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임경택 옮김 / 사월의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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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같은 선진국은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자동차를 이용하기 불편한 곳이다. 도시 자체가 조성된 지 오래라 넓은 도로는 외곽이 아니면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도시의 구조를 계속해서 보존하려고 하기에 차를 운전하기에 편할 만큼 널찍한 도로나 많은 주차장을 바라긴 어렵다. 운전 문화도 보행자 중심으로 영국같은 경우엔 무단횡단이 합법이다. 반면, 한국은 무척이나 자동차 친화적인 나라다. 좁은 땅덩어리에 차도 꽤나 많은데 도시 자체가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 있고 문화도 자동차 위주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고, 초롯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아니면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렇게 자동차 친화적으로 구조화된 도시, 각종 문화, 국가 정책들에 익숙해져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사실 보행자 친화적인 나라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동차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 지를 깨닫는 게 어렵진 않다.




2. 이 책의 저자 우자와 히로후미는 1928년에 태어나 2014년에 타계한,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급격히 성장했던 자동차 산업과 그런 분위기와 함께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가던 일본의 모습을 불안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던 인물이다.

자동차가 현대문명을 상징하고 많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줬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이익이 분명히 있었기에 우리나라만 해도 2023년 기준,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2594만 9000대로 인구 1.98명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1970년대에는 13만대에 불과했으나, 1997년 말 1천만 대를 넘어선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우자와 히로우미 교수는 겉으로 보이는 그 화려함과 편리함 뒤로,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각종 해악과 그 해악이 제대로 비용화되지 않은, 사회적 비용에 주목했다.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해악으론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앞서 언급한 보행자의 권리, 즉 ‘시민적 권리의 침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은 기본권 중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권은 시민사회에서 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된 도시는 보행자의 보행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보행권에 대한 시민의식이 낮은 곳인데, 도로교통공단이 발간한 “2021년판 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 중 사망자 구성비가 38.9%로 1위를 차지했고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19.3%의 두 배 수준이다. 일본은 36.6%로 우리나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스쿨존, 보행안전법의 시행, 교차로 우회전 통행방식의 변경 등 보행권을 위한 여러 정책, 제도 등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이를 그저 귀찮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도 바로 곁을 스칠 정도로 건물이 가까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배기가스와 소음을 뱉어내며 달리는 자동차와 회색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차도를 횡단할 때는 보행자의 편의를 무시한 신호에 겨우 의지할 수밖에 없다. (…) 육교만큼 일본 사회의 빈곤, 저속함,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시설은 없을 것이다. 가로 설계에서부터 이미 자동차의 효율적 통행만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고, 보행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길고 가파른 그 계단들을 노인, 유아, 신체장애자가 어떻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86, 87)


다음으로는 각종 공해다. 자동차가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오염물질부터, 소음, 그리고 자동차의 생산 및 운행을 위해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공해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공해의 수준은 각종 통계자료로 잘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중앙환경분쟁위원회에서 2019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이 체감하는 환경오염 피해 원인의 1순위가 ‘도로의 차량소음 피해’(32.2%)였다. 그리고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대기오염배출량 중 일산화탄소(CO)의 23.8%, 질소산화물(NOx)의 34.2%, 미세먼지(PM2.5)의 7.1%가 자동차에서 배출되고 있다. 수도권으로 한정하면 이 수치는 각각 36.6%, 48.9%, 13.5%로 더 높아진다.

다음으로 각종 교통사고에 따른 피해다. 한국교통연구원에서 2023년 발표한 2021년 도로교통사고비용 추산액은은 44조원에 달한다. GDP의 2.1% 수준으로 독일(0.7%, 2020년), 영국(0.7%, 2021년)과 같은 교통선진국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도로가 이처럼 보행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도시환경을 파괴하는 형태로 설계된 결과,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자는 해마다 늘어나서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신적 고통까지 낳고 있는 상황이다. (…) 보행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도로 구조에서는 자동차 운전자가 아무리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95)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공 교통의 쇠퇴, 각종 도로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 교통체증으로 인한 비용 발생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뒤의 두 가지는 그다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진 않고, 공공 교통의 쇠퇴 부분만 살펴보자. 저자인 우자와 히로후미는 20세기 초만 해도 노면전차를 중심으로 발달되었던 공공 교통서비스가 자동차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쇠퇴하고, 수송분담률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서울 정책실의 “서울 교통정책의 변화”라는 자료에 따르면, 1965년 서울시 교통분담률은 버스가 54.4%, 택시가 26.20%, 전차가 19.4%였다. 이는 자동차의 보급 이전의 수치긴 하지만, 자동차 위주의 정책이 대중 교통 위주의 정책과는 상충되는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특히 수도권에서 더) 현재도 그다지 다르다고 볼 순 없겠다.


