근대 이전과는 다른 절대, 독점, 거대, 피상과 같은 근대적 특징은 철도 산업이 표상하는데, 개별적인 시간을 배제하며 시간을 동기화했던 철도 산업의 본성은 운영의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개별적인 것의 배제를 통해 독점적 기준이 성립된 상태에서만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 초창기에 사람들은 철도가 운하나 유료 도로와 다름없는 교통로라고 생각했으나 기계 앙상블적인 특징(철로와 열차의 긴밀한 연결성)으로 독립적-경쟁적인 회사들이 같은 노선으로 열차들을 운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됐다. 수송 독점의 형태를, 거대 산업의 형태를 인정해야만 했다.

 근대화 이전의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잠시 사로잡긴 했지만, 철도가 가져다주는 시-공간의 감각과 편안함은 제2의 자연처럼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철도 기술은 사람들을 새로운 인지구조 속으로 욱여넣었고 그들은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구조화되었다. 그것은 책에서 파노라마화라고 언급된, 일종의 피상성이다. 밀도 있던 이전의 마차 여행과 달리 빠른 속도와 목적 지향성 - 효율적으로 목적지로 가는 게 중요하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한 건 아님 - 이란 특징 때문에 외부 대상과의 관계가, 타인과의 관계가 피상적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근대화의 효과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 저 피상성이다. 외부 대상과의 피상성은 그만큼 자아가 두터워짐을 뜻한다. 파노라마적 인지 상태로 구조화된 두터운 자아는 자신에게 몰입하지만, 그 몰입은 밀도 있는 몰입보단 집착에 가깝다. 현대인이 겪는 밀도의 상실, 이유 없는 피로 또는 짜증, 나는 틀리지 않고 약하지 않다는 믿음 등은 그 구조화의 효과다. 그것은 일종의 신경증이다. 저자가 언급한 한가로운 산책자의 인위성은 파노라마 적인 인지구조 상태에서 밀도와 여유가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즘 명상이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때 형성된 대도시적인 인지의 연속선상에 놓여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인지 구조 및 담론의 상호작용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철도 기술이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전통적인 여행, 인지 구조에 대한 추억과 겪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또는 설렘이 공존했고 그런 감정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럴 때는 얻을 수 있는 장점을 효과적으로 만끽하되 단점은 최소화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철도 산업의 폭력성, 피상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를 여는 주축이었고,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빠르게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위의 사례 외에도 철도는 의식주 문화부터 시작해 의학 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책에서 그런 영향의 궤적을 잘 좇아 그려냈다. 정독을 권하고 싶다. 70년도에 나온 책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가 있었다. 명저였다.

 책은 많은 의문 거리를 남겼다. 기술이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한다면, 우리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인지하지도 못하는 부분이 많을 텐데, 잃은 걸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으며 기술혁신을 추구하는데,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인지적 변화, 담론의 변화, 사회의 변화에 우리는 얼마나 대비를 하는 걸까? 기술이 혁신적인 만큼 급격한 변화에 피로해 하는, 또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등장하진 않을까? 기술과 더욱 가까워진 우리가 한 번쯤 던져보고 대답해봐야 할 질문들이 아닌가 싶다.


1)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이 물리적인 씨실과 날실들의 관계망이 인간의 관점과 만나 직조된 네트워크 자체라고 말했다.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관보다 옛사람들의 시간관과 더 어울리는 시각이다.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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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rader79 지음 / 에디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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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걸 빨리 만나서 너무 다행. 정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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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여행의 역사 -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 박진희 옮김 / 궁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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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기술은 인간의 인지 및 사회 담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훌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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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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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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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해서는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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