3.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계량화되지도 않고, 그 제대로 계량화되지 않은 비용마저 운전자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보행자나 거주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피해는 대부분 힘이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되어있다. 


[자동차의 보급이 이토록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그 보유대수가 끝없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동차 통행으로 제삼자가 큰 피해를 입고 희소한 사회적 자원이 소모되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대가를 거의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자동차 소유주나 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보행자나 거주자에게 전가하고 본인은 아주 미미한 대가만 지불해도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면 할수록 이익을 얻는 셈이 되어 그 수요가 증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동차 보유대수가 증가하여 도로가 혼잡해지면 다시 도로의 확충과 건설로 수용력을 높여서 혼잡 현상을 해소해온 덕분에 자동차 통행은 점점 더 편리한 것이 되어 보유대수가 더 한층 증가하고 도로도 다시 혼잡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103)


이렇게 발생된 비용을 책임지는 게 아니라 외부로 전가하는 것을 두고 경제학에서는 부정적 외부효과 또는 외부불경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운전자는 차량을 구입하고 그 차량을 몰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개인이 얻을 편리함과 이익만 생각할 뿐, 그 차량이 사회에 가져오는 각종 피해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산출하고, 그 비용을 제대로 책임지게 하며, 타인의 시민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로 등을 재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4. 반세기 전에 쓰인 책이고 저자가 주장하는 각종 방법들이 정치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문제의식은 정말 좋았다. 명확하게 머릿속에 있던 생각은 아니지만, 나도 늘 한국의 자동차 문화라던가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된 도시에 대해 어떤 답답함과 불편함,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실용성에 덧붙여 자기과시용으로 사용하는 문화나 후진적인 자동차 운전문화도 그렇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보행자 친화적인 도시를 설계하고, 그런 곳으로 가꿔나가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지만 아직 많이 요원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고물가 대응을 위해 유류세 등 각종 자동차 유지비용을 깎으면서, 환경적으로도,  공익적으로도 더 중요한 대중교통은 단순하게 계산된 재무재표상의 적자만을 운운하며 그것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편익은 고려치 않고 요금인상의 불가피성이 주장하는 곳이니까. 우회전 구간에서 일시정지한다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곳이니까.

이런 건 결국 올바른 정책적 방향성을 바탕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더 지게끔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공익을 위한 정책적 방향성은 저자가 잘 보여준 것 같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 또한, 여기서 책임을 더 져야 할 사람들은 사회에 가져다주는 비용에 비해, 값싼 가격으로 많은 편익을 누리는 자동차 소유자들, 운전자들일 것이다.


[자동차가 편리한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자동차를 구입하고 운전하기 위해 각자가 지불하고 있는 비용은 자동차 이용으로 얻는 편익보다 훨씬 작은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 (…) 수요는 점점 증가 (…) 이 같은 자동차 보급 추세는 도로 건설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나타나고, 자동차 소유에 따른 사적 편익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서 자동차에 대한 수요를 한층 더 유발한다. 

그러나 자동차 보유대수가 점점 증가하여 국토 면적의 더 큰 비율이 도로 및 관련 시설로 전용되면 될수록 자동차 통행에 수반하는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 시민의 기본적 권리 (…)가 자동차 통행으로 인해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로 건설 등에 얼마만큼의 추가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비용을 자동차 통행으로 편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부담할 때 사회적 공통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이 실현될 수 있고, 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형태로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떄 시민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그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 소득분배의 안전성이라는 기준에 근거 (…) 사회적 비용 개념의 배후에는 우리들이 어떠한 생활 수준을 누려야 하는지, 또한 어떠한 자원배분 및 소득분배의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하나의 사회적 가치 판단이 반드시 전제되어 있다.](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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